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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벽한 작별 (커버이미지)
    [장르문학]완벽한 작별
    • 이한칸 지음
    • 델피노
    • 2023-04-14

    치열한 삶의 순간이 있기에 마지막 모습마저도 아름답다!가장 완벽한 작별을 위하여“어쩌면 소멸의 순간은 탄생보다도 가치 있을 수 있으며,두려워해야 할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이었다는 것을”(232쪽)2032년. 극저온 냉동 수면센터의 책임연구원이던 류요엘은 2년 7개월 만에 냉동 체임버에서 눈을 뜬다. 미래의 의학 기술에 대한 기대로 7년이란 냉동 수면 기간을 설정하고 이미 거액을 지급한 상태였지만, 너무나 일찍 깨어나 버린 것이다. 게다가 탈북브로커까지 고용하며 우여곡절 끝에 남한으로 데려온 12살 남동생 역시 실종 상태. 아무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극비의 공간, 베드퍼드홀에서 잠들어 있던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서남권 거대 복합물류에서 사라진 화물을 추적하던 이들이 발견한 미스테리한 상황, 류요엘과의 접점은? 3,000억 사기 사건의 전말과 함께 그가 깨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시시각각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촬영한 영상과 실종된 동생의 생활보조로봇 밖에 없다. 녹화된 영상 속에 나타난 ‘내’가 말한 “선택”은 무엇일까? 턱 끝까지 쫓아온 죽음 앞에서 행방불명된 동생, 김산을 찾아야 그도 살 수 있다. 이 모든 일은 저명한 생태조류학자였던 아버지 류한조의 죽음 이후 우연히 발견한 지하실에서 시작된다. 요엘은 고인이 되신 아버지의 뜻을 따라 연구를 이어가려던 것뿐이었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절실하게 갖고자 했던 것이 없던 그가 왜 광기 어린 집착에 빠지게 된 것일까.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은?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앞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시간에 떠밀리지 않고 오늘을 살아내는 분들께 존경하는 마음을 이 책에 담으려 했습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작가 이한칸은 ‘탄생보다도 가치 있는 소멸’에 이르기까지, 시간에 떠밀리지 않고 삶의 모든 순간을 살아내는 모든 이들에게 경이를 보내고자 집필을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우리가 살아내는 나날에 대한 감격스러운 환희를 보다 세련된 방법으로 - 속도감 있는 전개, 깊이 있는 질문과 다양한 서사를 통한 플롯 구조로 - 우리가 원해온 ‘가장 완벽한 작별’을 안겨줄 것이다.“나는 왜 다시 살아났습니까.”강렬한 질문으로 이어지는 치밀한 서사와 속도감 있는 전개!『흰 눈은 모든 것을 덮는다』와 『소원을 이뤄주는 놀이동산 홀리파크』에서 섬세한 감정 묘사로 주목받았던 이한칸 작가가 이번에는 SF소설로 희망을 이야기한다.『완벽한 작별』은 ‘소멸도 탄생만큼 박수받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의 조각에서 시작했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몇 년 간 초고를 여러 번 수정하며 탄생한 작품이다. 작중 시점은 약 10년 후 미래. 극저온 냉동 수면센터에서 시작되는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는 드이노브Re2라는 생활보조로봇의 등장으로 독자에게 재미와 상상력을 제공하며 이 로봇의 활약이 마지막까지 이어진다.예정되었던 7년이 아닌 2년 7개월 만에 극저온 냉동 체임버에서 깨어난 주인공 류요엘, 3,000억 사기 사건에 그가 연루되어 있음을 알아챈 탈북브로커 백한기, 이제 12살이 된 요엘의 동복동생 김산, 그리고 저명한 생태조류학자 류한조……. 이들 간의 숨막히는 두뇌 싸움. 가쁜 호흡으로 그들의 뒤를 따라가다 보면 사건의 베일이 하나씩 벗겨지는데. 치밀하게 구성된 베일을 벗길 때마다 이야기는 점점 더 미궁으로 빠지며 절정으로 치닫는다. 흔들림 속에서 균형을 잡을 때, 비로소 우뚝 설 수 있다“자 봐라. 저렇게 흔들리다가 정립이 돼. 테이블 위에 방금 떨어진 물병이 있어. 결코 한 번에 서지 않지. 중심은 여러 번 흔들리다 속에서 균형을 잡을 때, 그때 우뚝 선다.” (84쪽) 삶은 고난의 상황에서 빙글빙글 돌다가도 결국 중심을 잡아간다. 그러한 삶의 모든 순간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그래서 유한의 삶이지만 매 순간을 치열하게 살아내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모습과 닮은꼴이며, 오늘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이기에 독자는 책장을 펼침과 동시에 『완벽한 작별』 에 몰입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탄생보다 아름다운 소멸에 이르기까지“자신의 장례를 생각해 본 적 있으세요? 자신과의 작별이요.”(54쪽) 초반의 주인공 류요엘은 마치 지금의 우리처럼 죽음에 대한 인식, 두려움조차 거의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중반에는 죽음을 앞두고 두려워하며, 죽음을 생각하며 울기도 한다. 그러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닿아갈 그곳은 지나온 삶으로써 두렵지 않게 되었다.”(233쪽)고 선언한다. 류요엘은 결국 이 말을 되뇌이며 그는 영원한 삶 대신, 나에게 작별을 고하는 선택을 한다. 그러나 결코 소멸이 아닌, ‘완벽한 작별’이기에 그는 웃을 수 있었고 우리도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비로소 미소 지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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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전사회 (커버이미지)
    [장르문학]완전사회
    • 문윤성 지음
    • 아작
    • 2023-04-14

    한국 최초 장편 SF 《완전사회》, 50년 만의 완전판 출간“여기가 바로 한국 본격 SF가 태동한 성지입니다.” 1965년 <주간한국> 추리소설 공모전 당선작20세기 중반, 전쟁의 참화를 뒤로하고 다시 번영하기 시작한 인류는 자신의 업적을 기념하고자 타임캡슐을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UN은 타임캡슐의 궁극적인 형태로 ‘살아있는 인간’을 미래로 보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저온 상태로 오랫동안 잠을 자면서 육체의 노화를 저지하는 새로운 방식이 고안되었고, 과학계는 이 특별한 상태를 견뎌낼 수 있을 만큼 몸과 마음이 완벽하게 준비된 인간을 찾아 전 세계를 뒤진다. 질병 유무와 운동 능력부터 고도의 지적 능력까지, 가혹한 테스트를 통해 선택된 사람은 한국인 남성 우선구. 그는 어머니의 만류도 뿌리치고 미래를 향해 가기로 하고 오랜 잠에 빠져드는데, 이윽고 긴 잠에서 깨어난 그가 마주한 22세기 미래 지구는 여자들만 살아가는 여인천하! “광대한 스케일, 면밀한 이야기 운행…. 하여간 이것을 쓴 사람은 굉장한 천재가 아니면 엄청난 도적일 것.” - 한운사, 극작가“한국 SF 문학의 위대한 선구자가 남긴 세례”- 박상준, 한국SF협회 회장한국 SF 문학의 위대한 선구자가 남긴 세례- 《완전사회》 재출간에 부쳐 -30여 년 전, 어느 대학 도서관에서 문윤성 작가의 《완전사회》 초판본을 처음 발견했던 기억이 새롭다. 세로쓰기로 조판 된 이 두툼한 책에서 무엇보다도 반가웠던 건 표지의 제목 위에 쓰인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말이었다. 