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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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산문]나의 비타, 나의 버지니아
- 버지니아 울프.비타 색빌웨스트 지음, 박하연 옮김
- 큐큐
- 2024-02-19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작가 버지니아 울프와‘올랜도’ 비타 색빌웨스트의 20년 러브레터편지에 생생하게 기록된 버지니아 울프와 비타 색빌 웨스트의 강열한 삶과 사랑“끝없는 편지. 넘겨도 넘겨도 끝이 없는 편지.”시대를 앞서간 페미니스트 작가 버지니아 울프와 소설 ‘올랜도’의 모델 비타 색빌웨스트의 서간집 《나의 비타, 나의 버지니아》가 출간된다. 1923년부터 1941년까지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를 선별한 이 책은 기존에 다른 작품이나 일기에서 보지 못한 두 작가의 친밀한 대화와 일상이 녹아 있다.버지니아와 비타는 1922년 12월 파티에서 처음 만난다. 이제 문단에 알려지기 시작한 버지니아와 이미 유명 작가였던 사포이스트(Sapphoist) 비타는 서로에게 강하게 끌린다. 이후 두 사람은 거의 20년간 연인이자 친구로 관계를 이어간다. 두 사람의 많은 대표작이 이 시기에 탄생하는데, 이들의 교류가 어떻게 문학작품으로 승화했는지를 편지에서 엿볼 수 있다. 특히 버지니아가 비타에게 바친 《올랜도》를 집필하면서 쓴 편지에는 비타를 향한 열정과 사랑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나의 비타, 나의 버지니아》에 담긴 두 사람의 편지는 긴 세월 친지의 죽음이나 전쟁, 사회적 사건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일상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서로를 반려견 ‘타우저’와 ‘포토’의 이름으로 사랑스럽게 부르는가 하면 비타는 자신이 가꾸는 정원 시싱허스트가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과 세계 여행의 감상을 들려주고, 버지니아는 호가스 출판사를 운영하며 겪는 고충과 고민을 털어놓는다. 재치 넘치고 때론 도발적인 버지니아와 비타의 문장은 서로에 대한 마음의 변화를 직관적으로 드러내고, 복합적인 감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버지니아와 비타의 독특한 관계는 당시에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버지니아가 쓴 비타의 전기 소설 《올랜도》는 레드클리프 홀의 《고독의 우물》이 음란물 판정을 받는 사건과 맞물려 발표되면서 《등대로》보다 더 많은 판매 부수를 기록했다. 비타는 외교관 해럴드 니컬슨과 결혼했지만 동성 애인들과의 연애로 화제가 되었다. 비타의 아들 나이젤 니컬슨이 쓴 《어느 결혼의 초상》에서는 전통적인 결혼 관습에서 벗어난 비타 부부의 모습을 볼 수 있다.버지니아와 비타의 이야기는 1992년 아일린 앳킨스의 연극 《비타와 버지니아》로, 2018년 동명의 영화로 개봉되는 등 현재까지도 관심을 받고 있다. 20여 년간 두 사람이 나눴던 사적 기록은 그 자체로 문학이자 문학사이다. 이 기록을 담은 《나의 비타, 나의 버지니아》는 모더니스트로, 페미니스트로 한정돼 조명하던 두 작가의 생애와 작품을 좀 더 폭넓게 바라보고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나아가 국내에서는 《올랜도》의 매력적인 인물로만 소개되었던 비타 색빌웨스트의 삶과 작품을 조명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큐큐클래식큐큐의 세계문학 클래식. 고전 중 퀴어문학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작품들을 출간, 소개한다.00《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 사포 외 지음 | 황인찬 엮음 | 최승자, 정수윤, 최성웅, 이주환, 이성옥, 이주희, 이종현 옮김01《레딩 감옥의 노래》 오스카 와일드 지음 | 김지현 옮김 02《텔레니》 오스카 와일드 지음 | 조동섭 옮김03《루비 프루트 정글》 리타 메이 브라운 지음 | 알·알 옮김04《세 명의 삶 / Q. E. D.》 거트루드 스타인 지음 | 이성옥 옮김05《날개》 미하일 쿠즈민 지음 | 이종현 옮김06《금색》 미시마 유키오 지음 | 정수윤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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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나의 빛을 가리지 말라
- 제임스 윌리엄스 지음, 박세연 옮김, 전병근 해제
- 머스트리드북
- 2024-02-19
구글 전략가 출신 옥스퍼드 철학자의설득 기술에 빼앗긴 주의력 되찾기“주의 뺏기 경쟁이 우리 삶을 파편화한다”프린스턴대학 총장 선정 ‘신입생 필독서’“이정표에 해당하는 책” -;《옵서버》“단번에 기술윤리학 분야 고전 반열에 올랐다” -《테크크런치》빼앗긴 주의력 되찾기는 이 시대 최대 도덕적·정치적 과제디지털 기술이 생각과 행동의 중심이 되면서 개인의 자율성과 공동체의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거대 기술 기업이 개발한 지능적 설득 시스템이 비즈니스의 기본 모델이자 인터넷의 설계 논리로 자리 잡으면서, 주의 뺏기 경쟁과 사용자 설득 기술은 궁극적으로 의지의 조작 단계로까지 발전했다.구글 전략가 출신 철학자 제임스 윌리엄스는 이 책 『나의 빛을 가리지 말라』에서 디지털 기술이 생각과 행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개인과 사회를 자동반사적이고 파편화된 삶으로 내몬다고 지적한다. 그는 정보와 자극이 넘쳐나는 시대에 최대 희소 자원이 사람의 주의인 이상, 그것을 완전히 포획할 때까지 기술의 침투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거대 기술 기업의 주의 뺏기 경쟁에 대응하여 자기통제력을 지키고 주의력 경제(attention economy)를 재편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파한다.주의는 당장 눈앞의 문제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삶 전체를 항해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디지털 플랫폼이나 소셜미디어 등의 영향으로 목표한 바에 집중하지 못하고 주의가 분산되는 문제를 단순히 사소한 짜증 정도로 치부해왔다. 그러나 이 문제는 개인적 차원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능력을 위축시키고, 집단적 차원에서 공동의 목적을 세우고 이를 추구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저자는 주의력 경제를 개념화할 수 있는 용어가 부족해 사회적·정치적 논의 과정에서 이 문제를 보다 거시적 관점에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사람의 주의를 빼앗고 반응을 조종하는 지능적 설득의 힘으로부터 주의의 자유를 주장하고 지키는 것은 우리 시대가 직면한 최대 도덕적·정치적 과제다. 개인 차원의 저항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저자는 빼앗긴 주의력을 되찾기 위해 기술 기업의 개발자는 물론 경영자, 정책결정자, 시민 등 다양한 주체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열거하고, 주의력 경제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사회적 개입의 유형을 제시한다. 여기에 철학과 고대 문헌에서 현대 과학까지 다양하게 동원하고, 참신하고 사려 깊은 분석을 덧붙여 우리 시대 가장 급박한 질문에 대한 빛나는 통찰을 준다.책 서두에서 저자는 거리의 철학자 디오게네스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일화를 소개한다. 디오게네스가 코린트 거리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데 알렉산드로스가 찾아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한다.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드로스를 올려다보며 이렇게 일갈한다. “햇빛을 가리지 마시오.” 저자는 우리도 이 시대 선의를 가진 디지털 알렉산드로스를 올려다보며 “나의 빛을 가리지 말라”고 외쳐야 한다고 조언한다.우리는 결함 있는 GPS에 의존해 살아간다구글에서 십 년 넘게 일하면서 저자는 “세상의 모든 정보를 조직화해 많은 사람이 보편적으로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게 만든다”라는 구글의 비전에 크게 공감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이 ‘정보의 조직화’가 아니라 ‘주의의 조직화’에 얽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술 산업은 상품을 설계하지 않고 사용자를 설계한다. 인간의 삶을 안내하는 이 GPS 시스템의 목표는 오로지 우리의 주의를 연장하는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정체성에 어긋나는 행동을 유도하고 습관을 만든다. 인간을 위한다는 기술이 인간의 핵심인 주의를 포획해 파는 데 매달린다. 저자는 우리가 결함 있는 GPS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 옥스퍼드대학으로 향한다.정보가 넘치면 희소 자원은 인간의 주의가 된다. 정보의 양은 속도에 대처할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다. 속도가 지나치면 양이 많을수록 오히려 재앙이 된다. 저자는 거대 기술 기업이 사용자의 주의 뺏기에 혈안이 된 주된 이유로 디지털 광고를 꼽는다. 초창기 광고는 과학보다 예술에 가까워 그것이 우리에게 미치는 힘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광고 산업이 성숙하면서 인간 심리와 의사결정 지식을 체계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광고의 범위 역시 정보에서 설득으로, 다시 행동 형성에서 태도 형성으로까지 나아갔다. 20세기 말 전자 매체는 광고주에게 새로운 플랫폼과 설득 전략을 가져다주었고,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효과 측정의 피드백 고리가 완성되었다. 여기에 네트워크로 연결된 단말기의 휴대성과 연결성이 높아졌다. 디지털 광고의 확장성과 수익성이 커지면서 비즈니스의 기본 모델이 되었다. 구글, 메타, 트위터 등 주요 플랫폼은 사실상 모두 광고 회사다.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설계자, 분석가, 통계학자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사전 프로그래밍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막대한 시간과 자원을 투입한다.저자는 과거 TV나 신문 같은 매체에서 광고가 정보 전달의 측면에서 ‘예외’였다면, 디지털 매체에서 광고는 ‘규칙’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과거 매체에서 광고가 지배적인 설계 목적을 지원했다면, 디지털 매체에서 광고는 그 목적을 주도한다. 주의력 경제에서는 사용자가 곧 상품이다. 기술 설계자는 인간 심리의 가장 낮은 차원인 충동을 겨냥한다. 심리학자와 행동경제학자가 수십 년간 분석해온 다양한 인지적 취약성과 의사결정 편향을 활용한다. 전 구글 디자인 윤리학자 트리스탄 해리스는 이런 현상을 빗대어 ‘뇌간의 바닥을 향한 경주’라고 표현했다.언어의 한계가 곧 주의 세계의 한계다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가 곧 내 세상의 한계다”라고 말했다. 언어의 지평을 확장할 때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인식의 지평도 확장된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여러 문제 중 하나로 개인이나 집단 전체가 기술의 영향으로 어떤 방식으로 주의가 분산되는지 이해할 수 있는 개념적 틀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주의력 경제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 설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용어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주의의 개념을 ‘집중(spotlight)’, ‘별빛(starlight)’, ‘햇빛(daylight)’의 세 가지 차원으로 설명한다.