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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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클래식을 들을 시간 - 인간과 예술, 시대와 호흡한 음악 이야기
- 평점평점0점평가없음
- 저자서영처 지음
- 출판사이랑
- 출판일2014-10-08
지금은 클래식을 들을 시간 - 서영처 지음삶의 여러 접점을 통해 보다 쉽고 편안하게 클래식에 접근할 수 있도록 쓴 음악 에세이다. 음악 속에 갇혀 음악을 이야기하는 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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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점평점0점평가없음
- 저자박태균 지음
- 출판사21세기북스(북이십일)
- 출판일2014-10-08
푸드백신 - 박태균 지음저자 박태균 기자는 국내 유일의 식품의약전문기자로, 사람들이 ‘좋은 식품’에 가지는 맹신과 고정관념, 편견을 깨고 식품의 영양소와 질병 간의 관계..
전자책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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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한자의 쓰임 - 한문 해석의 길잡이
- 김태수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24-02-19
한자의 쓰임을 집대성한 책 ◀70여 개의 한자 선별◀실사와 허사의 대표적 쓰임을 이해하기 쉽게 분석 정리◀한문을 이해하는 길잡이 역할 한문은 실사實辭와 허사虛辭가 서로 유기적有機的으로 결합하여 문장체계를 이루고 있다. 문장체계를 알기 위해서는 술어述語의 파악이 선결先決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70여 개의 한자를 선별하여, 실사와 허사의 대표적 쓰임을 이해하기 쉽게 분석 정리하였다. 예문例文은 중국과 한국의 문文·사史·철哲 한문 고전에서 가려 뽑았고, 예문은 중복을 피하려고 고 심하였다. 되도록 많은 예문을 통해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대략 3개의 문장을 예로 들어 이해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이 책으로 한자의 쓰임 모두를 포괄包括하여 충족할 수는 없으나, 한문 해석의 큰 길잡이가 될 것이다. 아울러 이를 바탕으로 한자의 쓰임을 깨달음으로써 문장을 해독하는 능력을 향상시킴은 물론, 글에 담긴 선현들의 지혜를 통해서 오늘을 돌아보는 거울로 삼고자 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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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생활]결론은, 필라테스
- 이영지 지음
- 라라
- 2024-02-19
당신의 근육은 안녕하신가요?삶에 치여 방치된 내 몸을 깨우는 운동, 필라테스잃어버린 내 몸의 근육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마음과 신체는 연결되어 있어 마음이 힘들수록 내 몸의 움직임에 온전히 집중하는 용기가 꼭 필요하다. 신체와 마음이 긍정적인 경험으로 가깝게 연결되는 그 순간,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세심한 움직임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내 몸을 알게 될수록 나를 사랑하게 만드는 운동, 바로 필라테스이다. “내 몸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수도 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필라테스를 권하고 싶다.”필라테스를 제대로 하려면 발끝까지 뻗친 나의 신경 감각들을 찾고 키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처음 필라테스를 하고 나면 그동안 돌아보지 않았던 몸 상태에 놀랄 수 있다. 저자 또한 발가락 10개를 따로 움직일 수 있다는 이야기에 놀란다. 그러나 점차 편하게 움직이다보면 나의 몸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온전히 나에게만 몰입하는 운동이 바로 필라테스다.온전한 몰입을 통해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깨닫기까지필라테스를 한마디로 표현하는 문장으로 각 챕터를 구성했다. 목차만 보아도 필라테스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도록 했고, 제목에 맞추어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간다. 매 챕터 마지막에는 별첨으로 필라테스 동작을 소개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하거나 저자가 애착을 가진 동작들로 구성했다. 몇몇은 수련 과정에서 어렵게 터득했던 동 작이다. 책에 나온 동작들만이라도 익숙해진다면 신체의 바른 정렬과 균형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필라테스는 나의 반려운동평생 함께할 삶의 동반자를 만나다내 몸을 알게 될수록 나를 사랑하게 된다. 길고 긴 삶 속에서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반려운동’으로 필라테스를 만나보자.[몸쓰기 시리즈]“찌뿌듯한 몸을 일으켜 바지런히 움직이는 기쁨에 대하여”나의 몸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걸림돌이 아닌 조력자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몸 쓰기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몸쓰기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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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마지막 명령
- 오세영 지음
- 델피노
- 2024-02-19
신념으로 쿠데타에 맞섰던 한 남자대통령을 저격하는 스나이퍼가 되다대한민국 특전사 팀장 한태형 대위와 그의 육사 동기 장재원. 그들은 12.12사태 이후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한태형은 신군부 쿠데타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명예제대를 당하고 미국으로 쫓겨나지만 장재원은 안기부 실세 보좌관이 되어 집요하게 그를 쫓는다.“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가 아닌 중국인이나 러시아인의 총에 맞았다면 좀 맥 빠지는 일 아니겠소?”한태형뿐 아니라 반정부인사들과 북한 정찰국 최정예 멤버까지 대통령을 노리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북한이 대한민국 대통령을 저격하도록 두고 볼 수만은 없다. 대한민국 법정에 세우기 전까지는 그를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 과연 스나이퍼가 된 한태형의 총구가 겨누는 곳은?시작은 역사이지만 스펙타클한 상상력작가 오세영의 신작 『마지막 명령』은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을 결합한 팩션[Fact + Fiction = Faction]이다. 작가는 사학 전공자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치밀한 자료 조사와 고증을 거쳐 그 어떤 작품보다 생생하게 독자들을 현대사의 한 장면으로 데리고 간다. 동시에 잘 짜여진 플롯과 담박한 필체로 책장을 펼친 독자들이 도무지 작품의 매력에서 헤어나올 수 없도록 만든다.대통령 저격. 결코 트렌디하거나 가볍지 않은 소재이지만 뉴욕, 앙골라, 모나코, 홍콩, 필리핀, 가봉 등을 오가며 쫓고 쫓기는 최정예 스나이퍼의 이야기가 그 어떤 액션 영화보다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명불허전(名不虛傳)! 