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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본소득, 공상 혹은 환상 - 기본소득을 넘어 국가를 다시 생각해보기 (커버이미지)
    [사회]기본소득, 공상 혹은 환상 - 기본소득을 넘어 국가를 다시 생각해보기
    • 김공회 지음
    • 오월의봄
    • 2024-02-19

    “기본소득은 우리의 미래를 책임지기에는 구태의연하고 허술한 무기”그렇다면 무엇을 보장할 것인가?소득이 아니라 경제적 안전 보장을!결국 문제는 민주주의!기본소득을 전면 비판하는 책 기본소득이 인기다. 인기를 넘어 자본주의 경제의 불안정성을 이겨낼 하나의 진보적인 대안으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기본소득론자들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불안정해지는 현실에서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이 꼭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치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자본주의의 모순이 거의 해결될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은 진정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을까? 경제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무기가 될 수 있을까? 4차 산업혁명이 완수되는 미래에 인류를 위한 새로운 소득보장 정책이 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 기본소득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정책일까? 《기본소득, 공상 혹은 환상》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기본소득론을 전면 비판하는 책이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저자 김공회는 기본소득의 역사와 자본주의 발달사를 함께 재점검하면서 기본소득이 무엇인지, 그동안 기본소득론자들은 무엇을 주장했고 그 모순은 무엇인지를 밝힌다. 그러면서 저자는 단호하게 결론 내린다. 기본소득은 “우리의 미래를 책임지기에는 구태의연하고 허술한 무기”라고. 즉 기본소득은 책의 제목에 나와 있는 것처럼 ‘공상 혹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기본소득론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특히 자본주의 경제의 내적 메커니즘이 어떠하고 그것이 체계적으로 일으키는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자본주의 스스로 어떻게 변모하면서 자신이 일으킨 문제에 대한 그 나름의 해결책을 내놓는지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몰이해 위에서 제시되는 대안이 얼마나 효력을 가질까?”(9쪽) 그렇기 때문에 지나치게 단순하고 보수적인 기본소득론은 지난 역사에서 계속해서 실패했고, 또 앞으로도 실패할 가능성이 큰 정책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기본소득에 대한 찬반을 넘어 자본주의 경제의 흐름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기본소득 또는 기본소득과 유사한 여러 제안들의 역사를 살핀다.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 세 차례 산업혁명을 겪을 때마다 ‘기본을 보장하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등장했는데, 이때마다 ‘기본’론자들은 패배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처음에는 임노동 체제의 확립과 근로조건의 점진적 개선을 통해(1장), 그리고 두 번째엔 국가의 유례없이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2장), 세 번째는 소득세제를 통한 정밀한 소득보장제도를 통해(3장). 오늘날의 기본소득론은 임노동제나 복지국가, 그리고 소득세제의 의의를 애써 축소‧부정해가면서 매우 편협한 방식으로 재구성된 것이라는 게 1부의 결론이다.2부는 오늘 한국에서 펼쳐지고 있는 ‘기본소득의 현주소’를 고찰한다. 복지국가에 대한 반발로서 성립된 기본소득의 개념을 재검토하고(4장), 기본소득과 함께 최근 ‘기본 시리즈’로 각광받는 기본자산의 의의를 살펴본 뒤(5장), 코로나19 국면에서 실행되어 기본소득론자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자아내기도 했던 긴급재난지원금 등의 성격을 밝힌다(6장). 기본소득론자들이 ‘기본소득의 마중물’로 환호했던 긴급재난지원금은 ‘보편적 급부’일 뿐이지 기본소득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점도 드러난다. 결국 저자는 기본소득의 현재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패배’에 가까울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3부는 기본소득이 현실에서 패배할 정책이라면, 과연 무엇으로 불안정한 삶과 위험에 대비할 것인지를 논한다. 삶의 안정성이 교란된 대중에게 보장해줘야 할 것은 소득이 아니라 경제적 안전이며(7장), 그 경제적 안전의 제공자로서 국가의 역할을 다시 조명한다(8장, 9장). 국가는 자본주의 경제를 구성하는 세 측면, 즉 생산·분배·소비에 모두 관여할 수 있고, 이를 통해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기구라는 점이 강조된다.누가 안전을 보장할 것인가?: 국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기기본소득이 대중의 삶의 안정성을 보장해줄 수 없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저자는 ‘국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자고 말한다. 자본주의 경제를 구성하는 세 측면은 생산·분배·소비이다. 누구든 일정한 자격으로 생산에 참여하면, 일정한 소득을 분배받고, 이러한 소득으로 각자 필요한 물품을 소비한다. 생산-분배-소비의 사이클이 반복되면서 인간의 삶도, 그리고 경제 전체도 재생산된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자본주의는 주기적으로 위기를 겪게 되어 있다. 이 세 측면이 늘 교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삶의 안정성이 교란된 대중에게 무엇이 보장되어야 할까? 저자는 ‘소득’이 아니라 ‘경제적 안전’이라고 말한다. 생산·분배·소비 영역에서 골고루 경제적 안전이 보장되어야 대중은 불안을 느끼지 않고 경제도 안정적으로 굴러갈 수 있다. 그럼, 누가 경제적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는가? 자본주의 경제에서 가족, 기업, 국가 등 다양한 안전 제공 주체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바로 국가의 역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국가는 자본주의 경제를 구성하는 세 측면, 즉 생산·분배·소비에 모두 관여할 수 있고, 이를 통해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기구이다. 반면 기본소득론자들이 말하는 기본소득은 ‘분배’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해결책이다. 이를테면 일자리 불안 문제를 기본소득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또 그게 제일 바람직한 해결책일까? 일자리 문제는 생산 영역의 문제이니 거기에서 다루는 게 맞을 것이다.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정액의 현금’을 지급한다고 해서 모든 영역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즉 자본주의 체제에서 보장되어야 할 것은 ‘경제적 안전’이지 소득이 아니다. 소득의 보장은 경제적 안전의 일부만을 구성할 뿐 대중에게 가해지는 불안정성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기본소득이 분배 측면에서만 기여하는 정책이라면, 국가는 생산·분배·소비의 모든 측면에서 관여하며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을 해결하는 데 앞장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국가를 구성할 수 있는 민주주의가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경제에 ‘민주적 통제’라는 고삐를 씌우는 일일 것이다. 이를 통해 4차 산업혁명의 폐해가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 집중되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다면, 그것을 가속화하기 위해 공적 자원을 투입하는 것도 더 큰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본소득 같은 보편적 성격의 급부가 인민의 삶을 안정적이고 풍요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쓸 수 있을 것이나, 우리는 그것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정책 수단들도 확보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240쪽) 기본소득의 역사: 세 번의 전투, 세 번의 패배기본소득의 역사를 알아야 기본소득이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 이 역사는 곧 ‘기본’이 ‘패배’한 역사이기도 하다.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 세 차례 산업혁명을 겪을 때마다 ‘기본을 보장하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영국에서 최초의 산업혁명이 진행되자 토머스 페인은 1797년 “21세에 도달한 모든 개인에게 15파운드의 현금을 지급”하자고 주장했고(1세대), 20세기 초반 전기력에 의한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버트런드 러셀은 1917년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역설했으며(2세대), 1960년대 자동화혁명이 일어나자 로버트 시오볼드는 ‘보편적 급부제’를 밀턴 프리드먼은 ‘음의 소득세제’를 주장했다(3세대). 이렇듯 대중들의 삶의 안정성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기본’을 외치는 주장들이 등장했던 것이다. 그럼 결과는 어땠을까? 그 ‘기본’의 주장들은 모두 패배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첫 번째 패배는 ‘임노동 체제’의 확립에 의해서였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수많은 대중의 삶이 파탄 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1세대 ‘기본’ 주장자들은 자본주의의 모순과 대결하기보다는 자본주의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식의 주장을 펼쳤다. 즉 지나치게 단순하고, 보수적인 이들의 주장은 임노동 체제가 세계 각국에서 확립되어가자 더는 설 자리가 없어졌다. 즉 노동자에겐 ‘임금’이 ‘기본소득’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스스로 노동조합이나 정당 등을 결성해 자신들의 노동환경 개선과 임금 인상을 꾀했다. “임노동 체제 안에서 인민대중은 나름대로 안정적으로 소득을 확보할 수 있었고 노동자들은 스스로 조직해 자본가에 대항함으로써 자신들의 소득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해나갔다.”(38쪽)두 번째 패배는 ‘국가의 역할’에 의해서였다. 1897년 공황을 겪으면서 자본주의는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다. 20세기 초반 전기를 통한 산업혁명을 겪으며 자본주의는 조금씩 다극화되었는데, 영국이 여전히 선두에 있었지만 독일이나 프랑스, 미국 등이 빠르게 그 뒤를 쫓았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세계적 확장은 곧 제국주의의 형태로 진행되었고, 그 결과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또다시 대중의 삶이 위기에 처하자 러셀과 같은 ‘기본’론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때는 이미 자본주의가 확립된 상태여서 1세대 주창자들처럼 자본주의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은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자본주의에 대항하자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다만 ‘기본의 보장’만을 외칠 뿐이었다. 하지만 위기는 ‘국가’에 의해 수습되었다. 국가의 조절 능력이 향상되면서 경제가 파국으로 치닫는 일도 줄어들었다. 그 결과는 복지국가의 발달이었다. “20세기 들어 발달한 복지국가는 무엇보다 민주주의와 인권의식 발전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자본의 이해관계에도 부합한다. 