‘집중’은 우리의 인식과 행동이 과제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직접적인 능력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도록 해준다. 집중의 빛이 가려질 때는 ‘기능적’ 주의 분산이 일어난다. 기술은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하도록 돕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기술이 방해할 때 우리의 주의 집중은 파괴된다. 우리는 자신이 세운 계획을 실천하고 또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그러나 무의식이 의식을 압도하면서 45분 뒤 세계 경제 위기에 관한 기사를 읽고, 유튜브에서 자동 실행되는 강아지 동영상을 보며, 소셜미디어에서 친구들의 일상을 엿본다. 이런 기능적 주의 분산은 각종 앱 알림 메시지로부터 일어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차를 마시기 위해 주전자에 물을 끓이려 하는데 인스타그램 앱에서 내가 좋아하는 인플루언서가 글을 올렸다는 알림 메시지가 왔다.”한층 더 깊은 주의의 차원인 ‘별빛’은 우리 삶이 더 높은 목표와 가치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포괄적인 능력으로, 우리가 원하는 존재가 되도록 해준다. 별빛이 가려질 때는 ‘존재적’ 주의 분산이 일어난다. 개인적, 혹은 집단적 차원에서 정체성이 흔들릴 때 우리는 자아가 분열되는 듯하고 자신이 원하는 존재가 되기 힘들다고 생각하며 존재적 주의 분산을 경험한다. 우리는 소셜미디어에서 의미 있는 관계를 추구하기보다 최대한 많이 ‘좋아요’를 받고 ‘친구’를 맺으며 다른 사람의 관심을 얻는 데 몰두한다. 더 기발한 이야기를 담은 게시 글을 올리기 위해 애쓰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어느 순간 사회적 상호작용은 일종의 숫자 놀이가 된다. 일상적으로 숫자를 쫓아가는 사소함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혹은 애초에 이들과 친구를 맺은 이유가 무엇인지에 관한 보다 고차원적 관점을 잃는다.가장 원천적인 주의의 차원인 ‘햇빛’은 우리가 애초에 목표와 가치를 정의하게 하는 근본적인 능력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원하도록 해준다. 햇빛이 가려질 때는 숙고와 이성, 예측, 기억, 목표 선정 등의 역량이 위축되는 ‘인식적’ 주의 분산이 일어난다. 무엇이 진실인지 이해하는 능력, 혹은 진실의 가능성을 예측하는 능력이 위축될 때 우리의 햇빛은 가려진다. 우리는 잘못된 행동에 대해 단순히 화가 나는 것을 넘어 격렬하게 분노하고 혐오감을 느낄 때 도덕적 격노를 경험한다. 정보가 부족했던 과거에는 전 세계에서 일어난 도덕적 위반에 관한 뉴스가 우리의 주의를 놓고 경쟁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대에는 누군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잠재적으로 경험한다. 오늘날 우리는 인터넷상에 흘러넘치거나 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가는 도덕적 위반에 관한 뉴스에 일상적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더 이상 도덕적 격노의 대상을 화형대에 세울 수 없기에 우리는 잘못된 행동에 대해 그들을 상징적, 혹은 평판적 차원에서 파괴한다.어떻게 주의의 자유를 주장하고 지킬 것인가우리의 주의를 포획하고 이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는 주의력 경제는 새로운 마음의 왕국이다. 저자는 그것과 우리는 현재 ‘주의적 농노제’의 관계이며 이를 재편하는 일은 두 가지 면에서 정치적 과제라고 설명한다. 하나는, 주의를 빼앗는 매체는 우리가 역사적으로 정치적인 문제로 받아들여 온 것을 이해하고 거기에 참여하는 렌즈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매체는 우리 자신을 포함해 모든 것을 바라보는 렌즈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의 주의와 삶을 인도하는 전제주의적 힘을 재편하지 않고서는 가치 있는 정치적 개혁을 이룩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저자는 또한 주의의 자유를 주장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 나아가 집단 차원에서 마치 방향을 잃은 배처럼 표류하기 전에 사회적·정치적 목표를 확실히 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술 설계자들도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는 것처럼 ‘설계자 선서’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저자는 이런 과정을 통해 기술 설계자들이 사용자의 존엄성과 주의, 자유를 존중하고 기술의 의도와 방법에 대해 사용자와 투명하고 정직하게 소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미래 세대는 외부 환경뿐 아니라 내부 환경에 대한 책임을 얼마나 다했는지를 기준으로 우리 세대를 평가할 것이다. 오늘날 위기는 지구의 기온 상승뿐 아니라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개인의 주의력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임무는 외부 환경을 재편하는 일뿐 아니라 우리가 중요한 것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도록 세상을 재편하는 일이다. 중요한 일을 하려면 우리는 먼저 중요한 대상에 주의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주의를 지키려는 의지와 힘이 강력할수록 우리는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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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 - 앨리스 닐, 도리스 레싱, 어슐러 르 귄, 오드리 로드, 앨리스 워커, 앤절라 카터… 돌보는 사람들의 창조성에 관하여
- 줄리 필립스 지음, 박재연 외 옮김
- 돌고래
- 2024-02-19
\'자기만의 방\'에서 \'고독한 천재\'의 호사를 누릴 수 없는,끝없이 방해받으며 창작하는 여성들의 이야기NPR 선정 2022 최고의 책 │ 전미도서비평가협회 수상 작가소설가 정아은, 서유미, 김유담 추천앨리스 닐, 도리스 레싱, 어슐러 르 귄, 수전 손태그, 오드리 로드, 앨리스 워커, 앤절라 카터…등 20세기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들의 모성적 삶과 작가로서의 삶을, 그리고 그 두 가지가 중첩된 영역을 탐색한다. 아이를 버렸다고 욕먹은 도리스 레싱, 그림을 마무리하기 위해 아이를 뉴욕 아파트 비상계단으로 내쫓고 방치해두었다고 시집 식구들에게 무고를 당한 앨리스 닐의 이야기는 창작과 양육 사이의 긴장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창조적 모성은 이 긴장 속에서 끝없이 재협상하고 임기응변의 능력을 발휘하며 살아남는다. 타인의 비난, 자신의 죄책감, 슬픔, 채워지지 않는 허기, 그리고 아이들을 향한 사랑. 이 모든 것이 창조적 모성의 양분이 된다.모성과 창조성이 만나는 지점을 10년 동안 탐색하다!여성 작가·예술가들의 정체성을 뒤흔들고 재정립하도록 하는 강렬하고 혼란한 사건이지만, 아무도 지적으로 파고들거나 이론화하지 않았던 ‘모성과 창조성이 만나는 지점’에 대해 탐구한 책이다. 이 탐구에는 장장 10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 수상작가인 줄리 필립스는 (여성) 작가의 평전 작업을 해왔고, 어슐러 르 귄의 전기를 쓰기 위해 오랫동안 긴밀하게 어슐러 르 귄과 인터뷰를 해오기도 했다. 그러다 아이 둘을 양육하며 글을 써야 하는 스스로의 경험에 동력을 얻어 이 주제의 책에 시작했다.(책을 쓰는 동안 초등학생이던 저자의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었다.)수많은 여성 작가들의, 여성 작가들에 대한 기록을 정밀하게 살핀 저자는 이 책에서 앨리스 닐, 도리스 레싱, 나오미 미친슨, 루이스 어드리크, 어슐러 르 귄, 에이드리언 리치, 엘리자베스 스마트, 수전 손태그, 오드리 로드, 다이앤 디 프리마, 셜리 잭슨, 앨리스 워커, 토니 모리슨, A. S. 바이엇, 로나 세이지, 마거릿 애트우드, 앤절라 카터 등의 매력적인 명사들을 다룬다. 저자가 목차에 포함시킨 이들은 우선 충분히 오래 살아서 양육의 전체 사이클을 모두 경험한 이들이고, 그렇다고 너무 옛날 사람들은 아니어서 1960년대 이후 낙태 합법화나 페미니즘, 흑인민권운동의 수혜를 받은 이들이며, 자신의 몸과 임신, 출산, 양육에 대해 충분한 기록을 남긴 이들인 동시에, 독창적인 작품들을 남긴 사람들이다. 이들은 제각각 준비되지 않은 임신, 원하지 않은 결혼, 낙태, 아이들의 죽음을 경험했거나, 일생 동안 평범한 단혼 관계에서부터 레즈비언 관계, 폴리아모리, 개방혼 같은 다양한 친밀한 관계를 탐험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깊이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양육해냈다.저자는 여성 작가·예술가들이 남긴 양육과 모성에 관한 일화의 조각들을 정성껏 이야기로 꿰어내면서, 몇 가지 중요한 이론적 개념(혹은 기존 이론의 허점을 꼬집는 개념들)을 제안하기도 한다. 방해받는 주체, 자기소멸, 시간 빈곤, 서사적 시간, 죄책감, 허락받아야 한다는 느낌, 항시 대기중(availability, 아이들이 필요로 하면 언제든지 만사를 제치고 자신을 내주어야 한다는 느낌), 벙고(바보가 된 것 같은 벙찌는 느낌 + 숭고의 감정, 양육의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역설적인 감정), 온전히 거기에 있기, 심아 문제(mind-baby problem, mind-body problem을 비꼰 말장난), 아줌마영웅(aunti-hero, anti-hero의 말장난), 아더마더스(내가 낳지 않은 아이를 돌봐주는 이들) 등의 그것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비상계단에 놓인 아기’로, 이는 앨리스 닐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아이를 ‘비상계단(한국식으로 치면 베란다?)’에 가두었다고 시집 식구들이 상상해낸 이미지이지만, 저자는 이를 엄마들이 작업하는 동안 아이를 안전하게 방치하기 위해 찾아낸 창의적인 임시방편을 가리키는 말로 전유한다.이 책의 가장 훌륭한 점은 저마다 다른 상황에서 다른 방식으로 양육과 창작을, 삶을 이어온 여성들의 삶을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을 감추거나 미화하지 않지만 있는 그대로의 삶을(그리고 죽음을) 최대한 존중한다.(수전 손태그의 이야기를 다루는 장에서 이런 태도가 다소 흔들리는 모습이 인간적이기도 하다.) 이 책에 실린 할머니 작가·예술가들의 이야기는 20세기보다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용기를 내기 어려워하는 현대의 양육자 여성들(그리고 양육을 자신의 일로 여기는 남성들)에게 엄청난 영감과 자극과 위안과 용기를 줄 것이다.엄마의 행복은 엄마의 죄책감과 공모해 창작을 갉아먹는다. 마거릿 미드에 따르면 시간이 자꾸만 사라져가는 이유는 이런 것이다. \"아이가 울어서 괴로운 게 아니다. 아이가 너무 자주 웃어서 그렇다.\" 제니 오필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를 향한 사랑은 당신이 한때 사랑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모조리 지워버리기도 한다.\" (29)1962년만 해도, 올슨은 유자녀 여성 또는 \"반쪽짜리 시간과 반쪽짜리 자아를 가진 이들“이 오래도록 읽힐 책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무렵부터 유자녀 여성들의 작가 경력은 성공 가도에 오르기 시작했는데, 한두 명이 아닌 다수의 작가들이 외면하기 어려운 대대적 성취를 우후죽순으로 이뤄냈다. 