300만 부 베스트셀러 『베니스의 개성상인』, 『자산어보』 오세영 작가의 신작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미 독자들에게 익숙한 오세영 작가의 신작 『마지막 명령』은 우리 현대사의 가장 뜨거운 순간인 격동의 80년대를 톺아본다. 1979년 10월 26일,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는 수발의 총성. 최측근이 현직 대통령을 살해함으로써 18년간의 독재 정권이 종지부를 찍은 바로 그 사건으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팩션 Faction = Fact + Fiction단순한 역사 기록 그것을 넘어서는 가치『마지막 명령』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하지만 절대로 단순 역사 기록에서 맛볼 수 없는 상상력과 스케일이 보태진 대작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을 용서할 수 없는 소신파 한태형과 그의 육사 동기이지만 현재는 안기부 보좌관이 된 장재원이 각기 다른 신념을 갖고 서로를 쫓고 또 서로에게 쫓기는 추격전을 스펙타클하게 담아내었기 때문이다. 우리 현대사의 가장 암울한 대목인 10.26부터 전두환 집권, 아웅산 테러에 이르는 현대사의 흐름을 씨실로 뉴욕, 앙골라, 모나코, 홍콩, 필리핀, 가봉 등으로 장소를 옮겨가며 국제적으로 펼쳐지는 스나이퍼의 사투를 날실로 하여 촘촘하게 구성된 『마지막 명령』은 역사적 배경을 토대로 펼쳐지는 첩보물에 비견될 만큼 역사와 흥미 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더욱이 『마지막 명령』은 철저한 사료 검증과 소설의 배경이 되는 지역들에 대한 방문 조사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 독자들이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마지막 명령』은 현대사를 환기하고 스펙타클한 주인공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독자들을 역사 소설의 새로운 장르, 팩션(Faction)의 매력에 빠뜨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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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비즈니스]안 하던 짓 해봐, 지금부터 - 미루지 말고 귀찮아하지 말고
- 헤이든 원 지음
- 터닝페이지
- 2024-02-19
“일단 해보자,우린 잃을 게 없잖아”정해진 틀에서 벗어나자신의 꿈과 행복한 인생을 성취하는‘안 하던 짓’의 비밀 ***일단 해보는 마인드와 실행력의중요성을 깨닫게 해줄 강력한 책!***_양킹(30만 영어 유튜버)우리는 매일 ‘하던 짓’만 한다. 공부도, 일도, 꿈도,이렇듯 대한민국에서는 인생 공식이 정해져 있고, 이 공식을 차근차근 따라가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 어떤 위치까지 도달해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라 여긴다. 이런 인생 공식은 누가 만들었을까? 이 공식대로만 살아야 하는 법칙이라도 있는 걸까? 각자의 개성이 중요하다고 외치면서 왜 모두 남들과 똑같이 살고 있는 걸까? 이 책의 저자 역시 남들과 똑같은 방식대로 자신의 미래와 꿈을 향해 노력해 왔지만 항상 제자리 걸음이었다. 이에 수없이 많은 고민을 했고,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똑같은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제부터 남들과 다른 나만의 방식으로 인생을 살아보기로 결심하고 그때부터 남들은 하지 않는 ‘안 하던 짓’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인생은 마법같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저자는 주위 사람 모두가 ‘안 돼’를 외쳤지만 할리우드 배우 되기라는 ‘안 하던 짓’을 무작정 해보기로 한다. 결국 많은 일들이 이루어진다. 하루 2시간 365일 영어 공부에 몰입해 영어 한 마디 못하던 영알못에서 영어로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할리우드에서 첫 작은 배역을 따냈다. 지금은 〈웨스턴애비뉴〉란 작품에서 비중 있는 배역을 맡는다. 이어서 대작 뮤지컬 〈도산 안창호〉 무대에 올라서기까지 한다. 이에 더해 영어 섀도잉 공부법으로 단기간에 영어 실력을 급격히 늘리는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고, 해외에 나가지 않고 국내에서 할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입증한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허가한다는 유재석 비자(O-1)를 짧은 시간에 따낸 이야기까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이 에피소드들은 모두 남들은 하지 않는 일에서 시작된 것이다.저자가 꿈을 이뤄가는 과정은 단순하다. 그것은 바로 평소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을 해보는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이라도 필요하면 그냥 해보는 것, 안 된다고 생각이 들어도 결국엔 한번 해보는 것이 ‘안 돼’가 ‘돼’로 바뀌는 마법의 순간을 만들어 낸다고 저자는 말한다. 남들이 정해놓은 뻔하고 지루한 인생은 버려라‘안 하던 짓’으로 자신만의 길을 가라!저자의 꿈은 할리우드에서 연기하는 것이었다. 연기를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었고, 집안이 풍족해 연기자 생활을 뒷받침 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꿈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어도 거의 하지 못하는 사람이 할리우드 배우가 되겠다고 하니 주위에서 말도 안 되는 꿈이라며 말리고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비록 당장 정상에 오를 순 없어도, 이렇게 오르다 보면 분명히 정상을 맞이할 엄청난 순간이 찾아오겠지.”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어라!저자는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갈 독자를 위해 강조하는 것은 ‘안 하던 짓’을 하기로 했다면 끝까지 해보라는 것이다.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던 저자가 할리우드 배우가 되기 위해선 영어가 가장 급했다. 한 번도 영어 공부를 해본 적 없는 저자는 영어 공부에 몰입하기로 결심하고, 하루 2시간 365일 영어 쉐도잉을 시작한다. 미드 〈굿플레이스〉를 보며 수없이 따라했다. 때론 정말 안 들리는 문장이 있으면 그 문장이 들릴 때까지 수백 번 반복해서 들었다. 또한 실제 영어를 쓰는 환경에 노출시키면 영어가 더욱 늘 수 있겠단 생각에 외국인이 운영하는 가게를 찾았다. 그곳에서 일을 한다면 외국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접 가게 주인에게 어설픈 영어 메시지를 보내고 가슴 떨리는 면접을 통과해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고난의 연속이었다. 일하는 초기에는 뭔가를 가져오라는 외국인 주인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아 어림짐작으로 다른 걸 들고 가기도 했다. 그렇게 직접 부딪히며 부단히 영어 실력을 늘려갔다. 영어로 더 많이 말하고 싶어서 한국 손님에게도 영어로 응대했다. 차츰 입이 자연스레 열리기 시작했고, 교포로 오해받는 순간도 있었다. “자갈밭에서든 돌 틈새에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피어야 할 꽃은 피어난다.”