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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법 엄숙한 얼굴 (커버이미지)
    [문학]제법 엄숙한 얼굴
    • 지하련.임솔아 지음
    • 작가정신
    • 2023-12-27

    지하련과 임솔아가 함께 그려내는인간의 가장 진실한 표정외로움을 아는 사람의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얼굴 하나‘소설, 잇다’의 두 번째 책 『제법 엄숙한 얼굴』이 작가정신에서 출간되었다. ‘소설, 잇다’ 시리즈는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만남을 통해 한국 문학의 근원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다시, 또 함께’ 바라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제법 엄숙한 얼굴』에서는 지하련과 임솔아의 소설을 함께 실었다. 지하련은 1940년대 활발히 활동하며 식민지 지식인의 위선과 무기력을 지적인 언어로 분석하는 작품들로 당대의 주목을 받았으나, 임화의 아내이자 사상적 조력자로 좁게 해석되고 월북 이력으로 인해 우리 문학사에 충분히 기록되지 못한 작가다. 젊은작가상 대상, 문지문학상, 신동엽문학상 수상 작가 임솔아는 늘 우리 시대의 가장 치열한 질문을 쥐고서 특유의 단단한 언어로 우리 사회의 허위와 폭력을 직시해왔다. 임솔아가 일상의 작은 틈새를 담담하게 가리키는 동시에 그 균열의 근원을 좇아 탐구하는 방식과, 식민지 조선의 피폐를 끊임없이 관찰하면서도 기약 없는 절망이나 손쉬운 반성으로 빠지지 않았던 지하련의 회의는 서로 다른 시대임에도 매우 닮아 있다.이 책의 실린 「결별」(1940) 「가을」(1941)은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중심으로 가부장제의 모순과 억압을 예리하게 분석해내는 지하련의 작품 세계의 한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한편 「체향초」(1941) 「종매」(1948)에서 살펴볼 수 있는 지식인 혹은 전향자 ‘오라버니’와 ‘누이’의 구도는 실제로 그의 오빠들과 자신이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한 사실과 연관이 깊다. 그의 작품 속‘아내’와 ‘누이’는 지하련이 그러했듯 가부장제 속 여성으로서, 식민지하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매 순간 끊임없이 고민하는 인물들이다.임솔아의 소설 「제법 엄숙한 얼굴」의 제목은 「체향초」에서 가져온 것으로, 무기력한 지식인 오라버니와 대비되며“남성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려지는 태일이라는 지식인 청년의 인상을 주인공인 삼희가 묘사하며 등장하는 표현이다. 임솔아는 지하련이 예리하게 분석해낸 식민지 지식인 남성의 허위의식과 오늘날의 남성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약간의 다름과 미묘한 같음”(임솔아 에세이)에 주목하여 과거와 비교해 보다 교묘해지고 겹겹의 구조를 이루게 된 차별과 폭력의 양상을 소설 속에 탁월하게 그려낸다. 지하련과 임솔아는 모두 현실의 모순과 억압을 직시하면서도 비관에 머물지 않고, 소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움이 무엇일지 궁리하며 계속해서 움직여왔다. 지하련과 임솔아가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출발해 만들어낸 이 처음 만나는 길 위에서 우리가 새로운 길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후회하지 않는 얼굴…… 싸늘히 밝은 눈으로 행위했고그 눈으로 내일을 피하지 않는 얼굴”지하련의 누이와 아내 들이 똑똑히 말하는 사랑의 긍지, 이념의 고독지하련의 「결별」은 기혼 여성 형예가 친구 정희의 결혼식 축하연에서 보내는 하루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남편과 다툰 이후 자신이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인지 의심하던 형예는 결혼으로 들뜨고 순수한 성격의 정희와 예의바르고 차분한 면모를 지닌 그의 남편과 어울리며 우정과 사랑의 아름다움을 떠올리는 동시에 결혼 제도의 모순과 가부장제의 억압을 느끼게 된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온 형예는 일방적으로 소통을 차단하는 남편에게 모멸감을 느끼며 내면에서 진정한 ‘결별’을 이루게 된다.「체향초」는 주인공 삼희가 요양차 고향의 오라버니의 집에 머물며 오라버니와 오라버니의 친구 태일을 관찰하게 되는 이야기다. 오라버니는 낙향해 농사를 짓는 인물로 세상을 등진 지식인 혹은 전향한 사회주의자로 보인다. 삼희는 그에게 “생활표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끼며 좌절한 지식인으로서의 무기력과 패배 의식을 감지한다. 태일이라는 청년은 오라버니가 흠모하는 지식인으로 “생명과, 육체와, 또 훌륭한 ‘사나이’란 자랑”을 지녔다는 오라버니의 평과 같이, 무기력한 오라버니와 대비되는 특성을 지닌 인물이다. 그 자신도 지식인인 삼희는 두 남성을 곁에서 주의 깊게 관찰하며 당대의 식민지 지식인들의 위선과 모순을 예리하게 통찰하고 이를 넘어설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가을」은 친구의 남편 석재를 사랑하는 정예의 이야기가 석재의 시점을 통해 전개되는 소설이다. 병으로 아내가 세상을 떠난 이후, 석재는 오랜만에 찾아온 정예를 만나 지난날을 회상한다. 정예는 아내의 가장 친한 친구였지만 석재에게 만남을 청하는 등의 행동으로 아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 일종의 연적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며, 또 다른 복잡한 연애 관계에 대한 풍문 등으로 인해 석재에게는 병적으로 고백을 일삼는“고백병”을 지닌 불쾌한 인물로 여겨진다. 그러나 석재는“후회하지 않는 얼굴”을 하고서 그에게 자신의 진심을 솔직히 이야기하는 정예를 대면하게 되면서 정예의 용기와 긍지, 그리고 자신의 편견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된다.「종매」에는 병을 앓고 있는 철재라는 화가와 그와 함께 생활하게 된 세 명의 지식인 청년이 등장한다. 유학을 중단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석희는 사촌 여동생 정원의 부탁으로 사찰에서 철재를 간호하며 셋이서 함께 생활하게 된다. 이후 석희의 유학 시절 친구이자 야망을 지닌 청년인 태식이 절에 합류한다. 작은 암자에서 생활하는 병든 철재, 큰절에서 생활하며 화려함을 지향하는 태식, 그리고 이 둘 사이를 오가는 석희와 정원은 무기력하면서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긴장감을 지닌 “어떤 공동한 생활 분위기”를 형성한다. 소설은 이념과 가치에 대한 공통된 지향 없이 오로지 연민으로만 이어진 이들의 공동체를 통해 좌절하고 무기력한 지식인 집단을 환기시키며 계속해서 방황하는 석희를 중심으로 성찰을 요구한다.“저 인간은 외로움조차 모르는 것이다. 영원히 결단코 모를 것이다.”임솔아의 단단한 질문이 응시하는 겹겹의 모순과 위선임솔아의 「제법 엄숙한 얼굴」은「체향초」를 중심으로 지하련의 소설 속 인물들이 지닌 다양한 얼굴들을 담고 있다. 강릉에서 에어비앤비 청소와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국 동포 영애는 국적을 이유로 일터에서 계속해서 차별을 당하자 말투를 교정해 한국 사람처럼 보이도록 말하고 행동한다. 카페 사장 제이는 자신이 호주에서 인종차별을 받은 경험을 이유로 카페 창업 당시부터 중국 동포를 고용해야겠다고 계획 세우고 영애를 고용한 인물이다. 제이는 “당당하게 자신의 언어로 말하고, 정당한 임금을 받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표준말을 쓸 수 있는 영애에게 채용 조건으로 연변 말로 서빙을 할 것을 요구한다. 또 다른 인물인 수경은 카페 협력 업체 직원으로 제이의 요구로 매일 카페로 미팅을 나와 제이가 자랑과 우울을 ‘토로’하는 것을 들으며 고통을 겪는다. 어느 날 영애는 수경으로부터 미팅 시간에 일부러 사무실로 들어와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영애는 제이가 외로움을 털어놓는 순간의 모습을 목격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에 흔쾌히 응하고 제이의 우울에 대해 상상하며 자신이 지금껏 일을 하며 들어야 했던 자랑과 모욕 들을 떠올리게 된다. 제법 엄숙하지만 결코 진정한 외로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제이의 얼굴에서 우리는「체향초」의 오라버니와 태일이 반복해서 보여주는 허황된 자랑 그리고 그 뒤에 오는 씁쓸한 열패감을 읽어낼 수 있다. 