복지국가가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자본이 스스로 담당했어야 하는 전체 노동력의 관리라는 업무를 국가가 대행해주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므로 일시적으로 실업에 처한 노동자에게 금전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복지국가의 가장 기본이 되는 사무다.”(64~65쪽)세 번째 패배는 소득세제를 통한 정밀한 소득보장제도에 의해서였다. 20세기 초부터 세계경제를 좌우하는 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은 1950년대 후반부터 자동화혁명을 겪었다. 이때 로버트 시오볼드는 자동화의 전진 덕택에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달했고, 그 결과 더 이상 우리는 힘들여 일할 필요가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생산물을 분배하는 기준도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모든 시민과 아동에게 보장소득을 지급하자고 주장했다. 오늘날의 기본소득론과 유사한 주장이다. 반면 신자유주의자 밀턴 프리드먼은 소득에 따라 차등적으로 일정액의 수당을 지급해 가장 소득이 낮은 사람도 적어도 얼마의 소득은 거둘 수 있게 하자고 주장했다. 즉 음의 소득세제다. 1960년대 미국에서 ‘기본’ 논의는 이렇게 ‘보편적 급부제’와 ‘음의 소득세제’로 양분되었다. 둘 다 복지국가를 반대한다는 전제 아래 주장된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심화‧발전하면서 세밀한 소득세제가 자리를 잡았고, ‘기본’론자들의 주장은 사그라들었다. 소득세제가 위기에 처한 대중들에게 정밀한 소득보장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득세제가 자본주의의 심화·발전의 한 결실이라면, 대중의 삶의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데 그것을 이용하지 않을 까닭은 없다. 특히 소득세제는 원칙적으로 국가가 국민 모두의 소득을 파악하고 있음을 전제하므로, 만약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소득을 거두는 개인이나 가구에 대해 모자라는 소득을 채워주는 것이 문제라면 소득세제를 활용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더없이 적절하다.”(87쪽)기본소득의 현재: 과연 기본소득은 실현 가능할까?기본소득론자들의 주장을 몇 가지 비판적으로 짚어보자.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청년수당, 아동수당, 농민기본소득 등은 한국의 기본소득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기본소득 성격의 정책’일까? 답은 아니다. 이것들은 ‘보편적 급부’의 한 형태일 뿐이지, 여기에는 ‘원래 그들의 몫을 그들에게 되돌려준다’라는 기본소득의 이념을 조금도 담고 있지 않다. 즉 ‘모든 개인에게 정기적으로 정액의 현금을 지급하는 정책’이 기본소득의 정의인데, 기본소득은 이 정의대로 보편적 급부의 형식을 띠지만, 모든 보편적 급부가 기본소득은 아닌 것이다. 기본소득론은 나름의 역사적 검토를 통해 ‘기본’의 역사를 발굴해내고 이를 널리 알려왔다. 하지만 자신의 역사를 인식하는 방식이 매우 모순적이다. 무엇보다 그러한 역사적 과정의 산물인 보편적 임노동제, 복지국가, 소득세제를 활용한 정교한 소득보장제도 등의 의의를 인정하지 않고 이것들로부터 자신들을 차별화한다. 복지국가 형성이나 음의 소득세제 등에는 ‘기본’론자들의 기여도 있었으나, 오늘의 기본소득론자들은 복지국가도 음의 소득세제도 부정한다. 기본소득론자들의 국가에 대한 관점도 모순적이다. 기본소득론의 구조를 ‘징발’과 ‘지급’으로 나눈다고 하면, ‘징발’과 관련해서는 부자들에게서 많은 세금을 거둬들일 수 있는 그야말로 철옹성 같은 국가를 상정한다. 하지만 ‘지급’과 관련해서는 무기력한 국가가 상정된다. 우리 이웃이 뻔히 굶어 죽고 있는데도, 세금 등으로 거둬들인 막대한 돈을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똑같이 나눠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이 정액의 현금을 나눠주는 기본소득제가 과연 기존의 복지국가 제도들보다 우월할까? 없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주는 게 낫지 않을까? 왜 기본소득론자들은 복지국가를 부정하고 최소 국가를 지향할까? 복지국가가 사각지대, 낙인효과, 근로유인 저하 등의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복지국가를 반대하기보다는 복지국가를 더 강화하면서 해결해나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기본소득론의 재산관은 한마디로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로 요약할 수 있다. 전통적인 ‘기본’론은 토지에서 나오는 재원을 기본소득으로 사용하자고 주장했다. 오늘의 기본소득론자들은 플랫폼세뿐만 아니라 환경세 등도 재원으로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오는 수익은 원래 ‘우리 모두’의 것이니 ‘모두에게 똑같이’ 분배하자는 논리다. 사실 기본소득론의 재산관은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너무도 부족하다. 기본소득론이 주장하는 대로 ‘카이사르의 것을 카이사르에게’ 돌려주더라도, 빈곤과 불평등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빈곤과 불평등은 무슨 근거로, 어떻게 해소하려는가? 현대적인 조세 및 재분배 제도가 훨씬 품이 넓지 않을까?기본소득론자들은 일론 머스크 등 세계적인 부자들도 기본소득을 찬성한다고 선전한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기본소득이 자본가들에게 결코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임금 저하와 소득 양극화는 경제를 어렵게 만든다. 대중들이 소비할 여력이 없어지면 기업활동이 위축되고 체제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이런 현실에서 기본소득의 시행은 필수적인 소비조차 하지 못하는 대중뿐 아니라 위기에 빠진 자본가와 기업들도 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기본소득의 재원 중 하나로 거론되는 ‘환경세’도 짚고 넘어가자. 환경세란 반환경적으로 생산하는 기업, 그리고 그런 기업이 생산한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에 대한 징벌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이들로부터 걷은 환경세는 그들이 더럽힌 환경을 개선하고 기후변화의 추세를 반전시키는 데 쓰는 게 순리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런 돈을 불특정 다수에게 나눠준다면 어떨까? 그 돈의 일부는 위의 반환경적으로 생산된 상품들을 구매하는 데 쓰일 것이다. 말하자면, 환경세가 결과적으로 기존의 반환경적 자본주의 체제를 재생산하는 데 봉사하는 것이다. 기본소득론자들은 4차 산업혁명의 진전에 따라 일자리가 감소하고 노동 소멸 사회가 올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기계화‧자동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는 오히려 늘어났다는 게 정설이다. 문제는 저임금·저질의 일자리가 급속도로 늘어났다는 데 있다. 기계화·자동화 진전과 더불어 세계화에 따른 자본 간 경쟁의 격화 및 노동조합의 약화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즉 적어도 지금까지는 기계화·자동화가 일자리를 줄였다는 증거는 뚜렷하지 않다. 그리고 일자리 문제는 분배 영역인 기본소득이 아니라 국가의 개입으로 생산 영역에서 다루는 게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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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후 위기, 체제를 바꾸자 - 보통 사람들을 위한 기후 운동 가이드 (커버이미지)
    [사회]기후 위기, 체제를 바꾸자 - 보통 사람들을 위한 기후 운동 가이드
    • 장호종 지음
    • 책갈피
    • 2024-02-19

    ? 선진국 정부들이 나선다는데 왜 기후 위기는 심각해지기만 할까?? 핵발전 방사능이랑 기후 위기 중에 선택해야 한다고?? 기후 위기 멈추려면 나부터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걸까?? 전기·가스 요금을 올려서 화석연료 사용을 줄일 수 있을까?? 온실가스 줄이려면 경제성장을 멈춰야 한다고? 그러면 일자리와 소득도 줄 텐데 …이 책은 기후 위기 해결을 바라면서도 한 번쯤 위와 같은 의문을 품어 본 적이 있는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2019년 전 세계에서 많은 청년이 ‘기후변화가 아니라 체제 변화’라는 구호를 외치며 대중적이고 급진적인 기후 운동을 일으켰다. 이 운동은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기후 정의 행진이 열리게 되는 데도 영향을 끼쳤다. 오랫동안 기후 운동에 참여해 온 저자는 ‘기후변화가 아니라 체제 변화’라는 구호에 공감하면서 그 의미를 깊이 고민한다. 또, 기후 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이기도 한 평범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거나 그들의 부담을 늘려서는 안 된다는 ‘기후 정의’ 원칙이 기후 운동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왜 지금의 사회는 화석연료 중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지, 30년 동안 선진국 정부와 권력자들이 여러 대책을 내놨는데도 왜 기후 위기는 더 심각해지기만 하는지를 풍부한 자료·삽화와 함께 쉽게 분석하고 설명한다.또, 핵발전, 그린 뉴딜, 농축산업과 채식, 탈성장론 등 기후 운동 안에서 뜨겁게 논쟁되고 있는 쟁점들을 ‘체제 변화’와 ‘기후 정의’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평범한 노동계급 사람들이 환경을 위해 투쟁한 경험을 살펴보며 그 경험에서 기후 운동이 얻어야 할 교훈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귀중한 주장이다.저자는 ‘인류에게 시간이 없다’는 인식에 공감하면서도 그 의미를 남 다르게 해석한다. 바로, 현재와 미래의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되고 마는 것이 아니라, 환경 위기·재난과 함께 정치 양극화와 계급투쟁도 심화하며 근본적 체제 변화의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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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후변화, 그게 좀 심각합니다 - 지구인을 위한 안내서 (커버이미지)
    [사회]기후변화, 그게 좀 심각합니다 - 지구인을 위한 안내서
    • 빌 맥과이어 지음, 이민희 옮김
    • 양철북
    • 2024-02-19

    점점 더 심각해지는 상황들…지금이 아니면 우리는 영영 기회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지구 역사상 이렇게 빠르게 탄소가 방출된 적은 없었다.20세기 중반부터 북반구의 여름은 78일에서 95일 이상으로 늘어났고, 금세기 안에 북반구의 여름은 반년으로 늘고 겨울은 8주로 줄어들 전망이다.기후변화에 대해 쏟아진 수많은 경고와 협약들이 있었지만, 지금 이산화탄소 농도와 기후변화 속도로 볼 때, 이미 ‘1.5도 가드레일 붕괴’는 막을 수 없다. 가뭄과 산불, 집중호우와 한파, 북극 빙하가 녹고 해수면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기온 상승으로 육지의 동식물은 물론, 바다의 동식물들도 대이동을 시작했다. 아프리카 사헬지역에서는 가뭄과 폭우, 홍수가 교차하며 기후 이민 행렬이 시작되었고, 중국과 인도 국경에서는 물 부족으로 기후 전쟁의 가능성까지 보인다. 기후변화로 우리가 감내해야 하는 고통과 재난은 이미 시작되었다. 가까운 미래에 모기떼를 비롯한 해충의 습격, 각종 전염병과 재해로 보건이 위협받는 상황이 올 것이다. 그리고 멕시코만류가 멈춘다면,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의 해빙으로 메탄가스가 폭발하면, 그때는 돌이킬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더 경험하게 될지, 일상화된 기상이변으로 우리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상황이 더 나빠지고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빌 맥과이어는 최신 자료들을 바탕으로 알기 쉽게 정리해 놓았다.그리고 문제를 풀 마지막 열쇠가 아직은 우리 손에 있다고 한다.기후변화를 이해하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2023년 봄, 오랜 가뭄으로 산불이 잦았고, 6월의 낮 기온이 35도까지 올랐다. 2022년 여름, 서울에는 관측 역사상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였다.2003년은 유럽 전역에서 이어진 폭염으로 약 7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0년 여름에는 러시아, 북미, 동유럽, 중동, 중국에서. 2013년 호주의 성난 여름은 120번이나 기록을 경신해 곳곳이 50도에 육박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2016년, 인도 전역의 늦봄 더위가 51도까지 올랐다.