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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난이 사는 집 - 판자촌의 삶과 죽음 (커버이미지)
    [사회]가난이 사는 집 - 판자촌의 삶과 죽음
    • 김수현 지음
    • 오월의봄
    • 2023-12-27

    그 많던 판잣집은 어디로 갔을까?그곳에 살던 가난한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판자촌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는 무엇인가?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집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어디에서 살아갔을까? 이 책은 한때 서울 인구의 40% 가까이가 살기도 했던 판자촌의 역사를 통해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집의 역사를 추적한다. 판자촌의 형성과 밀집, 그리고 소멸 과정은 곧 한국경제의 성장 과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한국 자본주의의 폭력성도 숨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집을 잔인하게 철거하고, 그들을 내쫓는 과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큰 이익을 봤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쫓겨나야만 했다. “실제 판자촌의 역사는 철거의 역사나 다름없었고, 그에 저항해 싸운 역사이기도 했다.”(153쪽) 가난한 사람들이 도시에 정착하기 위한 전지 기지였고,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공동체이기도 했던 판자촌은 1980년대 폭력적인 철거 과정을 거치면서 한꺼번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 판자촌이 있던 자리에는 부자와 중산층이 살아가는 아파트가 세워졌다. 판자촌 주민들은 대부분 그 아파트에 입주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판자촌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판자촌이 철거된 후 가난한 사람들은 영구임대주택, 비닐하우스촌,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쪽방 등으로 흩어졌다. 책은 이 과정을 자세히 살피고, 판자촌 이후의 판자촌인 여러 형태의 집들의 역사도 살핀다. “일가족이 가난으로 스러져도, 아동학대와 방임이 있어도 철문 뒤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알아차리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가난하지만 역동적이었던 동네는 이제 가난이 숨겨진 집들로 흩어진 것입니다. 가난이 사는 집은 그렇게 모양을 달리하며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더 나쁜 조건에서 말입니다.”(8쪽)판자촌 철거의 역사,누구를 위한 재개발인가?판자촌 철거의 역사는 도심 재개발의 역사이기도 하다. ‘대전이나 대구 규모의 초대도시로 구상한 도시’인 광주대단지 개발, 시민아파트 건설, 합동재개발사업, 뉴타운사업 등 책에는 도심 재개발의 역사가 자세히 담겨 있다. 대규모로 재개발이 진행될 때마다 가난한 사람들은 집을 잃고 다른 곳으로 흩어져야만 했다. 시민아파트 등 그들을 위해 짓는다는 집에 그들은 결코 들어가 살 수 없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또 다른 나쁜 주거지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특히 전두환 정권 시절 진행됐던 합동재개발사업은 가히 폭력적이었다. 합동재개발사업은 주민(가옥주)과 건설업체가 각각 조합원과 참여 조합원이 되어 ‘합동’으로 재개발사업을 한다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다. 합동재개발사업은 1983년 시범사업을 시작한 이후 빠른 속도로 서울 전역의 판자촌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합동재개발사업의 충격은 컸다. 1980년대 초만 해도 서울 시민의 10% 이상이 거주하던 판자촌이 10년 만에 2~3%가 사는 곳으로 줄어들었다. 줄잡아 70만 명 이상이 판자촌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영구임대주택, 반지하방, 옥탑방, 고시원, 쪽방 등이 판자촌의 빈자리를 대신했다. 더군다나 이 연쇄 이동으로 다세대·다가구주택에서 근근이 살아가던 사람들마저 임대료 인상의 폭탄을 맞았다. 판자촌 주민의 관점에서 보면 합동재개발사업은 자신들의 주거지를 상위계층에게 제공하는 사업일 뿐이었다. 즉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사업이었다. 특히 판자촌 세입자들을 위한 대책은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더욱 잔혹했다. 합동재개발사업은 한국사회에 나쁜 선례를 많이 만들었다. 용적률 증가에 따른 개발이익을 사유재산처럼 소유자가 독식하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정부는 도시 개선을 위해 재정이나 자원을 투입하지 않아도 될 명분을 얻었다.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그저 개발 규제만 완화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시장 중심 규제완화론이 재개발, 재건축의 원칙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런 도시 재개발 논리는 부동산 시장을 더욱 양극화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시에서 살기 어렵게 만들었다.철거에 맞서 싸운 주민들책은 도심 재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철거민들의 저항도 자세히 다루고 있다. 기본적으로 정부는 집을 철거하기 전에 다른 곳에 살 자리를 제공한다는 원칙은 가지고 있었다. 시 외곽에 집단정착지를 만들었고, 광주대단지는 그중 신도시급 대규모 정착지였다. 시민아파트도 판자촌을 철거하고 주민들을 입주시키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이 주민들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광주대단지는 수도시설도 갖춰져 있지 않은 황무지에 불과했고, 시민아파트는 생활 형편에 비해 입주금이 너무 비쌌다. 더군다나 세입자들이나 후발 전입자들은 대상이 아닐 때도 많았다. 결국 1971년 광주대단지에서 참다못한 주민들이 들고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1970년대 철거 싸움은 대부분 일회성에 그쳤다. 대신 체념하거나 또는 분을 못 이겨 목숨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았다.조직적인 철거민운동이 시작된 건 1983년부터였다. 1983년 목동 주민들이 들고일어났다. 목동 주민들의 대응은 1970년대의 철거 싸움과는 차원이 달랐다. 무엇보다 조직화되고 체계적이었으며, 장기간에 걸쳐 지속되었다. 이전까지 이뤄졌던 ‘한차례 들고일어나는’ 수준의 철거 반대와는 차원이 달랐다. 100여 차례가 넘는 집회, 시위를 거치면서 약 2년간 계속되었다. 특히 당시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가두점거 농성이나 구청 진입, 경찰서 앞 시위 등이 수시로 벌어졌다. 이후 철거민 싸움은 사당동, 상계동, 돈암동, 오금동, 구로동 등 100여 곳이 넘는 곳으로 확대되었다. 초기에는 학생운동권이나 종교계 등의 도움을 통해 조직화되기도 했지만, 차츰 주민들이 스스로 연합조직을 만들고 이끌어갔다. 1987년 ‘서울시철거민협의회’(서철협)를 시작으로 1990년 ‘주거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주거연합) 등이 이런 차원에서 만들어졌다. 책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싸웠던 제정구, 정일우, 허병섭, 고광석, 김흥겸 등 빈민운동가들도 조명하고 있다. 저자 또한 이 당시 철거민운동에 함께했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도시는 가능할까?판자촌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싼 집이 필요한 사람들은 존재한다. 저자는 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싸고, 좋은 집’을 우리 사회가 갖춰야 하며, 더 좋은 조건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쫓겨나지 않는 개발 정책이 필요하며, 그런 점에서 도시재정비의 개발이익은 소유자뿐 아니라, 거기서 살아가는 가난한 계층, 나아가 도시 전체의 발전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래야 여러 소득계층, 여러 연령층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도시가 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좋은 집에서 살 수는 없다. 그래도 최대한 모두 싸고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모두가 좋은 동네에서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어느 동네든 안전하고 쾌적하며, 편리한 생활시설을 갖추도록 노력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도시에 부자나 중산층들만 살 수 없다. 도시는 여러 소득계층, 여러 연령층, 여러 직업군이 함께 살고, 만들어가는 공간이다.”(305쪽) 무엇보다 빈곤을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가난이 사라지지 않는 한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집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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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속 가보겠습니다 - 내부 고발 검사, 10년의 기록과 다짐 (커버이미지)
    [사회]계속 가보겠습니다 - 내부 고발 검사, 10년의 기록과 다짐
    • 임은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4-02-19

    길모퉁이에서,시민에게 보내는어느 검사의 편지《계속 가보겠습니다》의 저자 임은정 검사는 20년이 넘는 검사 생활 중 절반인 10년을 내부 고발자로서 살아왔다. 한때 ‘도가니 검사’로도 불릴 만큼 스타 검사였던 저자는 2012년 과거사 재심 사건 무죄 구형 강행으로 문제 검사로 급전 직하했다. 이후 ‘막무가내 검사’, ‘빨갱이 검사’, 심지어 ‘꽃뱀 여검사’에 이르기까지 적대와 혐오, 모멸의 꼬리표들이 저자를 따라다녔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이 몸담은 조직의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알고, 검사의 양심에 따라 분투했을 뿐이라고 말한다.이 책은 검사 임은정이 시민에게 보내는 검찰개혁 ‘중간보고서’다. 저자의 눈에 비친 검찰과 검사들에 대한 기록이자, 시민이 알아야 할 검찰의 속사정이다. 이 책의 1부 〈난중일기〉에는 저자가 검찰 내부 게시판인 ‘이프로스’에 쓴 글 19편과 글을 쓰게 된 상황, 당시의 심정 등을 전하는 뒷이야기가 담겨 있다. 마치 성장 앨범처럼 저자의 생각이 만들어지고 다듬어지는 과정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2부 〈나는 고발한다〉에서는 언론에 연재한 칼럼 13편과 분량 제한으로 칼럼에 담지 못하고 행간에 묻었던 사연과 뒷이야기가 담겨 있다. “나는 고발한다”진짜 ‘검찰주의자’ 임은정의검찰개혁 중간보고서《계속 가보겠습니다》에서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모해위증 교사 의혹 사건, 스폰서 검사, 별장 성 접대, 내부 성추행 사건 등 검찰이 정의를 외면했던 무수한 사례가 등장한다. 지금까지 검찰은 자기 조직만을 최우선시하고, 검찰의 문제는 노골적으로 외면하는 이중잣대를 견지하며 사법 정의를 조롱해 왔다. 검찰이 최우선의 가치로 두었던 건 진실이나 정의가 아닌 검찰 조직 그 자체였다.그동안 검사들은 표적 수사, 사건 은폐, 무죄인 사건에 무죄를 구형하지 말라는 등의 위법한 업무적 지시에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당했다. 또한 위법한 지시에 항명하거나 문제를 제기한 검사들이 오히려 징계를 받고, 낮은 인사 평정과 표적 사무감사 등으로 각종 불이익을 받았다. 아울러 상급자의 업무 외적인 폭언, 성추행 등 갑질에 검사들은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었고, 이를 목격한 상당수 검사가 방관했다. 또한 상급자 시각의 논리와 소문에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입고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저자는 이 같은 문제들이 모두 검찰의 잘못된 조직 문화와 시스템, 이에 순응한 검사들 탓이라고 일갈한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검찰의 여러 잘못을 고백하면서 부끄러운 것은 검찰의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고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검사 임은정은 진정한 의미의 ‘검찰주의자’다. 검찰이 바로 서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고, 그래야만 민주주의와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검찰의 유불리에 따른 검찰권 행사가 아닌, 검사도 잘못했을 때 처벌받는다는 법과 원칙에 따른 검찰권 행사다. 지난 10년간의 주저함과 흔들림,그리고 선택과 결단“계속 가보겠습니다.” 이 책의 제목 그대로 저자는 계속 가보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삶은 곧 길이라고 생각하는 저자는 고장 난 검찰을 바로 세우기 위한 역할을 계속해 보겠다고 다짐한다. 《계속 가보겠습니다》는 시민에게 그러한 저자 자신의 각오와 다짐을 널리 밝히고, 멈추지 않겠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위한 의지의 표현이다. 검찰의 변화를 위한 길을 계속해서 열어가는 것, 주저함과 흔들림 속에서도 꿋꿋이 나아가는 것, 저자가 선택의 갈림길 속에서 택한 길이다. 검사 임은정은 내부 고발자로서 살아온 10년을 이 책을 통해 결산하고, 다시금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다. 역사의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 되어, 검찰을 바로 세운 뒤에 흐뭇한 ‘해피 엔딩’이 담긴 결과 보고서를 하루빨리 시민에게 내놓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면서 시민에게 변화된 미래를 함께 꿈꾸어 보자고 말한다. 결국 《계속 가보겠습니다》는 검찰의 변화를 향해 가는 역사의 힘찬 발걸음을 함께 내딛자는, 한 검사의 동행 제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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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괴물이 된 성범죄자들 - 무도실무관이 들려주는 성범죄 예방 솔루션 (커버이미지)