임솔아와 지하련은 모두 이들의 모순적인 내면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물들이 그러한 표정을 짓게 될 수밖에 없는 차별적 구조와 폭력의 근원을 파고든다. 우리는 이들의 소설을 읽으며 수많은 맨스플레인, 자랑과 모욕 들을 차례차례 연상하는 동시에 모순되면서도 진실한 얼굴과도 같은 현실을 찬찬히 마주하게 된다.“그곳이 어디든, 지하련 작가가 더는 어느‘그늘’에 가려진 곳에 있지 않기를”지하련은 마지막 소설 「도정」(1946)에 이르러서는 “국내에서 발흥한 민주주의운동에 있어서의 양심의 문제를 취급한 거의 유일한 작품”(‘해방기념문학상’ 후보작 심사평)이라고 높은 평가를 받는 작가였지만, 오랜 시간 잊혀왔다. 임솔아는 수록 에세이 「약간의 다름과 미묘한 같음」에서 “한 명의 작가가 그늘에 가려진다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그의 글을 읽지 못하는 독자에게까지 그늘이 함께 드리워진다고 말한다. 이제 우리는 임솔아와 함께 지하련의 소설을, 그가 “‘그늘’에 가려져 있던 시간”까지 함께 기억하며 만날 수 있다. 오랫동안 임화와 월북 문인이라는 그늘에 가려져왔지만, 우리는 지하련의 소설 속 끊임없이 고민하는 인물들의 표정을 통해 엄혹했던 일제 말기, 해방정국에서 신념을 지키기 위해 저항하고 또 좌절하기를 반복했을 지하련의 떳떳하고 맑은 얼굴을 떠올릴 수 있다. 이제 다시, 지하련은 과거 속에서 그늘진 채 잊혀온 작가인 동시에 스스로 지켜낸 아름다움만으로 형형히 빛나며 끊임없이 새롭게 읽힐 미래의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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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곳에서 만나요 (커버이미지)
    [문학]좋은 곳에서 만나요
    • 이유리 지음
    • 안온북스
    • 2023-12-27

    달콤한 꿈과 서늘한 현실 사이서러움과 반짝임을 모두 머금은 아지랑이 같은 빛의 세계찰나의 순간, 생의 끝에 새겨지는 깊은 사랑의 흔적들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잃지 말자고 말하는 이 이야기들을, 나 역시 결국은 열렬히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_김초엽(소설가)202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작품 〈빨간 열매〉가 당선되며 등단한 이후 발표작마다 독자들로 하여금 ‘다음 작품을 더 기대하게 된다’는 평을 받아온 이유리 작가가 두 권의 소설집 《브로콜리 펀치》와 《모든 것들의 세계》에 이어 첫 연작소설집 《좋은 곳에서 만나요》를 안온북스에서 펴냈다. 앞서 발표된 작품들에서 불가해한 현실을 초월적 상상으로 맞서며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덤덤하게 특유의 낙관을 고유의 섬세한 묘사들로 납득시켜온 이유리 작가는 《좋은 곳에서 만나요》에서 한층 더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꿰어나간다. 작가는 고되고 고약하며 잔혹하기까지 한 인생에, 자신만의 위트와 세련된 문장으로 이유리식 희망을 새겨넣으며 마침내 독자들의 몸과 마음을 일으켜 세운다. 여기 실린 여섯 편의 소설은 서로 스쳐 지나는 찰나의 만남으로 얽힌 인물들이 자신의 죽음을 목도하며 비로소 진정한 무無 세계에 이르는 생의 마지막 순간을 담고 있다. 한 생 한 생, 소중하지 않은 인생이 없듯, 그 죽음들 하나하나가 애틋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 죽음의 순간이 전하는 애통함을 작가는 지독하고 세밀하게 묘사해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묵직한 문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생기 어리고 리듬감마저 띠고 있어 그 울림은 상당하다. 그리하여 독자들이 이유리 소설을 사랑하고 기다리는 이유를 다시금 알게 한다. “즐거울 일도 슬플 일도 없는, 오직 살아 있기에만 바쁜 나날”(〈아홉 번의 생〉)을 살던 주인공들이 갑자기 맞닥뜨린 죽음에서 느끼는 회의와 허망의 끝에서 우리가 다시 희망을 길어 올리게 되는 것은, 이 작품이 생의 끝에서 기어이 사랑하고 사랑받았음을 기억하게 하기 때문이다. 한 인생의 사라짐의 현장에서 펼쳐지는 회한과 그리움, 애틋함의 감정을 추스르며 우리는 이유리식 존재론적 성찰을 읽는다. 영원하지도 온전하지도 못한 생의 뒤안길을 사색하며 이유리 소설만의 다채로운 가능성들을 함께하길 기대한다. 사라지는 존재가 남기는 사라짐의 순간들나는 무엇보다 이 소설이 죽음과 삶을 말하면서도 섣불리 위로하거나 토닥이지 않는 소설이어서 좋았다. 이유리는 단지 찰랑이는 물결 위에 부서지는 수만 가지 빛의 조각들을 보여줄 뿐이다. 이렇게 잠시 반짝였다 사라지는 것들처럼 우리의 삶도 그런 것이라고. 영원한 것은 없다고. _ 김초엽(소설가)이유리 첫 연작소설 《좋은 곳에서 만나요》를 꿰는 주제는 죽음이다. 여기 모아진 작품들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을 남겨진 자의 시선이 아닌 오롯이 죽은 자의 시선으로 응시하게 한다.〈오리배〉의 신지영은 어느 날 갑자기 아빠의 납골당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가 빗길에서 갑작스런 사고로 죽게 된 뒤, 가족이 늘 이런저런 핑계로 찾던 한강의 오리배 선착장에 머물며 남겨진 엄마와 동생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산 사람에게 있어 죽음이란 타인에게 일어나는 일이지 온전히 자신의 것은 아니므로, 시간이 오래 지나면 언젠가는 그것을 버릴 수도 있게 된다는 걸” 알면서도 몇 계절을 지나도록 떠나지 못하고 기다린다. 〈심야의 질주〉의 택시기사 해남은 가족을 등지고 홀로 고독한 생을 살다 어느 날 갑자기 사고사한다. 자신이 무엇이 된 것인지 몰라도 죽어서도 무언가를 인지하며 지루하고 무의미한 나날을 지속해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할 뿐이다. 〈세상의 끝〉의 혜수와 지우는 유해한 세상으로부터 서로에게 안식처가 되어준다. 혜수는 지우와 함께 더 무해한 곳으로 가닿고 싶어 하고 지우는 그런 혜수의 슬픔을 다 품지 못해 영혼이 되어서도 마음이 아프다. 〈아홉 번의 생〉은 아홉 번까지 다시 살 수 있는 고양이의 전 생을 보여주며 몇 생을 거듭해 진정한 사랑을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원의 소녀〉는 ‘영원’을 증명해 보이겠다던 연인 정민이 떠난 후 남겨진 수정이 ‘영원은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벌이는 죽음의 사투를 그렸다. 〈이 세계의 개발자〉에서는 과로사한 뒤, 귀신의 몸으로 일어난 게임 개발자 예은이 개발자의 시선, 즉 창조주의 시선으로 ‘왜 이렇게 되었을까’의 해답을 찾고자 한다. 여섯 작품을 이어가는 동안 작가는 여러 인물의 안타까운 생을 엇갈리게 하는 가운데 망연히 맞게 되는 죽음과 허망함을 뿌려놓고는 마지막 작품에 이르러 이 세계의 개발자, 신의 존재를 향해 묻는다. ‘누구의 어떤 의도일까.’ 추천사를 쓴 소설가 김초엽의 말처럼 이 소설은 섣불리 위로하지 않으며, 한 생을 보여주고는 마침내 원하는 한 가지, 사금파리같이 빛나는 작은 한 조각을 얻고 떠나는 과정을 찬찬히 그린다. “잠시 반짝였다 사라지는 것들처럼 우리의 삶도 그런 것이라고” 사라지는 존재자가 사라짐의 존재를 증명해 보여준다.다채롭고 복잡하고 아름다운, 단 한 번뿐인 생을 위해누군가를 사랑하는 이가 해야 할 일은 사랑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수천만의 행운이 겹쳐 만들어낸 오늘을 최대한 즐기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 _〈아홉 번의 생〉한 사람의 죽음으로부터 비롯되는 삶과 죽음의 경계,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혼들의 이야기를 그리며 작가는 이 세계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 “사람은 죽어서 무엇이 되며 어디로 갈까. [……] 세상이 너무나 다채롭고 복잡하고 아름다워서, 한 번 머물다 가기에는 아무래도 아까운 곳이라서. 그런 의문은 이 세계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 세계를 이루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졌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눈 하나하나의 기쁨과 그 충만함을 가지고 “내 삶에서 얻은 황금 모래알을 작품 속에 사르르 뿌려 넣으며 이것이 소설가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이자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했을 만큼 재미있었다”(〈작가의 말〉)는 말을 통해 이유리의 소설이, 죽음을 말하는 이 소설들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를 새삼 깨닫는다. 크고 넓은 세상에서 세계는 무한히 반복되며 우리는 아주 짧은 찰나만을 겹친 뒤 다시 헤어진다. 그러한 생에서 원하는 것을 찾기는 어렵고, 이 세계를 계획한 창조주들이 남긴 버그로 인해 죽어서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영들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러나 이들은 “이상하게도 어떤 방식으로든 그걸 해내고 나서야 떠”나게 된다. 이 소설을 통해 우리는 “불완전함 속에서 완전해지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들을 다만 애정 어린 눈으로 끝까지 지켜”보게 된다. 《좋은 곳에서 만나요》가 다채롭고 복잡하고 아름다운, 단 한 번뿐인 생을 위해 꼭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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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엄마 학교 (커버이미지)