이들은 작업을 해나갈 방도를 발 벗고 찾아 나선 끝에 작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데 성공했다. 이를테면 도리스 레싱은 노벨 문학상을, 어슐러 르 귄은 미국 최대의 문학적 영예인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앨리스 워커는 퓰리처상을 한 차례 받고 수백만 권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오드리 로드는 교차성을 둘러싼 논의의 물꼬를 텄다. 한편 앤절라 카터는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문학적 목소리로, 수전 손태그는 위대한 영어권 비평가로 각각 인정받았다. 앨리스 닐은 자신의 작품이 정전(正典)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목격했다. (31)양육은 개개인의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 인종, 자원, 섹슈얼리티, 가족관계, (비)장애의 영향도 받는다. 한편 모든 엄마가 출산과 양육을 하지는 않는다. 내가 살펴보고자 했던 여성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엄마가 됐는데, 배우자 유무, 나이, 자산, 주변의 도움 여부 등이 제각기 상이했다. 이들은 우연히 또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임신하거나 자신이 낳지 않은 십대를 양육하게 됐고, 혹은 난임으로 고생하거나 아이를 잃기도 했다. 이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분노와 고통을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슈퍼우먼\'이나 \'가정의 천사\' 따위의) 고정관념을 뿌리치며 모성의 양가감정을 탐색했다.(31)\'엄마\'와 \'영웅\'이라는 단어를 함께 입에 올리면, 대부분은 자기희생의 이미지를 당연하다는 듯이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창조적 모성은 그런 종류의 이야기가 아니다. 투쟁이나 구원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창조적 모성은 자기발견의 여정에 나선 어느 중심인물의 이야기다. 그녀는 빵 부스러기(그러니까 일화와 종잡을 수 없는 여러 순간)로 표시한 길을 따라 나선 뒤로 지하 세계까지 떨어졌다가 되돌아온다. 숲속에서 길을 잃고 스스로 길을 발견하는 주인공이다.나는 엄마 영웅들에 대해 찾아보며 이들이 여성들의 이야기 안에 줄곧 존재해왔음을 알게 됐다. 그녀들의 주체성은 자기상실과 자기발견에 아로새겨져 있었다. 청소년기에, 출산기에, 그리고 장년기에 이들은 줄곧 자신들을 향한 \"몰살\"의 위협을 마주하고 힘을 회복해야 했다. (53)모성 지대의 무법자로 팔십대까지 살아남은 초상화가 앨리스 닐1900년생인 앨리스 닐은 예술 강좌에 등록했다가 첫 번째 남편이 될 쿠바계 남자를 만나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낳은 첫째 딸을 돌도 되기 전에 디프테리아로 잃었다. 죄책감을 씻기 위해 둘째 딸을 가졌지만 결과적으로 이 딸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예술과 양육을 양립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산산조각 낸 채 남편이 혼자 파리로 도망갔기 때문이다. 앨리스는 정신이 나가 친정어머니에 의해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오븐에 머리를 넣기도 한다. 결국 화가와 엄마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의사와 친척들의) 압박 속에서, 그리고 자신은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을 거라는 낙담 속에서 앨리스는 그림을 선택하고 혼자 뉴욕으로 향한다. 이후에 앨리스는 여러 남자들을 더 만나고 그중에는 앨리스의 작업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파트너도 있었으나 대체로는 폭력적이거나 마약을 하거나 앨리스의 아이를 괴롭혔다. 앨리스는 1930년대 대공황 시기 사회주의적인 정책에 힘입어 보조금을 받으며 계속 그림을 그렸고 1950년대 이후로는 미술계의 유행을 거슬러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기로 결심한다. 경제적인 자립을 이룬 후 두 아들을 더 낳게 되는데 이들의 교육에 헌신적이었고 이들과(심지어 며느리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딸 이자베타와는 생전에 몇 번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관계가 회복되지 않았다. 이사베타는 엄마를 비난하는 아빠 쪽 친척들에 의해 길러져 원망을 품고 살았으며 이른 나이에 불행한 결혼을 했다. 평생을 우울감에 시달렸던 이사베타는 결국 엄마의 대규모 강연 행사에 참석해 맨 앞줄에 앉아 엄마의 모습을 보았지만(강단 위의 엄마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그로부터 얼마 안 가 자살했다. 보수적이고 편협한 1950년대를 꿋꿋이 견뎌낸 앨리스는 1960년대 이후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여성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자 외롭게 가꾸어온 자신의 독창적인 미술 세계를 만천하에 알릴 기회를 얻는다. 그녀는 생애 마지막 20년 동안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80대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한 후에(책에도 실려 있는 팔십대에 그린 「자화상」이 그 증거다.) 자신을 사랑하는 온 가족에게 둘러싸여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초상화에 전념했다. 여성이 어떤 분야에서든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비인기 분야를 택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혹은 진짜로 혁신적인 작업을 한다고 해도 자신이 선두가 아닌 주변부에 서 있음을 머잖아 알게 될 것이다. 1950년대 초상화의 낮은 지위는 앨리스에게 그 장르를 탐구하고 연마할 수 있는 특별한 자유를 보장해주었고, 그것은 다시 그녀의 재능과 독창성을 위한 여지를 마련해주었다. (104)1962년, 앨리스는 영향력 있는 예술 잡지인 《아트뉴스》에 소개되었고, 이는 62세였던 그녀에게 중요한 돌파구가 되었다. 같은 해 런던에서는 도리스 레싱이 『금색 공책』을 펴냈는데, 이는 치열하게 세 아이를 키우던 사십대 엄마의 대담한 문학적 성명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는 어슐러 르 귄이 첫 과학소설을 출간했고, 잉글랜드 브리스톨에서는 22세의 \"눈이 커다랗고 촌스러운 비트족\" 앤절라 카터가 잡지에 첫 소설을 기고했다. 뉴욕의 수전 손태그는 첫 에세이를 출간하고 첫 소설을 탈고했다. 손태그가 글을 쓰는 동안 그 옆에는 열 살 난 아들 데이비드가 타자를 치는 엄마 옆에서 대기하다 담배에 불을 붙여주곤 했다. (108)나이든 여성은 젊은 여성에 비해 세상의 회의적 시선에 덜 위협받는다. 1960년대 팝아트(로이 릭턴스타인의 만화,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의 영향으로 앨리스는 더 밝은 색과 더 유동적이고 자신 만만한 선, 더 과감하고 터무니없는 주제를 선택했다. 1968년 앨리스는 말했다. \"저는 바로 그 장면을 그리려고 노력합니다. 한 시대의 소용돌이는 당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무엇을 그리느냐의 문제입니다.\" 예술가, 큐레이터, 수집가들은 \'앨리스 닐 앞에 앉을 만큼 용감한가?\'라는 질문에 도전하듯 앞다퉈 포즈를 취했다. 심지어 앤디 워홀은 앨리스의 초상화를 위해 윗옷을 벗고 총상 자국으로 가득 찬 배를 드러낸 채 눈을 감았다. (109)앨리스의 임산부 초상화는 일부 관람객들을 놀라게 했다. 한 비평가는 임신한 낸시의 나체를 두고 \"임신한 오달리스크의 끔찍한 모습\"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하지만 비욘세 놀스가 아름다운 임산부의 초상 사진 연작을 위해 포즈를 취하기 훨씬 전에, 앨리스는 출산이 예술적으로 표현될 가치가 있는 여성의 성 적인 측면이라고 주장했다. \"저는 임산부의 누드가 더없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옳지 못한 겸손함이나 두려움 때문에 그동안 드러내 보이지 않았지만, 우리네 삶의 기본이지요.\" (112)모성적 삶과 여성적 쾌락에 관해 쓴 최초의 작가 도리스 레싱도리스 레싱은 이란에서 태어나 영국령 식민지였던 남로지디아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이후에는 런던으로 이주해 말년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도리스는 남로지디아를 떠날 때 아이 둘을 버린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저자는 도리스가 자기 아이들을 계속 만나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속을 태웠는지 전남편 혹은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참고해 밝혀낸다. 물론 도리스는 임신한 상태에서도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관계를 할 정도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대범했지만 한 편으로는 사회주의 운동의 동지로서 만난 고트프리트를 위해 결혼을 하는 등(고트프리트가 징집되지 않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남편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도리스는 고트프리트와의 사이에서 셋째 아들 피터를 낳았는데, 고트프리트가 동독으로 떠난 이후 홀로 피터를 키우며 피터가 학업을 위해 집을 떠나 있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평생을 함께 살았다. 실패한 결혼과 육아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던 여성이 거의 없던 시대에 레싱은 모순된 감정들을 겹겹이 쌓아올려 모성이 주는 만족감, 유혹, 좌절, 죄책감, 분노를 묘사했다. 자전적 폭로가 들어간 초기 작품들(1950년 영국에서 출간된 『풀잎은 노래한다』나 도리스에게 엄청난 명성을 가져다준 1962년작 『금색 노트』)에서부터 에로틱한 어머니와 아들 간의 유대를 그린 『할머니들』(2003), 아들의 극단적 요구가 행복한 가정을 분열시키는 『다섯째 아이』(1998)의 처참한 모성에 이르기까지 어머니의 양가적 사랑은 도리스 작품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이다. 2007년 최고령의 나이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수상 소식을 듣던 현장에는 역시 아들 피터가 함께 있었다.아이를 두고 떠나는 여성의 이미지는 금기시된 여느 발상처럼 매혹적이며 짜릿하다. 엄마들은 자유의 암시를 부러워하며 이런 일화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을지 모른다. 그러고는 \"음, 적어도 난 그렇게 나쁜 엄마는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죄책감 어린 헌신의 마음으로 자녀들에게 돌아갈지도 모른다. 이런 일화는 엄마들로 하여금 자신의 모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도리스가 두 아이를 두고 떠나면서 결코 뒤돌아보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다소 허구에 가깝다. (141)도리스는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했던 길 잃은 부모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많은 20세기의 엄마 작가들이 비슷한 일을 겪었다. 특히 레싱의 엄마인 모드 테일러와 앤절라 카터의 엄마인 올리브 스토커는 외동딸에게 각자의 좌절된 포부를 투사해 성공을 독려하면서도, 딸의 외모를 판단하거나 딸의 몸을 감시하고 딸의 성공을 과대평가하며 숙녀답게 행동하도록 경고했다. 모드는 영리한 딸아이를 자랑스러워했지만 아이에 대한 소유욕이 강해서 딸이 자신의 희생에 대해 빚을 갚아주기를 원했다. 