    [사회]괴물이 된 성범죄자들 - 무도실무관이 들려주는 성범죄 예방 솔루션
    • 안병헌 지음
    • 슬로디미디어
    • 2024-02-19

    과연 대한민국은 치안 안전국이 맞을까?어떻게 하면 성범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치안 안전국 이미지가 강하다. 실제로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일상에서 절도, 차량 강탈 등의 범죄 피해를 입는 경우가 적다. 24시간 운영하는 식당, 편의점이 있어 늦은 시간에도 돌아다닐 수 있다. 외국인들은 대한민국을 여행하기 좋은 이유 중 ‘치안’을 1순위로 꼽기도 한다. 하지만 성범죄에서는 절대 안전국이 아니다. 2020년 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당해 성범죄는 30,105건 발생했다.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성범죄는 32.9% 증가했다. 대한민국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 우리에게 밤길은 여전히 두렵다. 《괴물이 된 성범죄자》의 저자는 무도실무관으로서 성범죄자들을 최일선에서 관리하고 있다. 저자는 대상자들에게 직접 전자발찌를 부착하고 관리하며 그들의 재범 위험성을 몸소 느껴왔다. 성범죄자들은 의외로 우리 가까이서 살아가고 있고 범행은 방심하기 쉬운 상황에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이에 대처할 방법을 꾸준히 연구했다. 이 책은 저자가 실무 경험을 토대로 연구한 성범죄의 유형과 범죄 수법, 예방법 및 대처 매뉴얼을 담아냈다. 1장과 2장에서는 우리나라의 성범죄 실태와 우리가 놓치기 쉬운 성범죄자의 특징을 정리했다. 3장과 4장에서는 상황별, 유형별 성범죄와 대처법을 알려준다. 일상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성범죄 유형과 수법, 예방법 등을 설명한다, 5장은 디지털 그루밍 성범죄를 비롯한 각종 그루밍 성범죄에 대해 다룬다. 6장은 나이대별로 주로 발생하는 성범죄를 정리했다. 마지막 7장에서는 상황별 안전 솔루션을 수록했다. 방심하고 놓칠 수 있는 위험 상황과 국가 안전 서비스 등 팁을 담아냈다. 성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이상적인 사회는 언제 올지 모른다. 화나는 현실이지만 언제든 나에게도 위험한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성범죄 유형과 수법, 대처법을 미리 파악해두고 최대한 위험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부디 이 책에서 제시한 예방·대처법으로 한 명의 국민이라도 더 안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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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 - 대답해도 듣지 않는 학교를 떠나다,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 (커버이미지)
    [사회]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 - 대답해도 듣지 않는 학교를 떠나다,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
    • 민나리.김주연.최훈진 지음
    • 오월의봄
    • 2023-12-27

    “자퇴는 학교에서 궁지에 몰린 저한테 마지막으로 남은 선택지였어요.그걸 고르는 게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혐오와 차별이 만든 어떤 청소년기에 관하여학업과 진로, 미래를 고민해야 할 청소년기에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거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낼 수 없어 내적 갈등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의 많은 청소년은 중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생활 깊숙이 들어오는 성별 이분법의 세계를 맞닥뜨린다. 남녀학교, 남녀학번, 남녀분반, 남녀교복, 남녀기숙사 등 사사건건 남녀를 나누고 구분하는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스스로를 지정 성별과 다른 성별로 인식하는 청소년들은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다.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혼란스러운데, 학교는 안전하게 스스로를 마주할 수 있는 울타리는커녕 혐오와 차별의 총탄이 쏟아지는 전장이다. 성소수자 관련 성교육이 의무화되어 있지 않는 등 제도적 지원은 전무하고, 학교생활 대부분이 여자 아니면 남자로 구분될 것을 강제하는 상황에서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은 자신을 숨기며 생존에 모든 힘을 소진하거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존중받고자 홀로 분투에 나서다 지쳐 학교를 떠난다.《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는 바로 이 시기, 혐오와 차별 때문에 친구들과는 너무도 다른 청소년기를 보내는 트랜스젠더들의 삶과 그 주변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사회적으로 조명하는 책이다.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구체화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가정, 학교, 사회 어디에서도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데 문제의식을 가진 저자들은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인권 실태를 알리고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심층 취재에 나섰다. 약 6개월에 걸친 취재 끝에 대한민국 청소년 트랜스젠더 인권 실태 보고서라 할 만한 기획연재가 〈벼랑 끝 홀로 선 그들: 2021년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라는 제목으로 《서울신문》에 연재되었다. 청소년 트랜스젠더 8명과의 대면 인터뷰와 청소년 트랜스젠더 224명이 참여한 양적 조사를 아우르며 혐오와 차별이 일상인 학교와 사회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선생님, 부모,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논하며, 성소수자 인권단체 및 법조계, 의료계 등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전문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사회적ㆍ의료적ㆍ제도적으로 어떤 대책과 변화가 필요한지까지 제시한 심층 보도였다.이는 그간 트랜스젠더가 침해받는 인권문제가 성인 트랜스젠더의 의료권, 노동권 등 특정 권리의 침해를 중심으로 논의됨으로써 불가피하게 그 영향력이 축소되었던 혐오와 차별을 있는 그대로 명확하게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특정 상황이 아니고서는 마치 없는 것처럼 여겨졌던 혐오와 차별은 ‘청소년기’로 시간 축을 이동하자 매서운 영향력을 드러냈다.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영향을 미치는지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 연재는 2021년 12월 13일 첫 기사가 온라인에 송출된 이후 약 3개월 만에 3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읽혔고, 혐오와 차별이 만든, 그러나 이전에는 쉽게 상상하지 못했던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삶을 마주한 독자들은 사회적ㆍ제도적 변화를 촉구하며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이 책은 바로 그 기사에서 시작되었다. 보도 이후 저자들은 지면의 한계로 기사에 미처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를 비롯해 약 5개월간의 추가 인터뷰와 취재를 거쳐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인권 실태를 기록한 한 권의 책을 새롭게 써냈다.혐오와 차별이 일상인 학교를 떠나다저자들은 청소년 트랜스젠더 8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트랜스 남성 4명과 논바이너리 트랜스 남성 2명, 트랜스 여성 2명이다. 이들이 들려준 이야기에는 탈학교, 탈가정, 저임금ㆍ고강도 노동으로 내몰린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1장은 혐오와 차별이 일상인 학교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게 마지막으로 남는 선택지가 어째서 탈학교가 되는지 알게 된다.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학교에서 조금이라도 자신을 드러낸 이들은 친구들의 폭언이나 괴롭힘에 시달렸다. 늘 사람이 없는 시간대를 골라 화장실에 다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생활할수록 주변의 편견은 더욱 공고해지고 ‘너는 남자냐, 여자냐?’라는 동급생들의 질문은 일상처럼 반복됐다. 그러나 교사들은 교육이나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여자답지/남자답지 않은’ 트랜스젠더 학생들을 문제아로 낙인찍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청소년 트랜스젠더 224명 중 68.8%는 교사의 혐오 발언을 들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최희원씨는 담임선생님에게 자퇴를 ‘권유’받았고, 친구들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주먹을 휘두른 박영씨는 선생님에게 “때린 네가 잘못했다”는 질책을 받았다. 이들은 결국 학교를 떠났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교에서 자신을 조금이라도 드러내는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많지 않다. 대부분은 애초에 학교가 자신을 이해할 거란 기대조차 하지 않아 벽장 속으로 숨는다. 머리 하나 기르는 것도 온갖 지적에 시달려야 하는 곳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너무 위험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출석에만 의의를 둔 채 하루하루를 힘겹게 견디던 윤슬(21세, 가명)씨의 모습을 보다 못한 부모는 먼저 자퇴 이야기를 꺼냈다. 2차 성징과 함께 성별 불쾌감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마주하는 일상적 차별과 혐오는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등교 준비를 하는 아침마다, 출석이 불릴 때마다, 화장실에 가야 할 때마다 계속해서 내가 아닌 다른 성별이길 강요되는 일에 지쳐가지만 학교 안에서 도움을 줄 만한 어른은 보이지 않는다.그렇다면 학교 밖에서는 어떨까. 저자들은 국가인권위원회나 지역별 학생인권교육센터 등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 있기는 하지만 외부 기관을 통해 학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혐오와 차별이 공고한 상황에서 아우팅을 우려하는 청소년들은 쉽사리 권리구제를 신청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입시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것을 염려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의 내용이 담긴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곳은 서울, 경기, 광주 등 총 6개 지역에 불과하다. 조례가 제정된 곳과 제정되지 않은 곳의 차이도 있지만, 앞서 권리구제 신청을 어려워하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조례가 있다 한들 이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그렇게 이들은 오로지 주변 개개인의 ‘선의’에 기대며 홀로 견디다 결국은 포기하듯 학교를 떠난다. 