    [문학]좋은 엄마 학교
    • 제서민 챈 지음, 정해영 옮김
    • 허블
    • 2023-12-27

    ★★★★★오바마 대통령이 뽑은 올해의 책《뉴요커》, 《타임》 등 20여 매체 선정 올해의 책《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투데이 쇼〉,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 선정 도서2022년 미국 ‘올해의 책’을 휩쓴 문제적 데뷔작엄마-신인-작가의 첫 장편소설에 바랄 수 있는 모든 것“감시, 통제, 첨단기술을 소재로 마거릿 애트우드와 가즈오 이시구로의 계보를 잇는 동시에, 자신만의 주제를 설득력 있게 밀고 나간다.”_《보그》“좋은 문장, 흥미진진한 플롯, 사회에 대한 도발적 질문.”_《북페이지》2022년 12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올해의 책’ 리스트를 발표한다. 압둘라자크 구르나(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조지 손더스(2017년 부커상 수상작가), 제니퍼 이건(2011년 퓰리처상 수상작가) 등 기라성 같은 작가들의 작품 사이로 어느 신인작가의 작품이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 책은 《뉴욕 타임스》, 《뉴요커》, 《타임》, 《NPR》을 비롯한 유력 매체의 ‘올해의 책’에 연달아 선정되었고, 앤드루 카네기상, 펜/헤밍웨이상, 존 레너드상 등에 노미네이트되며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무명에 가까운 신인작가에서 단숨에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설가가 된 제서민 챈(Jessamine Chan)이 장편소설 『좋은 엄마 학교』로 국내에 첫선을 보인다.『좋은 엄마 학교』에서 작가는 크고 작은 아동보호법 위반을 저지른 엄마들을 가둬놓고, 실제 자녀와 거의 흡사한 인공지능 ‘인형’으로 교육하는 ‘엄마 학교’를 배경으로, 모성은 정말 본능인지, ‘좋은 엄마’란 어떤 엄마인지 잔혹하고, 우스꽝스럽고, 서늘하게 질문한다. 그곳에서 엄마들은 기저귀 갈기, 먹이기, 재우기 등 육아 기술부터 ‘불가능 없음’, ‘욕망 없음’, ‘자아 없음’ 등 사회에서 엄마에게 요구하는 터무니없는 덕목까지 교육받고, 평가받고, 강요받는다. 책의 추천사를 쓴 영화감독 김보라의 표현처럼, 독자는 그 과정에서 학교의 요구에 부당함을 느끼는 동시에 “엄마들이 교육과정을 무사히 마쳐 딸을 되찾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아이러니를 경험한다”.작품의 주인공 ‘프리다 류’는 많은 면에서 작가 제서민 챈이 투영된 인물이다. 여성으로서, 동양인으로서 겪은 차별, 대학교수였던 양친, 대학에서 논문 요약본 편집자로 일한 경험, “달처럼 동그란 얼굴”.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로서 딸 ‘룰루’를 낳고 기르며 느낀 감정이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문학전문 매체 《리터러리 허브》(Literary Hub)와의 인터뷰에서 챈은 출간 5년 전 소설의 초고를 완성했으나, “딸이 태어난 후 처음부터 다시 쓸 수밖에 없었다”라고 밝혔다. 생후 18개월 된 유아의 발달단계에 대한 묘사부터, ‘육아 노동’에 지쳐 사랑하는 딸에게 스치듯 느끼는 미움까지. 『좋은 엄마 학교』는 작가가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쳐 몸으로 쓴 ‘첫 책’이다.“내가 너한테 좋은 엄마였니?”엄마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그 질문‘좋은 엄마’의 진짜 의미를 묻다“‘좋은 엄마’에 대해 당당히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펼쳐보라. 좋은 엄마란 한 가지 유형으로 정의될 수 없으며 세상에 존재하는 엄마의 수만큼 무수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_백은선(시인)“사회적 압박과 변덕스러운 정책 변화 속 엄마들의 위태로운 처지를 악몽처럼 생생하게 표현했다.”_《퍼블리셔스 위클리》여기 ‘나쁜 엄마’가 있다. 이혼 후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하루하루 지쳐가던 30대 후반의 중국계 여성 프리다 류는 ‘지독하게 일이 꼬여버린 그날’ 18개월 된 딸 ‘해리엇’을 집에 둔 채 외출했다가 이웃의 신고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다. 딸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그녀는 자신이 좋은 엄마임을 증명하고자 집을 청소하고,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다른 사람을 일절 만나지 않고, 딸에게 넘치는 애정을 보여주지만, 그 노력은 오히려 “감당하기 버거운 상황”이라던 말을 반박하는 근거, 성격적 결함과 “애정에 굶주린 모습”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그러나 프리다가 반대로 행동했더라도, 도무지 엄마 역할을 할 수 없는 나태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낙인찍히지 않았을까?『좋은 엄마 학교』는 ‘좋은 엄마’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할 수 없는 허상이라는 점을 실로 다양한 방식으로 무대화한다. 재판으로 돌아가자. 사회복지사 ‘토레스’는 프리다가 딸 해리엇과 평소 어떻게 놀아주는지 확인하고자 ‘참관 방문’을 나온다. 그러나 낯선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은 해리엇은 놀이를 거부하며 제풀에 지친다. 이때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엄마다운 행동일까? 아이의 미래를 생각해 억지로라도 노는 모습을 연출해야 할까? 지친 아이가 당장 쉴 수 있도록 품에 안아주어야 할까? 둘 중 어느 쪽을 더 좋은 엄마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독자는 그 정답 없는 시험대에 나란히 서서 “엄마들의 위태로운 처지를 악몽처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된다.제시카 채스테인 TV시리즈 제작 확정계속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압도적 읽는 재미“‘내려놓을 수도 잊어버릴 수도 없는 소설.”_《미국도서관저널》“당신이 읽고 싶어 할, 당신이 읽어야 할 바로 그 소설.”_줄리아 필립스(소설가, 『사라진 대지』 저자)『좋은 엄마 학교』의 TV시리즈 제작 소식은 일찌감치 전해졌다. 크게 주목받은 소설 작품의 영상화 자체는 더 이상 놀라운 뉴스가 아니겠지만, 그 제작자가 배우 제시카 채스테인이라는 점이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에 보도되며 관심을 모았다. 평소 할리우드 남녀 배우의 출연료 격차 등 페미니즘 이슈에 발언을 아끼지 않은 그녀가 육아와 모성을 다룬 이 작품을 점찍은 것 역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나 선택의 이유는 결코 그뿐만이 아니다. 육아라는 소재를 가정이 아닌 가상의 학교를 배경으로, 인공지능 인형이라는 SF 소재로써, 비(非) 백인 주인공의 시점에서 풀어냈다는 점이 모두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가 재미있다!프리다가 ‘실제’ 딸 해리엇을 되찾으려면 ‘인형’ 딸 에마뉘엘에게 사랑을 주어야 한다. 