할리우드 직항로를 직접 뚫고, 대작 뮤지컬 무대 위에 서다영어에 자신감이 붙은 저자는 할리우드로 가는 길도 자신이 직접 뚫기 시작했다. 미국의 여러 캐스팅 디렉터에게 자신을 어필하는 셀프테이프를 보냈다. 처음엔 쉽지 않았고 계속 떨어지기만 했다. 그러던 중 기회가 왔다. 〈웨스턴 에비뉴〉라는 큰 작품에 오디션을 볼 기회가 생겼고,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영어 연기를 완벽하게 해냈다. 모든 게 잘 풀려 캐스팅까지 되었으나 비자가 문제였다. 이 작품에 출연하기 위해서는 일명 ‘유재석 비자’라고 불리는 0-1 비자가 필요했다. 국내에서도 이 비자를 딴 사람들은 극소수였기에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수없이 많은 변호사를 만나고, 자신의 성취를 입증하는 복잡한 자료를 준비하는 등 갖은 노력을 한 끝에 국내 최초로 최단기간 0-1 비자를 따냈다. 이어서 꿈만 같던 일이 일어난다. 한인들이 만든 대작 뮤지컬 〈도산 안창호〉 무대에도 선 것이다.“최고를 꿈꾸기보다 오늘 하루 노력하기” ‘안 하던 짓’은 아직도 진행 중저자의 ‘안 하던 짓’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자신의 미래를 미리 가정하고 선을 긋지 않는다. 미래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현재를 긍정과 꾸준함의 힘으로 감싸며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안 된다고 생각이 들어도 결국 한번 해보는 것,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것을 찾아서 오늘도 아무렇지 않게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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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30대에 뇌졸중 환자가 되었습니다
- 마고 투르카 지음, 김모 옮김
- 롤러코스터
- 2024-02-19
걱정 만렙, 흐지부지 대왕미술교사 마고의 유쾌하고 솔직한 뇌졸중 이야기30대 미술교사 마고는 어느 날 아침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한다. 기운이 없고 생각이 뒤죽박죽 엉키는가 싶더니 간단한 단어조차 입 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다. 뭔가가 확실히 잘못됐다. 힘겹게 구급차에 실려 그대로 병원으로 이동, 마고는 뇌경색으로 인한 허혈성 뇌졸중 진단을 받는다. 서른셋의 나이에 뇌졸중이라니. 그의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서른셋, 어느 날 나에게 ‘작고 귀여운’ 뇌졸중이 찾아왔다《30대에 뇌졸중 환자가 되었습니다》는 서른셋에 갑작스럽게 뇌졸중을 겪은 마고 투르카가 자신의 투병과 재활 과정을 유쾌하고 담담하게 그려낸 그래픽노블이다. 흔히 뇌졸중이라고 하면 노년에 겪는 질환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질병은 늘 예상치 못한 때에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뇌졸중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 심각한 뇌질환이라는 점에서 환자와 그 가족들이 감당해야 할 충격은 상당하다. 치료를 하더라도 다양한 후유증이나 장애를 남기기 때문에 이전과 같은 삶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지 장담하기도 어렵다. 마고 역시 난데없이 등장한 뇌졸중 앞에서 많은 혼란을 겪는다. 하지만 혼란은 곧 마고만의 방식으로 정렬된다. 열정적인 의료진과 헌신적인 가족, 병실에서 만난 동료(?) 환자들과의 교류 속에서 변화는 천천히 자신의 삶 속에 자리 잡는다. 그는 무거운 질환과 싸우는 암울한 환자가 아니라 새로운 변화를 겪게 된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응원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이야기를 만화로 기록하기로 한다. 질병이 안겨준 큰 변화들을 서서히 받아들이고 다시 자신의 삶을 찾아 나가고자 하는 젊은 뇌졸중 환자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 ‘나의 자그마한 뇌졸중(@mon.petit.avc)’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렇게 책으로 묶여 한국에 도착했다. “뇌졸중이 왔어요.”“아, 그게 다인가요?”증상을 인지하고 구급차를 기다리는 와중에도 더러운 꼴로 병원에 갈 수는 없다며 샤워를 하고, 병실에서 첫날 밤을 지내면서 처음 맞이한 ‘요강’에 당황하면서도 자신의 유연성에 감탄하며 어떻게든 볼일을 해결(?)하고, 누가 미술 선생님 아니랄까 봐 의사에게 시각 증상을 설명하기 위해 반 고흐와 다빈치의 작품을 들먹이는 이 명랑한 뇌졸중 환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수시로 웃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언제나 유머를 잃지 않는다. 뇌졸중이 왔다는 의사의 말에 “아, 그게 다인가요?”라고 되물어 오히려 의사를 당황시킬 정도로.“지금 (제 말) 이해하신 거죠?!”“네, 그럼요! 안 죽었어요! 아직! 멀쩡해요!”누구나 한 번쯤은 질병 앞에서 좌절하고 절망하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 경험이 있을 테지만, 마고에게 뇌졸중은 그저 고통이나 장애만을 남긴 불청객이 아니다. 조금은 낯설지만 내 삶의 일부로써 함께해야 한다면, 그는 기꺼이 그러한 ‘상태’를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작은 뇌졸중’을 데려가기로 결심한다. 그러니 마냥 주저앉아 절망에 빠져 있을 필요가 없다. 비록 문장을 만드는 데에 이전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리고, 가로와 세로를 동시에 읽을 수 없어 단순한 일정표조차 이해하기 어려워지고, 계단을 오르기는커녕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어 고된 재활훈련을 해야 하지만,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 앞에서 마고는 늘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간다.물론 사소한 일에 느닷없이 눈물이 터지기도 하고, 어린 아들을 예전처럼 안아줄 수 없을까 봐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자신의 투병생활이 남편의 삶까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 같아 미안하고 걱정스럽다. 다시 교단에 서지 못하는 건 아닐까, 열정적인 미술교사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불안하고 두렵다. 그럴 때마다 그는 다정한 병실의 동료들과 마음을 나눠주는 친구, 가족들로부터 다시 힘을 얻어 ‘걱정 만렙 마고’에서 ‘열정 만렙 마고’로 돌아온다. 모든 게 바뀐 나의 현실그러나 다를 게 없는 나의 인생마고가 겪는 투병 생활과 재활 과정은 사람에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난다. 낯선 사람과 하나의 공간과 시간을 나눠 쓰며 겪는 괴로움 또는 즐거움,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해 하나부터 열까지 의료진과 스탭들의 손을 빌려야 하는 곤란함, 발음교정와 물리치료, 작업치료, 신경 심리 상담 등 하루 종일 재활을 위한 전문가들과 보내야 하는 시간들이 그의 일상을 꽉 채운다. 밤마다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도저히 같은 병실을 쓸 수 없는 병실 동료가 있는가 하면, 햇살같이 밝은 성격과 무한한 다정함으로 지루할 틈 없는 시간을 선사하는 병원의 우주 대스타 솔랑주와 병실을 나눠 쓰는 행운을 얻기도 한다. 치료실까지 가는 길을 매번 까먹어서 선생님이 매번 데리러 오고 데려다주는 호사(?)를 누리지만, 이제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는 것은 그만하고, 스스로 해내고 싶다. 