저자들이 만난 8명의 청소년 트랜스젠더 중 6명은 중고등학교를 그만뒀다고 말했다. 이보다는 적은 비율이지만 설문조사를 통해 나타난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5~24세 청소년 트랜스젠더 22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21.9%는 학업을 중단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재학 중 연령인 15~18세로 범위를 좁혀도 학업중단율은 13.6%에 이르렀다. 교육부가 매년 발표하는 교육기본통계에 따르면 설문조사와 동일한 시점인 2020년 기준 전체 중고등학교 학생의 학업중단율은 0.8%에 불과하다. 무려 17배의 차이다.커밍아웃에 등 돌린 부모, 살기 위한 노동에 뛰어드는 아이들혐오와 차별의 일상은 가정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2장은 탈가정과 함께 저임금ㆍ고강도 노동으로 내몰리는 이들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겼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저자들에게 하나같이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부모들은 일단 커밍아웃을 회피하다가, ‘알겠다’고 하고는, 이내 없었던 일처럼 무시한다는 것이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청소년 트랜스젠더 중 약 70%가 부모에게 커밍아웃하지 않았다고 답한 것도 지난한 갈등이 예상되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님이나 친구들도 모자라 부모에게까지 자신을 부정당하고 싶지 않은 청소년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숨긴다.커밍아웃이든 아우팅이든 성정체성을 알게 된 가족은 대개 그 사실 자체를 모른 체하거나(55.2%) 대화를 단절(40.5%)했다. 언어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44.8%나 됐고, 원하는 성별 표현을 저지당한 경우도 40.5%로 높게 나타났다. 박도윤씨처럼 ‘남자 귀신’을 떼어낸다는 굿판에 끌려가는 식으로 전환치료를 강요당하거나(15.5%), 경제적 지원을 끊는 경우(13.8%)도 적지 않았다. 12.9%는 신체적 폭력까지도 겪어야 했다.탈가정은 자신을 부정하는 가족의 폭력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 된다. 15세~18세 청소년 트랜스젠더 응답자 중 무려 62.1%가 탈가정을 고민했고, 12.2%는 이를 실행했다. 법적 성인이 되면 실행에 옮기는 비율은 더 높아진다. 19~24세 청소년 트랜스젠더 중 75.9%는 탈가정을 고민했고, 41.7%는 가정을 떠났다. 이들은 평균 16세의 나이에 자유를 찾기 위해(65.5%), 가정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49.1%), 성정체성에 따른 갈등에서 벗어나기 위해(45.5%) 이미 그 의미가 없어져버린 가정이란 울타리를 넘었다.가정을 떠난 아이들은 어떤 삶을 이어가게 될까. 정서적ㆍ경제적 지원이 모두 사라져버린 상황에서 학교 밖 청소년을 지원하는 쉼터를 찾기도 하지만 이곳 역시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되어 있어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여자애들만 받는 쉼터도 많고, 퀴어 프렌들리한[성소수자 친화적인] 선생님을 만날 가능성도 거의 없으니까요”라는 신동휘씨의 말은 탈가정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처하는 암담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탈가정한 청소년 트랜스젠더 대부분(72.7%)이 지인이나 친구의 집으로 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생계와 호르몬치료 등 의료적 트랜지션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노동시장에 뛰어들지만 청소년이자 트랜스젠더인 이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일자리는 거의 없다. “청소년이라고 잘 뽑아주지도 않는데 트랜스젠더는 성별까지 애매모호해 보이잖아요. 법적 성별이 여성이니까 서비스직이면 ‘여성다움’을 원하고요. 그러니까 힘든 일을 할 수밖에요.” 그렇게 동휘씨는 공장과 물류센터, 택배 상하차 일용직을 전전했다. 이처럼 이들의 노동은 저임금, 고강도, 불안정, 차별 속에서 위태롭게 이어진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다른 성별이 기재된 주민등록증이 발급되고 나면 일자리 찾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일하는 경우도 있다. 저자들이 만난 청소년 트랜스젠더 인권모임 튤립연대의 한 활동가는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이들에게 아무런 지원도 없이 ‘더 나은 미래를 꿈꾸라’고 말만 하는 건 가혹한 일”이라고 말했다.유예되는 꿈, 강요되는 인고의 시간생계도 생계지만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더 일찍 노동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건 호르몬치료 등 의료적 트랜지션에 필요한 비용 때문이다. 의료적 트랜지션과 함께 많은 트랜스젠더가 삶의 기반을 위해 최소한으로 시도하게 되는 일은 주민등록증 등 공부상 기재되는 성별을 정정하는 것이다. 이는 행정상 요구되는 성별을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과 일치시키는 일로,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데 문제가 되는 특정 사항을 바로잡는 일과 같다.하지만 성별정정은 그야말로 인고의 연속이다. 3장은 한국 법원이 성별정정 신청을 어떤 기준으로 허가하거나 기각하는지를 이야기하며 그 문제점을 다룬다. 성별정정을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하는, 법적으로 명시된 조건은 없다. 성별정정 신청 사건을 맡은 판사들은 법원 내부적으로 마련된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이라는 이름의 예규를 참고하여 재량적으로 판단한다. 이러한 지침의 핵심적인 문제는 ‘미성년자가 아닐 것’이라는 요건과, 자궁 적출, 생식기 수술 등 당사자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의료적 조치를 부당하게 강제한다는 것이다.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경우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자기결정권을 또다시 억압당하는 복합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또한 여자보다 더 여자답기를, 남자보다 더 남자답기를 요구하는 동시에 ‘당연히 이성애자’일 것을 전제하는 판사들의 편견도 문제적으로 작용한다. 현실적으로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성별정정을 시도할 엄두조차 낼 수 없다. 삶의 기반은 그렇게 유예된다.저자들은 당사자들의 목소리와 함께 실제 병원에서 트랜스젠더를 만나는 의료인 및 성별정정 항소심을 진행하는 변호사들 및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나아가 유의미한 국내 판례들과 과거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에서 불임 수술을 강제했던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비극적 역사를 성찰하고 폐기했는지를 직접 취재했다. 이를 통해 성별정정 과정에 존재하는 복합적인 문제들을 드러내고 그 심각성을 뚜렷하게 전달한다.서로의 행운이 되어준 사람들, 청소년 트랜스젠더와 앨라이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인권 실태를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는 이 책은 어딘가에서 이들의 곁에 있을 개개인들이 당장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알려준다.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실제 그들 곁을 지킨 앨라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다. 저자들은 4장에서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곁에 있는 사람들의 역할과 책임에 주목한다. 박영씨의 ‘영원한 담임선생님’ 신미경씨, 김신엽씨의 싸움을 외롭지 않게 해준 친구 하예림씨, ‘아들’인 줄 알았던 아이가 ‘딸’임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신 역시 온갖 감정의 격랑을 겪은 김수현씨가 그 주인공들이다. 또한 부모로부터 한 인간으로서의 존중을 요구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며 계속해서 먼저 손을 내미는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아울러 캐나다, 미국, 네덜란드의 학교 및 기관이 어떻게 앨라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도 빼놓지 않았다. 외모나 목소리로 성별을 판단하지 않는 것, 법적 성별이 아닌 스스로가 정체화하는 성별을 묻고 이를 존중하는 것, 성중립화장실 등 성별 이분법적이지 않은 공간을 구성하는 것, 성소수자 학생들이 불안이나 괴롭힘에 시달리느라 학습을 뒤로하지 않도록 제도적 대책을 시행하는 것 등 청소년 트랜스젠더/성소수자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를 시행하고 있는 해외 사례는 한국의 문제적 현실과 대비되며 어떻게 실질적으로 청소년들을 보호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태어난 대로 살라”는 말이 존중과 지지의 의미로 거듭날 때마지막 5장은 현존하는 그 어떤 국가 통계도 트랜스젠더/성소수자의 인구규모를 추산하지 않아 존재 자체가 가려지고 있는 문제점과 함께, 성별 이분법을 벗어난 ‘제3의 성’인 논바이너리까지도 법적으로 인정하는 해외와 달리 차별금지법조차 제정되지 않고 있는 한국사회 제도적 퇴행을 지적하며 변화를 촉구한다. 저자들은 2021년 차별금지법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진행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가 나올 때마다 언급되는 ‘사회적 합의’의 실체를 ‘보수 개신교계의 혐오’로 명확하게 드러낸다. 저자들이 분석한 바로, 차별상황을 법적으로 다툴 수 있는 법적 기반의 마련인 차별금지법 제정은 이미 많은 시민이 바라는 미래다. 문제는 정치가 이러한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채 방관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방관이 이어지는 동안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은 고스란히 혐오와 차별에 노출되었다. 학교와 가정을 떠나고, 자신을 숨기고, 지난한 성별정정을 위해 일찍부터 노동에 뛰어들며 법정에서 자신을 ‘증명’하고, 원하지도 않는 수술대에 올라야 하는 누군가의 청소년기는 바로 그러한 혐오와 차별이 만든 것이다. 저자들은 더 이상의 방관을 멈추고 정치와 동료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촉구한다. 막연한 상상과 무지로 혐오와 차별에 동조했더라도 기꺼이 앨라이로, 동료 시민으로 함께하는 미래를 그릴 수 있다고 말한다.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여자/남자라는 이분법의 선택지를 제시하지 않는 사회를, “태어난 대로 살라”는 말이 폭력이 아닌 존중과 지지의 의미로 거듭나기를 이 책은 염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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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설이는 사랑 - 케이팝 아이돌 논란과 매혹의 공론장 (커버이미지)
    [사회]망설이는 사랑 - 케이팝 아이돌 논란과 매혹의 공론장
    • 안희제 지음
    • 오월의봄
    • 2023-12-27