한국 창작 SF 문학사상 최초의 성인용 장편소설로 평가받는 이 작품은, 1965년 <주간한국>의 창간 기념 추리소설 장편 공모에 당선되어 처음 세상에 선을 보였고, 1967년 수도문화사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그 뒤 1985년에 흥사단출판부에서 두 권으로 나뉘어 재간된 바 있으나 제목이 《여인공화국》으로 바뀐 채 나왔고 그나마 곧 잊히고 말았다. 오늘날 이 땅의 SF 독자들은 이 작품을 접할 기회는 고사하고 그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그리고, 이제 2018년에 이르러서야 ‘완전판’이라 할 수 있는 모습으로 이 책이 재출간되는 것은 여느 경우와 달리 매우 각별한 의의를 지닌다. 이 작품은 자신을 제대로 읽고 평가해 줄 시대 및 독자들과 만나기까지 너무나 오랜 세월을 기다려왔다. 그 어느 때보다 페미니즘과 젠더 평등에 관한 관심이 첨예한 지금 시기에, 마치 이런 상황을 정확히 내다본 듯 50년도 더 전에 이런 방향으로 SF적 상상력을 과감하게 펼쳐 보였던 《완전사회》의 재출간은 하나의 사건이라 불러 마땅하다.작가 문윤성은 빈약하기 이를 데 없었던 20세기의 한국 창작 SF 문학사에서 독보적으로 빛나는 별이다. 1916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이 일제강점기에 작가로 데뷔했고, 2000년에 타계하기까지 스스로 ‘SF 작가’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그가 작고할 때까지도 우리나라에는 아동·청소년용 SF를 쓰는 몇몇 작가를 제외하면 내세울 만한 SF 작가는 물론이고 SF 팬덤조차 실체가 빈약했다. 생전에 한국추리작가협회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것도 그만큼 SF 작가로서 외로운 존재였다는 반증일 것이다.《완전사회》의 주인공 남자는 타임캡슐에 탑승한 채 161년 동안 잠자다가, 지구에 여성만 존재하는 미래 세상에서 깨어난다. 그는 처음에 미래인들과 상당 기간 서먹한 관계를 지속하게 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미래인들이 주인공의 존재를 쉽게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설정은 아마도 작가가 작품의 주제를 최대한 부각시키려고 독자의 관심을 점층적으로 끌어올리는 구성이 아닐까 싶다. 생리심리학, 문화인류학적으로 남성과 여성 사이에 강력하게 존재하는 간극의 확고부동함을 새삼 주의 환기시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그것을 극복하고 그다음 차원으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인류의 실존적 당위성을 드러내려 한 것이라면 과장된 독법일까?그에 앞서, 작품 서두에서 주인공이 기나긴 수면에 들어간 시대적 배경부터 흥미롭다. 작중에서 모든 이들은 어렴풋이 인류 문명의 미래에 대해 막연한 절망을 지니고 있다. 이대로 가면 어차피 막다른 끝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공유하면서 그 극복을 위한 노력은 애초부터 포기하고 그저 인류 문화의 유산을 남기고자 하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음을 암시한다. 서사의 시작이 그야말로 거대한 비관주의가 전제되는 것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작가는 핵무기를 사용하는 3차 대전이 발발하여 전 세계 인구의 90퍼센트가 몰살되는 끔찍한 역사를 등장시키고 그 절망에서 가까스로 일어난 인류가 또다시 4차 대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미래를 이야기한다. 이번에는 핵무기를 능가하는 기상 무기, 생화학 병기 등으로 세계 인구가 고작 9천만 명 정도만 생존한다는 더 참혹한 전개이다.작가는 이런 귀결의 가장 큰 책임이 바로 과학자들에게 있다고 보았다. SF로서 이 작품이 던지는 묵직한 주제 중 하나이다. 이어지는 역사에서 과학자들은 정치인들에게 휘둘려왔던 전철을 더 이상 밟지 않겠다며 ‘과학센터’를 세워 세계를 직접 ‘통치’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살아남은 인류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단기간에 비약적인 과학기술 발전을 이룩하고 세상을 전에 없던 낙원으로 탈바꿈시킨다. 이렇듯 초국가적인 ‘과학센터’가 세계를 지배했지만, 인간 사회의 숙명인 듯 또다시 갈등의 씨앗은 싹트고 세상은 속절없이 5차 대전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이 5차 대전이야말로 인류 최후의 전쟁이라 할 만한 여성과 남성 간의 성 대결로 펼쳐지는 것이다. 작가가 그린, 여성이 지배하는 미래 세상은 인류 역사를 독특한 사관으로 해석한다. ‘왕후문화 → 웅성문화 → 양성문화 → 진성문화.’ 이를 포함해서 《완전사회》에는 작가가 실로 많은 공을 들인 것이 역력한 인문 사회적 상상력들이 세심하게 배어 있다. 과학기술적 상상력도 상당한 수준이지만 어쩌면 그 이상으로 두드러지게 인간과 사회에 대한 독창적 통찰이 돋보인다. 사회, 교육, 예술, 가치관, 관습 등 인류 문화의 사실상 전 분야를 망라하며 꼼꼼하게 최대한의 설득력을 부여해서, 스토리와는 별개로 이 작품에 등장하는 각종 설정만으로 풍부한 토론 시리즈가 충분히 가능할 정도이다. 작중에서 흥미를 끈 또 다른 대목 중 하나는 세계를 지탱하던 과학자들이 일반인들로부터 ‘우주개발’의 거센 압력을 받았다고 묘사하는 부분이다. 과학자들은 우주개발이 실효가 별로 없다고 판단하고 다른 분야의 과학기술 발전에 더 매진하고자 했으나 대중은 동의하지 않는다. 작가가 《완전사회》를 집필한 60년대 중반 당시는 1957년의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지속된 우주개발의 진작 분위기가 한창이었고, 미국의 아폴로 계획이 달 착륙을 목전에 두고 거침없이 진행되던 때였다. 그 당시 우리나라조차도 과학기술과 교육 분야에서 ‘우주개발’을 가장 두드러진 구호 중 하나로 내세웠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작가가 우주개발에 유보적 입장인 과학자 지배 집단을 등장시킨 것은 상당히 예리한 포석이지 않나 싶다. 당시에 우주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경제성을 사실상 무시한 채 진행되었던 미국과 소련 간의 ‘우주 경쟁’이 실상은 체제 경쟁에 지나지 않음을 날카롭게 통찰했던 것이다.한국의 SF 창작계가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켜고 있는 지금 시기에 문윤성 작가의 《완전사회》가 이미 존재한다는 것은 크나큰 세례이자 선물이다. 이 땅의 SF 독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현재와 미래를 진지하게 성찰하려는 이 시대의 모든 이들에게 감히 묻고 싶다. 이미 50년도 더 전에 제시되었던 《완전사회》의 상상력에 과연 당신은 얼마나 근접할 수 있겠냐고.마지막으로, 21세기 들어 《완전사회》를 다시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되새기고 싶다. 곱씹어 볼수록 그 의미심장함이 너무나 무겁게 다가온다. 바로 ‘진성선언’이다. 이대로 남성들의 반성 없이 불평등한 관계가 지속된다면 오래지 않아 우리는 곧 현실에서 이러한 ‘여성선언’을 만나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우리는 일체의 낡은 관념과 그 위에 설정된 모든 제도를 무시한다. 개인의 인생관으로부터 부부의 개념, 가족 제도, 법률, 사상, 사회조직에 이르는 온갖 낡은 것은 근본적으로 파괴되어야 할 것을 주장한다.”“우리는 모든 분야에 걸쳐 남성의 존재를 부인하고 이를 제거한다. 여성은 상대성의 입장이 아니라 인류 유일의 참된 모습으로서 존재한다.”- 박상준, 한국SF협회 회장한국 최초 장편 SF 《완전사회》“여기가 바로 한국 본격 SF가 태동한 성지입니다.” 20세기 중반, 전쟁의 참화를 뒤로하고 다시 번영하기 시작한 인류는 자신의 업적을 기념하고자 타임캡슐을 만드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업계별로 자신들의 성과를 지구 여기저기에 파묻었죠. 