이듬해 쿠웨이트와 이라크의 여름 기온이 각각 54도와 53.9도를 찍었다.온실 상태의 악화는 2021년 봄과 여름에 절정에 달했다. 북극권 곳곳이 32도에 근접했고 시베리아 대부분 지역도 35도를 넘었다. 점점 더 뜨거워지는 지구의 기후는 ‘기후 온난화’에서 ‘기후변화’로, 최근에는 ‘기후 붕괴’, ‘온실 지구’라는 경고로 그 심각해지는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이자 앞으로 그 피해를 고스란히 맞아야 할 사람들은 오히려 이런 경고를 과장으로 여기거나, 피로감을 드러내며 회피하기도 한다.그러나 우리가 회피해도, 부정하려 해도 기후변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면 회피하고 방치한다면 우리에게는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영영 없어질 것이다. 지금 지구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 정확하게 아는 것이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빌 맥과이어는 산업화 이후 화석연료를 쓰기 시작하면서 인류가 지구의 시스템에 엄청난 파급력을 끼치는 과정과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최신 과학 자료들을 모두 정리해 지금의 ‘기후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이 한 권의 책으로 마련해 놓았다.46억 년 지구의 기후 변천사와 최근에 나타나는 기상 현상을 두루 살펴 정리했고, 기후 붕괴가 불러온 세계 곳곳의 기상이변을 생생하게 담았다. 가뭄과 사막화, 집중호우, 태풍, 한파, 산불, 해수면 상승의 다양한 사례와 더불어, 이런 현상을 불러온 제트기류 벨트의 이완, 대서양 자오선 순환의 불안정, 북극의 해빙, 대기의 강, 엘리뇨 같은 변화된 기후 패턴까지. 그리고 빌 맥과이어는 말한다. 이제는 더 미룰 수 없다고. 지금 당장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우리가 모두 정확하게 알고 그 출발선에서 뜻을 모은다면 이 엄청 난 파국을 조금은 늦출 수 있다고 말한다.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화석연료를 지원하는 예산을 재생에너지 개발에 쓰고, 열대우림을 벌목하는 일을 멈추고 대규모로 나무를 심는다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 빌 맥과이어가 쓴 가상 시나리오 ‘2100년,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까요?’를 눈여겨보길 바란다. 우리는 조금 불편해도 꽤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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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후변화, 이제는 감정적으로 이야기할 때 - 우리 일상을 바꾸려면 기후변화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 (커버이미지)
    [사회]기후변화, 이제는 감정적으로 이야기할 때 - 우리 일상을 바꾸려면 기후변화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
    • 리베카 헌틀리 지음, 이민희 옮김
    • 양철북
    • 2024-02-19

    기후 위기의 시대,수많은 과학적 증거도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한다면기후가 변하고 있고, 이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수많은 과학적 증거에도, 실제로 일어나는 기후 재난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대처가 지지부진한 까닭은 무엇일까?2019년 9월, 호주에서는 유례없이 큰 산불이 일어나 6개월 넘도록 진압되지 않았다. 6만 제곱킬로미터가 불타는 동안 33명이 죽었고, 야생동물 10억 마리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전문가들은 산불의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지목했다. 큰 재난이 일어났으니 사람들이 모두 기후 문제를 해결하려고 발 벗고 나서게 되었을까?그러나 사람들을 심층 인터뷰해 본 결과는 참담했다. 기후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부정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초기에 산불을 제대로 진압하지 못한 정부 탓일 뿐 자연재해가 아니라며, 오히려 환경론자들이 설치는 바람에 일이 더 커졌다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리베카 헌틀리는 많은 사람이 말도 안 되는 환경 정책을 내는 정당에 표를 던지는 현상을 착잡한 심정으로 지켜보아 왔다. 실제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기후 재난에도 사람들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움직이려면 대체 무엇이 필요한 걸까?헌틀리는 기후가 변하고 있다는 단순한 과학적 사실도 저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므로, 기후변화는 과학의 문제를 뛰어넘는 사회적 현상이라고 규정한다. 기후변화에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까닭은 이 문제가 우리 내면과 가치관, 정체성, 젠더 감수성, 삶의 목적과 깊이 연관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헌틀리는 심리학과 사회학, 진화심리학이라는 도구로 기후변화를 대하는 사람들의 갖가지 감정을 하나하나 깊이 들여다보며,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어떤 메시지가 효과적일지 모색한다.“이 책은 내 주변 사람들이 기후 문제를 어떻게 대하는지, 인간으로서 우리가 미디어, 과학자, 정치, 사회로부터 얻는 정보나 일상적인 기후변화 경험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 지침서다. 이 책에서 나는 분노와 공포에서부터 사랑과 상실에 이르기까지 감정의 모든 스펙트럼을 탐색한다. 기후변화는 이런 감정들을 복합적으로 불러일으킨다. 나는 죄책감부터 하나씩 짚어 나가며 사랑으로 끝을 맺을 것이다.”“당신들이 우리 미래를 불태우고 있다”감성적인 10대 소녀들에게서 배우는 기후 대화법그레타 툰베리를 필두로 세계 곳곳의 10대 소녀들은 기성세대에게, 정치인과 기업인 들에게 소리친다. “죽은 행성에는 일자리가 없다.” “배운 이들의 말을 무시할 거면 왜 우리가 학교에 가야 하는가?” “기후변화 열일 중.” 이 아이들은 기성세대를 향해 삿대질하고 비난한다. 전혀 천진난만하지 않다. 분명하고 직접적인 심문으로 우리의 수치심을 일깨워 행동을 부추긴다.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의 분노는 정당하다. 때로는 유쾌하기도 하다. 10대 소녀들은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또래 친구들은 물론 보수적인 아버지나 길에서 우연히 만난 낯선 이들까지도 설득해 낸다.“10대 소녀들은 천성과 환경, 호르몬 또는 SNS 같은 요인으로 너무 감성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기후변화 전달자로서는 이 점이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들은 이론과 통계를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정밀하게 조정된 감정적 호소의 힘을 이해하고 있다. 기후변화가 개인적이고도 감정적인 문제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오직 과학에 근거한 이성적인 주장만이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를 이야기할 때 과학은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헌틀리 역시 10대 아이들이 등교하는 대신 기후 시위에 나선 것을 보고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했다. 아이들이 기성세대인 자신에게 뭐라도 해야 한다고 절박한 심정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되돌릴 수 있었는데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냐는 세 딸아이의 물음에 뭐라도 답하기 위해서라도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헌틀리는 10대 소녀 기후 운동가들에서부터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기후 소통 전문가, 기후 문제와 관련한 문제를 연구하는 사회과학자와 심리학자,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평범한 시민들을 만나며 기후변화를 효과적으로 이야기하는 법을 찾아 나간다.“이제 나와 다른 사람들, 세상을 나와 다른 관점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과연 어떻게 심경의 변화를 일으킬 것인가가 지구 살리기의 핵심 과제다. 이는 과학과 기술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소통하고 행동을 장려하느냐 하는 문제다. 방법은 문화권마다 다르겠지만 성공한다면 미래는 같을 것이다. 내 아이들뿐 아니라 모든 아이가 구원받은 세상을 함께 누릴 테니 말이다.”“대기업과 비교하면 제가 끼치는 영향은 아무것도 아니잖아요”죄책감, 부정, 회의…… 기후 메시지에 대한 반응들아주 오랫동안 기후변화를 상징하는 이미지는 빼빼 마른 북극곰이 작은 유빙을 딛고 선 모습이었다. 이런 이미지는 아직도 지구 온난화를 다루는 뉴스 보도에 간혹 등장한다. 마음이 아픈가? 물론이다. 내 문제처럼 느껴지는가? 글쎄. 매스컴에 등장하는 북극곰 이미지나 황량한 밭에서 땅을 일구는 체념한 제3세계 농부 같은 이미지는 기후 문제와 우리 사이의 거리감을 증폭시킨다. 한마디로 기후 문제가 ‘남의 문제’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다.사람들은 집단적인 위험보다는 개인의 위험을 훨씬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자연적인 위험보다는 인간이 만들어 낸 위험을 훨씬 두려워한다. 또한 사회 집단들의 심리적 사회문화적 동력이 위험을 감수하거나 회피하게 만든다. 헌틀리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기후변화 위협에 가장 심드렁한 집단은 젊은 남성들이다. 인터뷰에서 한 남성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가 영화 <매드맥스> 스타일로 향한다 해도 나와 내 친구들은 문제없을 거예요. 우린 몸도 튼튼하고 미친놈들처럼 운전하니까요.” 우리가 30여 년 전부터 쭉 기후변화와 관련해 접하는 비관적인 소식은 경각심을 무디게 만든다. ‘아직 안 죽었잖아’ 식의 타성이 자리 잡은 것이다.환경론자들은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 일일이 간섭하는 잔소리꾼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헌틀리는 개인 텀블러를 사용하라거나 친환경 용기에 담긴 친환경 세제를 쓰라는 것 같은 환경론자들의 조언이나 ‘당신의 일회용 커피잔이 바다거북을 죽일 수 있다’ 같은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지금 살아가는 방식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간접적으로 강조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자기 행동을 탓하는 말을 들으면 누구라도 그 사실을 얼마간 부정하고 싶어진다. 죄책감을 유발하는 환경 메시지를 들으면 사람들은 반발한다. “저는 재활용으로 제 몫을 하고 있는데, 중국인들은 어떤가요?”“정부나 기업이 나서는 게 더 중요하지 않나요?”헌틀리는 사람들의 이러한 심리적 반발을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며, 죄책감이나 수치심, 공포를 조장하는 환경 메시지의 실효성을 자세히 살핀다. 그리고 정치적 사회적 정체성과 직업에 대한 가치관이 기후변화에 대한 태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알아본다.‘환경 불안’이라는 새로운 심리적 현상한편 이렇게 무관심한 사람들의 맞은편에는 지금의 현실에 절망하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 기후변화에 대한 비관적 전망 때문에 ‘환경 불안’이나 ‘기후 우울증’, ‘생태 비탄’ 같은 병적 심리 증상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공황 발작, 식욕 감퇴, 조급증, 불면증 같은 증세를 보인다. ‘출산 파업 운동’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이는 생태 위기의 심각성 때문에 실존적으로 위협을 받고 있지만, 권력층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기에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운동이다. 한국에서도 출산 파업 운동에 동참하겠다는 20대 여성 비율이 33.5퍼센트에 육박한다는 설문 조사 결과가 나왔다(<‘20대 여자 현상’, 기후 위기 감수성에서도 나타났다>, <시사인>, 2022년 1월 25일).하지만 헌틀리가 다행이라고 여기는 지점은, 기후변화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든 사람들이 자신이 사랑하고 관심을 두는 대상과 기후변화와의 연관성을 찾기만 한다면 기후 문제 해결책에 동의할 수는 있다는 점이다. 