리베카 솔닛의 표현을 따르자면, \"모두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자신을 내어주고 딸에게서 자신을 되찾으려 했던 어머니에 대한\" 끝나지 않는 이야기인 것이다. (146)모성이라는 정체성은 항상 진행 중인 작업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모-자녀 관계는 물론이고 엄마들과 그들 자아 사이의 관계도 극적으로 변한다. 도리스는 성인이 된 자신의 모든 아이들과 소식을 주고받고 왕래하기도 했지만, 가장 자주 의미가 달라졌던 것은 함께 살았던 피터와의 관계였다. 피터는 행복한 아기였고, 엄마의 문학 경력과 함께 성장했으며, 어른이 되어 정신질환을 앓게 되자 엄마에게 걱정거리를 안겨준 만큼 더 친밀한 아들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두 자녀와 헤어진 도리스가 피터를 평생 가까이 한 것은 아마도 죄책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168)문학 명사 도리스 레싱이 등장하는 유명한 동영상은 2007년에 찍힌 것이다. 87세의 백발 여성이 조심스럽게 택시에서 내린다. 양파와 아티초크를 든 중년 남자가 그 뒤를 따른다. 도리스가 왜 자신의 집 앞에 카메라들이 나와 있냐고 묻자, 한 기자가 그녀에게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전한다. 그녀는 \"오, 맙소사!\"라고 외치고 나서, 쇼핑백을 내려놓고 적당한 말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나는 유럽의 모든 문학상을 탔습니다. 모두 치열한 상이었지요.\" 점점 밝아지는 얼굴로 도리스가 덧붙인다. \"상들을 싹쓸이하게 되다니 정말 기쁘군요.\" (173)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며 행복하게 살아도위대한 작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어슐러 르 귄어슐러 르 귄은 탁월한 재능을 타고났을 뿐 아니라 좋은 집안에서 좋은 부모님에게 좋은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래드클리프 대학에 가서 처음으로 남자와 잤다가 바로 임신이 되었다. 하루에 두 번 이상 성관계를 할 경우 두 번째는 피임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우겼던 하버드 대학생 남자친구는 임신 소식을 듣자 바로 르 귄을 버렸다. 르 귄은 부모님의 설득에 비싼 돈을 지불하고(1950년 당시 1000달러는 래드클리프의 1년치 학비와 생활비를 더한 금액이었다.) 실력있는 의사에게 불법 낙태 수술을 받았는데, 이 사실을 30년도 더 지나서야 고백했다. 다행히 이후에는 자신의 작업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가정적이고 능력도 있는 남자를 만나 결혼했고 독특한 색깔을 지닌 작품들을 꿋꿋이 써나가게 되었다. 물론 네 아이는 늘 르 귄의 글쓰기를 방해했지만 르 귄은 그 와중에도 늘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내향적인 성격의 르 귄은 눈에 띄는 정치 활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매카시즘이나 인종주의에는 늘 반감을 지니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르 귄의 어머니 테오도라 크로버인데 60대에 남편과 사별한 후 두 권의 책을 냈으며 르 귄보다도 먼저 작가로서 확고한 정체성을 확립한다.(어머니는 르 귄이 작품이 출간을 거절당하자 딸의 커리어가 더 중요하다고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르 귄은 물론 그것이 진심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머니의 작가적 연대에 큰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70대에는 스물아홉 살의 잘생긴 바람둥이 양성애자와 결혼해 열정적인 부부생활을 하기도 한다. 1960년대에 이르러 과학소설과 판타지 문학이 인정받기 시작하며 르 귄의 작품들도 호응을 얻는다. 작가로서의 정체성과 사생활을 철저히 구분하고 작품 속에서는 마음껏 남성적인 생각과 행동을 펼쳐냈던 르 귄이지만,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페미니즘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대해 고민하던 와중에 작품 안에 여성적인 세계, 모성적인 세계를 구축하자 다시 한 번 성공적인 변신을 이루어내고 제2의 전성기를 구축해낸다. 말년인 1990년대 이후 르 귄은 자신만의 공적인 목소리를 찾는 데 성공하여 많은 여성들, 작가들에게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안나 카레리나』는 \"모든 행복한 가정은 비슷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지만, 어슐러는 자신의 유년기와 양육의 경험을 되돌아보면서 그 문장에 반대한다. \"흥미로운 가정은 불행한 가정뿐이라고? 말도 안 된다. 톨스토이는 틀렸다. 불행한 가정이야말로 정말 똑같다. 물론 모든 사람이 항상 \'행복\'하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더라도, 소위 행복한 가정이란 매력적인 것임에 분명하다. 행복한 가정은 권력과 통제와 사랑과 반감과 좌절이 계속되는 상호작용의 공간이다. 정말로 끝이 없다.\" (221)1930년대에 출생해 1950년대에 성년이 된 미국 작가들(에이드리언 리치, 오드리 로드, 토니 모리슨, 실비아 플라스)은 자신들이 선구자가 없는 불확실하고 실험적인 길로 나가고 있다고 느꼈다. 미국 문학은 여전히 헤밍웨이, 포크너, 리처드 라이트의 마술에 걸려 있었다. 리얼리즘과 남성성이 지배하고 있었고, 유희나 환상을 위한 공간은 거의 없었다. \"나는 비평적으로 승인된 문화와는 다른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어슐러는 창작의 초기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노먼 메일러나 솔 벨로가 절대 되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았다. 동료 작가들이 누군지도 몰랐다. 내가 쓰고 싶어하는 글을 누군가가 쓰고 있을 것 같지 않았다. (228)하지만 어슐러는 자기 안에 꺼내야만 하는 뭔가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그 길을 가야 한다고 확신했다. 1952년 봄 어느 날, 어슐러는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중세 프랑스 시를 공부하다가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미지의 세계로 내딛는 환상을 본다. 그리고 어슐러는 작가로서의 소명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직관을 신뢰하기로 결심한다. 어슐러의 삶에서 대전환이 일어난 순간이었다. 몇 년 후 어슐러는 \"문이 열리는 환상\"에 대해 회상하면서 이렇게 쓴다. \"나는 그 거대한 바람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묻지 않았다. 바람이 부는 한, 그리고 내가 능력이 되는 한, 결과가 어떻게 되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었고, 나의 자유와 필연성과 나만의 것을 온전히 느끼고 만들어나갈 것이었다.\" (229)어슐러는 또 찰스와 함께 책에 올라타서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다고도 한다. 꿈속에서 어슐러는 하향풍이 불까 봐 걱정하고 있었지만 찰스는 확고했다. 어슐러가 계속해서 \"웃느라 고도를 놓치고 있었\"지만 찰스는 비행을 조종하는 것에 능했다. 찰스는 꿈에서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냥 책 앞표지 위에 서 프보드를 타는 것처럼 붙어 서서 독수리처럼 손을 펼치고 발은 책의 가장자리에 단단히 붙이고 짧게 발을 구른 다음 활짝! 하고 미끄러져 날아가는 거야. 책은 균형을 위한 존재야.\" (233)어슐러는 또한 아이들이 지나치게 손이 많이 가지 않았다는 것과 집중하는 재능을 가졌다는 점에서 운도 따라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아버지처럼 서재문을 닫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아버지가 아니고 어머니이니까.\" 하지만 그녀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았다. (238)어슐러 내면의 \"부르주아\"는 자신의 가정생활을 몹시 즐기고 있었지만, 자신이 어머니로서나 미국 서부해안의 작가로서나 과학소설가로 진지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면 매우 방어적이 되기도 했다. 어슐러가 \"포틀랜드에 사는 주부\"라고 자칭하는 것은 그녀가 울분에 빠져 있음을 의미했다. (246)판타지 문학의 전통에 어머니의 경험을 되찾아주기 위해 어슐러는 \"바깥과 아래에서부터\", 즉 이전에는 목소리를 부여받지 못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여성의 경험을 검토하기로 한다. \"마법을 할 수 없는 사람들, 빛나는 지팡이나 검을 갖지 못한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여성들, 아이들, 가난한 사람들, 늙은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이다. 영웅이 아닌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 곧 나와 같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영웅\" 이야기를 버림으로써 어슐러는 이야기의 진행 과정 속에서 행위성이나 자기인식을 획득하게 되는, 넓은 의미의 중심인물로서의 주인공도 버리게 된다. (258)교차성 논의의 물꼬를 튼 선구자 오드리 로드흑인이자 여성이자 레즈비언이자 엄마 시인으로서 오드리 로드는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평생을 싸웠다. 오드리 역시 결혼 전 한 차례 낙태 경험을 했다. 어슐러 르 귄이 뉴욕의 값비싼 의사에게 수술을 받은 지 1년 뒤, 오드리는 2주치 봉급을 털어 40달러로 낙태 수술을 해줄 간호사를 찾았다. 모성과 아이를 지키는 데 안전한 울타리가 필요하다고 느낀 오드리는 백인 게이 남성과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았다. 많은 친구들의 축하와 축복을 받은 이들의 협조적인 삶은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오드리는 민권운동에도 관심을 가지며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일과 시 쓰는 일을 계속했다. 하지만 오드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더 자기다운 삶을 찾아 나섰다. 흑인 주류 문학, 혼혈 비트 문학, 백인 페미니스트 지식인들, 급진적인 블랙아트 운동, 이 모든 것에 긴장된 거리를 유지하며 오드리는 자신만의 그룹을 만들었다. ‘아더마더스(자기 자식이 아닌 아이를 키워주는 사람)’라고 불리는 미혼/비혼의 친구들, 이웃들,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들로 자신을 둘러쌌다. 프랜시스라는 실험심리학자와 사랑에 빠져 새로운 가정을 꾸렸을 때 자기 삶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가장 창조적인 시기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의 퀴어 가정을 (아이들이 짜증을 낼 정도로) 최대한 평범하게 유지했다. 오드리 로드는 주변에 적절한 후원자, 동조자들을 조직하는 데 능숙했는데 특히 동료 시인 다이앤 디 프리마와의 관계는 모든 여성이 참고로 삼을 만한 것이다. 유방암에 걸리자 자신의 몸을 관찰하는 섬세한 기록을 남겼다. 결국 재발한 유방암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오드리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과제를 온전히, 넘치게 이루었고, 후배 여성 작가들에게 지금까지도 가장 강력한 모델이 되고 있다.