물리치료실에서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 아들을 떠올리며 새삼 아이의 노력에 공감하기도 한다.병원에서의 생활을 상상하면 마냥 누워 있거나 고된 치료 과정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쉬운데, 사실 그가 뇌졸중 진단을 받은 직후부터 재활센터 생활을 마치기까지 약 6개월간의 시간을 들여다보면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과 다를 바 없다. 어떤 날은 매일 똑같은 일과가 기계적으로 반복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장난스레 그린 그림 한 장으로 크게 웃기도 한다. 어떤 날은 장애를 얻고 달라진 자신의 처지를 생생하게 실감하는가 하면, 어떤 날은 내 삶이 여전히 나의 것으로 온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어떤 것은 너무나 사소하고 어떤 것은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것 같은 두려움을 몰고 오기도 한다. 우리 삶의 매 순간들이 그러한 것처럼.뇌졸중 환자 마고의 유쾌하고 담담한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질병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역시 함께 달라짐을 느낀다. 복지제도와 의료환경, 문화적 배경이 다른 프랑스의 사례이기에 가능한 일들도 있지만 그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보다는 질병을 대하는 슬기로운 자세와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이의 눈물겨운 고군분투에 마음이 기운다. 끊임없이 타인과 소통하고 연대하며 그의 뇌졸중이 진짜 ‘자그마한’ 존재가 되어가는 모습에서, 우리는 각자의 삶 속에 깃든 희망과 새로운 용기의 원천이 된 작가 마고 투르카를 있는 힘껏 응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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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 - 앨리스 닐, 도리스 레싱, 어슐러 르 귄, 오드리 로드, 앨리스 워커, 앤절라 카터… 돌보는 사람들의 창조성에 관하여
- 줄리 필립스 지음, 박재연 외 옮김
- 돌고래
- 2024-02-19
\'자기만의 방\'에서 \'고독한 천재\'의 호사를 누릴 수 없는,끝없이 방해받으며 창작하는 여성들의 이야기NPR 선정 2022 최고의 책 │ 전미도서비평가협회 수상 작가소설가 정아은, 서유미, 김유담 추천앨리스 닐, 도리스 레싱, 어슐러 르 귄, 수전 손태그, 오드리 로드, 앨리스 워커, 앤절라 카터…등 20세기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들의 모성적 삶과 작가로서의 삶을, 그리고 그 두 가지가 중첩된 영역을 탐색한다. 아이를 버렸다고 욕먹은 도리스 레싱, 그림을 마무리하기 위해 아이를 뉴욕 아파트 비상계단으로 내쫓고 방치해두었다고 시집 식구들에게 무고를 당한 앨리스 닐의 이야기는 창작과 양육 사이의 긴장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창조적 모성은 이 긴장 속에서 끝없이 재협상하고 임기응변의 능력을 발휘하며 살아남는다. 타인의 비난, 자신의 죄책감, 슬픔, 채워지지 않는 허기, 그리고 아이들을 향한 사랑. 이 모든 것이 창조적 모성의 양분이 된다.모성과 창조성이 만나는 지점을 10년 동안 탐색하다!여성 작가·예술가들의 정체성을 뒤흔들고 재정립하도록 하는 강렬하고 혼란한 사건이지만, 아무도 지적으로 파고들거나 이론화하지 않았던 ‘모성과 창조성이 만나는 지점’에 대해 탐구한 책이다. 이 탐구에는 장장 10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 수상작가인 줄리 필립스는 (여성) 작가의 평전 작업을 해왔고, 어슐러 르 귄의 전기를 쓰기 위해 오랫동안 긴밀하게 어슐러 르 귄과 인터뷰를 해오기도 했다. 그러다 아이 둘을 양육하며 글을 써야 하는 스스로의 경험에 동력을 얻어 이 주제의 책에 시작했다.(책을 쓰는 동안 초등학생이던 저자의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었다.)수많은 여성 작가들의, 여성 작가들에 대한 기록을 정밀하게 살핀 저자는 이 책에서 앨리스 닐, 도리스 레싱, 나오미 미친슨, 루이스 어드리크, 어슐러 르 귄, 에이드리언 리치, 엘리자베스 스마트, 수전 손태그, 오드리 로드, 다이앤 디 프리마, 셜리 잭슨, 앨리스 워커, 토니 모리슨, A. S. 바이엇, 로나 세이지, 마거릿 애트우드, 앤절라 카터 등의 매력적인 명사들을 다룬다. 저자가 목차에 포함시킨 이들은 우선 충분히 오래 살아서 양육의 전체 사이클을 모두 경험한 이들이고, 그렇다고 너무 옛날 사람들은 아니어서 1960년대 이후 낙태 합법화나 페미니즘, 흑인민권운동의 수혜를 받은 이들이며, 자신의 몸과 임신, 출산, 양육에 대해 충분한 기록을 남긴 이들인 동시에, 독창적인 작품들을 남긴 사람들이다. 이들은 제각각 준비되지 않은 임신, 원하지 않은 결혼, 낙태, 아이들의 죽음을 경험했거나, 일생 동안 평범한 단혼 관계에서부터 레즈비언 관계, 폴리아모리, 개방혼 같은 다양한 친밀한 관계를 탐험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깊이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양육해냈다.저자는 여성 작가·예술가들이 남긴 양육과 모성에 관한 일화의 조각들을 정성껏 이야기로 꿰어내면서, 몇 가지 중요한 이론적 개념(혹은 기존 이론의 허점을 꼬집는 개념들)을 제안하기도 한다. 방해받는 주체, 자기소멸, 시간 빈곤, 서사적 시간, 죄책감, 허락받아야 한다는 느낌, 항시 대기중(availability, 아이들이 필요로 하면 언제든지 만사를 제치고 자신을 내주어야 한다는 느낌), 벙고(바보가 된 것 같은 벙찌는 느낌 + 숭고의 감정, 양육의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역설적인 감정), 온전히 거기에 있기, 심아 문제(mind-baby problem, mind-body problem을 비꼰 말장난), 아줌마영웅(aunti-hero, anti-hero의 말장난), 아더마더스(내가 낳지 않은 아이를 돌봐주는 이들) 등의 그것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비상계단에 놓인 아기’로, 이는 앨리스 닐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아이를 ‘비상계단(한국식으로 치면 베란다?)’에 가두었다고 시집 식구들이 상상해낸 이미지이지만, 저자는 이를 엄마들이 작업하는 동안 아이를 안전하게 방치하기 위해 찾아낸 창의적인 임시방편을 가리키는 말로 전유한다.이 책의 가장 훌륭한 점은 저마다 다른 상황에서 다른 방식으로 양육과 창작을, 삶을 이어온 여성들의 삶을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을 감추거나 미화하지 않지만 있는 그대로의 삶을(그리고 죽음을) 최대한 존중한다.(수전 손태그의 이야기를 다루는 장에서 이런 태도가 다소 흔들리는 모습이 인간적이기도 하다.) 이 책에 실린 할머니 작가·예술가들의 이야기는 20세기보다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용기를 내기 어려워하는 현대의 양육자 여성들(그리고 양육을 자신의 일로 여기는 남성들)에게 엄청난 영감과 자극과 위안과 용기를 줄 것이다.엄마의 행복은 엄마의 죄책감과 공모해 창작을 갉아먹는다. 마거릿 미드에 따르면 시간이 자꾸만 사라져가는 이유는 이런 것이다. \"아이가 울어서 괴로운 게 아니다. 아이가 너무 자주 웃어서 그렇다.\" 제니 오필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를 향한 사랑은 당신이 한때 사랑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모조리 지워버리기도 한다.\" (29)1962년만 해도, 올슨은 유자녀 여성 또는 \"반쪽짜리 시간과 반쪽짜리 자아를 가진 이들“이 오래도록 읽힐 책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무렵부터 유자녀 여성들의 작가 경력은 성공 가도에 오르기 시작했는데, 한두 명이 아닌 다수의 작가들이 외면하기 어려운 대대적 성취를 우후죽순으로 이뤄냈다. 