    헤맴과 망설임의 난기류가 만들어내는 매혹의 공론장관심경제와 ‘논란의 네트워크’ 틈새에서 피어나는 팬심, 자신만의 방식으로 윤리적 분투를 이어가는 팬들의 이야기를 듣다‘논란’은 어떻게 유행이 되는가? 온갖 논란을 유행처럼 소비하는 온라인 공론장의 구조를 파고드는 정교한 문화비평서이자 문화기술지. 저자는 논란에 가장 취약한 존재인 케이팝 아이돌 아티스트에 초점을 맞춰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온라인 공론장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학교폭력, 갑질, 성폭력, 인권 의식부터 역사 인식, 인성 등에 이르기까지 아티스트의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모든 사건이 관심경제attention economy의 네트워크 안에서 어떻게 하나의 ‘논란’으로서 조직적으로 생산되는지 들여다보는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곧 화폐가 되는 이 새로운 경제 체제에서 논란은 특정 종류의 관심을 생산하고 그와 결부된 대중 및 공론장을 구성한다. 그러면서도 《망설이는 사랑》은 온라인 공론장의 문제를 다루는 여느 책들과 차별화되는 독특하고도 참신한 궤적을 그리며 나아간다. ‘망설이고 주춤하는 팬들’과의 생생한 인터뷰/대화를 통해 그 공론장 내부에서 형성되는 거대한 폭력의 네트워크를 꿰뚫기 때문이다. 이때 망설임이란, 논란의 중심에 선 아티스트의 팬으로서 혼란과 고통을 경험하지만 그 무분별한 폭력에 가담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진실을 찾고 윤리적 분투를 벌이는 태도를 가리킨다. 팬, 특히 아이돌 팬들은 언제나 비합리적이고 무지하다는 혐오와 편견에 둘러싸여 있지만 저자가 만난 팬들은 우리에게 그와 전혀 다른 경로를, 즉 팬심과 덕질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가능성을 보여준다. 대중-팬-사이버렉카-언론-알고리즘-소셜미디어 플랫폼 등의 행위자가 결합하는 무분별한 논란과 폭력의 네트워크 내지는 캔슬 컬처에 가담하지 않고 망설이는 팬들을 통해 우리는 ‘가해자 감별’과 ‘무조건적 퇴출’을 넘어서는 논의/사유 방식을 모색할 수 있다. 이들의 윤리적 실천이 어떻게 좀 더 나은 온라인 공론장 문화를 상상하고 만들어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지 살펴보자. 논란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이들: 팬 그리고 팬심에 대하여흔히 팬심과 덕질은 어떤 개인의 자율적 선택에 따른 행위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 책은 팬심이라는 마음을 바라거나 선택하지 않아도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사건 혹은 상황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해석은 팬이라는 정체성을 소비 행위나 팬덤이라는 집단에 대한 강한 소속감에 근거해 규정짓지 않으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같은 맥락에서 덕질이란 팬심이라는 상황에 내던져진 이들이 자신에게 찾아온 당혹스러운 행복을 다루기 위해 필연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실천에 가까우며, 궁극적으로 자신의 삶 자체를 새롭게 조율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처럼 저자는 팬에 대한 여느 혐오 어린 시선을 답습하며 팬을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소비) 행위자로 낙인찍지 않고자 하며, 따라서 이들을 둘러싼 여러 사회적 영향들에도 주의를 기울인다.그런 점에서 논란은 팬심과 덕질의 사회적이고도 윤리적인 측면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계기가 된다. ‘최애 멤버’의 논란은 팬들에게 죄책감을 안김으로써 덕질을 윤리적인 고민을 수반하는 행위로 변모시킨다. “자신이 사랑하는 아티스트가 자신이 알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낼 때”, “특히 폭력적인 언행에 대한 의혹이 제기될 때”, 논란은 거대한 사건이 되며 덕질의 근간이 되는 팬심 자체를 뒤흔들게 된다. 그렇다면 팬들은 논란에 어떻게 대응할까? 다양한 대응 방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 책이 관심을 두는 이들은 판단을 보류하거나 계속해서 수정하고 갱신함으로써 쉬이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무르는 팬이다. 신속한 판단을 거쳐 아티스트의 곁을 떠나는 이들과 다르게 그 자리에 남아 헤매고 망설이는 팬들. 논란에 휩싸인 ‘클린’하지 못한 아티스트의 팬을 자임한다는 건 곧 도덕적·윤리적 오염 공유하는 일이다. 논란은 아티스트, 특히 여성 아티스트를 (유죄·무죄 여부를 가리지 않고) 빠르게 매장시킨다. “이때 관심경제 바깥으로 밀려난 ‘철 지난’ 이들을 계속 좋아하는 일은 유행에 뒤처지는 일이 된다. 논란은 유행이지만, 논란에 휩싸인 아티스트의 팬이 되는 것은 유행에 뒤처지는 일이다.”논란을 생산하는 네트워크: 알고리즘, 처형대, 사이버렉카 논란에 대응하는 팬에 주목하는 것만큼 중요한 작업이 또 있다. 바로 ‘논란’이라는 명칭/범주 자체에 대해 되짚어보는 일이다. 아이돌 산업에서는 갑질, 인성, 역사/인권 의식, 성추행, 학교폭력, 뒷광고, 소아성애 옹호 등 내용상 하나로 묶이기 어려운 사안들이 전부 논란으로 통칭된다. 서로 다른 이런 사건들을 ‘논란’이라는 성긴 범주 안에 포괄할 수 있는 근거는 과연 무엇일까? 그 해답을 우리는 다름 아닌 논란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논란을 증폭시키는 네트워크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 인터뷰에 응한 인터뷰이 중 한 명인 아메(가명)는 연예계, 특히 아이돌 산업에서 발생하는 논란이 “종류를 막론하고 그 논란의 당사자들을 거의 매장하는 방식으로, 사건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당사자들의 인성과 노력을 깎아내리거나 성희롱을 일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처럼 당사자를 비난하는 프레임 속에서 논란이 된 행동 자체와 사건의 진실은 관심의 영역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아이돌 논란은 어떻게 생산될까? 아이돌 논란은 대개 ‘인성 논란’으로 수렴되는데, 아이돌의 ‘필수 덕목’으로 여겨지는 인성과 도덕성이야말로 아이돌을 논란에 취약한 존재로 만든다. 2010년께 힙합 그룹 에픽하이의 멤버 타블로/이선웅에게 제기되기 시작한 학력 위조 혐의와 이 음모론을 중심으로 꾸려진 온라인 커뮤니티 ‘타진요’는 여러 측면에서 아이돌 논란과 궤를 같이한다. ‘네티즌 수사대’와 ‘신상 털기’로 대표되는 온라인 행동주의, 배신감에 뿌리를 둔 ‘너도 추락시키겠다’는 정서(일종의 정서적 평등주의) 등은 온라인상에서 확산되는 각종 논란의 핵심 요소로 보인다. 그러나 《망설이는 사랑》은 타진요 사건 때와 다른 현재의 특수한 요건에 주목한다. 대중을 계산하고 상상하는 알고리즘과 그 알고리즘이 퍼뜨리는 ‘처형대’가 바로 그것이다. 처형대의 문법은 각종 카페나 커뮤니티 같은 특정 구심점 없이도 논란을 삽시간에 확산시킨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유튜브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이버렉카가 있다. 어떤 채널을 사이버렉카로 규정할 수 있는지, 단순한 ‘이슈 채널’과 사이버렉카 채널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등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조회수 생산용 혐오 콘텐츠물을 뉴스인 것과 같이 포장한 이슈 콘텐츠를 익명으로 작성 후 사건이 발생하면 채널을 삭제하거나 영상을 내리는 등의 행위를 반복”한다는 것이 사이버렉카 채널에 대한 통상의 설명이다. 그중에서도 아이돌을 표적 삼는 사이버렉카들은 아이돌 아티스트의 사생활 등 무대 뒤의 ‘진짜 모습’을 알려주겠다며 유료 회원 전용 콘텐츠를 통해 팬들의 호기심과 욕망을 자극한다. 호기심과 욕망에서 비롯되는 특정 행위들은 논란에 적극적으로 자금을 대주며 폭력적인 네트워크와 접속한다.‘너 같은 아이들이 사랑받으면 안 되지’: 처형대를 작동시키는 ‘도덕주의’와 ‘사랑의 자격론’ 더욱더 의미심장한 것은 사이버렉카가 아이돌 산업이 성공하는 지점에서 이익을 취한다는 사실이다. 팬 중에서는 사이버렉카를 구독하지 않는 이가 더 많겠지만, 어떤 이에게 사이버렉카 구독은 덕질의 연장선상에 있는 행위일 수도 있다. 물론 단순히 어떤 영상의 조회수와 그 조회수가 누구에게 이득을 가져다주는지를 기준으로 팬과 (팬이 아닌) 대중을 가르기란 어렵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관심의 ‘양’이 아닌 ‘질적 측면’이다. 같은 영상을 본다 하더라도 사람들들마다 입장과 감정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팬들의 댓글에서 불안이나 좌절, 혹은 분노와 같은 감정이 주로 드러나는 것과 달리, 팬이 아닌 이들의 댓글은 옳고 그름, 즉 도덕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팬과 대중의 차이는 해당 영상/콘텐츠를 보는 이유, 방식, 보면서 느끼는 감정에 있다. 즉 아이돌 사이버렉카는 아이돌 사이버렉카는 가십을 즐기는 대중, 자기 최애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불안한 팬들, 유튜브라는 영상 중심 플랫폼, 관심경제가 결합해 작동하는 하나의 네트워크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전체공개용 콘텐츠와 회원 전용 콘텐츠를 분화해 대중과 팬들의 관심을 모두 얻어내며 관심경제 안에서 수익 경로를 안정적으로 다원화한다. 여기서 (아이돌) 처형대란 특정 아이돌 아티스트를 비난하도록 ‘판을 깔아주는’ 영상을 말하며, 주로 비난조의 제목과 그에 상응하는 아이돌의 영상을 배치하거나 해당 아이돌의 논란을 요약 및 정리하는 형식을 띤다. 사이버렉카에 의해 세워지는 처형대는 꾸준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얻는다. 그렇다면 처형대가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처형대가 성행하는 데는 대중의 ‘집단적 도덕주의’라는 배경이 존재한다. 결국 처형대는 집단적 도덕주의가 발현될 수 있는 토양인 셈이다. 공적 담론 안에서 자신의 도덕적 자질을 과시함으로써 인정받고자 하는 행동 패턴은 온라인 공론장에서 흔히 발견된다. 이는 온라인 공론장에서 자주 나타나는 ‘그랜드스탠딩grandstanding’의 한 가지 사례로도 거론될 수 있다. 그랜드스탠더는 각종 논란 안에서 자신을 ‘대중’이라는 이름의 ‘옳은 편’으로 규정함으로써 타인들의 인정을 받고자 하며, 그런 인정을 획득하기 위해 논란 속 팬들과 아티스트에게 과도한 비난을 쏟아낸다.이때 공론장을 지배하는 것은 감정과 믿음이지, 이성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무엇이 이성적인 판단인지보다 ‘도덕적인 것’에 대한 믿음과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느끼는 감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관심이다. 여기서 도덕적인 것은 ‘행복할 자격’,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대중에 의해 판단되고 상상되는 것을 가리킨다. 이렇게 얻는 관심은 다시금 그 감정과 믿음을 강화한다. 관심과 감정 혹은 관심과 믿음이 서로를 강화하며 증폭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도덕 혹은 ‘도덕적인 것’에 대한 특정한 형태의 상상, 이를테면 ‘정의 구현’으로서의 사이버불링을 촉진한다.특히 아이돌 아티스트는 무대 위에서 멋진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물론 훌륭한 인성까지 갖추고, 무대 뒤 일상의 모습까지 철저히 상품화해야 하는 여건에 놓여 있다. ‘무대 위’ 모습과 ‘무대 뒤’ 모습의 차이(‘갭’, ‘온도차’)를 통해 인격 혹은 인성까지 하나의 매력 상품으로 구성해내야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이돌 아티스트의 논란은 학교폭력이든, 갑질이든, 성폭력이든, 심지어는 실력의 문제마저 모조리 ‘인성 논란’으로 치환된다. 사실 인성과 도덕성은 단순한 고발만으로도 훼손되기 쉬운 가치로, 아티스트는 인성과 관련한 논란이 생길 때 비난받기 쉬운 위치에 놓인다. 더불어 이들은 언제나 밝은 모습을 유지해야 하는 등의 감정노동을 요구받기도 한다. ‘대중’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수배 문화와 비난의 기술사랑의 자격론이 아티스트에 대한 여론에서 드러나는 어떤 태도와 연관된다면, 수배의 기술은 그 태도가 온라인에서 구체적으로 실천되는 양상을 포착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사랑의 자격론은 ‘수배 문화’와 ‘비난의 기술’이라는 두 실천의 결합을 통해 실현된다. 가출 청소년의 폭력 하위문화에서 비롯된 언어인 수배 문화는 “세상의 지배적인 질서에서 자신을 규정할 만한 공간을 박탈당한 이들”이 폭력으로 힘과 의미, 그리고 인정을 추구하는 과정으로, “자신들이 어떠한 것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권위를 경험하고 확인하는 장”이 된다.수배 문화는 아이돌 논란을 둘러싼 장 안에서 ‘좌표 찍기’의 방식으로 재구성된다. 쯔양이나 한혜연과 같이 유튜브 뒷광고 논란에 연루된 이들에 대한 캔슬 컬처cancel culture와 자작곡 <제제>와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두고 발생한 아이유/이지은 논란의 흐름은 연예인, 특히 젊은 여성 연예인이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괘씸한 양가적 존재가 되어 잉여 문화의 비난 대상이 되는 과정을 선명히 보여준다. 잉여들이 그런 식의 비난을 가하는 이유는 지금의 경쟁 체제에서 자신을 패배자로 규정하기 때문이며, 바로 그 점에서 비난은 수배와 유사한 구조를 띤다. 특히 학교폭력 논란에서 수배와 비난은 이들이 자신이 학교폭력 사건의 2차 가해자가 아님을 표명해 스스로가 사회의 도덕을 얼마나 잘 체화하고 있는지 뽐냄으로써 도덕적으로 인정받고자 수행하는 일종의 그랜드스탠딩이기도 하다. 이때 좌표를 찍는 이들은 자신을 당연하게 ‘대중’이라 여기는 이들과 대중의 비난을 피해 ‘정상적인 팬’을 자임하는 팬들이다. 이들은 망설이고 머뭇거리며 조금이라도 다른 진실을 찾아보려는 팬들을 찾아내 ‘○○시녀’, ‘무지성 팬’이라는 ‘좌표를 찍는다’. 이를테면 걸그룹 여자아이들 멤버였던 수진/서수진의 학교폭력 논란에서 그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팬들이나 그에 대한 폭로가 거짓인 이유를 찾는 팬들은 ‘수진시녀’라는 멸칭, 나아가 그를 지지하는 팬들이 사용하는 트위터 해시태그(‘#수진아먹었다’)는 그 자체로 팬들을 찾아내 비난하는 좌표가 되었다. 이렇듯 아이돌 논란 안에서 아티스트와 팬들이 공유하던 해시태그는 일종의 수배 전단지로 변모하게 되고, 수배의 내용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해당 해시태그나 링크로 찾아가 집단 린치를 가하기도 한다. 여기서 저자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대중’이라는 범주/언어에 대해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비난이 사회를 만들고 보호하는 도구가 되는 시대, 즉 강력한 ‘공공의 적’을 만들어 그들을 비난하는 것이 공론장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믿음이 성행하는 시대에 비난의 기술은 그 자체로 상이한 개인들을 대중이라는 단일 범주로 구성해내는 경로가 된다. “비난은 자기 스스로 대중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감각과 동시에 자신이 공적 영역에 참여하고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낸다. 