그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엄마로서 흑인들이 모성의 황홀을 누리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 지배적 문화에 맞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한편, 레즈비언 엄마로서 배척당할 위험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모성이라는 게 무엇보다도 상실된, 혹은 보이지 않는 주체 위치라면, 그에 더해 흑인, 퀴어 모성은 비가시성의 교차로에 놓인 것이다. (290)다이앤 디 프리마는 부모로서도, 친구로서도 협력자가 되어주었다. 다이앤이 뉴욕과 서부를 쉴 새 없이 오가는 동안, 그녀와 오드리는 편지와 사진, 물려 입힐 옷 박스를 주고받았다. 오드리는 다이앤과 아이들이 조부모를 만나러 동부를 방문하면 그녀의 아이들이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기 위해 연락하곤 했다. 빵을 굽고, 구슬을 꿰고, 장신구를 만들고, 점성학과 주역을 공부하던 오드리의 히피 같은 면모를 다이앤은 장려했다. 그들은 1970년대 페미니즘에 부응해 시편을 주고받았는데, 이들 작품은 훗날 다이앤의 강력한 여신 연작 시집 『로바』와 서아프리카 여성 신들의 관능적이고 영적인 기도들을 담은 오드리의 시집 『블랙 유니콘』이 되었다.1968년 한 해 동안 다이앤은 오드리의 첫 책을 출판했고, 오드리는 다이앤이 네 번째 아이를 출산하는 걸 도왔다. 다이앤이 산파가 되어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녀는 의학 편람에서 \'가정 분만\' 항목을 찾아 읽었다. \"권장하지 않음.\" 하지만 단념하지 않고 때가 이르자 은색 부적을 몸에 두른 채 다이앤과 그녀의 파트너, 아이들이 머무는 호텔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여러 소설에서 읽었던 분만 장면들을 떠올렸다. \"너한테 끓인 물은 필요 없다는 걸 알아. 정말 필요한 건 살균된 가위들이지. 그때그때 상황을 봐가면서 한번 해볼게.\" 다이앤의 분만은 순조로웠다. 다이앤의 딸 타라의 최초의 순간에 함께한다는 기쁨은 오드리에게 생의 가장 심오한 미스터리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선사했다. \"아기들이 태어날 때, 그들은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다. 인간과 비슷하지만 아직 인간은 아닌 듯하다. 아기들은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완벽하게 자기 자신들이다. 그것을 바라보고 그것의 일부가 되는 것은 너무도 경이로운 일이며, 신비하고 영적이며 에로틱하고 힘을 북돋운다.\" (312)다이앤은 그녀에게 책상을 하나 주었는데, 오드리는 이 책상을 침실에 두었다. 책상이 침실을 가득 채운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에드는 오드리가 글을 쓰도록 주말에 세 시간씩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는 데 동의했다. 그녀도 아이들의 소음을 꺼버리고 \"일에 완전히 잠겨 있는 귀중한 순간들\"을 음미하면서 아이들이 근처에서 놀고 있을 때 일하는 법을 익혔다. (315)오드리는 젊은 여성들에게 멘토가 되거나 또래들에게 잔소리꾼 노릇을 할 때 가장 자기답다고 느꼈다. 1980년대, 베스와 조너선이 대학에 진학하자 그녀는 유럽으로 정기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거기서 서독, 네덜란드, 영국의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출신 페미니스트 및 레즈비언들과 교제하기 시작했고, 그녀가 탁월하게 해낼 수 있는 하나의 역할을 찾았다. 그들을 고취하고 지지해주는 일이었다. 인류학자이자 교수인 글로리아 베커는 네덜란드 흑인 레즈비언 그룹 \'시스터 아웃사이더\'의 일원이었는데, 이 단체의 명칭은 오드리의 영향력 있는 에세이 선집에서 따온 것이었다. (331)그녀는 \"언젠가 말해야겠다고 계획을 세우거나 다른 누군가의 말을 들으며 기다리고 있는 동안, 내가 말해질 필요가 있는 것들을 말했는지, 혹은 작은 침묵들로 나 자신을 그저 배반했는지와 상관없이\" 죽음, 즉 \"최후의 침묵\"이 지금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오드리는 유일한 해답이 자기 자신이 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한 흑인 여성 전사 시인이 당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하고 있습니까?\"여신의 창조적 카리스마로 흑인 여성 작가들과 연대한 앨리스 워커앨리스 워커는 가정 폭력과 인종주의적 폭력이라는 두 가지 폭력을 일상적으로 목격하며 자랐다. 흑인 여성들을 위한 학교인 스펠먼 칼리지로 진학했지만 날카로운 정치적, 문학적 감수성을 지닌 앨리스에게 스펠만의 교육은 지나치게 고리타분했다. 앨리스는 대학 시절 1963년 워싱턴 행진에 나갔고 함께 참석했던 백인 남자친구 데이비드와 손을 잡고 이튼턴 거리를 걸어 내려감으로써 온 마을을 충격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이듬해인 4학년 때 앨리스가 데이비드의 아기를 임신하자 큰 언니는 “헤픈 년”이라고 욕했고, 결혼했지만 아기가 없던 둘째 언니는 자기에게 아기를 달라고 졸랐고, 데이비드는 청혼을 했다. 그 어느 것도 선택할 수 없던 앨리스는 낙태를 했고 친구들이 2000달러를 모아주었다. 함께 병원에 왔던 백인 친구는 그녀가 마취에서 깨어나자 붉은 장미를 건넸다. 이후에 유대계 백인인 인권 변호사 멜을 만나 결혼한 앨리스는 남편과 함께 흑인 민권운동을 위해 미시시피주 잭슨으로 돌아왔다. 몇 년 후 딸 리베카를 낳았고 멜은 붉은 장미 꽃다발을 들고 병원을 찾았다.(한 해 전 앨리스가 임신 상태일 때 마틴 루서 킹 주니어가 암살당했고, 앨리스는 충격으로 유산했다.) 멜은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였지만 아이가 태어나자 더 열심히 민권운동에 매진해 앨리스를 외롭게 했다.(“[사람들은] 어떻게 나보다 더 그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지?”) 잭슨에서의 삶에 지친 앨리스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간다. 1980년대 초 『혁명하는 페튜니아』로 전미도서상 시 부문 후보에 올랐고, 비혼모 준 조던과 함께 ‘자매들’이라는 흑인 여성 작가 후원회를 조직했다.(토니 모리슨도 이 모임의 일원이었다.) 앨리스는 전투적인 블랙파워 운동에 스스로도 이질감을 느꼈고, 백인과 결혼한 것에 대해 흑인 동료들에게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앨리스는 여러 측면에서 무의식적이고 관습적인 요구에 무릎을 꿇지 않기 위해 애썼다. 이후 앨리스는 멜과 이혼하고 딸 리베카는 아빠 집(동부)과 엄마 집(샌프란시스코)을 2년씩 오가며 자랐다. 앨리스는 그러는 중에도 『매리디언』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고, 1980년대 말에는 『내 동반자의 신전』과 『컬러 퍼플』로 문학 명사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그토록 사랑했던 딸 리베카는 이후에 제3물결 페미니즘의 리더로 활동했고, 『흑인, 유대인, 백인』이라는 자전적 책에서 자신의 유년기, 청소년기의 어려움을 가감없이 토로해 화제가 되었다. 또 『아기에 대한 사랑』이라는 책을 써서 앨리스와 오랫동안 절연의 시기를 보냈다.워커의 글쓰기 작업이 끊기는 건 아기 때문만이 아니다. 남편의 일과 그녀의 작업, 그리고 다인종 부부로서의 존재는 모두 기성 사회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이었고, 워커는 쉽게 궁지에 몰렸다. 만약 그녀가 타자기를 치는 동안 전화벨이 울린다면, 아마도 그건 친구의 안부 전화거나 혹은 모르는 이의 협박 전화일 것이다. 우편함에는 출판사의 서신, 친구들의 편지와 함께 낯선 사람들이 보낸 욕설이 담겨 있다. 남편 멜이 출장을 떠날 때마다 그녀는 그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아침에 남편이 집을 나선 후 절망감이 파고들 때면, 앨리스는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363)나중에 앨리스는 어린 딸의 말을 통해 치유를 찾았다. 아름다움에 관한 에세이에서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강렬하게 인식하고 있던 상처를 세 살짜리 리베카가 처음으로 알아차려 주었다고 썼다. 리베카는 교육용 TV 프로그램인 「빅 블루 마블」을 보고 있었는데, 이 프로그램은 우주에서 본 지구 사진과 함께 시 작되었다. 아이는 엄마를 바라보다가 이 사진과 비슷해 보이는 것을 발견하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이는 그 자그마한 두 손을 옴폭 모아 엄마가 아이에게 하듯 내 얼굴을 감싸 쥐었다. \'엄마, 엄마 눈 속에는 세계가 들어 있어.\'\" (368)오드리와 마찬가지로 앨리스 역시 인생의 전환점이자 자신의 자긍심을 표명하는 선언으로서 낙태를 경험했다. 단편 「낙태」에서 낙태를 경험한 한 여대생은 이 사건에 \"진정한 어른의 시간을 소환하며 독자적인 삶의 방향을 포착하는 모든 흔적\"이 있다고 말한다. 죽을 수도 있었지만 살아 있다는 상황은 앨리스에게 새로운 절박감과 사명감을 가져다주었다. (375)준 조던에 따르면 1970년 세라로런스 칼리지에서 앨리스를 연사로 초대했을 때, 흑인 학생 단체는 행사 전체를 보이콧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언제나처럼 앨리스는 사람들의 예상에서 빗나가는 반응을 보였다. 앨리스는 세라로런스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조던의 전투적이고 시크한 차림(커다랗게 부풀린 아프로 스타일 머리, 트렌치코트, 부츠, 밤낮으로 끼고 있던 어두운 선글라스)과 대비되는 \"멋지고 평범하며 수수한 원피스\"를 입고 연설을 했다. 그녀는 청중들에게 화를 잘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부드러운 어조로 충고했다. 2년 후, 그녀는 다른 단체의 학생들에게 \"당신에게 침묵을 요구하는 사람은 당신 편이 아니다.\"라고 말해줬다. (389)\"앨리스는 모든 조상을 소환해 그동안 흑인 여성들이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우리가 집단적 애도를 할 수 있게 해준 것 같았다. 앨리스의 강연이 끝날 무렵, 방 여기저기에서 우리 자매들이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앨리스의 어머니 미니 루 워커가 그녀의 재능을 활용할 만한 기회를 가지지 못했던 것은 일부분 그녀의 아이들 때문이었는데, 이것이 앨리스가 모성에 대해 느낀 또 다른 복잡한 면모이다. 앨리스는 단편 「매일의 쓸모」 에서 교육을 받기 위해 집을 떠나 어머니의 전통과 단절되는 한 여성에 대해 썼다. 문화적으로는 풍요로웠으나 지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던 가정에서 나고 자란 워커와 카터 모두 자기변신은 이득만큼 손실도 가져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91)앨리스가 뉴욕에 도착하기 직전에 『혁명하는 페튜니아』는 전미도서상 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최종 후보 열한 명에는 에이드리언 리치와 오드리 로드를 포함한 여성 작가가 세 명 더 있었다. 네 명 중 수상이 가장 유력했던 리치는 다른 후보들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 중 한 명이 상을 받는다면 모두가 공동으로 상을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오드리와 앨리스는 동의했지만, 엘리너 러먼은 반대했다. 4월 18일, 전미문학상은 앨런 긴즈버그와 『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를 쓴 리치에게 공동으로 수여됐다. 워커는 시상식 자리에 함께하지 않았지만, 리치와 로드는 함께 무대에 올랐다. 리치는 세 사람이 함께 쓴 \"가부장적 경쟁의 조건을 거부\"하고 \"목소리를 잃어버려 여전히 들리지 않는 모든 여성의 이름으로\" 상을 수락한다는 강력한 성명을 낭독했다. (392)앨리스에게 딸에 대한 사랑이란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그녀 자신의 삶이 제공해준 협소한 가능성으로부터 자신의 아이를 자유롭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리베카에게 그 자유는 때때로 위압적이고 안전하지 않게 느껴졌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부모님은 나를 꼭 붙잡는 대신,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격려를 해주었다. 