이들은 작업을 해나갈 방도를 발 벗고 찾아 나선 끝에 작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데 성공했다. 이를테면 도리스 레싱은 노벨 문학상을, 어슐러 르 귄은 미국 최대의 문학적 영예인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앨리스 워커는 퓰리처상을 한 차례 받고 수백만 권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오드리 로드는 교차성을 둘러싼 논의의 물꼬를 텄다. 한편 앤절라 카터는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문학적 목소리로, 수전 손태그는 위대한 영어권 비평가로 각각 인정받았다. 앨리스 닐은 자신의 작품이 정전(正典)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목격했다. (31)양육은 개개인의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 인종, 자원, 섹슈얼리티, 가족관계, (비)장애의 영향도 받는다. 한편 모든 엄마가 출산과 양육을 하지는 않는다. 내가 살펴보고자 했던 여성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엄마가 됐는데, 배우자 유무, 나이, 자산, 주변의 도움 여부 등이 제각기 상이했다. 이들은 우연히 또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임신하거나 자신이 낳지 않은 십대를 양육하게 됐고, 혹은 난임으로 고생하거나 아이를 잃기도 했다. 이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분노와 고통을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슈퍼우먼\'이나 \'가정의 천사\' 따위의) 고정관념을 뿌리치며 모성의 양가감정을 탐색했다.(31)\'엄마\'와 \'영웅\'이라는 단어를 함께 입에 올리면, 대부분은 자기희생의 이미지를 당연하다는 듯이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창조적 모성은 그런 종류의 이야기가 아니다. 투쟁이나 구원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창조적 모성은 자기발견의 여정에 나선 어느 중심인물의 이야기다. 그녀는 빵 부스러기(그러니까 일화와 종잡을 수 없는 여러 순간)로 표시한 길을 따라 나선 뒤로 지하 세계까지 떨어졌다가 되돌아온다. 숲속에서 길을 잃고 스스로 길을 발견하는 주인공이다.나는 엄마 영웅들에 대해 찾아보며 이들이 여성들의 이야기 안에 줄곧 존재해왔음을 알게 됐다. 그녀들의 주체성은 자기상실과 자기발견에 아로새겨져 있었다. 청소년기에, 출산기에, 그리고 장년기에 이들은 줄곧 자신들을 향한 \"몰살\"의 위협을 마주하고 힘을 회복해야 했다. (53)모성 지대의 무법자로 팔십대까지 살아남은 초상화가 앨리스 닐1900년생인 앨리스 닐은 예술 강좌에 등록했다가 첫 번째 남편이 될 쿠바계 남자를 만나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낳은 첫째 딸을 돌도 되기 전에 디프테리아로 잃었다. 죄책감을 씻기 위해 둘째 딸을 가졌지만 결과적으로 이 딸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예술과 양육을 양립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산산조각 낸 채 남편이 혼자 파리로 도망갔기 때문이다. 앨리스는 정신이 나가 친정어머니에 의해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오븐에 머리를 넣기도 한다. 결국 화가와 엄마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의사와 친척들의) 압박 속에서, 그리고 자신은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을 거라는 낙담 속에서 앨리스는 그림을 선택하고 혼자 뉴욕으로 향한다. 이후에 앨리스는 여러 남자들을 더 만나고 그중에는 앨리스의 작업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파트너도 있었으나 대체로는 폭력적이거나 마약을 하거나 앨리스의 아이를 괴롭혔다. 앨리스는 1930년대 대공황 시기 사회주의적인 정책에 힘입어 보조금을 받으며 계속 그림을 그렸고 1950년대 이후로는 미술계의 유행을 거슬러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기로 결심한다. 경제적인 자립을 이룬 후 두 아들을 더 낳게 되는데 이들의 교육에 헌신적이었고 이들과(심지어 며느리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딸 이자베타와는 생전에 몇 번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관계가 회복되지 않았다. 이사베타는 엄마를 비난하는 아빠 쪽 친척들에 의해 길러져 원망을 품고 살았으며 이른 나이에 불행한 결혼을 했다. 평생을 우울감에 시달렸던 이사베타는 결국 엄마의 대규모 강연 행사에 참석해 맨 앞줄에 앉아 엄마의 모습을 보았지만(강단 위의 엄마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그로부터 얼마 안 가 자살했다. 보수적이고 편협한 1950년대를 꿋꿋이 견뎌낸 앨리스는 1960년대 이후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여성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자 외롭게 가꾸어온 자신의 독창적인 미술 세계를 만천하에 알릴 기회를 얻는다. 그녀는 생애 마지막 20년 동안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80대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한 후에(책에도 실려 있는 팔십대에 그린 「자화상」이 그 증거다.) 자신을 사랑하는 온 가족에게 둘러싸여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초상화에 전념했다. 여성이 어떤 분야에서든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비인기 분야를 택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혹은 진짜로 혁신적인 작업을 한다고 해도 자신이 선두가 아닌 주변부에 서 있음을 머잖아 알게 될 것이다. 1950년대 초상화의 낮은 지위는 앨리스에게 그 장르를 탐구하고 연마할 수 있는 특별한 자유를 보장해주었고, 그것은 다시 그녀의 재능과 독창성을 위한 여지를 마련해주었다. (104)1962년, 앨리스는 영향력 있는 예술 잡지인 《아트뉴스》에 소개되었고, 이는 62세였던 그녀에게 중요한 돌파구가 되었다. 같은 해 런던에서는 도리스 레싱이 『금색 공책』을 펴냈는데, 이는 치열하게 세 아이를 키우던 사십대 엄마의 대담한 문학적 성명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는 어슐러 르 귄이 첫 과학소설을 출간했고, 잉글랜드 브리스톨에서는 22세의 \"눈이 커다랗고 촌스러운 비트족\" 앤절라 카터가 잡지에 첫 소설을 기고했다. 뉴욕의 수전 손태그는 첫 에세이를 출간하고 첫 소설을 탈고했다. 손태그가 글을 쓰는 동안 그 옆에는 열 살 난 아들 데이비드가 타자를 치는 엄마 옆에서 대기하다 담배에 불을 붙여주곤 했다. (108)나이든 여성은 젊은 여성에 비해 세상의 회의적 시선에 덜 위협받는다. 1960년대 팝아트(로이 릭턴스타인의 만화,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의 영향으로 앨리스는 더 밝은 색과 더 유동적이고 자신 만만한 선, 더 과감하고 터무니없는 주제를 선택했다. 1968년 앨리스는 말했다. \"저는 바로 그 장면을 그리려고 노력합니다. 한 시대의 소용돌이는 당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무엇을 그리느냐의 문제입니다.\" 예술가, 큐레이터, 수집가들은 \'앨리스 닐 앞에 앉을 만큼 용감한가?\'라는 질문에 도전하듯 앞다퉈 포즈를 취했다. 심지어 앤디 워홀은 앨리스의 초상화를 위해 윗옷을 벗고 총상 자국으로 가득 찬 배를 드러낸 채 눈을 감았다. (109)앨리스의 임산부 초상화는 일부 관람객들을 놀라게 했다. 