그 관심 대상은 사랑하는 아이들의 미래일 수도 있고, 피지나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제주도 같은 특정 지역일 수도 있으며, 멸종 위기에 처한 홍관조 같은 동물일 수도 있다. 우리가 기후변화를 신경 쓴다는 말은 곧 사랑하는 대상에게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고려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관심 대상과 기후변화의 연관성을 찾고, 주변 사람들과 기후 문제를 자꾸 이야기한다면 분명 사람들을 설득하고 행동으로 이끌 수 있으리라고 저자는 주장한다.결국 희망은 사람들에게 있다당장 눈앞의 일들이 시급하니 몇십 년 후에 벌어질 기후 문제는 미뤄 놓고 싶은 마음, 정부나 기업의 책임이 더 크다며 자기 책임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 누군가 나서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대책 없는 낙관,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비관까지. 이러한 마음들이 기후 문제를 해결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하지만 우리가 그저 분리수거나 잘하고 자전거로 통근하면 모든 게 괜찮아지리라는 믿음은 지나친 낙관주의에 뿌리를 둔 모래 위에 쌓은 희망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각자의 감정들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이를 바꿀 계기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기후변화 시대에 최선의 희망은 기후변화가 지구에 이제껏 어떤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냉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불확실한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면 단호한 투지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목표를 이루려면 집단의 힘과 협력의 힘을 믿어야 한다. (……) 타인의 생각과 행동 모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간의 설득력에 희망이 있다. 뜻이 같은 사람들이 모인 집단, 단체, 지역 사회에서 우리는 희망과 낙관을 만들어 낼 수 있다.”희망은 개인적 희생이나 행동이 없어도 되는 막연한 꿈이어서는 안 된다. 행동은 희망을 낳는다. 희망은 타인을 대의로 이끈다. 이러한 희망은 우리에게, 그리고 지구에 유리하게 판도를 바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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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후변화, 이후변화 (커버이미지)
    [사회]기후변화, 이후변화
    • 김찬수
    • 유페이퍼
    • 202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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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균, 김용균들 - 싸울 때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 (커버이미지)
    [사회]김용균, 김용균들 - 싸울 때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
    • 권미정.림보.희음 지음, 사단법인 김용균재단 기획
    • 오월의봄
    • 2024-02-19

    김용균재단이 기획해 내보이는 첫 번째 책 산재, 그리고 산재 이후의 남겨진 이야기 김용균을 다시 부르는 방법 한국 사회의 일터에서는 한 해에 2,000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한다. 2018년 12월 10일에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24살의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도 그 비현실적 숫자의 하나가 되었다. 그가 화력발전소에서 일한 지 3개월만의 일이다. 비용과 안전을 저울질하는 이 사회의 단면이 드러났고, 산재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임을 분명히 드러낸 사건이기도 했다. 비용을 절감하고 경쟁력을 높인다며, 위험을 외주화해 불안정 노동자들에게 그것을 전가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이름은 고유명사이나,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 위험의 외주화, 산재 사고 피해자를 지시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김용균재단이 기획해 선보이는 첫 단행본인 《김용균, 김용균들》은 다시 이 김용균이라는 이름에서 시작한다. ‘기업의 살인’과도 같은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3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김용균이라는 한 사람의 죽음과 죽음 이후를 기억하고 살아내고 있는 김용균 사건의 또 다른 당사자인 세 사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김용균을 호명했다. 김용균 씨의 주검을 발견한 후 산재 트라우마와 함께 삶을 살아내는 또 다른 생존자이자 피해자인 하청업체 동료 이인구 씨, 김용균 씨의 어머니이자 산재 피해자 가족이자 유족으로, 또 노동활동가로 살아가고 있는 김미숙 씨, 발전 비정규직 노조 활동가로 김용균투쟁이 자신의 싸움이 된 이태성 씨가 그들이다. 김용균 씨가 목숨을 잃은 이유가 무엇인지, 그 죽음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함께 싸웠는지, 그 싸움의 구체적 면면들은 어땠는지가 그들 각각의 기억과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다시 기록되었다. 특히 이 책은 김용균 씨의 산재 사고의 진상과 함께, 김용균 씨의 죽음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주목해 그들의 목소리를 기록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산재를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 더 다각화하고 산재의 외연을 확장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그들이 겪은 삶의 크나큰 변화와 살아내기 위해 이어가고 있는 그들 각자의 싸움에 무게를 둔 것은 산재의 당사자는 산재를 직접 겪은 피해자만이 아니며, 산재 사건은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단절된 한 건의 사고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피해 당사자와 유족만을 중심에 두고 산재 사건에 접근하는 기존의 관점을 넓히려는 시도임과 동시에 산재가 사회에서 고립된 별도의 사건, 즉 나와는 무관한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려는 시도다. 또한 산재 사고가 어떤 시점에 깔끔하게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긴 그림자와 상흔을 남기며 장기간의 싸움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점 역시 함께 드러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산재 이후에 남겨진 이야기: 살아서 그 죽음을 겪어내는 사람들 이인구 씨는 김용균 씨와 같은 하청업체 소속의 비정규직이었지만, 발전소 정규직으로 30년을 일하다 발전소 하청업체에 계약직으로 다시 입사한 경력직 ‘오비(OB)’ 직원이다. 노조에는 호의적이었지만 적극적으로 활동하지는 않았고, 분위기 좋은 곳이 있으면 아내와 함께 데이트도 곧잘하던, 웬만한 중소기업 사장보다 안정적이라는 발전소 정규직으로 살아온 \'평범한\' 삶이었다. 하지만 함께 일하던 동료의 죽음을 직접 목격한 이후 삶이 크게 변했다. 이렇게 큰 참극을 겪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 수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 정규직 시절에 정규직들의 처지에만 관심을 쏟았던 과거를 반성하고, 발전소 민영화를 막아내지 못해 김용균 씨가 죽음에 이르렀다는 데 책임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무엇보다 그는 중대재해를 목격한 사람으로서, 산재 트라우마와 함께 살아가는 산재 피해자이자 생존자다. 산재 사건에서 상대적으로 덜 주목되었던 대표적인 피해가 바로 이 산재 사고의 목격자들이 겪게 되는 심각한 정신적 외상 문제다. 이인구 씨는 동료의 주검을 발견하며 큰 충격적 경험을 했지만 그에 대해 보호를 받기는커녕, 마지막에 김용균 씨와 통화를 했다는 이유로 마치 피의자처럼 취급되어 경찰조사를 받기까지 했다. 잘못은 기업과 구조에 있는데 동료 노동자들은 죄책감까지 느껴야 한다. 심한 경우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기도 한다(2020년 현대중공업 끼임 사고). 이인구 씨 역시 심한 이명과 불면에 시달렸다. 다만 이인구 씨를 비롯해 당시 김용균 씨와 함께 일했던 화력발전소 노동자들 여럿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산재 처리가 되어 해당되는 치료를 일부 받을 수 있었다. 김용균 씨 사건에 앞서 있었던 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 사고 이후 사고를 겪은 이들에 대한 정신적 어려움을 지원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면서 직업 트라우마에 대한 공적 지원 체계가 조금은 자리를 잡은 덕이다. 김미숙 씨는 김용균 씨의 어머니다. 산재 피해 유가족이다. 자식이 스스로 잘못해 사고를 당한 것이라고 몰아가려는 회사의 모습을 보고 시작된 싸움이 또 다른 김용균들이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싸움으로 이어졌다. 자식의 죽음으로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되었고, 자신과 가족에게 집중했던 삶에서 타인의 삶에 연대하는 삶으로 옮아갔다. 부당한 노동현실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 됐다.다만 저자들이 기록한 김미숙 씨는 정형화된 유족 혹은 \'노동자의 어머니\'의 모습은 아니다. 당연히 유가족이라고 해서 언제나 슬플 수는 없고, 온종일 길 위에서 싸우고 있을 수만도 없다. 그는 다른 이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유족은 이래야 한다라는 편견에 맞서야 한다고 분명히 생각한다. 김미숙 씨는 흔들리기도 하고, 기쁜 일이 있을 때는 웃고, 이따금은 다시 공허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평범\'했던 과거의 삶과 싸우며 살아가는 지금의 삶을 저울질하지 않고 모두를 긍정한다. 자식 잃은 어머니가 되기도, 길 위에서 싸우는 몸이 되기도, 누군가의 손을 맞잡는 연대자이자 활동가가 되기도 하며 자신의 싸움을 해나간다. 이태성 씨는 발전 비정규직 노조 동료다. 또다른 발전소 하청업체의 비정규직이고 노조 활동가였고, 김용균 씨와 서로 알던 사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비정규직 문제를 알리기 위한 기자회견에 발전 비정규직 대표로 참석하기로 되어 있던 날 새벽에 김용균 씨의 죽음을 알게 됐고, 그 기자회견에서 그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김용균의 죽음을 세상에 처음 알리게 됐다. 그 역시 가까운 후배를 산재로 잃었고, 산재 신청조차 하지 못했던 수많은 동료들의 얼굴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터진 울음이었다. 김용균의 죽음을 그대로 흘릴 수 없었던 이유기도 하다. 그리고 김용균을 그대로 보낼 수 없었던 건 다른 발전 비정규직들도 마찬가지였다. 큰 싸움의 경험도 없었고, 팔뚝질조차 어색했던 발전 비정규직 노조원들은 그의 말을 빌리자면 “미친 듯이 싸웠다”. 노조를 포함한 수많은 주체들이 두 달여를 싸웠다. 당정 협의도 이루어졌고, 장례도 치렀다. 국무총리 산하의 석탄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가 꾸려져 조사도 마무리됐다. 그런데도 발전소는 변한 듯 변하지 않았다. 특조위 조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했다. 정규직 전환은 합의 이후 3년이 지나도록 이루어지지 않았고 발전소 내 작업환경 및 처우 개선도 미진한 상황이다. 김용균 산재 사망에 대한 책임자 처벌을 위한 형사재판에서 사측은 또다시 말을 바꿨다. 원청은 자신의 책임이 없다고 했고, 왜 그렇게 노동자들이 위험하게 일을 하는지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산재로 인한 후배의 죽음이 후배의 과실로 기록된 것을 알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아팠던 이태성 씨는, 이제 투쟁을 그만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힘들지만 함께 싸울 때 길도 생기고 힘도 생긴다는 걸 김용균투쟁으로 확실히 알았기 때문이다. 다시, 김용균이 책은 이 세 사람의 이야기뿐 아니라 석탄화력발전소를 둘러싼 문제의 시작과 범국민 추모제 등에서의 김미숙 씨의 발언, 그리고 여러 주체들이 함께했던 김용균투쟁에서 특히 집회를 기획하고 진행하거나 시각 작업을 맡았던 문화활동가들의 목소리도 같이 엮어 김용균 사건 자체도 좀더 구체적으로 소개하려 노력했다. 