문명의 업적 중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 할 과학계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타임캡슐의 궁극적인 형태로 ‘살아있는 인간’을 미래로 보내기로 한 것이죠. 이를 위해 기존의 냉동 인간을 대신해 영상 2도의 저온 상태로 오랫동안 잠을 자면서 육체의 노화를 저지하는 새로운 방식이 고안되었습니다. 과학계는 이 특별한 상태를 견뎌낼 수 있을 만큼 몸과 마음이 완벽하게 준비된 인간을 찾아 전 세계를 뒤지죠. 질병 유무와 운동 능력부터 고도의 지적 능력까지, 가혹한 테스트를 통해 선택된 사람은 한국인 남성 우선구였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만류도 뿌리치고 미래를 향해 가기로 합니다. 그리고 오랜 잠에 빠져듭니다. 이윽고 긴 잠에서 깨어난 그가 마주한 세계는….1967년, 한국에서 본격 SF가 등장했습니다. 몇몇 팬들은 마치 ‘기억 전달자’들이 이야기를 전승하듯이 이 작품을 손에서 손으로 전달했지요. 그 전설적인 소설을 이제 다시 출간합니다. 한국 SF의 시원을 담은 시금석, 문윤성의 《완전사회》입니다.《완전사회》는 기본적으로 H. G. 웰스의 《타임머신》을 떠올리게 합니다. 주인공의 몸과 마음이 그대로인 채로 다른 시간대의 세계로 향하는 이야기입니다. 대신 《완전사회》의 저온 수면 기술은 오직 미래를 향해서만 나아갈 수 있는, 딱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타임머신이죠. 우선구는 겨우(?) 161년 뒤의 미래로 갔을 뿐이지만, 그 사이 인류는 세계대전만 수차례를 겪으면서 커다란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 지구에는, 이제 단성생식을 통해 번식하는 여성들뿐입니다.이 달라진 문명 속에서 주인공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플롯의 중심이 되겠지요. 《완전사회》가 선택한 방식은 《걸리버 여행기》와 비슷합니다. 우선구는 여자들만 살아가는 지구에 남겨진 유일한 남성으로서, 자신의 특이한 정체성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우선구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여인천하’의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천천히 파악해 갑니다. 그는 도망치기도 하고 이런저런 음모에 연루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본의 아니게 ‘여인천하’로 표류해 온 이방인의 태도를 견지합니다. 그는 새로운 세상의 정치와 문화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파악하고 관찰하면서 이해하려고 애씁니다. 이는 그가 소설 속의 세계에서 지속적으로 이방인의 태도를 견지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선구는 자신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들 속에서 묘할 정도로 수동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그는 일종의 기폭제입니다. 말하는 중심 소재라고 할까요. 스스로가 내러티브를 움직이기보다는 자신으로 인해 요동치기 시작한 내러티브를 관찰하는 사람처럼(마치 독자처럼) 보입니다.로저 젤라즈니가 이런 작품을 썼다면 우선구는 영화 <셰인>의 주인공 같았겠죠. 알프레드 베스터가 썼다면 우선구는 천재적인 테러리스트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사회》는 그보다 이전 시대의 SF 또는 모험 소설들과 결을 맞춥니다. 내러티브의 높낮이를 섬세하게 설계하고 캐릭터에게 복합적인 매력을 부여하기보다는 새로운 세상의 신기한 광경들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고 본 거겠죠. 물론 당시에는 그랬을 겁니다. 《완전사회》는 한국에서는 본격 SF의 초창기에 속하는 작품이었으니까요.그러나 신기한 세계를 구경한다는 컨셉트를 가진 소설은 세월이 흐를수록 매력을 잃어버릴 확률이 높습니다. 발표 당시에 ‘신기한 광경’이었을 상상력은 후세의 독자들에게는 익숙한 설정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래도 《완전사회》의 설정은 지금 봐도 흥미로운 설정들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의 월경을 없애기 위해 난소 제거 수술을 하는 ‘두버무’들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애초에 임신도 하지 않고 단성생식을 하는 세상에서 굳이 평생 월경 때문에 고생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인데, 이 두버무들은 그와 반대로 여성의 성적 특성을 우상화하는(이성 간의 성행위는 거의 신화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발흥과 각을 세웁니다. 코니 윌리스의 <여왕마저도>가 떠오르는 설정이죠(물론 《완전사회》가 먼저 나왔습니다!). 출산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고 단성 종족으로 살아가게 된 인류는 생물학적으로 자신들을 규정하는 생식 시스템과 성적 욕망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답을 찾지 못한 상태입니다. 말 그대로 설정상으로는 ‘완전사회’처럼 보이는 이곳도 풀어야 할 고민이 많은 곳이었던 거죠. 우선구는 이 ‘여인천하’가 완벽한 곳이 아니고, 누군가가 계속 무언가를 개선해 나가야 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 역시 할 일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비로소 능동적인 인간이 됩니다. 조심스러운 회의주의자였던 그가 새로운 세상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고민하게 되었을 때, 한참 잠잠했던 내러티브는 부드럽게 상승하면서 결말로 향합니다.1967년에 당대의 독자들에게 SF의 가능성을 소개했던 작품을 21세기에 와서 다시 읽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부모님 또는 조부모님 세대가 쓰던 오래된 말투에 담긴 ‘초창기 SF’의 내러티브를 말이죠(그런 면에서 번역 작품들은 유리합니다. 새로 나올 때마다 그 시대의 스타일로 옷을 갈아입으니까요). 《완전사회》가 현대의 걸작 SF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래된 영화들이 각기 그 시대의 분위기를 담고 있듯이, 그리고 그 분위기는 다른 시대에 다시 재현할 수가 없듯이, 《완전사회》는 SF뿐만 아니라 한국 문학계를 통틀어서도 거의 사라져 버린 20세기 중반의 흔적을 담고 있습니다. 우선구가 먼 미래로 여행을 떠났듯, 《완전사회》를 읽는 독자들은 지난 세대의 소설이 담고 있는 특별한 분위기를 향해 여행을 떠납니다. 특히 순우리말의 농도가 높은 대사와 지문들은 재미있게 느껴질 정도죠(이 오래된 리듬감은 북한의 말투에서 아직 느낄 수 있습니다). 신선해 보일 정도로 오래됐습니다. 《완전사회》는 2018년의 시점에서도 아직 머나먼 미래를 그리고 있지만, 지금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그 미래와 함께 지나간 날들을 바라보게 됩니다.그 지나간 날들 속에 한국 SF가 이렇게 태어나 있었습니다. 전설이 발현된 성지는 그 전설의 신비를 다시 재현해주지는 않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 기억이 담긴 땅을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감동을 얻을 수 있지요. 이게 《완전사회》를 읽는 가장 큰 기쁨이 아닐까요. 여기가 바로 한국 본격 SF가 태동한 성지입니다.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방문하셔서 원하시는 만큼 거닐다 가시기 바랍니다.감사합니다.P.S: 《완전사회》에는 특별히 매력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작품의 결말 근처에 단편 분량의 액자소설이 한 편 들어가 있는데요, 이 단편이 이상한 매력을 풍깁니다. 