여기서 작품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6개월간 못 본 해리엇과 영상통화를 하는 데 정신이 팔리면, 에마뉘엘을 외면했다는 이유로 처벌받는다. 반대로 에마뉘엘에게 좋은 엄마가 될수록 해리엇에게는 그러지 못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커진다. 작가는 풍부한 에피소드, 끝없는 딜레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클리프행어를 활용하며 노련한 곡예사처럼 독자의 마음을 쥐락펴락한다. 번역가 정해영은 〈옮긴이의 말〉에서 프리다가 “겪는 수난에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평화로운 순간에는 숨통이 좀 트이는 기분을 느꼈”으며, 동시에 “희망보다 비극적인 예감이 들었”다고 말한다.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국가‘임신중지권 판결’ 폐기 이후 펼쳐질 육아 디스토피아“‘치맛바람’에서 ‘맘충’까지 ‘그런 엄마들’에 대한 흉흉한 소문으로 가득한 한국에서, ‘좋은 엄마 학교’는 디스토피아 소설 속 장소가 아닌 현실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_김보라(영화감독)“육아에 대한 참견이 국가적 차원의 감시로 확장된 사회를 다룬다.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 번복을 고려하면 한 편의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가까운 미래의 예고편처럼 보인다.”_《뉴욕 타임스》한국 사회에서 엄마들의 처지는 소설과 다르지 않다. 한편에서는 ‘비정한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다른 한편에서는 ‘극성스러운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매일같이 보도된다. 버릇없는 아이와, 아이를 그렇게 만든 ‘잘못된 육아’에 대한 참견은 국민적 오락거리가 되어 전파를 탄다. 2021년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출생아 100명당 여성 21.4명, 남성은 불과 1.3명만이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OECD 회원국 중 최하위 기록이다. 육아 여건에 대한 구조적 개선 없이 비난의 화살은 ‘나쁜 엄마’만을 향한다. ‘독박육아’와 “집 안에만 있으면서 아이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냐?”라는 질문 사이에서 엄마들은 자신들이 좋은 엄마가 아니라는 부채감에 시달린다.소설은 종종 가까운 미래를 예언한다. 미국 출간 약 6개월 후, 연방대법원은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49년 만에 폐기했다. 50개 주 가운데 절반 이상에서 임신중지를 금지하거나 엄격히 제한할 것으로 예상된다. 흔히 임신·출산·육아를 ‘임출육’으로 묶어 부른다. 여성은 원치 않는 임신으로부터 한 번도 자유로웠던 적이 없고, 법은 여성이 스스로 출산을 결정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육아에까지 국가적 통제가 강화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선명해진다. 좋은 소설은 언제나 가까운 미래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좋은 엄마 학교』는 질문한다. 모성을 획일적으로 평가하는 일이 가능한가? 좋은 엄마란 대체 어떤 엄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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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 (커버이미지)
    [문학]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
    • 브라이언 무어 지음, 고유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12-27

    가난하고 나이 든 너희 중에 사랑을 구하는 자는죄가 없이도 세상의 벌을 받으리라아무도 그녀를 미워하지 않는다다만 아무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뿐이다*1955년 영국 작가 클럽 선정 ‘올해의 데뷔 소설’*영국 「가디언」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1,000권’ 선정*2019년 BBC Arts ‘가장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설 100선’ 선정*매기 스미스 주연 영화화(1987)*국내 초역1950년대,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 주디스 헌은 40대에 접어든 독신 여성이다. 그녀는 마치 형벌을 받듯이 세상의 무관심 속에 버려져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의 냉정하고도 자연스러운 이치였다. 가난하고 나이가 많고 못생긴 그녀는 세상이 원하는 가치를 하나도 지니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40대는 아직 희망을 다 버릴 수는 없는 나이이고, 어쩌면 그 희망이 그녀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하숙집에서 만난 중년 남성에게 반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오해가 있었고, 그 오해는 겨우 세상 끄트머리를 붙잡고 있던 그녀를 무너뜨리려 한다.『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이하 ‘주디스 헌’)』은 실제로 벨파스트 태생인 작가 브라이언 무어가 1955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출간 당시 영화사들이 판권 경쟁을 벌였을 정도로 드라마틱한 이 작품의 정점은 바로 주인공 주디스 헌의 캐릭터다. 심지어 출간 이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디스 헌은 입체적인 캐릭터의 전범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뉴욕 타임스는 현대 소설에서 거의 만나 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캐릭터라고 평했다).그녀는 ‘거의 무고한’ 인물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것들을 들어주다가 자신의 바람과 욕망을 충족할 기회를 날려 버렸을 만큼 소심하고 선한 사람이다. 명백한 운명의 희생자다. 그러나 브라이언 무어는 그녀를 쉽게 응원하거나 동정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혼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던 그녀는 공상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으며, 다 억누르지 못한 시기와 증오를 종종 터뜨리고, 알코올 의존증이 있다. 살아온 사정을 감안하면 큰 흠결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친해지고 싶지는 않은 사람. 주디스는 미워하기보다는 모른 척하고 싶은 인물이다. 친해지기에는 불편하고 방치하기에는 미안한, 그래서 그냥 없는 셈 치고 싶은 사람. 설득력 있게 구축된 주디스의 캐릭터는 소설 속 인물들은 물론 독자까지 딜레마에 빠뜨린다. 무고하지만 불편한 자를 어떻게 환대할 것인가. ‘환대받을’ 자격은 누가 어떻게 부여하는가.브라이언 무어는 여러 장치를 통해 이 씁쓸함을 증폭시킨다. 특히 전지적 시점과 인물들의 내면 독백을 오가는 서술이 인상적이다. 이 서술 방식은 뜨거운 편견으로 가득한 인물들의 내면과 잔인하리만치 차가운 현실을 교차시키면서 둘 사이의 강렬한 대비를 선보인다. 또한 북아일랜드의 흐리고 습한 풍경을 묘사하는 문장들은 담백하게 느껴지면서도 깊이 가라앉아 있다. 이처럼 작품 속에 삽입된 소설 기법들은 버려지는 자의 외로움이라는 주제를 강화한다는 목적에 완벽히 부합하고 있다. 『앵무새 죽이기』를 쓴 하퍼 리가 이 작품을 일컬어 ‘소설이 추구해야 할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마치 유행어처럼 연대와 환대를 말하는 시대에, 그러면서도 ‘우리끼리’를 말하는 시대에, 『주디스 헌』은 그 ‘우리’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1955년에 제기된 이 질문은 지금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소설가 존 밴빌은 이 작품이 ‘여전히 신선하고 가슴 아프게 읽힌다’고 말했는데, 어쩌면 그 평가는 (이 작품과 더불어) 오늘의 세상을 향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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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거나 죽이거나 - 나의 세렝게티 (커버이미지)