한 비평가는 임신한 낸시의 나체를 두고 \"임신한 오달리스크의 끔찍한 모습\"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하지만 비욘세 놀스가 아름다운 임산부의 초상 사진 연작을 위해 포즈를 취하기 훨씬 전에, 앨리스는 출산이 예술적으로 표현될 가치가 있는 여성의 성 적인 측면이라고 주장했다. \"저는 임산부의 누드가 더없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옳지 못한 겸손함이나 두려움 때문에 그동안 드러내 보이지 않았지만, 우리네 삶의 기본이지요.\" (112)모성적 삶과 여성적 쾌락에 관해 쓴 최초의 작가 도리스 레싱도리스 레싱은 이란에서 태어나 영국령 식민지였던 남로지디아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이후에는 런던으로 이주해 말년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도리스는 남로지디아를 떠날 때 아이 둘을 버린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저자는 도리스가 자기 아이들을 계속 만나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속을 태웠는지 전남편 혹은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참고해 밝혀낸다. 물론 도리스는 임신한 상태에서도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관계를 할 정도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대범했지만 한 편으로는 사회주의 운동의 동지로서 만난 고트프리트를 위해 결혼을 하는 등(고트프리트가 징집되지 않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남편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도리스는 고트프리트와의 사이에서 셋째 아들 피터를 낳았는데, 고트프리트가 동독으로 떠난 이후 홀로 피터를 키우며 피터가 학업을 위해 집을 떠나 있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평생을 함께 살았다. 실패한 결혼과 육아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던 여성이 거의 없던 시대에 레싱은 모순된 감정들을 겹겹이 쌓아올려 모성이 주는 만족감, 유혹, 좌절, 죄책감, 분노를 묘사했다. 자전적 폭로가 들어간 초기 작품들(1950년 영국에서 출간된 『풀잎은 노래한다』나 도리스에게 엄청난 명성을 가져다준 1962년작 『금색 노트』)에서부터 에로틱한 어머니와 아들 간의 유대를 그린 『할머니들』(2003), 아들의 극단적 요구가 행복한 가정을 분열시키는 『다섯째 아이』(1998)의 처참한 모성에 이르기까지 어머니의 양가적 사랑은 도리스 작품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이다. 2007년 최고령의 나이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수상 소식을 듣던 현장에는 역시 아들 피터가 함께 있었다.아이를 두고 떠나는 여성의 이미지는 금기시된 여느 발상처럼 매혹적이며 짜릿하다. 엄마들은 자유의 암시를 부러워하며 이런 일화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을지 모른다. 그러고는 \"음, 적어도 난 그렇게 나쁜 엄마는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죄책감 어린 헌신의 마음으로 자녀들에게 돌아갈지도 모른다. 이런 일화는 엄마들로 하여금 자신의 모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도리스가 두 아이를 두고 떠나면서 결코 뒤돌아보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다소 허구에 가깝다. (141)도리스는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했던 길 잃은 부모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많은 20세기의 엄마 작가들이 비슷한 일을 겪었다. 특히 레싱의 엄마인 모드 테일러와 앤절라 카터의 엄마인 올리브 스토커는 외동딸에게 각자의 좌절된 포부를 투사해 성공을 독려하면서도, 딸의 외모를 판단하거나 딸의 몸을 감시하고 딸의 성공을 과대평가하며 숙녀답게 행동하도록 경고했다. 모드는 영리한 딸아이를 자랑스러워했지만 아이에 대한 소유욕이 강해서 딸이 자신의 희생에 대해 빚을 갚아주기를 원했다. 리베카 솔닛의 표현을 따르자면, \"모두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자신을 내어주고 딸에게서 자신을 되찾으려 했던 어머니에 대한\" 끝나지 않는 이야기인 것이다. (146)모성이라는 정체성은 항상 진행 중인 작업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모-자녀 관계는 물론이고 엄마들과 그들 자아 사이의 관계도 극적으로 변한다. 도리스는 성인이 된 자신의 모든 아이들과 소식을 주고받고 왕래하기도 했지만, 가장 자주 의미가 달라졌던 것은 함께 살았던 피터와의 관계였다. 피터는 행복한 아기였고, 엄마의 문학 경력과 함께 성장했으며, 어른이 되어 정신질환을 앓게 되자 엄마에게 걱정거리를 안겨준 만큼 더 친밀한 아들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두 자녀와 헤어진 도리스가 피터를 평생 가까이 한 것은 아마도 죄책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168)문학 명사 도리스 레싱이 등장하는 유명한 동영상은 2007년에 찍힌 것이다. 87세의 백발 여성이 조심스럽게 택시에서 내린다. 양파와 아티초크를 든 중년 남자가 그 뒤를 따른다. 도리스가 왜 자신의 집 앞에 카메라들이 나와 있냐고 묻자, 한 기자가 그녀에게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전한다. 그녀는 \"오, 맙소사!\"라고 외치고 나서, 쇼핑백을 내려놓고 적당한 말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나는 유럽의 모든 문학상을 탔습니다. 모두 치열한 상이었지요.\" 점점 밝아지는 얼굴로 도리스가 덧붙인다. \"상들을 싹쓸이하게 되다니 정말 기쁘군요.\" (173)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며 행복하게 살아도위대한 작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어슐러 르 귄어슐러 르 귄은 탁월한 재능을 타고났을 뿐 아니라 좋은 집안에서 좋은 부모님에게 좋은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래드클리프 대학에 가서 처음으로 남자와 잤다가 바로 임신이 되었다. 하루에 두 번 이상 성관계를 할 경우 두 번째는 피임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우겼던 하버드 대학생 남자친구는 임신 소식을 듣자 바로 르 귄을 버렸다. 르 귄은 부모님의 설득에 비싼 돈을 지불하고(1950년 당시 1000달러는 래드클리프의 1년치 학비와 생활비를 더한 금액이었다.) 실력있는 의사에게 불법 낙태 수술을 받았는데, 이 사실을 30년도 더 지나서야 고백했다. 다행히 이후에는 자신의 작업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가정적이고 능력도 있는 남자를 만나 결혼했고 독특한 색깔을 지닌 작품들을 꿋꿋이 써나가게 되었다. 물론 네 아이는 늘 르 귄의 글쓰기를 방해했지만 르 귄은 그 와중에도 늘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내향적인 성격의 르 귄은 눈에 띄는 정치 활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매카시즘이나 인종주의에는 늘 반감을 지니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르 귄의 어머니 테오도라 크로버인데 60대에 남편과 사별한 후 두 권의 책을 냈으며 르 귄보다도 먼저 작가로서 확고한 정체성을 확립한다.