레이 브래드버리를 떠올리게 하는 일종의 우화 소설입니다. 등장인물 중 한 명이 쓴 이 소설은 《완전사회》 본편의 분위기와 동떨어져 있습니다. 《완전사회》 본편의 경우 실제로 충격적이거나 격앙된 상황일지라도 표현의 수위를 낮춥니다. ‘어허 그런 말을 써서야 되겠소?’ 같은 느낌이죠. 그런데 이 단편은 갑자기 그 한계에서 벗어납니다. 잔인한 묘사가 갑자기(그러나 딱 알맞은 수위로) 던져지고, 인물의 집착을 설명하는 에피소드는 광적이면서도 선한 인물의 복합성을 매우 잘 표현합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같아요. 놀랐습니다. 스토리를 진행시키는 부분은 지지부진하게 느껴지지만, 각각의 세부 상황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열기가 느껴집니다. 《완전사회》 본편을 보면 광기 어린 세월을 간략히 압축해 들려주는데, 이 설정 속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면(마치 《세계대전 Z》처럼요) 특별한 역작이 태어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속 그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을 머릿속에 맴돌게 하는 단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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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눈고개 비화 (커버이미지)
    [장르문학]외눈고개 비화
    • 박해로 지음
    • 북오션
    • 2023-04-14

    비밀에 묻혀 있던 지옥문이 열리고사상 최악의 악마들이 몰려온다!!# 한국 오컬트 소설의 1인자, 박해로 SF호러 연작소설# 좀비, 외계인, 공간이동 등 물리법칙을 거스른 초월적 존재의 공포#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우주적 공포소설# 조선을 뒤흔든 예언서 《귀경잡록》완전히 새로운 공포가 찾아온다!조선을 배경으로 한 우주적 공포소설(Cosmic Horror)‘귀경잡록’ 시리즈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SF호러 연작소설이다. 미국의 H.P 러브크래프트가 《네크로노미콘》이란 가상의 서적을 빌어 우주의 공포 신화를 완성해냈듯이, 이 시리즈도 각 작품은 철저히 독립된 이야기지만 조선 선비 탁정암이 저술한 《귀경잡록》이란 예언서를 중심으로 외계인의 실존과 위협을 다루고 있다.이야기 하나하나에는 우리가 몰랐던 비밀스런 태고적 공포신화가 그려진다. 조선시대의 초능력, 무덤에서 되살아난 존재, 반인반수, 비행접시, 정체모를 괴수의 대학살, 장벽 너머의 성역 등 인간의 감각을 뛰어넘은 초자연의 세계가 펼쳐진다. 저자 박해로는 조선의 역사적 배경과 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어냈다. 그의 예측할 수 없는 상상력은 인간에게 내재된 공포의 본질이 무엇인지 묻게 한다.세종 20년(1438년), 건국신화를 부정하고 백성들을 미혹시킨다 하여 금서 처분을 받게 된 《귀경잡록》은 당대의 악명 높은 예언서 가운데 하나였다. 우주 삼라만상의 진정한 유일신과, 그가 부리는 이계 별천지의 외계인들이 호시탐탐 인간세상을 노린다는 해괴한 이 예언서는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전대미문의 공포를 전염시켰다. 읽다 보면 어느 이야기든지 《귀경잡록》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귀경잡록》은 이 모든 공포의 시작이며 종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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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커버이미지)
    [장르문학]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 김초엽 지음
    • 허블
    • 2023-04-14

    “젊은 소설가의 첫 작품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끄럽게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내가 생각하는 소설가의 눈과 입을 발견했다. 시선에서 질문까지, 모두 인상적이다.”-김연수(소설가)“마음을 다 맡기며 좋아할 수 있는 새로운 작가를 만나서 벅차다.”-정세랑(소설가)★우리 SF의 우아한 계보, 김초엽 첫 소설집지난겨울까지 바이오센서를 만드는 과학도였던 김초엽 작가는, 이제 소설을 쓴다. 어디에도 없는 그러나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상상의 세계를 특유의 분위기로 손에 잡힐 듯 그려내며, 정상과 비정상, 성공과 실패,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끊임없이 질문해온 신인 소설가 김초엽. 그의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출간되었다.2017년, 「관내분실」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부문 대상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가작을 동시에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심사를 맡았던 소설가 배명훈, 김보영으로부터 “작가는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하고, 작품을 통해 그 질문을 다른 사람들의 코앞에까지 내밀 수 있어야 한다. 그 일을 거친 결과, 작가와 작품은 스스로 쨍하게 아름다워진다. 이 글 「관내분실」처럼” “슬픔에 좌절하지 않고, 어쩌면 영원히 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자신의 인생과 생명을 걸고 그 의지를 끝까지 관철하려 한다는 데서 이 작품(「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감동을 준다”는 평을 이끌어냈다. 등단작 「관내분실」은 “모성애라는 쉬운 답을 피해 이 어려운 길을 택한 것만으로도 흡족한데, 그 과정 끝에 놓인 장면이 정말이지 ‘SF적’으로 참 아름다워서, 적어도 우리가 ‘이런 SF’마저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게으르지는 않다고 항변하고 싶어졌다”(문학평론가 황현경, 『문학동네』 2018년 여름호)라는 평을 받으며 SF문학에 대한 비평가들의 관심을 이끌기도 했다. 그 결과 신인소설가로서는 드물게 등단 일 년여 만에 《현대문학》 《문학3》 《에피》 등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한 작품으로 첫 소설집을 출간했다.★시선에서 질문까지, 모두 인상적이다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희로애락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뿐, 섣불리 판단내리지 않을 때 소설가의 눈은 더없이 맑고 투명해진다. 명징하고 광대하게, 이 세계를 바로 볼 줄 아는 이 시선에서만 ‘인간이란 무엇이며, 인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생겨난다. 젊은 소설가의 첫 작품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끄럽게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내가 생각하는 소설가의 눈과 입을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시선에서 질문까지, 모두 인상적이다. - 김연수(소설가)김초엽의 소설은 상상의 세계를 그려내면서도 소설가 김연수가 추천의 글에서 말한 것처럼, 현실의 세계를 섣불리 판단내리지 않고 투명하게 담아낸다. 