    [문학]죽거나 죽이거나 - 나의 세렝게티
    • 허철웅 지음
    • 가디언
    • 2023-12-27

    <라이온 킹>보다 치밀한 스토리, <정글북>보다 생생한 묘사!치열하게 살아가되 승자도 패자도 없는, 불꽃 튀는 삶의 현장 세렝게티로 초대.“듣도 보도 못한 기발한 소재와 설정!” “동물의 시선에서 묘사되는 게 신선하고 새로워요!” “몰입감 최고! 몇 줄 읽고 바로 세렝게티로 갔다 왔어요!”이미 맛보기 연재에서 독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헐리우드가 만든 <라이온 킹>, <정글북>에서나 볼 수 있었던 먹고 먹히는 날것 그대로의 세계를 마침내 우리도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치밀한 스토리에 생생한 묘사는 순식간에 작품 속에 빠져들게 한다. 이 소설은 세렝게티의 대표적 포식자인 육식동물 사자와 대표적 먹이동물인 초식동물 누에 관한 얘기다. 사자는 누보다 한 걸음이 빨라야 살아갈 수 있다. 누는 사자보다 한 걸음이 더 빨라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아름답게만 보이는 자연이 가혹하게 묶은 운명의 끈이 그렇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육식동물인 포식자의 세계는 그 안에 또 다른 체계의 먹이사슬과 비극이 있다. 사냥감인 초식동물의 세계에도 납득할 수 없는 위계가 작동한다. 서로 연대하고 돕는 게 아니라 죽거나 죽여야 지탱하는 우리의 삶은 자주 약육강식의 세렝게티와 별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다른 목숨을 취하며 평생 포식자로 살아야 하는 삶이 버거운 사자 디씸바와 평생을 쫓겨다니며 마침내 잡아먹히는 운명을 거부하려는 누 응두구 형제들, 그 운명의 끝이 맞닿아 불꽃 튀는 현장 세렝게티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한 걸음 빨라야 살 수 있는 사자와 한 걸음 더 빨라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누’.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잔혹하되 경이로운 세렝게티, 그곳이 지금 우리 삶에 큰 울림을 던진다!오래전, 어머니는 평원에 빼곡한 사냥감들을 가리키며 우리 종족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다.“저들은 우리보다 한 걸음만 빨리 달리면 살 수 있다. 우리는 저들보다 한 걸음이 더 빨라야 목숨을 이어갈 수 있지. 이 한 걸음을 위해서 저들은 저들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쓰는 거다.” - 본문아프리카의 세렝게티, 마사이마라 평원, 마라강, 킬리만자로 등을 배경으로 천적 관계인 사자(육식동물)와 누(초식동물)의 ‘본능과 생존, 삶과 죽음, 권력과 정치, 우정과 갈등, 애정과 이별’을 그려낸 기발한 소재의 소설이 출간되어 독자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인간 중심의 흔하고 상투적인 서사 구조에 식상한 독자라면 야생의 약육강식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스토리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것이다.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히 동물의 세계를 다룬 것이 아니다. 천적 관계인 사자와 누를 의인화함으로써 그들에게 닥친 운명과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다양한 존재 방식을 아프리카의 세렝게티를 소설 공간으로 설정하여 이국적인 배경과 함께 독자의 상상력이 최대한 확장되도록 구성하였다.전체적으로는 천적 관계에 속한 각 주인공의 영웅적 서사가 큰 뼈대이지만 여기에 자연과 운명, 삶과 죽음, 존재의 문제 등 무거운 주제가 세렝게티의 장대한 풍광 묘사와 잘 어우러져 있다. 각 장마다 사자와 누의 서사를 교차하고, 두 주인공이 조우하는 접점을 만들어서 극적인 긴장을 유지하는 치밀한 구성력에서는 저자의 문학적 내공에 감탄하게 된다. 무한의 생존투쟁 현장이 치밀하고 팽팽하게 묘사된 문장력은 독자를 단숨에 대자연 아프리카 초원 한복판으로 데려다줄 것이다.소리 없는 전쟁터 정치판에서 27년 동안 숙성시켜 더 깊어진 통찰!“잡아먹는 자의 감사와 자비, 먹히는 자의 용서가 만날 수 있는 세상을 그려내고 싶었다.”저자 허철웅이 세렝게티의 이국적인 배경과 동물 다큐 중에서 선호도가 가장 높은 천적 관계인 사자와 누를 주인공으로 장편을 써보겠다고 처음 달려든 게 1996년. 신춘문예에 당선되자마자 작정하고 매달렸음에도 27년 동안 헉헉대다가 5번을 뜯어고치는 산고 끝에 소설 《죽거나 죽이거나 – 나의 세렝게티》로 돌아온 그의 일성은 “독자들이 보여줄 시선이 두렵고 낯설지만 코끝에 전해지는 공기는 참 상쾌하다.”였다. 많은 뉘앙스가 묻어 있는 이 말은 그의 특이한 이력을 보면 이해가 된다.등단하고 소설가로서의 삶을 꿈꾸던 그는 팔자에도 없는 정치 스캔들에 휘말려 17대 총선을 시작으로 약육강식의 끝판왕인 여의도에 터전을 잡아야 했다. 이후 정치선거 기획사, 독립 프리랜서로 30여 차례의 각종 선거 현장을 누비며 서식했다. 정치인들끼리 다투다 불쑥, “소설 쓰고 있네.”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질 때, 글 대신 정치판에서 밥을 먹고 살고 있는 그로서는 “지들이 소설을 알간?” 하고 속을 삭여야만 했다. 그런 그에게 여의도는 삶과 죽음, 권력과 정치, 우정과 갈등, 애정과 이별 등이 펼쳐지는 리얼한 세렝게티였다. 드넓은 평원에서 풀을 뜯는 초식동물의 세계는 평화로워 보인다. 그러나 누군가 잡아먹히는 희생이 뒤따라야 살 수 있는 그들의 생존은 그래서 상식 밖의 정치가 작동한다. 다른 목숨을 빼앗아야 살아갈 수 있는 육식동물의 세계는 힘에 의해 작동하는 비정한 약육강식의 법칙이 가혹하다. 이것이 자연이 만들어놓은 ‘죽거나 죽이거나’ 해야만 생존이 가능한 운명의 사슬이라 할지라도 저자는 ‘생명 하나하나의 소중함을 서로 존중하는 세상이 되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이 소설에 녹여내고 싶었다. 그가 꿈꾸는 세상은 한마디로 ‘잡아먹는 자의 감사와 자비, 먹히는 자의 용서가 만날 수 있는 세상‘인 것이다.모두가 포식자들의 날카로운 발톱에서 무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하나의 생명이라도 허투루 소멸하지 않고 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래서 이 세렝게티에서의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이 단순하고 간단한 절차를 새로 만들기 위해 삶을 송두리째 바친 이들이 있었음을 기억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었다.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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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 보는 남자 (커버이미지)
    [문학]집 보는 남자
    • 조경아 지음
    • 안전가옥
    • 2023-12-27

    “지금 어떤 집에 살고 있나요?”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 작가 조경아의 신작 장편소설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던 조경아 작가가 신작 장편이자 안전가옥 오리지널 28번째 소설 《집 보는 남자》로 돌아왔다. 《3인칭 관찰자 시점》이 범죄자 가족의 이야기를 여러 관점에서 들여다보며 인간 본성에 깃든 악을 성찰했다면, 《집 보는 남자》에서 작가는 평범한 동네에서 일어나는 의문의 죽음을 추적하는 주인공 테오의 특별한 능력을 통해 평범해 보이는 집과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하며 우리의 삶 속에 숨어 있는 그늘과 어둠을 꺼내 더 깊고 넓게 확장해 보여준다. 테오, 집을 ‘보는’ 남자 “신발 사이즈와 옷의 크기로 봤을 때 신장은 172~175센티미터 사이의 남자. 혼자 살고 있지만 집에선 잠만 자는 수준. 작업복과 집의 먼지 농도를 봐선 공사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것으로 보임. 바닥에 널브러진 음료수병과 화장실 변기에서 이상한 단내가 나는 것을 보아 당뇨병을 앓고 있을 확률도 높음. 달력이 아직 작년에 머물고 있는 것을 보니 늦어도 작년 6월 이전에 이사를 온 것으로 추정됨.” _본문 중에서소설 《집 보는 남자》의 주인공 테오는 평범한 사람들의 기준에서 봤을 때 무척 이상한 사람이다. 