시민들은 국가에 의해 정의된 ‘건강한 사회’와 상상된 공론장을 보호하기 위해 대중이 됨으로써, 마치 대중이라는 것이 이미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로써 탄생하는 것은 정화된purified 공론장이며, 여기서 비난은 개인이 자신 혹은 타인을 환영의phantasmal 대중으로 구성해내는 직접적인 경로가 된다.”망설임이라는 윤리적 분투: 팬심과 사랑의 정치적 가능성 이제 다시, 논란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쓸쓸히 남게 된 팬들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망설이는 사랑》은 대부분의 이들이 떠난 빈자리에 남은 이 팬들의 존재로 시작하고, 또 끝을 맺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은 논란의 진위가 정확히 판명되지 않아서, 그러니까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사건의 가해자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 떠날 수조차 없는 팬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데서 출발한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은 결코 ‘팬덤’에 대한 책이 아니다. 단일한 정체성과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다고 상정되는 집합체인 팬덤으로 미처 다 흡수되거나 포괄될 수 없는 개별 팬들의 치열한 윤리적 실천을 발견해나가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팬‘들’을 무조건 팬덤으로 환원하는 관점은 지배적인 여론만을 재생산하면서 주변화된 팬들을 이중으로 삭제할 위험이 있다.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은 팬덤에서 벌어지는 일들보다는 팬덤, 온라인 커뮤니티, 소셜미디어, 대중, 알고리즘 등의 네트워크 안에서 솟아나지만, 온라인상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 팬들의 마음과 그것과 관련된 사회의 단면들,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어떤 태도의 문제다.” (논란에 대한) 팬덤 내부의 지배적 판단과 견해에서 이탈해 판단과 결정을 미루고 망설이는 팬들은 사법적 판단에 기대는 대신 더욱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옳고 그름의 기준을 질문하고, 수많은 타자들을 고려하며 그들이 던지는 윤리적 질문 앞에서 헤맨다. 그 헤맴과 망설임이 관심경제가 주도하는 폭력적인 네트워크에 제동을 걸며 논란을 논란으로 소비하지 않는 다른 사유의 가능성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이 책이 개별 팬들의 이야기에서 건져 올린 통찰이다. 이들의 성찰성은 소셜미디어와 관심경제의 자장 안에서 만들어지는 온라인 공론장에 대한 적극적인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흔히 팬들, 특히 아이돌 팬들은 ‘매혹’에 따라 움직이는 매우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존재로 치부되곤 한다. 최근 정치권에서 지지자를 소환하는 프레임으로 강력하게 부상한 ‘팬덤 정치’ 역시 ‘무지성 팬덤’과 ‘합리적 대중’이라는 이분법에 기댄다. “팬덤은 대부분 여성이며 여성은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이라는 편견의 순환 안에서 탄생”한 이런 시선은 마치 팬 혹은 팬덤으로 ‘오염’되지 않은 순수하고 합리적인 상태가 존재하는 것처럼 전제한다. 그러나 “사실 공론장의 원리는 재미, 사랑, 죄책감이 뒤섞인, 관계와 대화를 형성하고 지속해내는 불순한 원동력”이며, 팬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항상 무언가에 매혹되어 있으며, 그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좌절이 좌절로 끝나지 않고 윤리적 분투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책을 메우는 여러 인터뷰이들, 즉 논란을 경험한 팬들은 아티스트를 마음에 안 들면 치워버릴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체로 복잡하고 고유한 인간으로 대하려고 안간힘을 쓰며, 이를 위해 윤리적 고민들을 놓지 않았다. 이게 사랑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사랑일까? 성적 대상화, 여성혐오, 열악한 노동 조건, 팬과 소속사의 착취, 건강 문제 등 아이돌 산업에 얽힌 모든 문제를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며 자신의 매혹과 애정에 대한 책임감을 다하고, 때로는 죄책감과 수치심마저 떠안는 이들이 다름 아닌 팬들이라는 점은 이들의 팬심이 더 나은 온라인 공론장을 꾸리는 구체적인 실천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바로 이 지점에 팬심과 덕질의 정치적 가능성이 있다. “사랑이 흔들리면서도 끊어지지는 않는 순간에, 집요하고도 혼란스러운 어떤 찬란함이 고개를 든다. (……) 무언가를 사랑하고 기다리는 일이란 망설일 틈을 주지 않는 세상에서 망설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이었다. 논란을 계속해서 생산해내는 네트워크 속에서 관심과 정동의 속도에 뒤처지는 경험은 그 속도에 저항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를 가능성으로서의 감수능력으로 변모한다. 그렇게 덕질과 팬심은 논란 안에서 재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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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몰락의 시간 - 안희정 몰락의 진실을 통해 본 대한민국 정치권력의 속성 (커버이미지)
    [사회]몰락의 시간 - 안희정 몰락의 진실을 통해 본 대한민국 정치권력의 속성
    • 문상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4-02-19

    ‘안희정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첫 조력자 ‘문 선배’그가 5년여의 침묵 끝에 들려주는 안희정 몰락의 진실, 그리고 반성문 2018년 3월 5일 월요일 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전 수행비서의 미투 피해 사실 폭로와 함께 몰락했다. 촉망받는 정치인의 민낯은 많은 사람을 경악하게 했다. 그 충격의 시간으로부터 만 5년 이상이 지나 이제 세간의 관심사에서 멀어진 지 오래인 시점에 안 전 지사에 관한 책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안희정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첫 조력자인 ‘문 선배’다. 오랫동안 익명의 ‘문 선배’로 불려온 이는 바로 2011년부터 2017년까지 7년 동안 안희정을 지근거리에서 수행해온 문상철 씨다. 그는 왜 이제야 비로소 안 전 지사에 관한 책을 출간한 것일까? 저자는 미투 피해자의 첫 조력자임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피해를 막지 못한 자신 또한 공동의 가해자라는 자책감에 5년 이상 말과 글을 잊고 살아왔다. 또한 2년여의 재판 과정을 거치며 안희정의 사람들에 의해 많은 상처를 받으며 그와 함께 새로운 정치를 꿈꾸었던 시간 모두를 기억 저편으로 묻어두었다. 그랬던 저자가 오랫동안 홀로 품어온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기로 결심한 것은 안희정과 함께한 시간과 경험이 자신만을 위한 개인의 사유재가 아닌 다수를 위한 공공재라는 생각 때문이다. 저자는 안 전 지사와 함께한 시간을 수없이 복기하면서 그의 정치적 도전과 실패가 지닌 함의가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즉, 미투 사건은 트리거였을 뿐 안희정은 이전부터 서서히 몰락의 시간을 걸어오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 몰락의 길은 정치권력을 쥔 누구라도 걸어갈 수 있는 길임을 깨닫고, 동일한 잘못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책을 집필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정치인 안희정의 도전과 실패에 관한 생생한 목격담이자 반성문이며, 더 이상 제2, 제3의 안희정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공공의 기록물이라 하겠다. 저자는 이 책의 인세 수익 전액을 한국성폭력상담소를 통해 성폭력 피해자들의 회복을 돕는 데 사용할 예정이다.정치권력의 속성을 교과서처럼 보여주는, 대한민국 모든 정치인과 정치지망생이 꼭 읽어야 할 필독서충남도지사로 처음 당선되었을 당시의 안희정은 정치에 대한 남다른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초기에 그는 결재서류를 없애고 전화기를 없애는 등의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며 도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정치·경제·외교·문화·사회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들을 초빙해 끊임없이 공부하는 촉망받는 정치인이었다. ‘봉하의 스타’에서 더 나아가 생각하는 정치, 공부하는 정치, 페이퍼를 기본으로 하는 정치, 데이터 기반의 정책을 만드는 정치 등, 그와 함께 정치의 본질을 알아가며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을 기록한 저자의 생생한 경험담은 무릇 정치인의 기본을 보는 듯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안희정은 서서히 공무원 의전 카르텔에 포섭되어가며 현실 정치에 물들어갔을 뿐 아니라 팬덤에 의해 영웅 심리에 젖은 정치인으로 변질되어간다.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을 향한 욕망은 자본의 달콤함과 보상심리에 관대해지고, 그렇게 일그러진 권력은 ‘인권’ 문제에 소극적이 되어갔다. 사고방식과 행동, 태도가 서서히 변질되고 잠식되면서 마침내 부패하고 붕괴하는 이 모든 과정에 대한 서술은 그 시간을 함께 보낸 자만이 알 수 있는 디테일로 가득해 정치권력의 속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저자는 2017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 그리고 이후 미투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밀착 카메라처럼 실감나게 묘사함으로써 피상적으로 알았던 안희정 몰락의 과정을 입체적으로 들려준다. 그러나 이 책의 목적은 안희정 개인의 잘잘못을 가리는 것에 있지 않다. 저자는 다시는 이와 같은 정치인이 나오지 않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할 것을 권한다. 이에 대한 저자의 통찰 가득한 제언은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한 편의 글만으로도 대한민국 모든 정치인과 정치지망생이 꼭 읽어야 할 자가 점검 필독서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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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 - 우리 아이는 왜 아프게 태어났을까, 그 물음의 답을 찾다 (커버이미지)
    [사회]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 - 우리 아이는 왜 아프게 태어났을까, 그 물음의 답을 찾다
    • 희정 지음, 반올림 기획
    • 오월의봄
    • 2023-12-27