그 세계는 아름답지만 순진하지 않고 어디에도 없지만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뛰어난 과학자 릴리 다우드나로 인해 ‘완벽한’ 유전자의 선택이 가능해진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완벽함의 범주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경계 밖으로 밀려난다. 한편, 소설에는 장애도, 차별도, 혐오도 없는 그리고 사랑도 없는 행성인 ‘마을’이 함께 그려진다. 이 아름답고도 평화로운 ‘마을’은 일종의 ‘유토피아’를 상상케 한다. 성년이 되면 순례를 떠나는 이들 중 일부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의문을 빼면 말이다. “마을이 유토피아라면,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이 물음은 장애를 비장애로, 디스토피아를 유토피아로, 불완전함을 완전함으로 간편하게 뒤집는 대신 오히려 그 이분법적인 항들의 관계를 사유하게 한다”(작품해설 중)라고 문학평론가 인아영은 말한다. 무엇이 우리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혐오와 차별, 모순으로 가득 찬 세계를 분투하며 살아가게 하는지. 이 소설은 이야기를 통해 질문한다.★소녀들의 영웅이 금메달리스트일 필요는 없다김초엽의 소설에는 정상과 비정상, 성공과 실패, 주류와 비주류 등 경계를 향한 응시가 있고, 질문이 있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에는 실패한 여성 우주인이 등장한다. ‘우주 너머’를 항해하기 위한 우주인 선발에 뽑히지만 내로라하는 ‘스펙’이 없는, 무엇보다 나이 많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난받는 ‘재경 이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난 때문에 좌절하지도 낙담하지도 않는다. 누군가의 기대에 부흥할 생각도, 누군가의 기준에 의한 성공을 향해 질주할 생각도 않는다. 소설은 마치 잃어버린 역사를 쓰는 젊은 역사가를 떠올리게 한다. ‘여성사’를 쓰는 젊은 역사가의 질문과 닮아 있는 것도 같다. 왜 어떤 기록은 기록되지 않는가, 왜 역사는 언제나 남성의 서사이고 성공의 롤모델 또한 남성인 경우가 대부분인가. 소수자에게 그들 역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있는 것이지, (누군가의 기준에 따른) 성공의 역사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미션에 실패했다고 비난받는 우주인일지라도, 어떤 소녀에게는 그의 존재 자체가 응원일 수 있다.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인가. 우주 미션에는 실패했지만, 소녀를 응원하는 일에 성공했다면 그 삶을 실패한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소녀들의 영웅이 금메달리스트일 필요는 없다. 이 소설에서는 여성들로 이루어진 대안 가족의 모습도 그려내는데, 우리의 가족제도가 반드시 당연한 것은 아니라고, 우정과 연대의 공동체로서 가족의 가능성을 말하기도 한다. 작가의 고민과 질문을 “쨍하게 빛나는” 이야기로 들려준다.★다섯 개의 위성이 뜨는 곳에서도, 지지 않는 마음「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주인공은 매력적인 ‘할머니 과학자’이다. 가족과 생이별하고, 아득한 우주에서 재회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을 그리고 있다. 「스펙트럼」에도 ‘할머니 과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동안 왜 서사의 주인공은 남성이거나 여성이어도 젊은 여성인 소설이 주가 되었을까? 문학평론가 서영인은 ‘할머니’가 서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함을 김초엽 소설에서 포착한다. 그러면서 이 소설 「스펙트럼」에서 다룬 ‘언어’에 관해 주목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외계 생명체들의 언어다. 문자 대신 색채로, 문서나 책 대신 그림으로 기록을 남기는 그들의 언어. 그러니 풍경이 말이 되고 빛과 어둠이 말의 의미를 결정할 터였다.”(, 《한겨레신문》)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마음이 느슨해졌다. 눈앞의 루이가 바로 며칠 전까지 함께 지내던 바로 그 루이처럼 느껴졌다. 루이는 희진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희진의 뒤로 펼쳐진 노을을 보고 있었다.“그럼, 루이. 네게는…….”희진은 루이이 눈에 비친 노을의 붉은 빛을 보았다.“저 풍경이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보이겠네.”희진은 결코 루이가 보는 방식으로 그 풍경을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희진은 루이가 보는 세계를 약간이나마 상상할 수 있었고, 기쁨을 느꼈다. - 「스펙트럼」 중에서문학평론가 인아영은 스펙트럼에서 외계생명체인 ‘루이’와 주인공 ‘희진’이 첫 소통을 하는 장면을 인용한다. “이해 불가능성에 대한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을 본 적이 있던가. 루이는 희진에게 언제까지나 “마음을 다해 사랑하기에는 너무 빨리 죽어버리는, 인간의 감각으로는 온전히 느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완전한 타자”이다. 그러나 그 앞에서 희진은 이들을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불가능을 알면서도 믿으려고 하며, 그들의 존재를 받아들이려고 한다. 지구에 돌아온 희진이 평생 수집했던 유리가 “보통의 감각으로 볼 수 없는 대상을 보게 하는 도구”라면, 이 아름다운 장면을 가능케 하는 외계 생명체와 다른 행성을 그릴 수 있는 SF소설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 여기의 세계를 새로운 감각으로 보게 하는 또 하나의 유리일 것이다.“(《현대문학》 2018년 9월호)김초엽의 소설은 근사한 세계를 그려내는 상상력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질문을 던진다. 타자를 알고자 하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의 다른 말이 아니겠느냐고.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상대를 완전하게 이해하는 방법이란 없는 거냐고 애타게 묻는 누군가에게. 김초엽의 소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문학평론가 인아영의 말로 갈음할 수 있을 것 같다. “불가능성을 껴안는 것”, 불가능성을 껴안고 고군분투하는 인물을 통해, 김초엽의 소설은 정답이 없는 불가능한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다섯 개의 위성이 뜨는 행성에 홀로 남겨져 외계인과 조우하게 되더라도(「스펙트럼」), 고통 없는 유토피아에서 짐짓 모르는 것처럼 질문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때에도(「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세계를, 우리의 세계를 알아야겠다고 용기 내는 마음, 우리의 사랑과 우정을 말하며 지지 않는 마음, 분투하는 태도가 김초엽의 소설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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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여기에 없었다 (커버이미지)
    [장르문학]우리는 여기에 없었다
    • 안드레아 바츠 지음, 이나경 옮김
    • 모모
    • 2023-04-14