남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지내며, 취미는 마당 텃밭에서 토마토를 키우는 것이고, 좋아하는 음식도 토마토뿐이며, 멀쩡한 집을 놔두고 하루 종일 어두운 차고에 처박혀 지내는 데다가, 극도로 예민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런 테오에게도 특별한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집을 ‘보는’ 능력이다. 테오는 집에 사는 사람을 만나지 않고도, 집 안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만으로 이 집에 누가 사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다. 집의 상태와 집주인의 흔적을 예민한 감각으로 받아들여 데이터화한 후 집주인의 생각과 행동을 읽어 내는 것이다. ‘녹색 대문 집’에서 집주인의 시체를 발견하고 탐정처럼 현장을 누비고 다녔던 것도(7장), ‘대저택’에서 전 집주인이 아들에게 물려준 숨겨둔 보물을 찾아낸 것도(11장), 그리고 모든 것이 뒤틀려 있던 ‘진주 아파트 110동 703호’의 어두운 가족사의 비밀을 밝혀낸 것도(9장) 모두 그 능력 덕분이었다. 하지만, 테오가 집을 보러 다니는 바로 그 시간대의 지척에서는 연고자가 없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죽어 나가고 있었다.평범한 동네에서 일어나는 의문의 연쇄 죽음,그 죽음을 추적하는 집 보는 남자 테오의 부동산 휴먼 미스터리처음에 테오는 동생이자 불청객인 고희를 자신의 아지트에서 내보내기 위해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하지만, 차츰 집을 보러 다니는 일 자체에 흥미와 재미를 느낀다. 그러다 예상치도 못한 연석동 연쇄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그러던 중 자신에게 ‘집을 보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편, 테오는 ‘녹색 대문 집’에서의 약물 살인과(7장), ‘하얀 집’에서의 황린을 이용한 폭발 테러 살인(12장), 그리고 ‘고양이 할머니네 집’에서의 주사기를 이용한 할머니와 고양이들을 향한 무자비한 살인(13장)까지, 무연고자 살인 사건을 계속해서 추적해 나가면서 연석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살인극의 비밀에 점차 가까이 다가간다. 하지만 바로 그때, 누군가의 신고로 인해 테오는 용의자로 특정되어 경찰서에 끌려가는데…….‘집’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여러 사건도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흥미진진하지만,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매력과 이들의 케미는 소설의 재미를 더욱 높인다. 테오를 이용해 사업 아이템을 구상 중인 친화력 갑 동생 고희와, 오피스텔에서 쫓겨나 무작정 테오를 찾아온 괴짜 유튜버 명석, 그리고 테오에게 같이 일하자고 먼저 손을 내민 부동산계의 셀럽 임서라, 끝으로 테오가 연석동 연쇄 살인의 유력 용의자라고 생각하는 형사 제영까지. 여러 사건과 인물들이 어우러지는 무섭고도 따뜻하며 씁쓸하면서도 애잔한 이야기 속에서 과연 테오는 연쇄 살인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연석동에 평화를 되찾아 줄 수 있을까?‘집’이란 우리에게 무엇일까? 집은 그 어떤 곳보다 우리의 본모습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며, 세상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숨길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들의 집은 여러 가지 의미로 위태로운 공간이 되어 가고 있다. 집의 값어치가 손에 닿기도 어려울 정도로 커져서 그 무게에 평생 짓눌리거나, 집에 대한 탐욕으로 사기를 치고 당하면서 또 누군가는 인생의 나락을 경험하기도 한다. 집이 나인지 내가 집인지 모를 정도로 우리가 집이라는 곳의 가치를 혼동하고 있는 요즘, 어쩌면 나는 점점 더 위태로워지고 있는 우리들의 집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누군가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_작가의 말에서오늘날의 ‘집’이란 마음 편히 먹고 자며 쉴 수 있는 개인 혹은 가족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자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닌 부동산이기도 하다. 안전한 공간이어야 하는 집이 어느 순간부터 위태로운 공간이 되어 간 건 오늘내일의 일이 아니다. 분명한 건 ‘집’이 무너지면 삶이 무너지고 점점 안 좋은 쪽으로 일상이 변화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집 보는 남자》 속에 나오는 집들 또한 대부분이 사회에서 외면받은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게 죽어 가는 공간이다. 아무도 선뜻 보려고 하지 않는 냄새나고 지저분하며 끔찍하게도 보이는 그 공간으로 오직 테오만이 선뜻 발을 내딛는다. 그리고 우리에게 보여 준다. 여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고. 사람이 살았었다고. 테오를 통해 나의 집을, 그리고 우리의 집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집 보는 남자》는 소설로서의 자신의 몫을 다한 게 아닐까?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부동산이 아닌 순수한 의미로서의 ‘집의 소중함’에 대해, 그리고 그 안의 자리한 ‘삶의 귀함’에 대해 말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어떤 집을 좋아하세요?”라는 테오의 물음에 우리는 과연 어떤 답을 내놓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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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지 않는 여자들 (커버이미지)
    [문학]참지 않는 여자들
    • 자일리 아마두 아말 지음, 장한라 옮김
    • 율리시즈
    • 2023-12-27

    2020 고등학생 공쿠르상 수상작프랑스 13만 부 판매, 전 세계 20여 개 언어로 번역 출간!단 세 편의 소설로 ‘프랑스 올해의 작가’에 오른아프리카 소수민족 출신 여성 작가의 이례적인 성취아프리카 문학계의 독보적 작가, 자일리 아마두 아말의 문제작!‘참는 것만이 여자의 미덕’이라는 규율에 저항한 세 여성 이야기 서로 얽힌 세 가지 운명, 세 여성의 중창으로 이뤄진 소설은 사랑하는 사람과 강제로 떨어져 나이 많은 부자와 결혼하게 된 어린 람라와, 사촌과 꼼짝없이 결혼하게 된 람라의 이복자매 힌두, 남편의 두 번째 부인으로 들어온 람라를 포용해야 하는 사피라의 운명을 톺아본다. “인내하라!” 이것만이 주변 사람들이 건네준 유일한 조언이다. 알라의 뜻을 거스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므로. 서아프리카 속담처럼 ‘인내의 끝에는 하늘이 있나니.’ 그렇지만 그 하늘이 지옥으로 변해버린 세상에 순종할 수 없는 세 여자는 어떻게 자유를 찾아 나설까? 강요당한 결혼, 부부 간 강간, 만연한 사고방식과 일부다처제까지, 서아프리카 사헬 지역 여성이 처한 현실을 고발하며 여성에게 벌어지는 폭력에 관한 보편적인 문제의식을 일깨운 소설.■ 강요된 운명: 인내와 복종, 적대적 경쟁 무슬림 여성들이 겪는 비극을 들춰내는 날선 묘사 1,200만 명 이상의 소녀들이 매년 강제로 결혼한다. 그들 다섯 명 중 한 명은 그 연령이 18세 이전이다. 소녀들은 어린 시절과 교육받을 권리를 도둑맞고 미래를 꿈꿀 자유 또한 박탈당한다. 종종 폭력과 성적 학대로 이어지는 강제 결혼은 인권 침해로 간주되며,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위반한다.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사람은 인종, 국적, 종교 등의 제약 없이 결혼하고 가정을 꾸릴 권리가 있다. 결혼은 배우자의 자유롭고 완전한 동의가 있어야만 성사된다’라고 명시하고 있으며(제16조), 여성에 대한 폭력과 가정 폭력을 예방·퇴치하는 유럽평의회 협약 또한 강제 결혼을 금지하고 있다(제372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제 결혼은 여전히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행해진다. 이 소설의 배경인 사하라 사막 경계에 위치한 사헬 지역 또한 그러한 관행이 만연한 곳이다. 