그들은 나를 감싸지도 보호하지도 경계하지도 보살피지도 않았다. 물론 나를 먹이고 쓰다듬고 나에 대해 감탄하고 내 성장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홀로 남겨지기 일쑤였던 나는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나의 위치를 스스로 발견하게 되었다.\" 아버지 집에서 나와 어머니 집으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열세 살의 리베카는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와 첫 섹스를 했다. 피임약을 먹었음에도 임신을 하게 된 열네 살의 리베카는 앨리스의 손을 잡고 낙태 수술을 받았고, 엄마와 딸은 병원에서 나와 영화를 보러 갔다. 앨리스는 이토록 이른 나이의 리베카로 하여금 섹스를 하게 만든 외로움에 대해서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엄마로 묘사된다. (399~400)누구보다 의식적으로 엄마가 되기를 선택한 앤절라 카터앤절라의 어머니는 매우 영특했지만 남자 형제들과 달리 대학에 가지 못한 채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은 후 아이들에게 매달렸다. 특히 앤절라가 이른 결혼을 하게 될까 몹시 걱정했고 좋은 교육을 시키고자 했지만(앤절라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옥스퍼드 진학을 권유받았다.) 앤절라는 도리스 레싱이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에 대한 반발심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결혼해버렸다. 남편은 음악 취향을 공유하는 재미있는 술 친구였지만 우울증이 심하고 회복탄력성이 부족했다. 계속 해고되거나 퇴사를 거듭해 앤절라가 잡지사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다. 앤절라는 이 결혼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것을 참고 견디며 9년 동안 네 권의 장편소설을 완성했다. 촉망받는 소설가가 된 앤절라는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젊은 일본인 남성 소조와 사랑에 빠졌다. 앤절라는 이혼을 통보했고 이에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폐색전으로 쓰러진 후 얼마 안 가 숨을 거두었다. 하지만 앤절라는 일본에서 소조에게 어이없이 버림을 받고 2년을 더 살다가 빈손으로 런던으로 돌아온다. 앤절라는 이 모든 일을 겪은 후에 16세 연하의 건축 인부 마크와 사랑에 빠지고 가정을 이루어 마흔셋의 나이에 출산을 했다. 이후 마크는 전업 아빠로서 육아를 전담하며 앤절라가 작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왔다. 앤절라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결혼과 임신을 밝히기를 꺼렸지만, 사실 이는 앤절라가 간절히 원하고 선택한 것이었다. 앤절라는 페미니스트 출판사 \'비라고(Virago, 말참견을 잘하는 여자)\'의 설립을 준비하던 카먼 칼릴을 만났고, 여기서 생애 마지막 책들을 출간했다. 앤절라와 가장 친한 친구들은 여러 국적을 지닌 인물들이거나 그녀처럼 자기 자신을 발명한 인물들이었다. 뉴질랜드에서 성장한 애드콕, 레바논계 호주인인 칼릴, 훗날 친구가 된 살만 루슈디, 가즈오 이시구로, 캐릴 필립스 등이 그들이다. 늘 ‘아웃사이더’이기를 바랐던 앤절라지만 늘 주변에 친구들이 넘쳐났고, 그 친구들은 앤절라의 아이를 함께 돌보아주었다.이 모든 여성들은 1983년 43세에 첫 아기를 낳은 앤절라 카터의 친구가 돼 그녀를 지지해주고 함께 길을 닦았다. 성 혁명과 페미니즘 혁명 덕에 엄마들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앤절라 주위로 모여들었다. 어떤 이들은 결혼을 하지 않았고, 어떤 이들은 동성 파트너와 함께했고, 어떤 이들은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았고, 어떤 이들은 비혼모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이들은 앤절라에게 어떻게 유아어를 사용하고 아기를 트림시켜야 하는지 보여주길 즐겼다. 또 아이를 키우건 키우지 않건 자신과 앤절라에 대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만족감을 느꼈다. (413)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자기 방식대로 엄마가 될 수 있었던 덕분에 그녀는 모성을 즐길 수 있었다. 그녀는 일기에 썼다. \"자식의 아름다움은 내가 최근에야 가담하게 된 음모다.\" 그녀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강렬한 느낌을 갖고 있었고, \'너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남들이 말하는 것 이상의 존재가 되고자 했다. 그것을 평범한 가정생활과 결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녀는 오랫동안 생각했다. 파트너와 함께 자신의 방식으로 모성을 정의하는 일을 해내게 될 때까지는. (417)1년에 6000달러에 달하는 브라운 대학의 비싼 학비에 분개했고, 그런 특권을 누리는 아이들한테 고분고분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앨리스 닐처럼 예민하고 얼굴이 두껍지 못했던 그녀는 성난 사람처럼 행동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고 권위를 행사하는 법을 배웠다. 강의 첫 날, 그녀는 닥터마틴 신발을 신고 흰머리를 헝클어뜨린 채 안티패션 룩으로 강의실에 도착했다. 학생들 중 한 명이었던 소설가 릭 무디는 이렇게 말한다.“카터는 수강 희망생의 숫자를 14명으로 줄이는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강의실에는 30명쯤 있었고, 그녀는 그냥 우리 앞에 서서 질문을 받으려고 했다. 뒷자리에 있던 어떤 젊은 남학생이 매우 거만하게 손을 들더니 기를 죽이려는 듯 회의적 태도로 질문했다. ‘저기, 어떤 작품을 쓰시는 분인가요?’ 답변하기 전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더니 한두 번인가 ‘음.......’ 하고 말했다. 그러고선 답했다. ‘내 작품은 강철 칼날로 어떤 남자의 자지 밑동을 잘라버리는 얘기지.’ 쉬는 시간이 되자 강의실은 텅 비었고, 확실치는 않지만 열네 명쯤 돌아왔다. 어쩌면 열한 명이나 열둘 밖에 안 됐는지도 모르고.” (419)앤절라가 프로비던스에 왔을 때, 그녀와 마크는 6년째 사귀는 중이었지만, 그녀는 한 편집자에게 보낸 편지에 자택 우편물은 (아마도 마크를 의미할) ‘건물 관리인’이 처리하고 있다고 썼다. (421~422)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모든 엄마들은 굳이 그들에게 주제넘은 짓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려는 모성 수호 경찰을 만나게 마련이다. 앤절라는 임신 38주에 국경 수비대처럼 구는 산부인과 의사와 특히 불쾌한 언쟁을 벌였다. 1983년 11월이었다. 그녀의 장편소설 『서커스의 밤』이 막 출간될 참이었다. 그녀가 감독 닐 조던과 함께 대본을 쓴 영화 「늑대의 혈족」은 제작 중이었다. 부커상 심사위원으로 심사를 막 마친 참이기도 했다. 축하 행사 다음날, 고혈압 증상으로 그녀는 사우스런던 여성 병원에 입원했다. [...] 의사가 자리를 뜬 후, 앤절라는 통곡하고 분노했다. \"그 생각을 할 때마다 혈관을 따라 아드레날린이 치솟아.\" 앤절라는 산부인과 병동 침대에 누워 로나에게 편지를 썼다. \"이 여자를 죽여버리고 싶어. 그 여자 내장들을 다 끄집어내고 싶다고.\" 그녀는 자신이 상대적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청하지도 않은 이런 조언을 백인 중산층 산모한테 할 정도면 흑인 프롤레타리아 산모는 얼마나 편하게 학대하듯 대하겠어?\" (452~453)그러나 창작의 차원에서 앤절라는 자신의 아기를 비상계단에 방치해두는 데 곤란을 겪었던 것 같다. 원래 그녀는 늘 자신의 픽션에서 분노, 매혹, 소외 같은 지배적인 감정 상태들에 의존했으며, 어둡고 누군가를 살해하는 이야기를 쓰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모성적 행복은 그녀가 다루기 힘든 제재 였다. 친구 페이 웰던은 앤절라가 자신이 억누르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던 걸 기억한다. \"자신의 마음이 이런(어둡고 누군가를 죽이는) 것들을 곱씹어 생각하도록 내버려두는 건 너무 무섭다거나 어떤 식으로든 아기에게 해를 입힌다고 앤절라는 느끼는 것 같았다.\" 웰던은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완전히 이해했다. 그건 불운같이 느껴졌을 것이다.\" 그녀의 후기작에는 \"초창기 글쓰기와 같은 차가운 힘\"이 없다. (457)그녀의 저널리즘은 여전히 신랄하고 정치적으로 예리했다.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이 친구 살만 루슈디에게 살해 위협을 가했을 때, 그녀는 루슈디의 평생지기로 뉴욕에서 그를 옹호하던 수전 손태그, 또 루슈디의 책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의 편이라고 했던 도리스 레싱과 함께 루슈디 곁에 서 있었다. 1991년 제1차 걸프 전쟁이 발발하자 (분노한) 그녀는 친구 수재너 클랩의 자동응답기에 온전히 욕설로 가득한 3분짜리 메시지를 남겨놓 았다. 애트우드는 그녀가 \"요정 대모\"의 분위기를 풍겼다고 했지만, 세이지는 그녀를 끝까지 \"할머니의 옷을 입은 늑대\"라고 불렀다. (457~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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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산문]나의 삶과 일, 그리고 소중한 것들
- 안건혁 지음
- 좋은땅
- 2024-02-19
출생부터 현재까지, 75년의 시간그 오랜 시간 동안 쌓인 이야기를 한 권에 담다100세 시대인 현재, 사람은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을 살아간다. 그 긴 시간 동안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는 모든 사람이 다를 것이다. 세상에 있는 사람 수만큼의 다른 인생이 있기 때문에 각자의 삶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저자는 출생부터 현재 고희에 이른 시간까지의 삶을 글로 풀어냈다. 한국의 경제가 막 일어서기 시작한 시점과 함께한 그의 인생은 우리나라의 또 다른 현대사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책은 ‘인생 전반기’, ‘인생 중반기’, ‘인생 후반기’로 총 3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가족과 함께하던 어린 시절부터 평생 걸어갈 길을 찾던 청소년기, ‘건축’과 ‘도시설계’라는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게 되었던 청년기와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열정을 바치던 시기, 그리고 인생의 후반기라 할 수 있는 최근까지의 이야기가 아주 세세하게 담겨 있다.모든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미국으로의 출국일이 다가왔다. 태어나서 처음 외국으로 떠나는 것이었고, 이제 가면 어떤 일들이 내게 닥쳐올지 전혀 알 수가 없는 망망대해로 돛을 올리는 기분이었다. 언제 내가 고국 땅을 다시 밟을 수가 있을까? 감회가 새로웠다. 바로 이날을 위하여 나는 지난 20여 년간 돈을 쓰지 않고 모았다. 그것은 모두 합하여 약 8,000불이라는 거금이었고, 나의 전 재산이자 내겐 끔찍이도 귀중한 돈이었다. 계산상으로는 학비와 생활비로 1년 반 정도 버틸 수 있는 금액이었다. 나머지 약간 부족한 부분은 미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그것도 안 되면 부모님께 손을 벌릴 양으로 미리 말씀을 드리고 학기마다 아버님께 송금을 부탁드렸다.- ‘미국 유학 1 - OSU에서’ 중에서 -인생의 황금기에서 스스로 돌아본 저자의 인생에는 많은 사랑이 있었다. 부모님을 향한 사랑, 아내와 딸을 향한 사랑, 자신의 일에 대한 사랑을 가감 없이 글에 녹여냈다. 또한 독자들은 저자가 자신의 삶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열정을 쏟았는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75년의 시간을 담은 이 책이 독자의 삶에 힘을 불어넣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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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산문]나의 아름다운 내일에게 - 고단한 하루 끝에 쉼표 하나