    〈NPR〉, 〈리얼 심플〉, 〈마리끌레르〉 선정 ‘올해의 책’,리즈 위더스푼 북클럽 선정 도서, 넷플릭스 영상화 확정,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화제의 심리 스릴러낯선 여행지에서 벌어진 두 건의 살인우리의 완전범죄는 이번에도 성공할까?“번개는 같은 곳에 두 번 치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 삶에서 똑같은 불행이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대학 시절 만난 십년지기 친구 크리스틴과 매년 우정 여행을 떠나는 에밀리는 이 속담을 믿었다. 작년 캄보디아에서 있었던 끔찍한 악몽이 다신 벌어질 리 없다고 생각했다. 완벽했던 칠레의 마지막 날 밤, 그곳에서 만난 한 남자와 호텔로 돌아간 크리스틴이 폭행에 저항하다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기 전까지. 피땀으로 물든 새벽, 남자의 시체를 처리한 뒤 각자의 생활로 돌아간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태도로 일관한다. 에밀리는 죽은 남자들의 환영을 보는 등 걷잡을 수 없는 공포에 시달린다. 의지할 곳은 크리스틴뿐인 에밀리는 시시때때로 그녀를 찾지만, 같은 일을 겪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태평하고 천연덕스러운, 심지어 자신을 의심하고 협박하는 크리스틴의 모습이 혼란스럽기만 하다.잠시 거리를 두려던 찰나 호주에 살던 크리스틴이 갑자기 미국에 돌아오고 에밀리는 그녀로 인해 연인 애런과의 관계를 비롯한 삶 전체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에 불안해한다. 크리스틴은 아무 때나 불쑥 나타나 서슴없이 말을 내뱉으며 에밀리의 주변 사람과 상황을 쥐락펴락한다. 사건의 범인을 찾는 수사망이 좁혀오는 데도 불구하고. 에밀리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부정하는 대신 무서울 정도로 밝고 활기차며 각별히 주의해도 모자랄 여행 이야기를 일삼는 그녀의 행동이 점점 거슬리다가 결국 크나큰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같은 번개를 연달아 맞은 두 여자의 완전범죄 시나리오는 크리스틴이 에밀리에게 돌아온 그날부터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의존과 집착으로 점철된 독성적인 우정유일한 공범인 친구가 숨통을 죄어올 때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존재가 별안간 낯설게 느껴질 때 삶은 무너진다. 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알 수 있는가, 안다고 말하는 것 중 ‘진실의 비율’은 얼마인가. 에밀리의 심리 치료사 에이드리엔의 말처럼 어떤 느낌이 진짜라고 해서 그것이 진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여기에 없었다》는 바로 그 진실에 관한 이야기다.작가는 극단적으로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여성의 심리를 날카로운 필치로 그려낸다. 독자는 처음에는 화자 에밀리의 입장에서 두 사람 사이의 어긋난 힘의 균형과 지배관계에 자연스럽게 의문을 품는다. 계속 휘둘리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유독한 관계에 혀를 내두르다가도 어느새 특유의 짧은 호흡과 팽팽한 줄다리기에 압도되고 만다. 선악 판단이 불가한 채로 혼돈에 휩싸여 읽다 보면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그저 보이지 않는 전쟁, 소리 없는 각축전을 숨죽인 채 바라볼 수밖에 없다.에밀리는 크리스틴으로 인해 일, 연애 등 평범한 일상마저 파괴되기 시작하자 그녀를 가리키는 수상한 증거와 단서를 수집해나간다. 친구의 과거가 밝혀질수록 견고했던 비밀 동맹은 서서히 와해된다. 독자는 홀린 듯이 크리스틴이 흩뿌려놓은, 또 감춰놓은 수수께끼를 풀어나간다. 그러면서 에밀리의 배신에 동조한 것을 들킨 듯 심장을 부여잡기도 하고, 때론 별일 아닌 듯 넘어가는 크리스틴의 반응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일희일비하는 스릴을 경험하게 된다. 에밀리의 안전한 존재에 대한 갈망과 크리스틴의 애정의 이름을 한 권력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이 작품은 뒤틀린 관계가 치달을 수 있는 지독한 끝을 보여준다.세 이국의 풍경 속에서 펼쳐지는 두 여자의 반격과 드리워진 반전의 그림자여행을 떠날 각오가 된 사람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없었다》에는 절친한 친구와의 여행으로 지옥에 떨어진 여성이 등장한다. 칠레와 캄보디아를 넘나드는 긴박한 전개가 내일이 없는 두 여자의 본능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과감한 서술과 만나 텅 빈 고속도로를 탄 듯 질주한다. 또 미국으로 돌아온 에밀리의 숨을 조여 오는 극심한 트라우마와 정신적인 고통, 공범이라는 굴레는 이전의 사건들로 한껏 상기된 독자의 열기를 식혀준다. 개성 넘치는 환경과 분위기로 주위를 환기시키는 세 나라의 매혹적인 공간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이야기에 재미를 더한다.한편 공간적인 배경뿐만 아니라 촘촘히 쌓이면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두 주인공의 개인적인 서사 또한 흥미진진하다. 에밀리의 과거가 가끔씩 툭툭 튀어나와 독자에게 실마리를 제공한다면, 크리스틴의 과거는 후반부로 갈수록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독자를 경악에 몰아넣는다.작품 전반에 걸쳐 에밀리는 끝없이 자문한다. “우리가 이런 끔찍한 일을 끌어들이는 걸까?” “우리가 쉽게 분노하는 위험한 인간들을 불러 모으는 걸까?”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데 익숙했던 에밀리는 마지막에 가서는 해결할 문제와 눈앞에 놓인 위험을 제대로 마주하고 깨우친다. 종이에 손을 베이듯 어린 시절부터 천천히 아로새겨진 무수한 폭력의 양상을. 작가는 사회에 만연한 여성에게 가해지는 갖은 위협을 작중 에밀리와 크리스틴의 모든 선택과 결정의 과정에 담아낸다. 그렇게 행해진 일들이 결국 어디로 튈지 모르는 비극의 불씨가 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우리는 여기에 없었다》는 긴장이 극에 달한 순간에 인물들과 함께 호흡하며 완전히 동화되는 소름 끼치는 서스펜스를 기다린 독자에게 큰 희열을 안겨줄 것이다. 또 다 읽은 뒤에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말에 전율을 느끼며 결코 잊지 못할 스릴러 목록에 이 책을 추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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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린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 (커버이미지)
    [장르문학]우린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
    • 이동건 지음
    • 델피노
    • 2023-04-14