    “나는 왜 아프게 태어났어?”반도체 산업의 2세 질환 직업병 문제그동안 문제가 되지 못했던 문제, “이제 그 답을 하려 합니다”문제가 되지 못한 문제들 우리는 스물셋의 나이로 사망한 황유미씨를 기억하고 있다. 2007년, 황유미씨는 택시 뒷좌석에서 숨을 거뒀다. 택시 운전사인 그의 아버지와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병명은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1년 8개월간 생산직 오퍼레이터(삼성은 반도체 공장의 생산직 여성 노동자를 ‘오퍼레이터’라고 부른다)로 일하다 병에 걸렸고 2007년 스물셋의 나이로 사망했다. 황유미씨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제기한 인물이었다. 그 뒤 지난한 투쟁이 이어졌다. 2014년 서울고법에서 황유미씨가 산재로 사망했다는 걸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황유미씨가 사망한 지 7년 만이었다. 반올림은 2015년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직업병 인정과 보상을 요구하며 1,023일 동안 농성을 했다. 그리고 2018년 드디어 삼성으로부터 사과와 보상을 약속받았다. 반도체 직업병 인정 싸움의 큰 성과였다. 그 뒤 반도체 전·현직 근무자를 대상으로 한 질환 보상 제도가 마련되었고, 2022년 2월 현재까지 87명의 반도체 전·현직 근무자가 직업병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걸로 끝일까? 직업병임을 인정받았고, 보상도 받았으니 끝난 것일까? 이 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바로 직업병의 피해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의 자녀들에게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자녀는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쓰이는 화학물질과 방사선에 노출됐다. 이들이 수정란, 정자, 태아와 같은 상태로 존재할 때 일어난 일이었다.”(8쪽) 선천성 식도폐쇄, 콩팥무발생증, 방광요관역류, IgA신증…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얻은 질병 목록이다. 대장을 다 들어낸 아이도 있었다. 왜 아이들은 아프게 태어났을까? 그때는 다른 현안 때문에 ‘문제’가 되지 못했던 ‘문제’들. ‘문제’였지만 ‘문제’로 만들지 못했던 ‘문제’들. 바로 반도체 산업의 생식독성과 2세 질환 직업병 문제다. 이 책은 이 문제를 지금 이 세상에 드러낸다. “더는 뒤늦지 않기 위해 ‘문제가 되지 못했던 문제’들을 되짚으려 한다.”(13쪽) “나는 왜 아프게 태어났어?”라는 아이의 질문에 이제 답을 하려 한다. 2세 질환 직업병 문제,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처음 시작부터 이 문제가 있었어요.” 사실 반도체 노동자들의 생식독성과 2세 질환 직업병 문제는 계속 현안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임신 중에 아이를 잃은 노동자가 있었고, 난임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노동자도 있었다. 생리통과 생리불순은 너무 흔해서 큰 문제로 여기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아픈 아이를 낳은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독자적인 이슈가 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이 문제가 ‘젠더 문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반올림에 제보한 노동자들은 ‘가족이 몰랐으면 한다, 시댁이 몰랐으면 한다’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저는 생식독성 문제가 공론화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젠더 이슈이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한국사회에서 ‘기형아’를 출산하면 부모가, 특히 엄마가 엄청난 부채감에 시달리잖아요. ‘내가 임신 때 무슨 약을 먹은 게 문제였나. 내가 담배를 피운 게 문제인가.’ 오만가지 죄책감에 시달린단 말이에요. 이 사회적 규범 자체가 여성들을 옭아매고 있는 거지요.”(151쪽)그렇다면 어떻게 생식독성과 2세 질환 직업병 문제를 ‘문제’로 만들 것인가? 이 책은 이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동안 피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연구자, 의료·법률 종사자, 그리고 반올림 활동가들이 나서서 이 문제를 문제로 만들어왔다. 이 문제는 한국사회가 함께 다뤄야 할 노동권 문제이자, 인권 문제라는 것, 더 나아가 여성 노동자의 임신과 출산, 건강권 문제이고, 질환과 장애 정체성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 그리고 한국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 문제라는 것. 이렇게 이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왔던 사람들은 2세 질환 직업병 문제가 이 사회의 상식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반도체 직업병이 삼성의 주장처럼 허언이나 괴담이 아닌 진실이었던 것처럼, 2세 질환 직업병 문제도 이 사회의 상식으로 만들어보자는 의지의 표현이다.그리고 이 책을 쓴 기록노동자 희정. 그 또한 이 문제를 널리 알려온 사람 중 한 명이다. 희정은 2011년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이란 책을 통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죽거나 병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쓴 바 있다. 그 책이 나온 지 11년이 되었다. 당시 희정이 만난 이들은 어느새 중년이 되어 있었다. 희정이 익히 알고 있던 그 일터의 그 노동자들. 희정은 이들이 겪고 있는 생식독성과 2세 질환 문제를 기록하며 이 문제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는다. 무엇보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희정 작가의 시선과 통찰력은 더욱 깊고 넓어졌다. ‘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일을’ 기록하는 희정 작가의 진실된 글쓰기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끝난 문제는 없다, 시작일 뿐2021년 5월, 이혜주(12년 근무), 정미선(8년 근무), 김수정(20년 근무)은 정식으로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다. 급여 수급인은 모두 자녀들이었다. 자녀들에게 일어난 손상이 자신이 일했던 회사의 근무환경과 연관이 있다며, 그에 따른 보상을 요구한 것이다. 세 사람 모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오래 일했고,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생식독성물질에 노출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은 태어나자마자 아팠다. 이들이 산재 신청을 할 당시까지만 해도 ‘태아산재법’이 통과되기 전이었다. 즉 자녀는 산재요양급여 수급권자가 될 수 없었다. 당시 법은 ‘근로자’와 그 유족만 산재요양급여 수급권자가 될 수 있다고 정해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산재 신청은 승산이 없는 싸움이기도 했다. 하지만 2020년 대법원이 제주의료원 소속 간호사의 2세 질환이 직업병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하자 양상은 바뀌었다. 그리고 2021년 일명 태아산재법이 통과되었다(어머니 측의 태아산재만 인정하고 아버지 측의 태아산재는 배제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드디어 부모의 업무환경으로 인해 선천적으로 건강손상을 입은 자녀가 수급권자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여전히 현행법에 요양급여 지급 규정이 없다는 입장이다. 아이의 병이 직업병 때문이라는 판결은 났지만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은 아직 산재 보상을 받지 못했다.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이 10년간 법정 투쟁 끝에 이룬 것이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많이 남았다. 마찬가지로 반도체 산업 노동자들의 2세 질환 직업병 인정 투쟁도 해결해야 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 “사람들의 기대와 다르게 개정안을 통해 당사자들이 얻은 것은 ‘산재 신청을 할 수 있는 권한’뿐이었다. 판결을 기다린 간호사들도, 반도체 2세 질환 직업병 피해자들도 근로복지공단의 판정을 기다리고 있다. 끝난 문제는 없다. 시작일 뿐이다.”(167쪽) 태어나자마자 아픈 아이,고통을 감내하는 사람들아이가 태어나기 직전까지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 클린룸에서 일했던 이혜주씨는 아들이 아프게 태어났다는 것을 첫 수유를 하자마자 알게 되었다. 아이가 모유를 삼키지 못하고 다 게워냈던 것이다. 수술 후 아이는 신장 한쪽이 없다는 판정과 함께 선천성 식도폐쇄증 진단을 받았다. 밥을 먹다가 호흡곤란이 오는 상황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병이다. 음식물이 식도에 걸리면 아이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어서 빼내야 한다. 이 때문인지 아이는 자주 아팠다. 무슨 병인지도 알 수 없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이혜주씨는 엄마로서 아이를 챙겨야 했다. “엄마가 돼서 여태 몰랐다니” 하는 자책과 함께. “애 키우는 거 너무 힘들어요, 사실.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이 방법이 최선이라고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키우면서 힘이 드니까. 계속 제가 잘하는 게 없다고 생각하게 되고. 괜히 제 잘못 같고.” 이혜주씨는 아이가 왜 아픈지 늘 궁금했다. 반올림을 만나면서 아이가 직업병 때문에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대기업을 상대로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거라는 걸 잘 알면서도 산재 신청을 하겠다고 나섰다. “저보다 더 안 좋은 상황에 계신 분들도 많을 텐데. 한 사람이라도 보태야죠. 여러 사람이 하면 좋지 않나요?”(36쪽)삼성반도체에서 20년간 일한 김수정씨는 아이가 아프다는 사실을 임신 4개월 차에 알았다. 산부인과에서 초음파 검사를 하던 날 의사가 아이의 신장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각종 검사를 받아야 했고, 원인 모를 병에 시달렸다. 김수정씨는 아이가 왜 아픈지 그 원인을 알고 싶었다. 원인은 고사하고 아들의 병명을 알기까지 10년이 걸렸다. 개복까지 해서 얻은 병명은 콩팥무발생증과 방광요관역류증, 그리고 IgA신증. 신부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IgA신증은 10만 명 중 2명이 걸린다는 희귀질환이었다. 왜 아들은 이런 병을 안고 태어났을까? 김수정씨는 이제 그 답을 알고 있다. 아들이 어렸을 적 “나는 왜 아프게 태어났어?”라고 묻던 말에 답을 하기 위해 산재 신청을 하게 되었다.정미선씨는 삼성반도체 온양사업장 1기 사원이다. 1991년에 입사해 1998년 퇴사했다. 퇴사할 당시 그는 임신 중이었다. 태어난 지 3일째 되는 날부터 아이는 아팠다. 선천성 거대결장. 아이의 대장은 이미 기능을 하지 못했다. 결국 아이의 대장을 다 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아이뿐만 아니라 정미선씨 자신도 병을 얻었다. 2010년 갑상선암 진단, 2011년 류머티즘 진단, 2013년 뇌전증 발병, 2014년 자궁경부 이형성증 진단. 그는 산재 신청을 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그의 질병이 업무와 무관하다고 말했다. 이런 병을 앓으면서도 그는 자신 때문에 아들이 아픈 거라며 부채감을 느끼며 살았다. “나 때문이라는 생각을 안 해봤거든요. 처음에는 신랑한테도 말을 못 했어요.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혼자 속으로만 삭이고. 어떻게 할 줄을 모르겠더라구요. 진짜 그 마음은 아무도 모를 거예요.”(85쪽) 그는 2015년 5월, 산재 신청을 했다. 이번에는 자신이 아니라 아들이 수급자였다.생식독성물질을 누가 알까?“기업은 알려주지 않는다”생식독성물질은 여성, 남성의 생식기관에 손상을 일으킨다. 이런 물질에 노출되면 유산·난임, 선천성 질환을 지닌 자녀를 낳을 가능성이 커진다. 생식독성물질에 노출된 가임기 여성은 국내에 최소 10만 명. 이들 대부분이 생식독성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쓴다. 즉 생식독성물질이 무엇인지 노동자 대부분은 잘 알 수가 없다. 그만큼 국가와 기업이 그 정보를 숨기고, 잘 관리하지 않기 때문이다.산재 신청을 한 세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삼성이라는 회사를 너무 좋아하고 믿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일한 직장이 위험하다는 걸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왜 의심하지 않았을까? “왜 몰랐나. 스스로 찾은 답은 이것이었다. 너무 어려서. 첫 직장 생활이라. 의심하기에는 너무 큰 회사여서. 사원을 ‘가족’이라 말하는 회사였고, 일이 많고 분주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회사였다. 반도체 기업의 오퍼레이터 입사 나이는 대체로 열아홉. 고3 여름방학이 지나 타지로 와서 3주간의 신입 교육을 받은 후 근무지로 배치됐다.”(117쪽) 그들의 나이는 대체로 열아홉, 스무 살. 그 누가 자신이 일하는 곳에 유해물질이 가득하다는 걸 의심할 수 있었을까? 그것도 삼성이라는 대기업에.게다가 삼성은 1999년 기흥사업장이 최고 안전 사업장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무재해 세계 기록을 보유한 그 사업장에서 지금까지 직업병 산재 판정을 받은 이는 27명이고, 이 중 12명이 세상을 떠났다. 또 삼성은 고졸의 말단 생산직 오퍼레이터 여성 노동자들에겐 그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다. 유해물질을 채워 넣고 닦고 뒤처리하는 사람은 모두 오퍼레이터들인데도. “기업은 모를 만한 사람을 뽑아 일을 시키고, 알아도 어찌할 수 없는 조건을 만들고, 알면서도 모른 척하도록 길들인다. 기업은 일하는 사람의 무지를 조장하는 수많은 장치를 가졌다. 장치는 작동했고, 사람들은 그 장치 위에서 성실히 일했다.”(122~123쪽)오퍼레이터 또는 여자 일자리이 책은 소위 말하는 ‘여자 일자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반도체 나와서 현실을 깨우쳤죠. 반도체에서 일하던 거는 나가서 써먹을 데가 없어요.”(24쪽)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퍼레이터로 입사해 결혼하고 임신을 하면 퇴사하는 게 정해져 있는 길이었다. “갓 스물이 된 오퍼레이터들이 전자·반도체 생산라인에서 근무하다 7~8년이 되면 자의 반 타의 반 퇴사하며 사라졌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금도 계속되는 일이며, 전자산업에 국한된 현상도 아니다. 경력단절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의 시간은 분절되고, 이것은 다시 불안정한 저임금 노동자를 만들어낸다. 자본은 끊임없이 생애주기를 조각낸다.”(201쪽) 임신을 해도 퇴사하지 않았던 김수정씨 같은 사람도 회사의 ‘명예퇴직’ 권유에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그 뒤로 ‘여자 일자리’를 전전해야 했다. ‘여자 일자리’란 대게 비정규직, 하청·외주·파견업체 직원이라 불리는 곳이다. 반도체 회사를 그만둔 오퍼레이터들도 이런 일자리를 옮겨 다닐 수밖에 없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것은 경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일반 여성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책은 이 ‘여성’들이 처한 상황을 자세히 전한다. 여성이라서 임금을 남성보다 적게 받고, 그것도 수십 년째 여성의 월급이 남성의 3분의 1 수준이라는 것. 한국사회는 임신한 여성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가 지극히 드물며, 그래서 여성은 남성보다 근속연수가 짧을 수밖에 없다는 것. 책은 이렇게 ‘여성이라서’라는 이유 말고는 설명할 수 없는 현실들을 낱낱이 지적한다. 또한 업무상 재해의 판단 기준이 남성 노동자 중심의 산업에서 발생하는 산재를 중심으로 한 게 많아서, 여성 노동자의 직업병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전한다. 어린 소녀들이 오퍼레이터로 만들어지는 과정도 자세히 살핀다. 우리 모두 이 생산직 오퍼레이터들을 ‘착하고 모범생이었던 누군가의 딸’로 기억하고 있진 않았는지 묻는다. “젊은 여성을 클린룸에 유폐하고 ‘근면하고 순한’ 노동자로 통제한 것은 기업과 가정의 무의식적인 공모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공동체가 여성을, 아니 자원 없는 여성들을 ‘오퍼레이터로 태어나게’ 한 것은 아닐까.”(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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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동산과 정치 - 문재인 정부의 좌절과 한국사회의 과제 (커버이미지)