- 김유영 지음
- 북스고
- 2024-02-19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가고 싶습니다여러모로 지치기 쉬운 몸과 마음에자신과 마주할 고요한 쉼의 시간을 내어 주자.지금이 바로 그 시간이다.- 프롤로그 <안녕하는 마음> 중에서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늘 바쁜 일상을 보내지만 문득 이유도 없이 불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남들과 다르지 않게, 또 그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왜인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찬다. 그러다가 무엇인가 더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더욱 벅차게 자신을 몰아붙인다. 그렇게 숨 가쁘게 하루하루를 달려가다 보면 어느새 지쳐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나의 아름다운 내일에게]의 저자 김유영은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추고 숨 고르는 시간, 쉼을 가지자고 이야기한다. 쉼의 시간으로 세상과 타인에게 지친 나의 마음을 돌보고 이제 그만 행복해지자고 말이다. 이 책에는 그동안의 김유영의 글 중에서 ‘오늘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는 마음이 담긴 글 100편을 추려 그림과 함께 담았다. 하루에 한 편, 100일 동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나만의 속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펼치기만 해도 마음이 포근해지는 글을 통해 지금까지 묵묵히 버텨온 자신을 안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김유영 작가만이 줄 수 있는 따뜻한 위로와 응원의 글이 가득한 [나의 아름다운 내일에게]는 오늘도 고단한 하루를 보낸 당신에게 쉼표가 되어 줄 것이다.마음에도 가끔쉼이 필요하다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이 드는 순간까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매일이 불안할까? 쳇바퀴 돌 듯이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내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머리가 아파온다. 그러다 문득 ‘내가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 게 맞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고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진다. 또 내일을 살아 내야 한다는 막막함에 숨도 잘 쉬어지지 않는다. [나의 아름다운 내일에게]의 저자 김유영은 이럴 때일수록 지친 나의 마음에 안부를 묻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지금까지 묵묵히 이를 악물며 버텨온 자신을 안아 주고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을 넘어다시 일어선 자신을 보듬어 주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중에서지금까지 쉼과 행복에 대한 글을 써 온 김유영 작가의 그동안의 글 중에서도, 바쁘고 여유가 없는 우리의 삶에 ‘쉼’을 주는 100편의 글을 한 권에 담았다. 종이에 물감이 스미듯 감성적인 수채화와 함께 선사하는 한 편 글로 한층 더 깊이 있는 자신만의 쉼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불안하고 막막한 마음에 따뜻한 위로의 말을, 묵묵히 걸어온 이에게 위안이 되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고요한 풍경을 보듯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통해 그동안 쌓아 두고 잊고 지냈던 것들을 돌아보기를 바란다.[나의 아름다운 내일에게]는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그래도 괜찮은 당신’은 바쁜 날들 속에서 잠시 멈추어 내 안의 나를 만날 수 있는 쉼의 시간을 담았다. 2장 ‘그래도 괜찮은 마음’은 삶에 치여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고 내일을 살아갈 용기와 격려의 메시지를 담았다. 3장 ‘그래도 괜찮은 우리’에서는 관계 속에서 나를 지키고 타인과 함께 하는 단단한 마음을 기를 수 있다. 4장 ‘그래도 괜찮은 인생’은 쉼의 시간을 지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묵묵히 걸어가며 나만의 행복을 찾는 방법을 담았다. “당신은 언제나 괜찮았고, 지금도 괜찮으며, 앞으로도 괜찮을 것이라 믿는다.”고 말하는 [나의 아름다운 내일에게]는 쉼과 행복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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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산문]나의 아메리칸 드림 - $7.00로 시작한
- 하재관 지음
- 좋은땅
- 2024-02-19
한국전쟁 이후 많은 사람들이 살길을 찾아 유럽과 아메리카로 떠났다. 조국이 아닌 곳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것은 불합리함과 서러움을 겪어내야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동양인에 대한 무시와 차별, 부당한 대우 등…. 그 과정에서 견디지 못해 결국 한국으로 돌아오는 분이 있는가 하면, 인내하고 인내하여 ‘아메리칸 드림’을 이뤄 내는 분들도 있다.《나의 아메리칸 드림》의 저자 하재관 분은 아내와 두 아이를 두고 미국으로 떠났다.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지만 아내가 준 용기에 힘입어 수학의 길을 갈 수 있었다. 배고픈 미국 생활이었지만 좋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갈 수 있었고 조금 안정이 되고 가족들도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 비록 가진 것이 없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삶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다 한다. 저자는 일과 학업을 계속하여 결국에는 ‘시카고 노인건강센터’를 열게 된다. 자녀들도 미국에서 학업을 쌓고 지금은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한때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 그대로 미국에 가기만 하면 삶이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꿈만 믿고 도미하였다. 하지만 겪게 되는 것은 핑크빛의 꿈이 아닌 회색의 현실이었을 것이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이민을 도전하는 것은 용기와 확고한 믿음이 필요한 일이다. 무언가 바라고 갈망하는 것이 있다면 뒤돌아보지 않고 행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어려워 보이는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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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산문]나의 어린 왕자 - 내 안의 찬란한 빛, 내면아이를 만나다
- 정여울 지음
- CRETA(크레타)
- 2024-02-19
정여울 작가가 안내하는 내면아이의 눈부신 잠재력“우리에게는 내면아이의 탈출구가 필요합니다”누구나 한 번쯤은 생텍쥐페리의 동화 같은 소설 《어린 왕자》를 잊고 지내다, 어른이 되어 문득 다시 읽으며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정여울 작가는 《어린 왕자》를 읽고 또 읽고 꼭꼭 씹어서,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내면아이를 끝내 만났단다. 정여울 작가는 최근 내면아이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다는 독자들의 편지를 많이 받았다. “우리는 왜 내면아이와 대화해야 할까요? 그 두려움을 넘어설 용기를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을까요?” 정여울 작가는 어린 왕자를 통해 내면아이를 만나고, 심지어 ‘조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주었다. ‘조이’는 이에 화답하듯, 쑥 커버린 성인자아에게 ‘루나’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이 둘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를 이어나간다. 정여울 작가는 내면아이와 대화하는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내면아이와 만난다는 것은 최고의 멘토이자 ‘베프’를 늘 가슴 속에 지니고 다니는 기쁨입니다. 어리다는 이유로, 세상 물정 모른다는 이유로, 우리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는 어른들이 많았지요. 이제는 내가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수 있는 좋은 어른이 되어보는 것입니다. 내면아와의 대화, 그것은 밝고 좋은 이야기라서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내가 숨기고 억압해 왔던 부분이 마침내 보이기 시작했기에 느끼는 발견의 기쁨이지요.”정여울 작가의 신작 《나의 어린 왕자》는 300여 개의 언어와 방언으로 번역되어 전 세계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생텍쥐페리의 작품 《어린 왕자》를 통해 정여울 작가가 만난 내면아이 ‘조이’와 성인자아 ‘루나’의 부담 없고 진솔한 대화이자 향연이며 끊임없는 성장 스토리다. 이 책은 정여울 작가가 만난 ‘나의 어린 왕자’이며, 독자만의 ‘나의 어린 왕자’를 만나 치유와 극복의 에너지를 발견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친절한 안내서다. 사막 한복판에서 기적처럼 만난 어린 왕자처럼 내 안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내면아이와의 만남문학작품 《어린 왕자》에 대해 해설하는 글은 무수히 많다. 하지만 대부분 《어린 왕자》의 작품 속 맥락 안에서 삶을 대하는 자세를 배운다. 문학평론가이자 작가 정여울은 단순히 작품 해석의 차원을 넘어 독자들에게 《어린 왕자》가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고백한다. 정여울 작가는 인생의 사막 한복판에서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이며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어린 왕자를 기적처럼 발견한다. 작가의 마음속 어린 왕자는 우리가 살면서 반드시 만나야 할 내면아이였고, 정여울 작가는 그와 대화하기 위해 ‘조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내면아이와 대화는커녕 노크하기도 힘든 사람들에게 작가는 이렇게 친절히 알려준다. “내면아이에게 말을 거는 것은 잃어버린 어린 시절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희미해진 부분을 선명하게 만들어서 ‘내가 되찾아야 할 나’를 보다 명확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됩니다. 