김용균이라는 이름이 하나의 대명사가 되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또 다른 김용균들이 함께 싸웠다는 것을 기록하고 산재가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그리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비극이라는 점을 전하고자 했다.산재로 사망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사회적 사건이 되는 산재가 많지 않은 비극적 현실에서도 김용균 씨의 죽음은 이 사회를 울렸다. 국무총리 산하의 특조위도 구성되어, 김용균 씨의 산재 사망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인재였고 노동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원하청이 분리되어 연속된 공정의 업무를 보게 만든 노동구조와 위험한 노동환경 등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임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한계가 명백할지라도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개정되었고 중대재해처벌법도 제정됐다. 하지만 김용균 씨 사건과 똑같은 구조적 이유로 벌어지는 산재 사망사고는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에서도, 동국제강에서도, 건설 현장에서도, 대우조선에서도 불안정 노동자인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산재로 목숨을 잃었다. 보도되지 않은 죽음은 더 많을 것이다. 심지어 김용균 씨 사망에 대한 책임자 처벌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2022년 2월에서야 선고된 1심 결과에서 원청인 한국서부발전 전 대표는 무죄 판정을 받았고, 원·하청사에게 선고된 벌금과 기타 피고인들에 대한 처분 역시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그뿐만 아니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반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처벌을 완화하는 법 개정안이 발의됐고 정부는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지금 김용균을 다시 호명하고 그 죽음과 이후의 투쟁을 기록하는 것은 김용균이라는 한 사람뿐 아니라 같은 구조 속에서 목숨을 잃고 다친 수많은 이들을 기억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그 길에 함께하고자 하는 이들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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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깻잎 투쟁기 -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 (커버이미지)
    [사회]깻잎 투쟁기 -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
    • 우춘희 지음
    • 교양인
    • 2024-02-19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모를 때 가장 잔인하고 무감해진다.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나의 무감한 공모를 깨닫게 되었고 마음이 아팠다.” _ 최은영(소설가)그 많은 깻잎은 누가 다 키웠을까?삶이 투쟁이 되는 깻잎밭 이주노동자 이야기깻잎, 고추, 토마토, 딸기, 계란, 김, 돼지고기…… 우리 밥상에 오르는 매일의 먹을거리는 이주노동자의 손을 거쳐 온다. 전체 농·어업에서 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 10명 중 4명이 이주노동자이고, 채소나 과일을 재배하는 농가에서는 그 비중이 훨씬 크다. 고령화와 청년층 이탈로 텅 비어버린 농촌의 일터는 “이제 외국인 없으면 농사 못 짓는다”라는 말이 당연하리만큼, 이주노동자의 땀으로 채워지고 있다.《깻잎 투쟁기》는 우리 먹을거리의 핵심 생산자이자 한국 사회의 엄연한 구성원인 이주노동자의 삶을 전한다. 연구자이자 활동가인 저자는 직접 깻잎밭에서 일하며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 조건과 생활환경을 보았고, 농장주들로부터 농촌 사회에 이주민이 들어온 후 달라진 풍경과 농사일에 관해 전해 들었으며, 새벽에 찾아간 인력사무소에서는 미등록 이주민(‘불법 체류자’)이라는 낯선 세계를 만났다. 이 책은 결코 ‘인력’으로 치환될 수 없는 노동자들의 삶을 말한다. “이주노동자가 온다는 것은 단순히 ‘인력’이 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오는 일이다. 이주노동자의 손과 함께 삶과 꿈도 온다.”‘못사는’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의 ‘슬픈’ 이야기더 나은 인권 사회를 향한 1500일의 여정!2020년 기준 임금 체불을 당한 이주노동자 31,998명, 사장이 가하는 성폭력을 피해 차라리 미등록 노동자의 길을 택하는 여성 노동자들, 최소한의 인간 존엄성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허울뿐인 제도와 법, 인종 차별…… 이런 현실에 연루되지 않은 한국인은 아무도 없다. 한국인의 기본적인 생활에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모를 때 가장 잔인하고 무감해진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나의 무감한 공모를 깨닫게 되었고 마음이 아팠다. 《깻잎 투쟁기》가 많은 분에게 가닿기를, 그리하여 이 책이 잔인함에 이토록 관대한 이 사회를 변화하게 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_ 최은영(소설가)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코로나 시대 건강권 문제까지농업 이주노동자에 관한 최초의 관찰기《깻잎 투쟁기》는 우리 밥상을 책임지는 농업 이주노동자에 관한 최초의 관찰기로, 캄보디아와 한국을 오가며 이주노동자를 직접 지원하고 이주노동 문제를 연구해 온 연구활동가 우춘희의 첫 책이다. 저자는 ‘한국에서는 누가 어떻게 농사를 짓고 있지?’라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해 이주노동자들의 삶 속으로 뛰어든 지난 4년여의 치열한 기록을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생생하게 그렸다. 이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과 2장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내몰리는 열악한 주거 시설과 임금 체불, 저임금 문제를 비롯한 노동 환경에 대해 이야기한다. 3장에서는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취업을 준비하는 캄보디아 사람들의 애처로운 사연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이 어떻게 한국의 ‘외국인 고용 제도’(고용허가제)로 농촌에 들어오는지 설명한다. 4장에서는 농장주들에게 전해 들은 젊은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며 달라진 농촌의 분위기를 말하고, 5장에서는 인력사무소에서 알게 된 미등록 이주민(‘불법 체류자’)을 쓸 수밖에 없는 농촌의 사정을 말한다. 6장과 7장에서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성폭력 문제를 비판하고, 코로나 시대에 두드러진 이주민의 ‘건강권’ 문제를 다룬다. 이외에도 최근 들어 논란이 일고 있는 외국인 최저임금 차등 적용(2장)이나 건강보험료 ‘먹튀’ 문제(6장), 이주노동자가 ‘도망’가는 이유에 대한 사회제도적 분석까지(5장), 이 책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주목하지 않았던 이주노동자의 삶의 모습을 낱낱이 드러낸다.이주노동자들이 전한 이주노동 현장은 참혹했다. 장시간 고된 노동을 강요하며 법으로 정한 최저 시급도 주지 않았다. 몇 달 치 임금을 체불하는 사례도 많았다. 노동자들이 일하는 밭 바로 옆에 있는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가 그들의 기숙사였다. 그 안에는 화장실도 없어 노동자들은 비닐하우스 밖으로 나가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한다고 했다. 사업주의 언어폭력과 성폭력을 호소하는 노동자들도 많았다. 이 모든 일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수년째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건 그들의 이야기와 삶이 우리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_머리말에서“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_이주노동자가 ‘상시’ 거주하는 ‘임시’ 주거 시설 일렬로 늘어선 비닐하우스 단지, 홀로 차광막을 친 검은 ‘비닐하우스’. 화장실도 없고 곰팡이와 온갖 벌레만 가득한 그 작은 공간에 농업 이주노동자가 살고 있다. 그것도 매달 수십만 원의 돈을 지불하면서!우춘희 연구활동가는 직접 보고 들은 이주노동자들의 주거 환경의 실상을 이 책에 있는 그대로 서술한다. 이주노동자들이 사는 집은 대부분 냉·난방장치가 허술한 데다 자연재해를 막아줄 안전장치가 전혀 없었다. 밭 한가운데 외따로 있던 한 비닐하우스 집은 잠금장치가 없어 아무나 들어올 수 있었고, 콘크리트 농수로 위에 그야말로 ‘얹어놓은’ 컨테이너 집은 집 밑에 물이 졸졸 흘렀다. 왕복 2차선 도로 옆에 있던 두 명이 누우면 꽉 차는 네다섯 평의 컨테이너에는 세 명의 이주노동자가 부대끼며 살면서 매달 75만 원을 냈고, 다 쓰러져 가는 폐가를 대충 고쳐놓아 한겨울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공간에는 다섯 명의 이주노동자가 월세로 2백만 원을 내고 살았다. 저자는 열악하다 못해 끔찍한 주거 시설을 들여다보며 집다운 집에서 살 당연한 권리에 대해 말한다. 컨테이너 두 개가 붙어 있는 열 평 남짓한 공간에 방, 부엌, 샤워실이 하나씩 있었다. 햇빛도 제대로 들지 않았고 환기도 전혀 되지 않았다. …… 집 안 곳곳에 온갖 벌레가 우글거렸다. 부엌은 각종 곰팡이가 마치 작은 생태계를 이루는 것 같았다. 관리를 안 해서가 아니라 환경이 그랬다. 그 공간에서 세 명은 방에서 자고 나머지 두 명은 방이 좁아 부엌 앞 공간에서 잔다고 했다. _21~22쪽정부는 이주노동자를 일손이 필요한 곳에 데려다가 채우는 ‘인력 수급 정책’의 대상으로만 본다. 오로지 어떻게 농촌의 부족한 인력을 채울지 골몰하며, 일하는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수요와 공급의 숫자에만 관심을 쏟는다. 이주노동자가 어떤 곳에서 사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일하는지,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를 받기는 하는지, 그 실상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_38쪽깻잎을 먹을 때마다 이주노동자가 생각난다_하루 종일 1만 5천 장의 깻잎을 따야만 하는 사람들한국인만 좋아해 먹는다는 깻잎은 이주노동자들의 장시간 고된 노동의 산물이다. 저자가 만난 깻잎밭 노동자들은 한 달에 고작 한두 번 쉬며 하루 10시간씩 일했다. 그들의 근로계약서에는 하나같이 하루 ‘근로 시간 11시간(휴게 시간 3시간 포함)’이 적혀 있었고, 그로 인해 임금은 최대 8시간만 최저 시급으로 계산해 받았다. 하지만 농장주들은 하루에 깻잎 1만 5천 장, 15상자를 채우지 않으면 “남는 게 없다”며 노동자들을 닦달했고, 심지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월급에서 깎기도 했다. 이주노동자들은 매일 깻잎 15상자를 채우기 위해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끼며 쉴 틈 없이 깻잎을 땄다. 소변을 참아서 방광염에 걸리거나 화장실에 덜 가기 위해서 물을 먹지 않는다고 말하는 노동자들의 사연은, 우리가 깻잎을 먹을 때마다 이주노동자들의 수고로운 손길을 잊지 말아야 할 이유를 알려준다.깻잎밭에서 사람을 구한다고 연락을 받으면 이주노동자들은 일단 고개부터 절레절레 저었다. 오전 6시 30분에 밭에 나가서 오후 5시 30분까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깻잎을 따야 1만 5천 장을 딸 수 있다고 그들은 말했다. 간단한 빵과 두유를 허겁지겁 먹고 밭에서 걸어서 5~10분 걸리는 간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것 말고는 쉴 수 있는 시간 자체가 없다고 했다. _76쪽‘코리안드림’을 꿈꾸는 사람들_이주노동자는 어떻게 한국 농촌에 들어올까?2004년에 시행된 ‘고용허가제’는 한국인이 더는 일하러 오지 않는 곳에 국가가 직접 외국 인력을 선발해 취업을 알선하는 제도다. 이 제도를 통해 한국 정부와 고용 협약을 맺은 아시아 16개국에서 한 해 5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한국으로 들어온다. 이 책에서는 실제 이주노동자들이 왜 어떤 경로로 한국에 오는지 그 생생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저자가 직접 만난 취업 준비생들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한국어 학원에 다니며 ‘코리안드림’을 꿈꿨다. 