    흔적도 없이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 가능할까?『죽음의 꽃』으로 범죄 스릴러를 선보였던 이동건 작가의 신작 『우린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가 출간되었다. 이미 출간 전에 영상화, 웹툰 계약까지 체결되어 화제가 된 작품으로, 작가는 더욱 탄탄해진 범죄 미스터리로 무장하고 독자들을 찾아왔다.작가는 『우린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에서 여전히 남아있는 많은 미제 살인사건에 대한 궁금증에 기발한 상상력을 절묘하게 결합하여,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직접 조명한다.사회에서 소외된 채 완벽한 살인 기술을 연마하는 데에만 골몰한 주인공 종혁. 종혁은 자신의 과거와 살인 기술을 모두 숨긴 채 공장에 다니며 살아가지만, 어찌된 연유인지 꼬리가 밟힌다. 그의 위험한 능력을 탐내는 이들의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그는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져든다.작가는 종혁이 청부 살인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피폐해지는 모습과 동시에 그를 매수하여 살인을 청탁하는 사람들에게 주목한다. 이미 성공하여 부와 명예를 거머쥔 그들의 끝없는 탐욕과 위선, 배신과 살인. 종혁의 눈을 통해 그들의 추악함이 독자에게 낱낱이 전해진다. 이 작품에는 살인자 종혁을 쫓는 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그를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 뿐. 과연 완전 범죄를 꿈꾸는 종혁은 끝까지 잡히지 않을 수 있을까? 종혁이 잡힌다 하더라도 종혁을 고용한 그들의 어두운 그림자는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살인 병기 종혁을 통해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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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아한 가출 (커버이미지)
    [장르문학]우아한 가출
    • 낸시 스프링어 지음, 김진희 옮김
    • 북레시피
    • 2023-04-14

    ★ <에놀라 홈즈 2> 11월 4일, 넷플릭스 영화 오픈 ★전미 베스트셀러 시리즈 원작으로 넷플릭스 돌풍을 일으킨천방지축 소녀 탐정, 전 세계 독자를 매료시키다!여덟 번째 이야기로 다시 찾아온 에놀라 홈즈에놀라 홈즈의 첫 번째 이야기 『사라진 후작』이 넷플릭스 영화 <에놀라 홈즈 1> 편으로 선을 보인 지 2년 만에 그 두 번째 이야기 『왼손잡이 숙녀』가 <에놀라 홈즈 2> 편으로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신작 『우아한 가출』이 출간되면서 마침내 에놀라의 여덟 번째 모험을 또 새로이 접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이번 이야기는 제2권의 그 왼손잡이 숙녀가 재등장한다는 점에 있어서 더욱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할 전망이다. 비운의 왼손잡이 숙녀 세실리와 재회한 에놀라 홈즈, 한층 더 성숙해진 소녀 탐정과 그 못지않게 카리스마 넘치는 든든한 조력자들이 펼쳐내는 합동 작전이 짜릿하고 통쾌한 결말을 선사한다.독립적인 왼손잡이 자아와 순종적인 오른손잡이 자아! 그 사이에서 방황하는 세실리, 과연 어느 쪽으로 향해갈까?구시대의 관습에 얽매인 수동적인 여성상의 이미지를 보기 좋게 무너뜨린 에놀라 홈즈가 이번에는 권위적이고 사악한 아버지의 통제하에 억압받으며 자아를 잃어가는 왼손잡이 숙녀를 구출하기 위해 모험에 뛰어든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이중인격 장애를 겪고 있다. 에놀라에게 친숙한 세실리의 왼손잡이 자아는 독립적이고 유능한 반면, 오른손잡이 자아는 순종적이고 온순하다. 에놀라는 세실리의 온전한 모습인 왼손잡이 자아를 되돌려주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셜록 홈즈가 세실리를 먼저 찾아내 그녀의 아버지에게 데려다주기 전에 반드시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에놀라는 과연 세실리를 구해내고 그 아버지 유스타스 경의 숨겨진 정체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을까?“자율적이고 유능하고 영리한 소녀 탐정 이야기 <에놀라 홈즈 시리즈>는전 세계 청소년들에게 신나고 박진감 넘치는 모험을 선사할 뿐만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 밀리 바비 브라운(<에놀라 홈즈> 여주인공)이중인격 장애, 가정폭력 고발, 재산축적 비리……빅토리아 시대 영국 사회상을 뒤엎는 모험이 시작된다!재치 있고, 사려 깊고, 외향적이고, 똑똑하고, 독립적이며 활기찬 소녀 그리고 변장의 대가. 모두 에놀라에게 붙는 수식어다. 늘 약자 편에 서서 그들을 돕기 위해 나서는 이 소녀 탐정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특히 이번 8권은 홈즈 가의 남매, 셜록과 에놀라가 어떻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건을 분석하고 해결해나가는지 보여주면서 그들 사이의 케미스트리로 한층 더 다이내믹한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소설의 줄거리 또한 탄탄하다. 빅토리아 시대 여성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 가족, 우정, 생활 방식, 외로움, 학대, 부정부패 등의 주제를 담아냄으로써 부정적인 당시 사회의 모습을 부각해 낸다. 더불어 등장인물의 주변 배경이라든가 의상, 저택 묘사 등 감각적인 장면 연출을 통해 『우아한 가출』은 이번에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만한 최고의 미스터리 탐정극으로 독자를 매혹한다.“옳소.” 다른 여성들도 열렬히 동의했다. 그 후 대화의 주제는 오랜 숙원이었으나 불과 7년 전인 1882년이 돼서야 통과된 의회제정법으로 흘러갔다. 이 법은 바느질삯이나 은행 계좌 등 아내 스스로 벌어들인 수입마저 남편에게 귀속시키던 기존 관행을 버리고 기혼 여성도 자신의 땅과 은행 계좌 등을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한 법이었다. 하지만 이 정의로운 법도 레이디 테오도라 알리스테어에겐 너무 늦게 제정된 감이 있었다. 이미 개인 재산은 물론 자녀들을 먹여 살릴 방법도 없던 그녀가 그 흉물스러운 남편에게 돌아간 뒤였기 때문이다. (p. 31)폭군 아버지, 사악한 남편에게 감금된 모녀를 탈출시켜라!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에놀라의 요절복통 구출 작전딸의 행복과 안위보다 자신을 위해 돈 많은 남자와 결혼시키려는 데 혈안이 돼 있는 아버지에 의해 감금된 세실리. 시리즈 2권에 이어 4권에서도 등장하는 세실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왼손잡이 예술가로서의 제1 인격과, 사교계에 순응하도록 강요받는 오른손잡이 레이디 세실리로서의 제2 인격을 지닌 이른바 ‘이중인격’의 소유자다. 그런데 그녀의 왼손잡이 인격이 실은 사회에 저항적인 성향을 띤 본연의 진취적인 자아임에도 걸핏하면 자기도 모르게 온순하고 무기력한 오른손잡이 인격이 튀어나오는 안타까운 현실이 표면화된다. 자신의 온전한 자립성을 위협하는 세실리의 이중인격 문제로 인해 에놀라의 구출 작전은 거듭 한계에 부딪힌다. 그나마 한줄기 희망이었던 세실리의 어머니마저 남편에 의해 감금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어떤 난관과 장애를 맞닥뜨리더라도 결코 포기할 에놀라가 아님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한밤중 두더지 굴보다 더 캄캄한 상황에서 감히 예상할 겨를도 없이 맞닥뜨린 이 재앙으로 내 양어깨는 속수무책으로 투입로에 끼어버리고 말았다. 순간 매끄럽게 쑥 미끄러지도록 이리저리 몸을 꿈틀거려도 봤지만 그럴수록 상황은 악화되었고, 급기야 내 몸은 와인병의 코르크 마개처럼 투입로를 꽉 막아버렸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가운데 혹자는 이렇게 계속 몸부림치다 보면 어느새 박힌 몸도 쏙 빠져나갈 거라 여겼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이제 몸의 더 좁은 부위(머리)까지 끼인 채로 (어깨마저)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된 터라 아무리 허리에서부터 손, 발, 그리고 하다못해 스커트까지 종처럼 흔들어대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문득 이 캄캄한 세탁물 투입로에서 굶어 죽은 내 시체가 몇 세대가 지나도록 발견되지 않은 채 어느덧 미라로 변한 광경이 떠올랐다. (p. 147~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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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울의 중점 (커버이미지)