소설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람라, 힌두, 사피라 세 여성이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가운데 독자는 그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들이 겪는 고통과 시련은 저마다 상황도, 강도도, 유형도 다르지만, 바탕에는 모두 동일한 뿌리, 즉 강요된 결혼이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한다.어린 시절부터 소녀들은 지역 사회에서 가족을 자랑스럽게 만들기 위한 도구로 길러진다. 위엄 있고, 명예롭고, 인내심 있는 여성이 되도록 사회화된다. 그중에서 인내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자 규율로서 종교와 삶, 결혼의 중심을 차지한다. 때로 재기발랄한 개성과 재능이 발현되는 아이가 보이면 협박하고 굴복시켜 체념하고 순응하게 만든다. 이 책의 첫 번째 주인공인 람라는 약학을 전공해 약사가 되고픈 꿈을 꾸지만 모두의 비웃음을 사고 50대 사업가의 두 번째 아내로 보내진다. 사헬 지역의 아이들은 부모의 자식일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의 공동 자식이다. 그러므로 백부와 숙부들에게는 조카의 남편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작가는 ‘어린 딸을 누구에게 시집보낼 것인가’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부모의 선택, 그 결정에 대한 가족의 동기와 관심, 결혼식, 일부다처제, 아내의 일상, 폭력, 슬픔, 불가항력을 묘사한다. 서아프리카 무슬림 지역 여성의 일상과 그들이 처한 가혹한 상황을 통해 독자는 이들이 고수해온 전통과 관습의 굴레를 가늠할 수 있다. 이는 2022년 마흐사 아미니의 사망으로 촉발된 이란의 히잡 시위를 비롯해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가족 간 명예살인 등이 어디에 뿌리를 둔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하다. ■ 아프리카 문학계의 독보적 작가, 자일리 아마두 아말 세계가 주목하는 신예를 반기는 이유첫 소설 《왈란데: 한 남편을 공유하는 법》으로 단숨에 아프리카 문학계의 독보적인 작가로 부상한 자일리 아마두 아말은 카메룬 북부 마루아 출생이다. 그녀 역시 17세에 강제로 결혼하여 사헬 지역 여성들의 고된 삶을 고스란히 겪었다. 가정 폭력과 일부다처제에 저항하면서, 북부 카메룬 여성의 교육과 발전을 위한 단체 ‘사헬의 여성’의 수장으로 활동하며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가 된 배경이다.2017년에 발표한 《인내의 눈물》이 아프리카 전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2019년 최고의 아프리카 작가상’, ‘제1회 오랑주 아프리카 도서상’을 수상하자, 이를 주목한 프랑스에서 유럽권을 대상으로 출간한 것이 이 책 《참지 않는 여자들》이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만 13만 부가 팔렸고, 전 세계 20여 개 언어로 번역 출판되며 ‘2020년 고등학생을 위한 공쿠르상’을 수상한다. 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는 《참지 않는 여자들》은 이후 영미권, 프랑스어권 국가들이 중고등학교 커리큘럼에 포함시키는 등, 청소년들을 위한 텍스트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공쿠르상 수상 후 국민작가 대우를 받으며 카메룬에 금의환향한 작가는 자신의 수상이 갖는 의미를 이렇게 피력한다.“소설에서처럼 조기·강제 결혼을 경험하지 않는다 해도 전 세계 여성은 다른 형태의 폭력을 경험한다. 신체적, 정신적 폭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폭력의 주체는 보편적이며, 대부분의 경우 여성들은 침묵한다. ……이렇게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함으로써 나의 활동은 가시성이 높아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국제적으로도 여성의 지위를 더 옹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카메룬 트리뷴》과의 인터뷰 중에서이후에도 여성의 권리를 위한 활동에 주력해온 아말은 2021년 3월 유니세프 대사로 선정되었고,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스위스 일간지 《Le Temps》가 선정한, 양성평등에서 주목할 10인 중 한 명이 됐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2021 문화 영향력 여성상’을 수상했고, ‘2021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다. 작가는 2022년 신작 《사헬의 심장》을 발표하며 변함없는 행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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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록은 어디에나 (커버이미지)
    [문학]초록은 어디에나
    • 임선우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12-27

    존재를 벗어나는 기적 같은 만남저마다의 초록을 품은 따뜻한 슬픔의 모습들“나는 심혈을 기울여 적당한 크기의 슬픔을 하나 골라냈다. 그것이 담긴 작은 유리병을 선인장과 함께 건네주었다. 돌을 밖으로 꺼내는 순간 슬퍼질 거야.”임선우 소설집비로소 물을 찾은 고래와 사막으로 돌아온 낙타,상실과 결핍을 메우는 만남과 서로에의 진입「초록 고래가 있는 방」은 두드림과 응답으로 서로의 넘나듦이 이루어지는 소설이다. 만남과 교감이란 보편적 키워드가 떠오르겠지만 이것이 범상하게 펼쳐질 리 없다. 작가는 아파트 누수로 인해 윗집 문을 두드리는 여자의 앞에 거대한 낙타를 등장시킨다. 말도 하고 곤란해도 하고 협상도 하는 낙타를. 조금은 당황했지만 누수공사를 위해 자연스럽게 낙타를 집에 들이는 여자처럼, 독자는 어느새 단봉낙타 한 마리를 마음속 ‘그럴 수도 있지’ 방에 슬며시 들이게 된다. “늑대 인간이랑 비슷하게 낙타 인간이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 네, 보름달이랑은 상관없지만. (……) 태어날 때부터 낙타 인간이었나요? 아니요. 사 년 전에 처음 변신한 뒤로 가끔 이래요. (……) 처음에는 덩치가 워낙 크고 사족보행이라 힘들었는데, 이제는 하고많은 동물 중 낙타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낙타는 무엇이든 잘 버티는 동물이니까. 낙타가 되면 무엇이든 잘 버티게 되나요? (……)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낙타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21쪽)슬픈 사연으로 모습이 변한 건 낙타만이 아니다. 실패를 겪고 절망에 빠져 스스로를 술독에 빠트리고 타인으로부터 격리한 여자는, 자처해 갇힌 방에 낙타를 들이며 희한한 위로를 받는다. 자신을 미워하던 초록 고래는 그렇게 낙타의 부름으로 느리게 헤엄치기 시작한다. 누수가 생긴 틈은 메워질 것이고, 고래는 아니 여자는 비로소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을 것이다. 뜨겁게 흐르지 못해 차고 단단해진어느 슬픔이란 물질에 관하여「사려 깊은 밤, 푸른 돌」에는 슬프면 눈물을 흘리는 대신 돌을 토하는 여자가 등장한다. 여자의 입에서 나온 점액질로 둘러싸인 동그랗고 푸른 돌멩이엔 불안과 아픔이 응축돼 있고, 그것은 전염성을 지녀 주위의 사람을 슬프게 만든다. 비유가 아닌 말 그대로 ‘슬픔을 토한’ 여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돌멩이를 병에 넣어 밀봉하는 것.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복수를 위해 전해진 돌이 예상치 못한 관계의 점액질이 된다. “우는 동안에는 이상하리만치 속이 시원했다고 했다. 곪았던 게 다 터져 나오는 느낌이랄까. (……) 희조의 슬픔은 희조 내면 어딘가에 고여 있다가 뜻밖의 방식으로 분출된 듯했다. 그런 식으로 돌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는 건가, 하고 생각하던 중 희조가 나에게 물었다. 그러면 내가 지금 느끼는 슬픔은 내 것이 아닌가? 네가 슬퍼지는 순간부터는 네 슬픔이지. 내가 대답했다.” (72쪽)사실 여자가 돌을 토하게 된 건, 곁에 있던 이의 상실 때문이었다. 현실을 부정하고 헛된 희망을 품던 마음이, 그 고통이 어느새 차고 단단한 돌이 된 것. 