사연은 제각각이었지만 공통된 이유는 바로 끝 모를 ‘가난’이었다. 줄줄이 딸린 가족들을 부양해야 해서, 어린 나이에 ‘신부대(지참금)’ 때문에 결혼하기는 싫어서,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전공해 시험에 유리해서……. 저자는 말한다. “그곳에서 그들의 삶을 보고 그들이 말한 ‘가난’의 깊이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고.한국에서 일하려면 일단 ‘한국어능력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보파(가명, 30대) 씨는 공장에서 일을 마친 후 한국어 학원에 다녔다. 한국에서 일하고 돌아온 캄보디아 사람들이 차린 학원이었는데, 그런 학원들이 공장 주변에 많았다. 공장에서 야간작업을 하느라 학원에 못 가는 날도 있었고, 늦게까지 일하다 가는 날에는 너무 졸려서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그래도 《너도나도 한국어》 교재를 늘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보고 또 보려 했다. _101쪽(한국어능력)시험에 합격했다고 해서 모두 한국으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어능력시험 성적 유효 기간이 2년이기에 2년 내에 자신을 고용하고 싶다는 사업주로부터 선택을 받아 근로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한국의 고용 센터는 보통 사업주가 신청한 구직 인원의 3배수로 알선하고, 사업주는 센터를 통해 구직자의 정보(키, 몸무게, 성별, 한국어능력시험 점수 등)를 검토해서 선택한다. _103쪽이주노동자가 온 후 농촌은 어떻게 변했을까?_농촌 사회를 구성하는 이주노동자 이야기이 책의 4장에서는 이주노동자가 온 후 달라진 농촌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기 위해 사과 농사에서 깻잎 농사로, 배추 농사에서 깻잎 농사로 바꾼 농장주들의 사연, 20·30대 젊은 이주 여성이 밭농사를 도맡으면서 한국 노인 여성의 일자리가 없어졌다는 이야기, 고용주로서 이주노동자를 대하고 관리하는 농민들만의 방식, 시내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외국인 음식점과 동남아에서 온 각종 식자재를 파는 시골 마트의 풍경 등 어느 책에서도 쉽게 접할 수 없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결국 김미자(가명, 60대) 씨네는 배추에서 깻잎으로 작물을 바꾸었다. ‘깻잎’은 여러 면에서 고용허가제를 통해 들어오는 이주노동자에게 맞춤인 작물이다. 일단 깻잎 농사는 1년 내내 일거리가 있는 노동집약도가 높은 일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싼 노동자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_133쪽“(200평 기준 깻잎) 비닐하우스 한 동에 보통 3천만 원 정도 매출이 난다고 보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하우스 여섯 동을 갖고 있으니까 이 정도면 1억 8천만 원 정도 매출이 나겠죠. 여기서 농비, 인건비, 시설 투자비 빼고 나면 절반 정도 이익이 날 거예요. 그런데 농약 값 이런 건 별로 안 들거든요.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요. 하우스 세 동 정도는 (세 명의) 인건비로 나가고, 제 인건비는 나머지 세 동 정도 가져간다고 보면 돼요. 작년(2019년) 같은 경우는 깻잎이 대박 터졌거든요. 이 정도 규모에서 대박 터졌으면 이익이 한 2억 나왔을 거예요.” _137쪽 ‘현대판 노예제’가 된 고용허가제_‘사업장 변경 제한’이라는 굴레저자는 이 책에서 시종일관 고용허가제가 농·어촌과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가 필요해서 만든 제도이지 “저개발국 사람들에게 시혜를 베풀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이주노동자의 인력만 이용할 뿐 그들이 한국에 정주해서 살 수 있는 기회는 결코 주지 않”기 위해 지나치게 촘촘한 규정으로 이주노동자를 옭아매었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받는 것은 이주노동자가 직장을 쉽게 옮길 수 없게 만들어 사실상 ‘강제 노동’을 시키는 ‘사업장 변경 제한’이다. 이 책에서는 ‘사업장 변경 제한’의 문제점과 각종 폐해를 자세히 설명하고, 이 규정에 관한 2021년 말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깊이 들여다본다.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하려면 근로계약 해지에 대한 사업주의 동의를 얻거나 아니면 사업주의 위반 사항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명백한 불법도 입증하는 데 수개월이 걸릴 수 있기에 이주노동자는 되도록이면 사업주의 협조를 얻으려 한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의하면 2021년 사업장 변경 신청 사례(3만 2140건) 중 근로계약 해지 또는 만료로 인한 신청이 전체의 85.6퍼센트(2만 7512건)였다. 사실상 이주노동자는 사업장을 바꾸기 위해 사업주의 동의가 필요한 셈이었다. _81쪽그동안 정부는 이주노동자의 인력만 이용할 뿐 그들이 한국에 정주해서 살 수 있는 기회는 결코 주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 왔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에게 ‘인력’만을 요구한다. 이주노동자의 삶은 ‘영원히 일시적인(permanently temporary)’ 상태이다. 이주노동자는 한국에 와서 일을 하지만 여기에서 정착해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지는 못한다. 정해진 기간이 다 되어 비자가 만료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며, 그 빈자리를 다른 이주노동자가 와서 채운다. _127쪽‘불법 체류자’라야 노동 조건이 더 좋다고?_합법적 노예 상태와 불법적 자유의 역설2020년 초 코로나19(COVID-19) 대유행으로 각국이 국경을 폐쇄하자 고용허가제로 들어오기로 한 노동자들의 입국이 계속 지연되었다. 농업 현장에서는 봄철 파종을 앞두고서 인력 부족이 극심해졌고, 한 해 농사를 망칠 수 없던 농민들은 ‘불법 체류’ 노동자에게 월급을 더 올려주고 기숙사비를 안 받겠다고 제안하며 노동 조건을 협상했다. 그 결과 ‘합법 체류’ 노동자보다 ‘불법 체류’ 노동자가 더 좋은 대우를 받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했다. 공급이 부족한 노동 시장에서 ‘합법 체류’ 노동자는 과도하게 엄격한 외국인 고용 제도(고용허가제)에 발이 묶였지만, ‘불법 체류’ 노동자는 이런 구속에서 벗어나 노동 조건을 두고 사업주와 협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비슷한 시기에 만난 억압받는 ‘합법 체류’ 노동자와 자유로운 ‘불법 체류’ 노동자의 사례를 비교함으로써, 외국 인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제도가 오히려 불법을 조장하는 것은 아닌지 되묻는다.합법 체류 자격의 이주노동자는 임금 협상의 여지가 거의 없다. …… 반면 체류 기간이 지난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자신이 ‘합법적’ 체류 기간에 쌓은 전문성과 사업장을 이동할 수 있는 약간의 자유를(그들은 정식 계약을 맺은 상태가 아니라서 상대적으로 쉽게 그만둘 수 있었다) 토대로 삼아 일손이 부족한 사업주와 노동 조건과 주거 조건을 협상할 수 있다.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노동자는 온갖 제도와 법이 구속하는 노예 상태에 놓이지만 ‘불법적’으로 체류하는 노동자는 이런 구속에서 벗어나서 협상력을 갖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_153~154쪽“불법이라서 월급을 더 조금 준다? 요즘은 그런 거 안 통해요. 코로나 때문에 (사람 구하기 힘들어져서) 기숙사비 안 받고 월급 160만 원을 줬어요. 그런데 이제 여자는 기본이 180만 원이고 남자는 200만 원이에요. 우리는 기숙사비도 전혀 안 받고 오히려 쌀도 사줘요, 좋은 쌀로. 그런데 지금 사람이 없어서 알아보니까 다른 농가는 우리보다 더 준다는 거예요. 여자는 200만 원, 남자 230만 원에서 최고 250만 원까지 준대요. 부부가 오면 합해서 450만 원에 맞춰준다고 하더라고요.” _157쪽“건강보험료 ‘먹튀’요? 바빠서 한 번도 병원에 못 갔어요”_외국인 건강보험료로 돈 버는 나라건강보험을 든 외국인들이 피부양자 등록을 악용해 세금은 적게 내고 의료 혜택만 받는다는 이른바 ‘건강보험료 먹튀’는 사실일까? 이 책이 전하는 실상은 이와 전혀 다르다. 건강보험공단의 자료를 보면, 최근 2018년부터 3년간 건강보험료 재정수지가 매년 증가해 누적 흑자 규모가 1조 원이 넘었다. 저자가 농업 현장에서 만난 이주노동자들은 일하느라 병원에 갈 시간도 없는데 건강보험료를 너무 많이 낸다고 하소연했다. “건강보험료를 좀 내려주세요. 저는 보험료를 제 능력 이상으로 이렇게 많이 낼 수 있는 형편이 못 됩니다.” “저희는 농촌에 살고, 한 달에 2~3번 쉬기 때문에 병원에 갈 시간도 없어서 그냥 약을 사서 먹습니다.”내국인은 소득과 재산 수준에 따라서 보험료가 산정되지만 외국인은 이런 과정 없이 내국인 보험 가입자의 평균을 낸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피부양자 인정 기준도 제한적이다. 특히 농업 이주노동자의 경우, 농장주들이 ‘사업자등록’을 안 한 경우가 많아 직장인가입자 자격을 얻지 못한다. 외국인 고용 제도는 그들에게 장기 거주할 기회를 주지 않는데, 보험 공단에서는 ‘장기요양보험료’를 제외해주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내는 보험료만큼 합당한 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을까? 저자는 다른 나라의 사례와 비교해 기본적인 통역 서비스조차 없는 우리의 현실을 지적하며, 건강보험료 문제가 이주민 혐오로만 소비되는 것을 넘어 ‘이주민 건강권’ 문제로 논의되기를 희망한다.이주민들은 언어 장벽으로 인해 병원에서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을지 걱정했다. 특히 한국의 의료시스템을 잘 모르는 데다 어디서 정보를 얻어야 하는지 막막해했다. …… 교통과 시간도 문제였다. 일단 농촌 마을에서 시내에 있는 병원에 가는 것 자체가 힘들었고, 보통 하루 반나절은 써야 했기에 쉬는 날이 아니면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만난 농업 이주노동자들 중에는 병원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아프면 병원에 가기보다 그저 고용주에게 부탁해서 약을 사 먹는 것이 전부라고 했다. _199~200쪽농·축산·어업 이주노동자는 직장가입자가 되지 못해 지역가입자로 건강보험에 의무 가입한다. 직장가입자는 사업주와 보험료를 절반씩 내지만, 지역가입자는 보험료를 모두 부담한다. 농·축산·어업 이주노동자가 내는 한 달 건강보험료는 2022년 기준 12~13만 원이다. _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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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빛을 가리지 말라 (커버이미지)
    [사회]나의 빛을 가리지 말라
    • 제임스 윌리엄스 지음, 박세연 옮김, 전병근 해제
    • 머스트리드북
    • 2024-02-19

    구글 전략가 출신 옥스퍼드 철학자의설득 기술에 빼앗긴 주의력 되찾기“주의 뺏기 경쟁이 우리 삶을 파편화한다”프린스턴대학 총장 선정 ‘신입생 필독서’“이정표에 해당하는 책” -;《옵서버》“단번에 기술윤리학 분야 고전 반열에 올랐다” -《테크크런치》빼앗긴 주의력 되찾기는 이 시대 최대 도덕적·정치적 과제디지털 기술이 생각과 행동의 중심이 되면서 개인의 자율성과 공동체의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거대 기술 기업이 개발한 지능적 설득 시스템이 비즈니스의 기본 모델이자 인터넷의 설계 논리로 자리 잡으면서, 주의 뺏기 경쟁과 사용자 설득 기술은 궁극적으로 의지의 조작 단계로까지 발전했다.구글 전략가 출신 철학자 제임스 윌리엄스는 이 책 『나의 빛을 가리지 말라』에서 디지털 기술이 생각과 행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개인과 사회를 자동반사적이고 파편화된 삶으로 내몬다고 지적한다. 그는 정보와 자극이 넘쳐나는 시대에 최대 희소 자원이 사람의 주의인 이상, 그것을 완전히 포획할 때까지 기술의 침투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거대 기술 기업의 주의 뺏기 경쟁에 대응하여 자기통제력을 지키고 주의력 경제(attention economy)를 재편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파한다.주의는 당장 눈앞의 문제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삶 전체를 항해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디지털 플랫폼이나 소셜미디어 등의 영향으로 목표한 바에 집중하지 못하고 주의가 분산되는 문제를 단순히 사소한 짜증 정도로 치부해왔다. 그러나 이 문제는 개인적 차원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능력을 위축시키고, 집단적 차원에서 공동의 목적을 세우고 이를 추구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저자는 주의력 경제를 개념화할 수 있는 용어가 부족해 사회적·정치적 논의 과정에서 이 문제를 보다 거시적 관점에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사람의 주의를 빼앗고 반응을 조종하는 지능적 설득의 힘으로부터 주의의 자유를 주장하고 지키는 것은 우리 시대가 직면한 최대 도덕적·정치적 과제다. 