    [사회]부동산과 정치 - 문재인 정부의 좌절과 한국사회의 과제
    • 김수현 지음
    • 오월의봄
    • 2024-02-19

    문재인 정부는 왜 집값을 못 잡았을까?문재인 정부의 책임은 무엇이고, 한국사회는 무엇을 성찰할 것인가?문재인 정부는 집값을 못 잡았다. 그냥 못 잡은 정도가 아니라, 두 배 넘게 뛰어버린 아파트 단지가 허다했다. 연이어 전세금도 급등했다. 어떤 말로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 국민들은 좌절하고, 분노했다. 결국 정권은 교체되었고, 그 원인의 하나로 부동산 문제를 꼽는 사람들이 많았다. 왜 집값을 못 잡았을까? 이유가 무엇이든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원인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모두가 정책이 잘못되었다고 하는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제대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이 왜 좌절했는가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것은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 모두에게 비난을 받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이 먼저 말문을 열 필요가 있다. ‘반성’ ‘고백’ ‘성찰’ 그 어떤 표현을 써도 좋지만, 당시 깊게 관여하고 고민했던 사람의 생각을 밝혀두는 것은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본문에서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담당자가 쓴 책문재인 정부 기간 부동산에 어떤 일이 일어났나?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는 집값을 못 잡았다. 집값을 못 잡은 정도가 아니라 두 배 넘게 값이 뛴 곳이 허다했다. 전셋값도 덩달아 상승했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 기간 내내 온 나라가 부동산 문제로 열을 올렸고, 윤석열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원인 중 하나로 부동산 문제를 꼽는 사람들이 많았다.이 책의 저자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책임자 혹은 설계자로 거론된다. 시민단체, 언론, 전문가, 국민의힘, 민주당 등에서 집값 폭등의 가장 큰 책임자 중 하나로 저자를 지목하기도 했다. 저자 또한 본인의 책임이 크다고 인정하면서, 이 책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가 왜 집값을 잡지 못했는지, 집값을 잡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했는지, 집값이 무엇 때문에 상승했는지 등을 하나씩 복기한다. “모두에게 비난을 받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이 먼저 말문을 열 필요가 있다”(12쪽)면서 한국 부동산 문제를 진지하게 살핀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좌절 이유를 되돌아보면서 한국사회의 부동산 문제를 성찰하고 그 대안을 밝히는 책이기도 하다. “‘반성’ ‘고백’ ‘성찰’ 그 어떤 표현을 써도 좋지만, 당시 깊게 관여하고 고민했던 사람의 생각을 밝혀두는 것은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11쪽)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면, 왜 그러했는지, 또 어떻게 하면 반복하지 않을지 기록으로 남기고 토론해야 한다. 또 이렇게 하면 된다고 주장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비판도 제대로 따져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성찰 없이는 미래에 반복될지 모를 상황에 올바로 대처할 수 없다.”(71~72쪽)부동산과 정치의 관계이 책의 제목 ‘부동산과 정치’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저자는 부동산 정책이 정치와 이념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부동산 포퓰리즘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을 원칙으로 삼고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 자신과 문재인 정부 또한 부동산 문제의 정치화와 포퓰리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집값이 연이어 오르게 되면 온 나라가 뒤숭숭해진다. 민심이 동요하고, 정부와 여당은 전전긍긍하게 된다. 당장 야당, 언론, 시민단체, 전문가 등이 정부를 비판하고 나선다. 각자 자기들만의 대책, ‘이것만 하면 된다’는 처방을 내세운다. 보수 쪽은 “시장에 맡겨라”를 주장하고, 진보 쪽은 “불로소득을 환수하라”를 강조한다. 인터넷 등에서도 각종 집값 예측과 더불어 선정적인 주장이 난무한다. 이렇게 되면 정치권은 그중 더 자극적인 정책들을 앞세우는 포퓰리즘 전선에 나서게 된다. 정책의 현실성보다 국민, 좁게는 지지층이 환호하는 해법에 골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는 정부도 길을 잃는다. 온 나라가 부동산 정책의 격랑에 흔들리는 걸 보면서도 합리적인 선을 지키지 못한다. 정부는 곧 포퓰리즘이 요구하는 정책에 떠밀리게 되는 것이다. 그럴수록 정책 신뢰는 떨어지고, 국민들은 더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정책의 효과도 당연히 떨어진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마찬가지 과정을 밟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28번의 크고 작은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고, 분열과 상처만 남기고 말았다. 이처럼 부동산 정책은 끊임없이 정치의 압력 속에 내몰리고 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고, 이 책 제목이 함의하는 바다.문재인 정부는 왜 집값을 잡지 못했나?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왜 실패했나? 먼저 문재인 정부 기간 부동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살펴보자.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경기순환상 집값이 상승하던 시기에 집권했다. “과거 경험으로 보면 적어도 5년간은 상승 국면이 지속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니 집값이 올라갔다기보다 집값 상승기에 문재인 정부가 집권하게 된 것이다.”(60쪽)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일본 등 전 세계의 집값도 상승하던 시기였다. 실제로 2017년 5월 정부 출범부터 2021년 10월의 고점까지 서울 아파트값은 두 배 가까이 올랐다. 노무현 정부 이후 최대 상승 폭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28번이나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정책의 효과는 국민의 불안을 달랠 만큼 빨리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금리는 사상 최저로 낮췄고, 대출 상환은 연기했으며, 몇 차례에 걸쳐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그런데 풀린 돈들이 부동산과 주식, 코인 등으로 몰리면서 집값은 더 상승했다. 집값이 폭등하자 온 나라가 집값에 매달리게 되었다. 집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정부를 믿고 집을 사지 않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분노했다. 왜 이 미친 집값을 잡지 못하느냐고 항의가 빗발쳤다. 야당과 언론, 전문가들도 ‘시장에 맡겨라’ ‘공급 부족’ ‘불로소득 환수’ 등 자기들만의 대책을 내놓으며 정부를 비판했다. 선거가 맞물리던 때에는 각종 부동산 포퓰리즘이 난무하기도 했다. 이 시기 ‘영혼까지 끌어’(영끌) 집을 사는 사람들도 많았다. 문재인 정부는 강력한 대출 규제를 폈지만, 집값 폭등이 정점이던 2021년 말 가계부채는 GDP의 105.8%에 이를 정도였다. 하지만 곧 거품은 꺼지기 시작했다. 2022년 들어 미국이 물가 폭등으로 금리를 대폭 올리자 한국의 집값은 무서운 속도로 떨어졌다. 무리하게 집을 샀던 영끌족들은 고금리 상환 부담에다 집값 하락의 이중고를 겪었다. 집값 하락과 함께 전세가까지 급락하자 빌라 등에서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른바 전세사기 사건이 터진 것이다. 집값 폭등기에 잔뜩 거품선이 커진 건설업 쪽에서도 집값이 떨어지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듯 집값 폭등 과정에서 사회는 분열되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갔다. 사정이 이럴진대 문재인 정부는 왜 집값을 잡지 못했을까? 문재인 정부의 네 가지 책임문재인 정부 기간에는 전 세계가 경험하지 못한 유동성 폭증이 일어났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계속된 저금리와 양적완화에 덧붙여, 코로나19로 자본주의 역사상 찾아보기 어려운 돈 풀기가 벌어졌던 것이다. 부동산 경기순환상 상승기에다 유례없는 유동성 국면, 이것이 문재인 정부가 처했던 시장 상황이었다. ‘공급 부족’ ‘세금 문제’ 때문이 아니라 그 과잉유동성이 한국의 집값을 상승시킨 원인이었다. 저자는 한국이 이런 상황에 있었지만, 그래도 문재인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저자는 문재인 정부에 네 가지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 부동산 대출을 더 강하게 억제하지 못했다. 유동성이 넘치는 국면에서 자산시장으로 돈이 몰려 집값은 오르고 있었다. 당시는 집값의 20~30%만 금융권 대출을 받아도 집을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가족이 자신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자녀의 집 구입 자금을 지원하는 일도 빈번했다. 서민경제는 더 나빠졌으며, 양극화는 심화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시기 문재인 정부는 더 강한 대출 규제와 가계부채 관리에 나서지 못했다. LTV, DTI 등 강한 대출 규제가 있었지만, 전세대출, 신용대출, 기업대출 등을 억제하지 못했다. 특히 전세대출은 집값 상승의 불쏘시개가 되기도 했다. 또 소득 대비 상환 능력을 따지는 DSR의 도입을 더 빨리 서둘렀어야 했는데 연기하고 말았다. 집값 상승의 본질적 원인은 ‘유동성’에 있었고, 핵심은 돈줄 죄기였지만, 경제 정책 주체들이 이를 알면서도 나서지 못한 것이 부동산 정책 실패 요인이 되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둘째, 공급 불안 심리를 조기에 진정시키지 못했다. 시장주의자들은 줄곧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공급을 제때 하지 못해서 집값이 상승했다고 비판해왔다. 무엇보다 재개발, 재건축 규제 때문에 서울, 수도권에 ‘좋은 집’이 공급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고 했다. 비록 공급 부족론은 정부의 정책 실패를 정쟁화하려는 정치적 프레임 요소가 많기는 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런 주장을 조기에 진정시키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3기 신도시 계획을 조금 더 빨리 발표했더라면 이런 공급 부족 논란은 줄어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토로한다.셋째, 부동산 규제의 신뢰를 잃었다. 부동산 정책은 경기에 따라 다르게 펼쳐야 한다. 