그것을 토하면 슬픔은 멀끔하게 사라져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는데, 여자가 돌을 토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찾아온다. “희조의 얘기를 듣다가 돌을 뱉었던 날, 나는 희조의 슬픔에 조금도 가닿을 수 없었다. 희조의 얘기를 들으며 차올랐던 감정은 돌을 토하는 것과 동시에 차게 식어버렸다. (……) 따뜻함이나 눈물, 헤아림 같은 것은 산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돌처럼 차갑게 굳어버린 것일지도. 이제 와서 그것을 바로잡는 일이 가능할까?” (90쪽)슬픔에 가닿고 싶은 마음. 그것을 사랑이라 이름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것은 차갑게 굳어버린 돌을 아니 여자를 녹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일 것이다. 녹아 흘러내리는 푸른 돌을 기다리는 우리의 소망이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한여름, 쪽지에 적힌 하얀 기적갑자기 목도한 비현실적인 현실「오키나와에 눈이 내렸어」는 무려 금괴를 밀수하는 담합에서 시작한다. 썩 은밀하지도 그리 음험하지도 않다. 싱겁게 성공하는 것까지, 완벽하게 이상한 불법행위가 순식간에 우리를 오사카 한복판으로 이끈다. 사실 두 여자는 밀수만을 위해 일본으로 온 건 아니었다. 각자 찾고 싶은 게 있었다. 물론 찾지 못한 채, 찾을 수 없음을 확인한 채 발길을 돌리지만 그들에겐 서로가 있다. “남을 미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미워하게 된”다며 누군가를 저주하라고 부추기는 영하 언니가, “삶에서 좋은 것은 전부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내게 말을 걸어준” 유일한 그녀를 너무나 좋아하는 주영이. 둘은 과거의 자신과 화해하지 못한 채, 스스로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상처와 단념을 품고 한국으로 돌아올 뻔하지만 공항에서 짧은 기적이 펼쳐지며 이들의 새로운 게이트를 암시한다.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지만 어쩐지 행복한 엔딩임을 믿게 한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수많은 사람 속에서 나는 영하 언니와 나를 발견했다.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 둘은 멈춰 서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던 중 그들이 이틀 전의 나와 영하 언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나는 지금이야말로 오키나와에서 눈이 내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우리들의 짧은 기적.” (133~134쪽)다정한 슬픔들과 무심한 다독임그 속에서 피어날 작은 기적을 꿈꾸며『초록은 어디에나』의 해설을 쓴 박혜진 평론가는 세 편의 소설을 통해 “만남의 의미와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단순하거나 관습화된 만남이 아닌, “편협한 의미로서의 만남”이 아닌 현실의 벽과 개연성이란 논리에 가로막히지 않는 만남. “우리의 잠긴 생각을 열어젖”히는 이 새로운 형태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변화에 의연해지며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임선우가 주관하는 만남을 연결 짓는 지점마다 기적이 펼쳐질 게이트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어디에나 있는 초록처럼, 기적 역시 어디에나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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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캔터베리 이야기 - 상 (커버이미지)
    [문학]캔터베리 이야기 - 상
    • 제프리 초서 지음, 최예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12-27

    “초서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서양 작가 중 한 명이다.” - 해럴드 블룸중세 설화 문학의 모든 장르를 집대성한 제프리 초서 최후의 걸작『캔터베리 이야기』는 ‘중세 사회의 풍속도이자 파노라마’라 일컬어지는 고전이다. 이야기는 런던의 어느 여관에 3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캔터베리 대주교 토머스 베켓을 기리는 성지 순례를 떠나며 시작하는데, 여관집 주인의 제안으로 한 사람씩 돌아가며 들려주는 24가지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각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귀족, 성직자, 평민 등은 다양한 신분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재현하며 계층 간의 갈등과 충돌 양상을 심층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또한 당대 교회의 타락상과 흑사병의 창궐 등 격변하는 시대의 변화상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지배적인 담론에 종속되지 않고 통속적인 이야기를 과감히 배치해 중세 문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현대성을 보여 준다. 모든 인물을 포용하는 따뜻하고 재치 있는 시선 또한 오늘날의 독자도 공감할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한다.중세의 지배적 문학 관습을 뛰어넘으며 영문학의 새로운 시대를 견인한 시초작『캔터베리 이야기』는 1387년에서 1400년 사이에 집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이 집필되기 전까지 영국 사회의 귀족과 식자층은 라틴어와 프랑스어를 주로 사용하고 영어를 사용하는 것을 기피해 자국어로서 영어의 중요성과 의미가 미미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제프리 초서는 일찍이 외교 사절로 활동한 이력을 바탕으로 르네상스 문학의 주축이었던 이탈리아 문학, 특히 보카치오와 페트라르카의 작품을 흡수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문학적 성과를 계승했다. 내용과 형식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연상시키지만, 『데카메론』의 단조로운 연작 형식에서 탈피하여 보다 세련되고 과감한 구성을 선보인다. 이러한 형식적 성과뿐 아니라 영어를 사용함에 있어 문학적이면서도 통일된 언어 규범을 제시하여 영문학을 한 단계로 격상시키며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간 시초작이 바로 『캔터베리 이야기』다. 『캔터베리 이야기』의 화자들은 각기 다른 신분과 계급을 가진 만큼 이들의 이야기 또한 다채롭게 제시된다. 궁정풍의 사랑 이야기, 통속적이고 상스러운 이야기, 사랑과 성, 결혼을 둘러싼 이야기, 종교적인 설교 이야기 등이 교차되어 배치됨으로써 당대의 사회 변화와 사람살이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예리하게 포착한다. 당대의 엄숙한 종교적 분위기와 남권 중심주의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다루기에는 민감한 이야기를 과감히 배치한 데서 관습적 의식의 전환을 꾀하는 혁신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리버사이드 초서』 판본 국내 최초 완역19,335행의 운문체를 되살린 한국어판의 결정판을유세계문학전집 『캔터베리 이야기』는 현재 학계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판본으로 여겨지는 옥스퍼드판 『리버사이드 초서』를 원전으로 삼아 국내 최초 완역하였다. 이는 1933년에 옥스퍼드에서 출간됐었던 F. N. 로빈슨의 판본을 계승하여 래리 벤슨이 기존의 설명 주석과 용어 사전들을 세밀하게 검수한 것으로 학술적으로 공인된 판본이다. 이 옥스퍼드판을 저본으로 한 본서는 제프리 초서 연구의 권위자 최예정 교수의 번역으로 총 19,335행에 달하는 원문의 운문체를 세심하게 복원하였다. 여기에 상세한 해설과 친절한 주석을 수록하여 제프리 초서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뿐 아니라 전문 연구자들의 풍부한 이해를 돕는 도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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