    [장르문학]우울의 중점
    • 이은영 지음
    • 나비클럽
    • 2023-04-14

    ● 심리적 시공간을 환상적으로 연출하는 이야기 마술사의 등장자신을 타인처럼 모른 척해온 이들을 위한 이야기 -박인성(문학평론가)살인자의 기묘한 심리를 환상적인 필치로 그린 로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한 이은영 작가. 걸핏하면 졸음에 빠지는 한 여자가 어릴 적 자신이 괴롭히다 죽인 친구의 시체를 확인하는 이야기로 자신이 외면해온 과거와의 싸움을 보여주며 독자들의 마음을 강력하게 사로잡았다. 이는 한국 장르문학계에 자기 정체성이라는 미스터리를 탐색하는 새로운 작가의 탄생을 알리는 데뷔였다.특유의 메타포 활용과 기이하고 독특한 소재, 뜻밖의 반전으로 흡입력 있는 이야기를 선사하는 이은영 월드를 본격적으로 만나볼 수 있는 작가의 첫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우울의 중점》에는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 수상작을 비롯해 환상적인 이야기 마술사의 탄생을 가능케 한 중단편 소설 다섯 편이 수록되었다.인생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과정이다. 어쩌면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 이 미스터리의 진실인지도 모른다. 과거의 트라우마와 상처는 기억을 왜곡하거나 지워버리고 자기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채 타인처럼 모른 척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렇게 버텨온 우리에게 삶은 여전히 불가해한 사건들로 가득하다. 이 소설집에 드러나는 일련의 미스터리 판타지, 혹은 초현실성은 미스터리의 진실에 다가가게 하는 따스하고 낯선 통로 역할을 한다. 이 통로를 지나면 마주하기 힘들었던 자신을 받아들이게 되는 뜻밖의 결말을 만나게 된다.●미스터리와 오컬트가 결합된오싹하면서 매혹적인 환상소설의 탄생 특수한 공간에 갇히게 된 연인, 기면증에 빠진 살인자, 의자와 한 몸이 된 사람, 머릿속의 지진을 겪는 주인공, 나이를 이상하게 먹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은영의 소설은 우리를 낯선 세계로 끌어들인다. 독특한 시공간이 펼쳐지는 오컬트적 환상성은 단순히 상상력 그 이상을 넘어 강력한 치유의 힘을 발휘한다. ‘때로는 공포스럽고 때로는 불쾌하며 불가해하기까지 한 자기 정체성의 미스터리를 받아들이려는 시도야말로 비극적 자기인식을 넘어서 타인과 공존하는 방법’이라는 걸 보여준다. 미스터리와 오컬트 사이에서 흥미로운 장르적 결합을 통해 매력적인 환상 소설로 거듭난 이 작품들은 마력에 가까운 흥미진진한 서사구조와 함께 풍성한 맥락과 은유로 가득하다. 이에 박인성 평론가는 “초현실과 심리적 현실 사이를 넘나들면서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솜씨가 탁월해서 마술인지 알고 보는데도 계속 몰입하게 만드는 일류 마술사 같은 솜씨”라고 평했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이야기를 담은 중단편 소설 5편반복해서 읽어도 새롭게 빠져드는 놀라운 흡입력나는 오래전 헤어진 애인을 우연히 카페에서 만난다. 어색하게 안부를 묻고 헤어지려는 순간 미스터리한 상황에 놓이는 두 사람. 테이블 밖으로 내딛는 발이 보이지 않는 투명한 막에 가로막힌다. 거꾸로 누구도 이 안에 들어올 수 없다. 오히려 보호막이 된 투명한 막 때문에 두 사람 모두 비정상적인 자유를 느끼며 서로를 마주한다. 초현실적인 상황이 벌어진 원인을 함께 탐색하던 와중, 폭풍이 불어와 주변 일대가 침수되어 버린다.‘우호진’은 걸핏하면 졸음에 빠져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별명이 잠탱이였다. 세무사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직장인 호진은 같이 근무하던 알바생 ‘지윤’의 수상한 말들 때문에 비밀로 묻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이십 년 전 친구들과 함께 괴롭히던 같은 반 아이를 그녀가 죽이고 묻어버린 일. 호진은 지윤이 그 일을 알 리 없다며 시신 묻은 곳을 파헤쳤다가 뜻밖의 존재를 만난다.이 작품은 남자 친구와 이별한 뒤 그와의 기억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은효’가 아랫집 신혼부부의 작별을 관찰하는 이야기다. 은효의 집에 남자 친구와 같이 쓰던 물건들이 택배로 배달되고 매일 밤 방안에서 지진을 느끼지만 아랫집 부부는 이를 느끼지 못한다. 여자는 생판 남인 은효에게 남편과의 불화를 몇시간이나 털어놓고 은효는 이를 다 들어준다. 어느 날 아랫집 여자가 이유 없이 행방불명되지만 남편은 부인을 찾으려 하지 않고, 이 미스터리는 다시 은효의 작별에 대한 기억의 환기로 돌아온다.환상적인 이야기 마술사로서의 작가의 마력이 더욱 발휘되는 작품은 와 표제작인 이다. 이 중 사람이 스스로 목을 맬 때 쓰이는 의자 이야기인 는 인간의 탄생과 죽음을 그로테스크하게 그린 작품으로 인간에게 붙어 있는 어두운 내면을 환상적으로 형상화했다.‘여은’은 자신이 태어난 날 의자 위에서 목을 맨 엄마에 대해 가족들과 제대로 된 대화를 해본 적이 별로 없다. 의자는 곧 폐기되었지만 여은은 이따금 집안에서 기이한 일들을 겪으며 불안함을 느낀다. 섬뜩한 기억이 가득한 집을 떠나 오빠 ‘여훈’과 평범하게 살아가던 여은 앞에 어느 날 ‘의자’가 다시 등장한다. 이번엔 오빠의 의뭉스러운 친구 ‘석희’와 함께이다. 이 작품은 현실적 고통이 잠재된 불안하고 우울한 인간의 내면을 무생물인 의자와 결합해 강렬한 이미지로 형상화한 작품이다.표제작인 은 나이를 먹는 인간의 고통을 비유적으로 담은, 한 남녀의 기괴한 러브스토리이다. ‘조우’는 ‘디어텔로스’라는 돌연변이 인간종으로 태어났다. 수명은 일 년밖에 되지 않고 나이를 먹기 위해선 매년 한 번씩 인간의 신체 일부를 먹어야 한다. 뱀파이어보다 훨씬 더 번거롭고 고통스러운 생존 수단을 취해야만 겨우 인간 사회에 잠입해 살아갈 수 있는데 심지어 인간의 신체를 섭취할 때마다 외형도 그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변형된다. 그뿐 아니라 감정과 기억 역시 전이된다. 이 작품은 ‘조우’의 정체를 모른 채 그를 초등학교 같은 반에서 만나 성인이 된 이후에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윤의’와 ‘조우’의 이야기다.소설의 결말에서 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장면을 담은 에 대해 박인성 문학평론가는 이렇게 평했다. “생존수단에 있어서는 비인간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가 가장 인간적인 감정들의 전이를 경험함으로써 인간적 삶을 연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결국 타인과의 인간관계를 연료처럼 태우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요령 없는 인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주기적으로 누군가를 만나고 다시 작별함으로써만 자기자신을 자각하는 비극적 인식의 연속 속에 놓여 있는 인물들이 그 연쇄의 반복을 끊어내는 방법을 모색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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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경왕후 1 (커버이미지)
    [장르문학]원경왕후 1
    • 서자영
    • 고즈넉이엔티
    • 2023-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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