개인 차원의 저항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저자는 빼앗긴 주의력을 되찾기 위해 기술 기업의 개발자는 물론 경영자, 정책결정자, 시민 등 다양한 주체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열거하고, 주의력 경제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사회적 개입의 유형을 제시한다. 여기에 철학과 고대 문헌에서 현대 과학까지 다양하게 동원하고, 참신하고 사려 깊은 분석을 덧붙여 우리 시대 가장 급박한 질문에 대한 빛나는 통찰을 준다.책 서두에서 저자는 거리의 철학자 디오게네스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일화를 소개한다. 디오게네스가 코린트 거리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데 알렉산드로스가 찾아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한다.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드로스를 올려다보며 이렇게 일갈한다. “햇빛을 가리지 마시오.” 저자는 우리도 이 시대 선의를 가진 디지털 알렉산드로스를 올려다보며 “나의 빛을 가리지 말라”고 외쳐야 한다고 조언한다.우리는 결함 있는 GPS에 의존해 살아간다구글에서 십 년 넘게 일하면서 저자는 “세상의 모든 정보를 조직화해 많은 사람이 보편적으로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게 만든다”라는 구글의 비전에 크게 공감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이 ‘정보의 조직화’가 아니라 ‘주의의 조직화’에 얽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술 산업은 상품을 설계하지 않고 사용자를 설계한다. 인간의 삶을 안내하는 이 GPS 시스템의 목표는 오로지 우리의 주의를 연장하는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정체성에 어긋나는 행동을 유도하고 습관을 만든다. 인간을 위한다는 기술이 인간의 핵심인 주의를 포획해 파는 데 매달린다. 저자는 우리가 결함 있는 GPS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 옥스퍼드대학으로 향한다.정보가 넘치면 희소 자원은 인간의 주의가 된다. 정보의 양은 속도에 대처할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다. 속도가 지나치면 양이 많을수록 오히려 재앙이 된다. 저자는 거대 기술 기업이 사용자의 주의 뺏기에 혈안이 된 주된 이유로 디지털 광고를 꼽는다. 초창기 광고는 과학보다 예술에 가까워 그것이 우리에게 미치는 힘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광고 산업이 성숙하면서 인간 심리와 의사결정 지식을 체계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광고의 범위 역시 정보에서 설득으로, 다시 행동 형성에서 태도 형성으로까지 나아갔다. 20세기 말 전자 매체는 광고주에게 새로운 플랫폼과 설득 전략을 가져다주었고,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효과 측정의 피드백 고리가 완성되었다. 여기에 네트워크로 연결된 단말기의 휴대성과 연결성이 높아졌다. 디지털 광고의 확장성과 수익성이 커지면서 비즈니스의 기본 모델이 되었다. 구글, 메타, 트위터 등 주요 플랫폼은 사실상 모두 광고 회사다.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설계자, 분석가, 통계학자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사전 프로그래밍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막대한 시간과 자원을 투입한다.저자는 과거 TV나 신문 같은 매체에서 광고가 정보 전달의 측면에서 ‘예외’였다면, 디지털 매체에서 광고는 ‘규칙’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과거 매체에서 광고가 지배적인 설계 목적을 지원했다면, 디지털 매체에서 광고는 그 목적을 주도한다. 주의력 경제에서는 사용자가 곧 상품이다. 기술 설계자는 인간 심리의 가장 낮은 차원인 충동을 겨냥한다. 심리학자와 행동경제학자가 수십 년간 분석해온 다양한 인지적 취약성과 의사결정 편향을 활용한다. 전 구글 디자인 윤리학자 트리스탄 해리스는 이런 현상을 빗대어 ‘뇌간의 바닥을 향한 경주’라고 표현했다.언어의 한계가 곧 주의 세계의 한계다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가 곧 내 세상의 한계다”라고 말했다. 언어의 지평을 확장할 때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인식의 지평도 확장된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여러 문제 중 하나로 개인이나 집단 전체가 기술의 영향으로 어떤 방식으로 주의가 분산되는지 이해할 수 있는 개념적 틀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주의력 경제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 설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용어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주의의 개념을 ‘집중(spotlight)’, ‘별빛(starlight)’, ‘햇빛(daylight)’의 세 가지 차원으로 설명한다.‘집중’은 우리의 인식과 행동이 과제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직접적인 능력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도록 해준다. 집중의 빛이 가려질 때는 ‘기능적’ 주의 분산이 일어난다. 기술은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하도록 돕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기술이 방해할 때 우리의 주의 집중은 파괴된다. 우리는 자신이 세운 계획을 실천하고 또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그러나 무의식이 의식을 압도하면서 45분 뒤 세계 경제 위기에 관한 기사를 읽고, 유튜브에서 자동 실행되는 강아지 동영상을 보며, 소셜미디어에서 친구들의 일상을 엿본다. 이런 기능적 주의 분산은 각종 앱 알림 메시지로부터 일어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차를 마시기 위해 주전자에 물을 끓이려 하는데 인스타그램 앱에서 내가 좋아하는 인플루언서가 글을 올렸다는 알림 메시지가 왔다.”한층 더 깊은 주의의 차원인 ‘별빛’은 우리 삶이 더 높은 목표와 가치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포괄적인 능력으로, 우리가 원하는 존재가 되도록 해준다. 별빛이 가려질 때는 ‘존재적’ 주의 분산이 일어난다. 개인적, 혹은 집단적 차원에서 정체성이 흔들릴 때 우리는 자아가 분열되는 듯하고 자신이 원하는 존재가 되기 힘들다고 생각하며 존재적 주의 분산을 경험한다. 우리는 소셜미디어에서 의미 있는 관계를 추구하기보다 최대한 많이 ‘좋아요’를 받고 ‘친구’를 맺으며 다른 사람의 관심을 얻는 데 몰두한다. 더 기발한 이야기를 담은 게시 글을 올리기 위해 애쓰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어느 순간 사회적 상호작용은 일종의 숫자 놀이가 된다. 일상적으로 숫자를 쫓아가는 사소함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혹은 애초에 이들과 친구를 맺은 이유가 무엇인지에 관한 보다 고차원적 관점을 잃는다.가장 원천적인 주의의 차원인 ‘햇빛’은 우리가 애초에 목표와 가치를 정의하게 하는 근본적인 능력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원하도록 해준다. 햇빛이 가려질 때는 숙고와 이성, 예측, 기억, 목표 선정 등의 역량이 위축되는 ‘인식적’ 주의 분산이 일어난다. 무엇이 진실인지 이해하는 능력, 혹은 진실의 가능성을 예측하는 능력이 위축될 때 우리의 햇빛은 가려진다. 우리는 잘못된 행동에 대해 단순히 화가 나는 것을 넘어 격렬하게 분노하고 혐오감을 느낄 때 도덕적 격노를 경험한다. 정보가 부족했던 과거에는 전 세계에서 일어난 도덕적 위반에 관한 뉴스가 우리의 주의를 놓고 경쟁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대에는 누군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잠재적으로 경험한다. 오늘날 우리는 인터넷상에 흘러넘치거나 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가는 도덕적 위반에 관한 뉴스에 일상적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더 이상 도덕적 격노의 대상을 화형대에 세울 수 없기에 우리는 잘못된 행동에 대해 그들을 상징적, 혹은 평판적 차원에서 파괴한다.어떻게 주의의 자유를 주장하고 지킬 것인가우리의 주의를 포획하고 이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는 주의력 경제는 새로운 마음의 왕국이다. 저자는 그것과 우리는 현재 ‘주의적 농노제’의 관계이며 이를 재편하는 일은 두 가지 면에서 정치적 과제라고 설명한다. 하나는, 주의를 빼앗는 매체는 우리가 역사적으로 정치적인 문제로 받아들여 온 것을 이해하고 거기에 참여하는 렌즈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매체는 우리 자신을 포함해 모든 것을 바라보는 렌즈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의 주의와 삶을 인도하는 전제주의적 힘을 재편하지 않고서는 가치 있는 정치적 개혁을 이룩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저자는 또한 주의의 자유를 주장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 나아가 집단 차원에서 마치 방향을 잃은 배처럼 표류하기 전에 사회적·정치적 목표를 확실히 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술 설계자들도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는 것처럼 ‘설계자 선서’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저자는 이런 과정을 통해 기술 설계자들이 사용자의 존엄성과 주의, 자유를 존중하고 기술의 의도와 방법에 대해 사용자와 투명하고 정직하게 소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미래 세대는 외부 환경뿐 아니라 내부 환경에 대한 책임을 얼마나 다했는지를 기준으로 우리 세대를 평가할 것이다. 오늘날 위기는 지구의 기온 상승뿐 아니라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개인의 주의력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임무는 외부 환경을 재편하는 일뿐 아니라 우리가 중요한 것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도록 세상을 재편하는 일이다. 중요한 일을 하려면 우리는 먼저 중요한 대상에 주의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주의를 지키려는 의지와 힘이 강력할수록 우리는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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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자 없는 노동 - 플랫폼 자본주의의 민낯과 미세노동의 탄생 (커버이미지)
    [사회]노동자 없는 노동 - 플랫폼 자본주의의 민낯과 미세노동의 탄생
    • 필 존스 지음, 김고명 옮김
    • 롤러코스터
    • 2024-02-19