내면아이의 상처가 선명하게 깨어나는 순간, 그때 돌보지 못했던 나의 소중한 부분도 함께 깨어나는 것입니다. 그림자와 만나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림자의 층을 뚫고 들어가면 반드시 내 안의 가장 환한 빛과도 만날 수 있습니다. 상처 때문에 나의 잠재력을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너는 이것밖에 못 하니’, ‘저 아이는 저렇게 잘하는데’라는 어른들의 비난을 들으면서 급격하게 소심한 성격으로 바뀌었던 순간들이 기억났습니다. 저도 표현하고 싶은 마음, 재능, 꿈이 많았는데, 그것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버렸어요. 다행히도 글쓰기라는 탈출구가 있었기에, 제 안의 잠재력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표현의 탈출구가 필요합니다. 그 표현의 탈출구를 열어주기 위해, 내면아이와의 대화가 필요한 것이지요.”내 안의 숨겨진 잠재력과 만나는 눈부신 심리탐험 이야기“내면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나만의 ‘베프’를 만나세요.”《나의 어린 왕자》는 총 10개의 챕터로 구성했다. 각 챕터는 루나와 조이의 대화를 전면에 배치하고, 정여울 작가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영문판을 직접 번역한 ‘어린 왕자의 말’, 그리고 독자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여울 작가가 던지는 질문은 각자의 경험에 따라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독자만의 특별한 《어린 왕자》가 되길 바라는 작가의 의지가 담겨 있다. 평소 글쓰기를 격려하는 작가는, 내면아이와의 진솔한 대화를 꿈꾸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질문을 몇 번이고 고치고 다듬었다. 독자들은 작가의 질문을 통해 생각하며 마음속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계기를 만날 수 있다. 또한 책 전체를 구성하는 10개의 챕터는 마치 이야기의 전개처럼 내면아이 조이와 성인자아 루나의 첫 만남에서부터, 마침내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되기까지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내면아이와의 대화를 주저하는 독자들에게 정여울 작가는 말한다. “당신의 내면아이는 당신의 성인자아가 말을 걸어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의 내면아이는 저의 성인자아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그때 너는 왜 당당하게 너의 길을 가지 않았니? 넌 충분히 꿈을 펼칠 수 있었는데.’ ‘어린 시절 동생들과 시골 할머니 집 대청마루에 누워서 별 보던 거 기억나니? 그때 넌 참 괜찮은 어린이였는데.’ 그런 내면아이의 해맑은 속삭임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자, 좀 더 여유롭고 지혜로운 또 하나의 나와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내면아이의 말을 들어주기만 해도, 당신은 이미 반 이상은 낫기 시작한 것입니다.” 정여울 작가는 “우리 모두 내면아이와의 대화를 통해서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면서, “내면아이의 한 맺힌 심정을 들어주고, 현실세계에서 그 내면아이의 슬픔을 풀어주는 행위를 어떻게든 해주면, 분명 내 안의 불안과 공포가 녹아내리기 시작한다”고 전한다. “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이 너무 다행이지 않나요. 우리는 내면아이를 달래어 세상 밖으로 용감하게 나오도록 이끌 수 있는 건강한 성인자아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내면아이와 만나 속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더 나은 어른이 될 수 있는 멋진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복잡하다 싶으면, 이것만 기억해 두세요. 내면아이와 친구가 되는 것은 나만의 ‘베프’를 내 안에 간직하는 일이라는 것.”정여울 작가가 독자에게 안내하는 치유와 극복의 에너지“운명 앞에서 용감해지기 위해 반드시 내면아이를 되찾으세요.”자신 안의 잠재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많은 이들에게 정여울 작가는 말한다. “내면아이의 빛은 우리 안에 아직 표현되지 않은 싱그러운 잠재력”이라고. 작가는 때로 ‘당신의 내면아이가 되어’ 당신의 성인자아에게 속삭이며 응원하고 싶다. “넌 음악을 사랑하잖아. 넌 글을 무척 잘 쓴단다. 난 네가 글을 썼으면 좋겠어.” 이렇게 당신의 내면아이로 ‘빙의’해 당신을 추앙하고, 응원하고, 마음껏 잠재력을 펼치라고 말해주고 싶다. “성인자아와 내면아이가 서로 부둥켜안고 펑펑 울 수 있을 정도로 친밀감을 느끼고 마침내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이 바로 핵심적인 치유와 극복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운명 앞에서 용감해지기 위해서, 내 꿈 앞에서 순수해지기 위해서, 우리는 내면아이의 찬란한 빛을 되찾아야 합니다.”누구에게나 지탱하기 힘든 고통은 있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해결되지 못해 현실에서 고통받는 것이라면, 한 번쯤은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내면아이에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돌봐야 한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도무지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주저하고 있다면 이 책에서 정여울 작가가 펼쳐낸 루나와 조이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 보기 바란다. 이들이 어떻게 어린 시절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되는지 끝까지 지켜보기를. 그리고 《나의 어린 왕자》를 읽는 독자 여러분 모두 정여울 작가처럼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내면아이에게 말을 걸고, 인생 최고의 절친을 얻길 바란다.“어, 그래. 너구나. 네가 거기 있었구나. 난 네가 아직도 거기 있는지, 몰랐어. 난 이제 너무 세상에 찌든 어른이 되어서, 미처 널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 미안하구나. 네가 영원히 사라진 줄로만 알았어. 잘 있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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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산문]나의 외로운 지구인들에게 - 이방인의 시선이 머무른 낯설고도 애틋한 삶의 풍경
- 홍예진 지음
- 책과이음
- 2024-02-19
쉴 새 없이 빠르게 변해가는 외로운 세상에서 우리는 타인과 공감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삶에서 빚어지는 다양한 관계의 단면을 우아하고 섬세한 언어로 포착해내는 소설가 홍예진의 에세이 《나의 외로운 지구인들에게》는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작가 본인의 기억과 오늘날 미국의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하며 외로움과 상실의 흔적을 되살려 직조해낸다. 작가에게 글이란 인간 삶 본연의 외로움에 대한 성찰이다. 태어나 자란 고향의 모습과 너무도 다른 미국의 소도시에서 사람의 온기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시간들은, 마음껏 쓸 수 없는 모국어에 대한 갈증과 함께 단단한 문장이 되어 독자에게 안부를 건넨다. “나를 둘러싼 공포이기도, 허무이기도, 압박이기도 또 동시에 행복이기도 한 것의 출발점에는 늘 문장이 있고, 써내고 싶은 것이 있고, 희망 비슷한 것도 있다. 동시에 나는 원하는 지점에 도달할 자신이 없어 노상 두리번거리고 허우적댄다. 묻고, 묻고, 또 물어도 대답할 사람은 결국 미래의 나밖에 없고, 나는 그게 너무 외로워 움츠러들면서도 글을 지어 세상에 진열하고 싶은 욕구를 누그러뜨리지 못한다.” -〈프롤로그〉 중에서작가가 방황하며 탐색한 그곳에는 중심과 주변, 차별과 연대, 고독과 연민이 빚은 낯설고도 애틋한 삶의 풍경이 녹아들어 있다. 어디든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서는 위안을 주는 사람과 상처를 주는 사람이 공존하게 마련이고, 으레 뒤따라오는 멍에와 생채기 같은 것들이 있다. 언뜻 우리와 다른 듯 다르지 않은 복잡다단한 미국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그럴수록 부서지기 쉬운 연약한 것들에 주목하고, 거대한 힘에 밀려 부유하는 미약한 개인들이 담고 있는 각각의 사정은 이 지점에서 발아하며 저마다의 이야기꽃을 피워낸다. “이윽고 표정을 가다듬은 낸시가 소식을 전해주었고, 그 말에 내 얼굴은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낸시의 시동생은 아프간 군벌 무장 세력이 설치한 폭발물이 터지는 바람에 현장에서 즉사해 미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했다. 훈풍이 지나가는 공원에서 낸시가 알려준 그의 죽음은 마치 일부러 슬프게 짠 각본처럼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 한 남자의 생이 머나먼 땅에서 폭발과 함께 마감했다는 말은 농담일 수 없었고, 그걸 인식한 순간 내 마음에 떨어져 내린 돌덩이의 타격감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너를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중에서세상에는 어찌할 수 없는 수많은 경계가 있을 것이다. 고향과 타향, 이곳과 저곳, 동양과 서양, 원주민과 이주민 사이의 경계들. 때로는 넓은 의미에서 한낱 생명체일 뿐인 인간들이 선을 긋고 타자를 대상화하며 아웅다웅하는 게 우습다고 여기면서도 작가 역시 여전히 그 모든 경계선 앞에서 멈칫하고 망설이는 존재다. 그런 까닭에 종종 서늘한 심정이 되어 끝 모를 외로움과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때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 “본래 백인이 주류였던 서양 문화권에 살면서 무방비 상태로 맞는 피해 의식의 감정을 처리할 때마다 내가 감당하는 진동은 쉽사리 잦아들지 않는다. 극복했다고 여기지만 실은 그렇지 못한 걸 깨닫고 당황하기 마련이니까.” -〈점잖게 또는 거칠게〉 중에서작가는 내면에 이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생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노력한다. 이쪽에서든 저쪽에서든 사람들 사이에 있는 마음과 마음의 거리는 일정한 간격을 벌리지만, 매번 그 사실을 확인해야 하는 서글프고 헛헛한 이방인의 마음 한구석에는 동시에 인간에 대한 진한 애정이 숨어 있다. 그리하여 쉴 새 없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도 보이지 않는 끈으로 서로를 묶으며 외로움을 나누고, 내 곁의 타인과 함께 연민 같은 것들을 공유한 순간 삶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는 게 아닐까, 하고 작가는 믿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모두 외로운 지구인들이기에. 무엇이 삶의 정답인지 여전히 알지 못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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