급등기에는 수요를 억제하고 공급을 확대하는 정책을 펴야 하며, 급락기에는 수요를 진작하고 공급을 조절해야 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무원칙하고 극단적인 영역을 오갔다. 2020년 7월, 종부세를 비현실적으로 올리고 무리한 과표 현실화 계획을 세운 것, 2019년 재건축 분양가상한제나 비현실적인 재건축 초과이익환수 부과 방식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대부분은 실제 시행에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물러서거나 좌초했다. 이념 논란의 빌미만 제공했을 뿐, 정책 신뢰만 떨어뜨렸다. 임대사업자제도도 마찬가지였다. 2017년 말 민간임대사업자의 등록임대주택을 확대·강화한다는 권장책을 발표한 다음, 1년도 안 돼 이를 폐기하고 되돌렸다.넷째, 정책 리더십이 흔들렸다. 시장이 불안하고 정책 효과가 의심받을 때 정책 리더십이나 컨트롤 타워 기능도 흔들리게 마련이다. 이럴 때 정부 내에서도, 정부와 여당 사이에서도 이견이 생긴다. 당연히 의견이 잘 모이지도 않는다. 정치권은 정책적 합리성보다 대중의 분노를 달래고, 지지를 회복하는 데 더 마음을 쏟는다. “세금을 더 높이자” “임대주택으로만 200만 호를 추가 공급하자” “용산공원, 김포공항, 그린벨트에 모두 집을 짓자” “청년들이 집을 살 수 있게 돈을 더 빌려주자” 하는 식이었다. 중심을 잡았어야 할 정부·여당마저도 결국 포퓰리즘에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집값이 폭등하던 시기, 문재인 정부는 정책의 리더십을 잡지 못하고 이런 상황에 휩쓸리고 말았다.더불어 저자는 본인의 책임도 언급한다. 노무현 정권에 이어 문재인 정권에서도 같은 역할을 맡은 것이 ‘실패 프레임’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 “정부 정책이란 것이 특정 자연인이 압도하는 구조가 절대로 아니고 나 또한 그런 식의 전횡을 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지만,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이 ‘의인화’됨으로써 불신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안타깝다.”(74쪽) 그리고 금융 규제, 3기 신도시 발표, 임대등록제 등이 적절한 시기에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점에서 자신의 책임이 크다고 밝힌다.그때도 지금도 주인공은 금리하지만 한국은 부동산 포퓰리즘의 나라 “일반적으로는 금리나 유동성이 가장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돈이 넘치고, 돈값이 떨어지는 만큼 인플레이션을 회피하기 위해, 또 더 큰 투자 수익을 얻기 위해 실물 자산으로 돈이 몰리는 것이다. 실제 집값과 금리, 유동성의 관계는 거의 정반대로 움직여왔다고 보면 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금리가 내려가고 유동성의 규모가 커질수록 집값은 올랐고, 일정한 시점에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면 집값은 떨어지곤 했다.”(155~156쪽)집값은 왜 오를까? 공급 부족 때문일까? 보유세를 올리지 않아서일까? 저자는 문재인 정부 기간 집값이 폭등한 이유는 전 세계적인 과잉유동성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금리가 내려가고 유동성의 규모가 커질수록 집값은 오르고, 일정한 시점에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면 집값은 떨어지기 시작한다. 문재인 정부 기간에는 과잉유동성으로 인해 집값이 오르던 시기였고,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금리 인하로 집값이 내려가던 시기였다. 2022년 미국이 금리를 대폭 올리고, 한국은행도 금리를 올리자 집값은 언제 그랬냐는 듯 내려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때도 지금도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는 핵심은 ‘금융’인데 정치권을 비롯해 언론, 시민단체, 전문가 등은 다른 대책을 들며 부동산시장의 포퓰리즘을 주도한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정부는 이 포퓰리즘에 휘말리게 되고, 문재인 정부 또한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그렇다면 대표적인 부동산 포퓰리즘은 어떤 것들이 있나? ‘물량 포퓰리즘’, 즉 공급 부족 공포론이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은 너도나도 ‘000만 호 건설’ 공약을 내건다. 하지만 저자는 더 많은 공급을 약속해서 국민을 안심시키겠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이는 숫자 놀음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어떤 주택이,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게 공급되는지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고, 포퓰리즘성 공약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공급을 약속한다고 해서 집값은 잡히지 않으며, 이제는 숫자보다는 주거의 질을 더 높이려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한다.다음으로 ‘반값 아파트 포퓰리즘’이 있다. 20여 년 전부터 진보적 시민단체나 전문가들이 주장해왔지만, 이제는 보수 정치인들도 선호하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이 역시 선거철마다 등장하곤 한다. 그러나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이는 소수만 혜택을 받는 로또이거나 전시형 사업일 뿐이라고.‘세금 포퓰리즘’도 거론된다. 세금 문제는 부동산 정책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정치적 프레임, 즉 지지층을 위한 용어로 전락했다고 말한다. 정책적 합리성보다 국민들의 불안, 불만을 다독이려는 용어라는 것이다. 부동산 세금 중에는 경기에 따라 바꿔도 되거나, 꼭 바꿔야 할 세금이 있는가 하면 규범적으로 일정한 선을 지켜야 할 세금도 있는데, 이런 원칙을 지키지 않고 시기마다 바꿔왔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이런 각종 포퓰리즘이 난무하면 부동산 정책은 흔들리게 마련이다. 특히 부동산 급등기에는 “시장에 맡겨라” “불로소득을 환수하라” “원가 공개를 하라” 등 각종 처방이 난무하게 되고, 정부 또한 중심을 잃고 여기에 휘말리게 된다. 그럴수록 정책 신뢰는 떨어지고, 국민들은 더 불안해진다. 정책의 효과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도 그 과정을 그대로 답습했다. 정작 필요했던 유동성 축소는 회피하면서, 당장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일들에 떠밀려왔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지금 윤석열 정부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어떻게 할 것인가?문재인 정부의 좌절에서 배워야 할 것들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포퓰리즘에 흔들리지 않는 부동산 정책은 불가능한가? 저자는 문재인 정부의 좌절에서 배우고 성찰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재인 정부 기간 부동산 정책은 경기에 따라, 또 정치권의 요구와 압력에 따라 널뛰기를 해왔다. 즉 부동산 정책이 프레임 전쟁이 각축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부동산값이 널뛰기를 거듭하더라도 시장과 정부 역할에 대한 한국적 원칙을 정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의 좌절에서 배워야 할 열 가지를 다음과 같이 꼽고 있다.① 우리나라 특유의 부동산 문제와 문화가 있다.② 전 세계 부동산 문제의 핵심은 주택의 금융화다. ③ 시장의 일, 정부의 일이 있다.④ 부동산시장에도 지켜야 할 규범이 있다.⑤ 수요는 빠르고 공급은 더디다. ⑥ 경기에 따라 바꿔야 할 정책과 아닌 것이 있다. ⑦ 부동산 포퓰리즘 중독에서 벗어나자. ⑧ 전문가도 책임을 져야 한다. ⑨ 이제 정부는 집값 잡겠다는 약속을 하지 말자. ⑩ 부동산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고, 또 해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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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지로 내몰린 청소년들 - 충격 실태 보고서(청소년 도박, 성매매, 마약) (커버이미지)
    [사회]사지로 내몰린 청소년들 - 충격 실태 보고서(청소년 도박, 성매매, 마약)
    • 최인영
    • 북랜드
    • 2024-02-19

    제1부- 사지로 내몰린 청소년들(글 최인영) 편일상에 상용화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과 각종 SNS에 호기심으로 접근하여 스포츠 토토, 홀짝, 블랙잭, 바둑이 등 갖가지 불법 도박에 쉽게 베팅하는 청소년들과 끝내 중독으로 이어지게 하는 불법 도박 사이트의 끈질긴 유혹과 유해 환경, 이후 보이스 피싱, 학교폭력 성매매 및 성매매 알선 마약 중독 등의 심각한 범죄로까지 파생되는 불법 사이버 도박의 위험한 양태를 청소년 피해자들이 직접 제보한 고통스러운 사연으로 재구성하고 있다.“…J 고등학교 재학 당시, 반에 있던 학생들의 3분의 1 이상이 불법 도박을 했었습니다. … 도박의 진행 상황을 보기 위해서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새벽까지 TV로 스포츠 토토를 보다가 학교에서 와서 하루 종일 숙면하는 학생들의 몰골과 이를 알고 있으나 무시하고 있는 교사들…”“#1 고등학교 3학년, “첫 시작이 새해 용돈으로 불법 스포츠 토토 사이트 접속, … #4. 중학교 3학년, 코로나19 터지고 도박 시작했어요 … #7. 중학생, “저는 도박 중독입니다. 오늘도 15만 원 날렸어요”, … #13. 고등학생, “알바 도박 알바 도박… 이게 내 인생” … #15. 21살 대학생, 2시간 만에 327만 원 도박으로 날리다저자를 포함한 현직 교사들이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피해 청소년들의 구체적인 사례는 불법 스포츠 도박으로 돈을 잃고 빚을 지게 된 청소년들이 성매매, 성매매 알선으로 이어지고, 불법 도박을 넘어 코인과 주식까지 중독되어가는 처참한 중독 문제, 가출 청소년들의 가출팸(가출한 청소년들의 패밀리, 모임) 문제, 극도의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증가하는 우리나라 청소년 마약 중독 사례 등 중차대한 청소년 문제들의 주요 이슈를 구체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대응 매뉴얼을 발동할 것을 우리 사회와 어른들에게 촉구하고 있다.제2부- 도박, 청소년을 범죄자로 만들다(글 오세라비) 편오세라비 작가는 일찍부터 온라인 도박이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우리 청소년들을 망치고 범죄자로 만드는 질병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깊이 연구해온 사회운동가이다. 2020년 1차 조사, 2021년 2차 조사 등 그간 저자가 몰두해온 불법 도박에 대한 종합적인 실태 조사와 그 결과, 전망까지 이 책은 낱낱이 밝히고 있다. 학교뿐 아니라 학교 밖 청소년들의 도박 중독 사태, 보호 종료 청년들의 도박 중독 실태 사례, 불법 도박과 연계된 청소년 성 착취와 성범죄 사건, 불법 도박장이 된 학교 현장, 합법 게임물과 불법 게임물의 구분, 합법 사행 산업과 불법 사행 산업, 현역 군인들의 도박 문제, 학부모나 교육 당국의 무관심과 냉담 속에 가속화되어가는 불법 도박의 사회적 위협, 불법 사행 산업 관련 공공기관의 역할 분산 정부 부처의 무관심 등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각종 자료와 미디어를 인용하며 불법 도박과 마약 문제에 관한 청소년 문제를 전방위적이고 객관적으로 다루고 있다.특히 코로나19 펜데믹 시대가 만든 불길한 사회 현상으로 도박과 마약 중독을 지목하면서 꽃다운 미래와 생명을 버리고 사그라져 가는 우리 청소년들의 고통스러운 현재를 명료하게 기록한다. “…온라인 불법 도박이 청소년들을 삼켜 버렸다. 나에게 하소연하는 이제 겨우 16세 고교생의 절박한 외침 “단도박 하고 싶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도박 중독, 마약 중독은 질병임을 인식하고 성인과는 차별화된 솔루션이 요구된다. 정부 관계자들도 불법 도박과 마약 사범과의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 지금이 골든 타임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그다음은 상상하기 싫은 사회가 기다리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라는 구절로 집약되는 저자의 경고가 서늘하게 다가온다. 『사지로 내몰린 청소년들』. 그들의 외침에 우리 모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청소년 문제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교육당국자나 학부모, 교사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다음 세대의 청소년들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실상을 정확히 알아야 문제 해결을 위한 바른길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청소년 범죄의 실체를 직접 접하고 실상을 알리려 노력한 이 책을 꼭 읽어볼 것을 모두에게 권한다.”(강석화 경인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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