    자동화된 미래와 새로운 직업 세계 뒤에 숨은 잔혹한 진실!디지털 사회가 맞이하게 될 새로운 형태의 노동, 그 악몽 같은 미래“오늘날 디지털 사회를 가능케 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아니다.푼돈을 받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인간지능’ 작업이다.”인공지능 시대를 뒷받침하는 ‘보이지 않는 노동’과 지워져가는 노동자앞으로 우리는 인공지능의 도움 없이는 하루하루 살아가기 힘든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무인매장에 가면 따로 계산하지 않고도 자동으로 결제가 이루어지고, 자율주행차가 택시와 트럭 운전사를 대체하고, AI가 의사보다 더 정확하게 환자를 진단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될 것이다.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알고리즘이 우리의 신체와 공간, 사회를 칭칭 감고서, 마치 생각하는 기계처럼 작동할 것이며, 컴퓨터가 만들어낸 지능이 흡사 공기처럼 의식하지도 못할 만큼 당연하게 취급될 것이다. 하지만 이 환상의 눈부신 껍데기를 들추면 그 이면에는 소멸 직전까지 착취당하고 있는 비참한 노동자들이 있다. 풍요롭고 스마트한 세상,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 편리한 세상은 사실상 극소수 IT 공룡 기업이 내세우는 환상이거나, 닿을 수 없는 신기루이다. 이 책은 오늘날 스마트한 디지털 라이프를 가능케 한 원동력이 우리가 생각하는 최첨단 인공지능이 아니라 푼돈을 받고 육체를 갉아먹는 노동이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 검색엔진, 앱, 스마트 기기의 배후에는 언제나 노동자가 존재해왔으며, 이들은 글로벌 시스템의 변방으로 밀려나 인공지능을 훈련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단 몇 분, 몇 초 안에 끝나는 초단기 작업, 즉 미세노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끊임없이 취업과 실업의 상태를 오가면서 하루에 수십, 수백 개의 회사를 위해 일하는 “잉여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인공지능의 허상 뒤에 숨겨진데이터 노동자의 현주소세계 최대 난민촌인 케냐 다다브의 막사 안으로 한 여성이 걸어 들어간다. 여러 대의 컴퓨터가 설치되어 있는 이곳에서 이 여성이 하루 동안 하게 될 일은 도시에서 촬영된 동영상에 “집” “가게” “자동차” 같은 라벨을 지정하고, 짧은 녹취록을 만들고, 알고리즘에게 각양각색 동물 사진을 식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런 ‘클릭’노동은 작업 시간이 아닌 완료한 작업 건수를 기준으로 임금을 받기에 불안정하고 몹시 고되다. 하지만 번듯한 일자리를 찾기 힘든 이곳 주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극소수의 ‘공식’ 노동에 해당한다. 저자는 아프리카를 비롯해 라틴아메리카, 중동, 아시아 같은 범남반구에 위치한 저개발 국가들을 중심으로, 이른바 ‘클릭경제’가 바꿔가고 있는 오늘날 노동과 노동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플랫폼을 통해 불안정한 지위에서 수행하는 단순 작업 - ‘미세노동’에 의존하는 이들은 전 세계적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며 약 2000만 명에 이르고 있다. 미세노동을 중개하는 사이트 덕분에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기업이 바로 현대 자본의 총아인 아마존, 테슬라,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애플 등이다. 저자는 이들 기업이 어떻게 빠른 시간에 가공할 만한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해왔는지를 추적한다. 실제로 최근 몇 년 동안 구글, 아마존, 테슬라, 알리바바, 페이스북 같은 거대 IT기업이 가장 핵심적인 사업전략으로 키워온 것이 데이터의 상품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미세노동 중개 사이트를 통해 일하는 노동자가 늘어나는 현상은 화려한 21세기 자본주의의 성공신화와는 거리가 멀다. AI의 연산 인프라를 만드는 일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은 빅토리아시대 영국과 19세기 나폴리 거리에서나 볼 수 있던 충격적인 생존투쟁의 현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들은 인간이 아니라 연산 인프라로 취급받고 있으며, 초단기 데이터 작업 속에서 자신들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데이터가 플랫폼의 생명줄임에도 우리는 데이터가 생성되는 과정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우리가 아이폰을 볼 때 그 하드웨어는 눈앞에 실물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폰의 소프트웨어 속을 흐르는 데이터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그래서 데이터 역시 생산의 대상이라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다. (…) 인간의 손과 정신이 만들어낸 것을 영리한 기계의 작품으로 착각한다.” _본문 중에서노동시장 변화로 지워지고 짓밟히는 노동자21세기는 금융위기와 만성적 경기 침체 속에서 민주적 제도가 속속 붕괴하고 시시로 기후재앙과 긴축재정에 시달리는 시대다.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 수많은 노동자가 봉쇄령이나 감염에 의해 장·단기적으로 출근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자본 입장에서는 인간의 노동력이 얼마나 불안정한 수익 창출 수단인지 확인하는 기회로 삼았을 테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노동자가 대거 이동하며 고용이 정체된 현상에 대해 저자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다. 왜냐하면 2030년까지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전 세계 노동의 절반가량이 자동화될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예전에는 적절한 수준으로 임금이 지급됐던 일이 앞으로는 자연스럽게 비공식화되고 여러 건의 작업으로 쪼개져 건별로 형편없는 임금이 지급되는 불안정한 형태로 변질될 것이다. 심지어 임금과 권리의 기본 요건을 정해놓은 제도의 간섭도 받지 않게 될 것이다. “뉴욕의 작은 회사가 오늘은 나이로비에서 프리랜서 녹취록 작성자를 고용하고, 내일은 뉴델리에서 또 다른 프리랜서를 고용할 수 있다. 이때는 사무실이나 공장을 차릴 필요가 없고, 현지 규정에 간섭받지 않으며, 웬만해서는 현지에 세금도 내지 않는다.” _본문 중에서 이렇게 임금, 개인의 권리, 능력 등이 짓밟히는 현실이야말로 현재 자동화가 서비스업에 진짜로 끼치는 영향이지만, 자동화 시스템 도입을 주장하는 이론가들이 외치는 말들, 이른바 일자리가 전례 없는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자극적인 말들에 노동자들이 피부로 겪는 현실은 묻히기 일쑤다. 이 책에서는 이 같은 일자리 종말은 그저 연막일 뿐, 실제로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현실은 점점 더 많은 서비스직 일자리가 긱 노동, 미세노동, 크라우드 노동으로 변질되고, 심지어 그런 ‘일자리’란 것들조차 사실상 실직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이라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진격할 역사의 주체는 플랫폼 자본이 아닌 플랫폼 노동자가 될 것이다만일 노동이 놀이가 된다면, 그래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딱히 일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면 어떨까? 실제로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대부분의 미세노동 중개 사이트들은 세련된 청년들이 소파에서 노트북을 이용하는 사진을 걸어놓고 만일 우리의 멋진 신경제에도 여전히 노동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비디오게임을 하거나 옷을 사는 것처럼 재미있는 활동일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암시를 건다. 심지어 ‘노동’이나 ‘노동자’라는 표현이 이런 분위기를 망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오직 ‘이용자’ ‘작업자’ ‘플레이어’ 같은 용어를 사용한다.저자는 이런 행태야말로 미세노동을 마치 어떤 포부를 갖고 도전해볼 만한 멋진 일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노동과 놀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수법에 지나지 않으며, 노동의 정체성이 모호하게 느껴지는 이 시대에는 새로운 저항의 방식을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고 독자들을 설득해나간다. 오늘날 미세노동이 전 세계로 확산되는 현상은 그것이 건전한 노동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증거가 아니라, 앞으로 우리 모두가 처하게 될 위기의 불길한 징후로 봐야 하며, 이제라도 우리가 미세노동의 충격적인 생존투쟁 현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게 중요한 이유라고 설명한다. “플랫폼들이 기술적 경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첨단기업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계속해서 수익을 창출하려면 노동자들이 눈에 보이지 않고 서로에게서 단절돼야 한다. (…) 미세노동은 노동시장에서 노동자들이 서로 단절된 세상을 실현함으로써 노동조합, 노동자 문화, 노동자 보호 장치가 빠진 자본주의, 다시 말해 자본을 위협할 수 있는 노동자가 존재하지 않는 자본주의라는 신자유주의적 환상의 정점을 구현한다.” _본문 중에서 지금까지는 미세노동 사이트가 내건 공허한 약속 때문에, 혹은 비밀유지계약 등으로 재갈을 물리는 법적·소프트웨어적 장치 때문에 노동자들이 조직화되지 못하고 그 어떤 파업이나 집단행동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성장 둔화와 고용이 회복될 기미가 없는 시대에는 실업이 사라지지 않고 그저 허울만 바꾼 채 불안정성, 불완전 취업, 노동 빈곤의 상태가 그대로 유지될 게 분명하다. 그렇기에 앞으로 이들의 목소리는 단순히 일자리 보장, 임금 인상에만 머물지 않고 기본적인 생존권 요구(주거, 의료, 수도, 전기 등)로 자연스럽게 확대될 것이다. 지난 10년간 자본주의를 넘어 세상에 대한 유토피아적 상상을 한 사람은 많았지만 ‘과연 누가 그런 세상을 실현할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 책은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진격할 역사의 주체가 그동안 잉여로 간주되어온 수많은 사람들, 임금 노동의 언저리에 있는 플랫폼 노동자들에게서 터져나올 것이라 주장하며, 현재의 배제된 사람들에게서 시작될 투쟁이 좀 더 확실한 비전이 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 이 책의 구성1장 ‘실리콘밸리의 잉여’에서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인공지능 개발을 위해 어떻게 인력을 이용하는지, 그 실태를 낱낱이 파헤친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테슬라 등의 기업들은 노동자를 고용하는 대신 메커니컬터크나 클릭워커 같은 ‘미세노동 사이트’를 통해 초단기 작업을 대량으로 맡기고 거기서 이득을 취하는데, 이들 사이트에는 의뢰인의 신원이 명시되지 않기 때문에 어떤 기업이 어떤 목적으로 일을 맡겼는지 확인이 불가능하고, 무엇보다 필요할 때(초, 분, 시간 단위로 가능)만 노동력을 저렴하게 뽑아 쓸 수 있기에 기업들은 이런 장점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2장 ‘인공지능 혹은 인간지능?’에서는 인공지능 뒤에 숨겨진 은밀한 자동화 세계에 관해 살펴본다. 거대 IT 플랫폼 기업이 내세우는 자율주행차, 클라우드 컴퓨팅, 스마트 비서 등 최첨단 기술이 사실은 완전히 자동화된 시스템이 아니라, 저숙련 서비스 노동과의 긴밀한 공조 없이는 불가능하며, 문제는 이들의 노동이 실직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일자리’로 전락하여 임금, 권리, 능력 등이 무참히 짓밟히고 그 어떤 보호장치나 복지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3장 ‘서비스형 인간’에서는 현대의 플랫폼 자본주의가 과거의 자본 축적 체제들과 다르게 노동자들을 어떻게 포획하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미세노동이야말로 오늘날 전 세계에 펼쳐진 취업이라는 사막에서 기회의 오아시스가 아닌 신기루일 뿐이라며 구체적인 증거들을 제시한다. 더 나아가 미세노동의 현실이 무임금 생존 투쟁의 현실과 다른 점은 무엇인지, 미세노동을 통해 기술을 습득하고 혜택을 받을 수는 있는지, 미세노동이 연대와 조직화를 막고 있진 않은지 등에 대해 답을 찾아나가야 새로운 저항의 방식을 모색할 수 있다고 독려한다. 4장 ‘지워지는 노동자’에서는 생계를 위해 하루하루 미세노동을 전전하는 노동자들이 오히려 그 작업들 때문에 심각한 노동의 위기를 불러일으키는 아이러니한 현실에 관해 살펴본다. 사실상 미세노동 사이트가 목표로 하는 것 중 하나가 노동자들에게 노동 과정 전반을 감추는 것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을 서로에게서 떼어놓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인데, 저자는 오히려 이러한 미세노동의 특징이 자본주의 신화의 허망함을 폭로함으로써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암시하는 희망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5장 ‘미래는 배제된 사람들 손에 달렸다’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점점 중요해지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시도해볼 만한 실천 행동들을 제시한다. 20세기와 같은 노동운동을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한 지금, 기후재앙과 팬데믹이 자본주의 지옥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지금이야말로 오랫동안 희망이 없다고 여겨졌던 사람들에게 희망을 걸어야 한다고 말하여, 미래는 현재의 배제된 사람들의 손에 달렸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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