(어머니는 르 귄이 작품이 출간을 거절당하자 딸의 커리어가 더 중요하다고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르 귄은 물론 그것이 진심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머니의 작가적 연대에 큰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70대에는 스물아홉 살의 잘생긴 바람둥이 양성애자와 결혼해 열정적인 부부생활을 하기도 한다. 1960년대에 이르러 과학소설과 판타지 문학이 인정받기 시작하며 르 귄의 작품들도 호응을 얻는다. 작가로서의 정체성과 사생활을 철저히 구분하고 작품 속에서는 마음껏 남성적인 생각과 행동을 펼쳐냈던 르 귄이지만,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페미니즘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대해 고민하던 와중에 작품 안에 여성적인 세계, 모성적인 세계를 구축하자 다시 한 번 성공적인 변신을 이루어내고 제2의 전성기를 구축해낸다. 말년인 1990년대 이후 르 귄은 자신만의 공적인 목소리를 찾는 데 성공하여 많은 여성들, 작가들에게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안나 카레리나』는 \"모든 행복한 가정은 비슷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지만, 어슐러는 자신의 유년기와 양육의 경험을 되돌아보면서 그 문장에 반대한다. \"흥미로운 가정은 불행한 가정뿐이라고? 말도 안 된다. 톨스토이는 틀렸다. 불행한 가정이야말로 정말 똑같다. 물론 모든 사람이 항상 \'행복\'하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더라도, 소위 행복한 가정이란 매력적인 것임에 분명하다. 행복한 가정은 권력과 통제와 사랑과 반감과 좌절이 계속되는 상호작용의 공간이다. 정말로 끝이 없다.\" (221)1930년대에 출생해 1950년대에 성년이 된 미국 작가들(에이드리언 리치, 오드리 로드, 토니 모리슨, 실비아 플라스)은 자신들이 선구자가 없는 불확실하고 실험적인 길로 나가고 있다고 느꼈다. 미국 문학은 여전히 헤밍웨이, 포크너, 리처드 라이트의 마술에 걸려 있었다. 리얼리즘과 남성성이 지배하고 있었고, 유희나 환상을 위한 공간은 거의 없었다. \"나는 비평적으로 승인된 문화와는 다른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어슐러는 창작의 초기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노먼 메일러나 솔 벨로가 절대 되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았다. 동료 작가들이 누군지도 몰랐다. 내가 쓰고 싶어하는 글을 누군가가 쓰고 있을 것 같지 않았다. (228)하지만 어슐러는 자기 안에 꺼내야만 하는 뭔가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그 길을 가야 한다고 확신했다. 1952년 봄 어느 날, 어슐러는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중세 프랑스 시를 공부하다가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미지의 세계로 내딛는 환상을 본다. 그리고 어슐러는 작가로서의 소명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직관을 신뢰하기로 결심한다. 어슐러의 삶에서 대전환이 일어난 순간이었다. 몇 년 후 어슐러는 \"문이 열리는 환상\"에 대해 회상하면서 이렇게 쓴다. \"나는 그 거대한 바람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묻지 않았다. 바람이 부는 한, 그리고 내가 능력이 되는 한, 결과가 어떻게 되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었고, 나의 자유와 필연성과 나만의 것을 온전히 느끼고 만들어나갈 것이었다.\" (229)어슐러는 또 찰스와 함께 책에 올라타서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다고도 한다. 꿈속에서 어슐러는 하향풍이 불까 봐 걱정하고 있었지만 찰스는 확고했다. 어슐러가 계속해서 \"웃느라 고도를 놓치고 있었\"지만 찰스는 비행을 조종하는 것에 능했다. 찰스는 꿈에서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냥 책 앞표지 위에 서 프보드를 타는 것처럼 붙어 서서 독수리처럼 손을 펼치고 발은 책의 가장자리에 단단히 붙이고 짧게 발을 구른 다음 활짝! 하고 미끄러져 날아가는 거야. 책은 균형을 위한 존재야.\" (233)어슐러는 또한 아이들이 지나치게 손이 많이 가지 않았다는 것과 집중하는 재능을 가졌다는 점에서 운도 따라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아버지처럼 서재문을 닫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아버지가 아니고 어머니이니까.\" 하지만 그녀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았다. (238)어슐러 내면의 \"부르주아\"는 자신의 가정생활을 몹시 즐기고 있었지만, 자신이 어머니로서나 미국 서부해안의 작가로서나 과학소설가로 진지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면 매우 방어적이 되기도 했다. 어슐러가 \"포틀랜드에 사는 주부\"라고 자칭하는 것은 그녀가 울분에 빠져 있음을 의미했다. (246)판타지 문학의 전통에 어머니의 경험을 되찾아주기 위해 어슐러는 \"바깥과 아래에서부터\", 즉 이전에는 목소리를 부여받지 못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여성의 경험을 검토하기로 한다. \"마법을 할 수 없는 사람들, 빛나는 지팡이나 검을 갖지 못한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여성들, 아이들, 가난한 사람들, 늙은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이다. 영웅이 아닌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 곧 나와 같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영웅\" 이야기를 버림으로써 어슐러는 이야기의 진행 과정 속에서 행위성이나 자기인식을 획득하게 되는, 넓은 의미의 중심인물로서의 주인공도 버리게 된다. (258)교차성 논의의 물꼬를 튼 선구자 오드리 로드흑인이자 여성이자 레즈비언이자 엄마 시인으로서 오드리 로드는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평생을 싸웠다. 오드리 역시 결혼 전 한 차례 낙태 경험을 했다. 어슐러 르 귄이 뉴욕의 값비싼 의사에게 수술을 받은 지 1년 뒤, 오드리는 2주치 봉급을 털어 40달러로 낙태 수술을 해줄 간호사를 찾았다. 모성과 아이를 지키는 데 안전한 울타리가 필요하다고 느낀 오드리는 백인 게이 남성과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았다. 많은 친구들의 축하와 축복을 받은 이들의 협조적인 삶은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오드리는 민권운동에도 관심을 가지며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일과 시 쓰는 일을 계속했다. 하지만 오드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더 자기다운 삶을 찾아 나섰다. 흑인 주류 문학, 혼혈 비트 문학, 백인 페미니스트 지식인들, 급진적인 블랙아트 운동, 이 모든 것에 긴장된 거리를 유지하며 오드리는 자신만의 그룹을 만들었다. ‘아더마더스(자기 자식이 아닌 아이를 키워주는 사람)’라고 불리는 미혼/비혼의 친구들, 이웃들,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들로 자신을 둘러쌌다. 프랜시스라는 실험심리학자와 사랑에 빠져 새로운 가정을 꾸렸을 때 자기 삶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가장 창조적인 시기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의 퀴어 가정을 (아이들이 짜증을 낼 정도로) 최대한 평범하게 유지했다. 오드리 로드는 주변에 적절한 후원자, 동조자들을 조직하는 데 능숙했는데 특히 동료 시인 다이앤 디 프리마와의 관계는 모든 여성이 참고로 삼을 만한 것이다. 유방암에 걸리자 자신의 몸을 관찰하는 섬세한 기록을 남겼다. 결국 재발한 유방암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오드리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과제를 온전히, 넘치게 이루었고, 후배 여성 작가들에게 지금까지도 가장 강력한 모델이 되고 있다.그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엄마로서 흑인들이 모성의 황홀을 누리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 지배적 문화에 맞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한편, 레즈비언 엄마로서 배척당할 위험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모성이라는 게 무엇보다도 상실된, 혹은 보이지 않는 주체 위치라면, 그에 더해 흑인, 퀴어 모성은 비가시성의 교차로에 놓인 것이다. (290)다이앤 디 프리마는 부모로서도, 친구로서도 협력자가 되어주었다. 다이앤이 뉴욕과 서부를 쉴 새 없이 오가는 동안, 그녀와 오드리는 편지와 사진, 물려 입힐 옷 박스를 주고받았다. 오드리는 다이앤과 아이들이 조부모를 만나러 동부를 방문하면 그녀의 아이들이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기 위해 연락하곤 했다. 빵을 굽고, 구슬을 꿰고, 장신구를 만들고, 점성학과 주역을 공부하던 오드리의 히피 같은 면모를 다이앤은 장려했다. 그들은 1970년대 페미니즘에 부응해 시편을 주고받았는데, 이들 작품은 훗날 다이앤의 강력한 여신 연작 시집 『로바』와 서아프리카 여성 신들의 관능적이고 영적인 기도들을 담은 오드리의 시집 『블랙 유니콘』이 되었다.1968년 한 해 동안 다이앤은 오드리의 첫 책을 출판했고, 오드리는 다이앤이 네 번째 아이를 출산하는 걸 도왔다. 다이앤이 산파가 되어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녀는 의학 편람에서 \'가정 분만\' 항목을 찾아 읽었다. \"권장하지 않음.\" 하지만 단념하지 않고 때가 이르자 은색 부적을 몸에 두른 채 다이앤과 그녀의 파트너, 아이들이 머무는 호텔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여러 소설에서 읽었던 분만 장면들을 떠올렸다. \"너한테 끓인 물은 필요 없다는 걸 알아. 정말 필요한 건 살균된 가위들이지. 그때그때 상황을 봐가면서 한번 해볼게.\" 다이앤의 분만은 순조로웠다. 다이앤의 딸 타라의 최초의 순간에 함께한다는 기쁨은 오드리에게 생의 가장 심오한 미스터리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선사했다. \"아기들이 태어날 때, 그들은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다. 인간과 비슷하지만 아직 인간은 아닌 듯하다. 아기들은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완벽하게 자기 자신들이다. 그것을 바라보고 그것의 일부가 되는 것은 너무도 경이로운 일이며, 신비하고 영적이며 에로틱하고 힘을 북돋운다.\" (312)다이앤은 그녀에게 책상을 하나 주었는데, 오드리는 이 책상을 침실에 두었다. 책상이 침실을 가득 채운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에드는 오드리가 글을 쓰도록 주말에 세 시간씩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는 데 동의했다. 그녀도 아이들의 소음을 꺼버리고 \"일에 완전히 잠겨 있는 귀중한 순간들\"을 음미하면서 아이들이 근처에서 놀고 있을 때 일하는 법을 익혔다. (315)오드리는 젊은 여성들에게 멘토가 되거나 또래들에게 잔소리꾼 노릇을 할 때 가장 자기답다고 느꼈다. 1980년대, 베스와 조너선이 대학에 진학하자 그녀는 유럽으로 정기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거기서 서독, 네덜란드, 영국의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출신 페미니스트 및 레즈비언들과 교제하기 시작했고, 그녀가 탁월하게 해낼 수 있는 하나의 역할을 찾았다. 그들을 고취하고 지지해주는 일이었다. 인류학자이자 교수인 글로리아 베커는 네덜란드 흑인 레즈비언 그룹 \'시스터 아웃사이더\'의 일원이었는데, 이 단체의 명칭은 오드리의 영향력 있는 에세이 선집에서 따온 것이었다. (331)그녀는 \"언젠가 말해야겠다고 계획을 세우거나 다른 누군가의 말을 들으며 기다리고 있는 동안, 내가 말해질 필요가 있는 것들을 말했는지, 혹은 작은 침묵들로 나 자신을 그저 배반했는지와 상관없이\" 죽음, 즉 \"최후의 침묵\"이 지금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오드리는 유일한 해답이 자기 자신이 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한 흑인 여성 전사 시인이 당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하고 있습니까?\"여신의 창조적 카리스마로 흑인 여성 작가들과 연대한 앨리스 워커앨리스 워커는 가정 폭력과 인종주의적 폭력이라는 두 가지 폭력을 일상적으로 목격하며 자랐다. 흑인 여성들을 위한 학교인 스펠먼 칼리지로 진학했지만 날카로운 정치적, 문학적 감수성을 지닌 앨리스에게 스펠만의 교육은 지나치게 고리타분했다. 앨리스는 대학 시절 1963년 워싱턴 행진에 나갔고 함께 참석했던 백인 남자친구 데이비드와 손을 잡고 이튼턴 거리를 걸어 내려감으로써 온 마을을 충격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이듬해인 4학년 때 앨리스가 데이비드의 아기를 임신하자 큰 언니는 “헤픈 년”이라고 욕했고, 결혼했지만 아기가 없던 둘째 언니는 자기에게 아기를 달라고 졸랐고, 데이비드는 청혼을 했다. 그 어느 것도 선택할 수 없던 앨리스는 낙태를 했고 친구들이 2000달러를 모아주었다. 함께 병원에 왔던 백인 친구는 그녀가 마취에서 깨어나자 붉은 장미를 건넸다. 이후에 유대계 백인인 인권 변호사 멜을 만나 결혼한 앨리스는 남편과 함께 흑인 민권운동을 위해 미시시피주 잭슨으로 돌아왔다. 몇 년 후 딸 리베카를 낳았고 멜은 붉은 장미 꽃다발을 들고 병원을 찾았다.(한 해 전 앨리스가 임신 상태일 때 마틴 루서 킹 주니어가 암살당했고, 앨리스는 충격으로 유산했다.) 멜은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였지만 아이가 태어나자 더 열심히 민권운동에 매진해 앨리스를 외롭게 했다.(“[사람들은] 어떻게 나보다 더 그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지?”) 잭슨에서의 삶에 지친 앨리스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간다. 1980년대 초 『혁명하는 페튜니아』로 전미도서상 시 부문 후보에 올랐고, 비혼모 준 조던과 함께 ‘자매들’이라는 흑인 여성 작가 후원회를 조직했다.(토니 모리슨도 이 모임의 일원이었다.) 앨리스는 전투적인 블랙파워 운동에 스스로도 이질감을 느꼈고, 백인과 결혼한 것에 대해 흑인 동료들에게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앨리스는 여러 측면에서 무의식적이고 관습적인 요구에 무릎을 꿇지 않기 위해 애썼다. 이후 앨리스는 멜과 이혼하고 딸 리베카는 아빠 집(동부)과 엄마 집(샌프란시스코)을 2년씩 오가며 자랐다. 앨리스는 그러는 중에도 『매리디언』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고, 1980년대 말에는 『내 동반자의 신전』과 『컬러 퍼플』로 문학 명사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그토록 사랑했던 딸 리베카는 이후에 제3물결 페미니즘의 리더로 활동했고, 『흑인, 유대인, 백인』이라는 자전적 책에서 자신의 유년기, 청소년기의 어려움을 가감없이 토로해 화제가 되었다. 또 『아기에 대한 사랑』이라는 책을 써서 앨리스와 오랫동안 절연의 시기를 보냈다.워커의 글쓰기 작업이 끊기는 건 아기 때문만이 아니다. 남편의 일과 그녀의 작업, 그리고 다인종 부부로서의 존재는 모두 기성 사회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이었고, 워커는 쉽게 궁지에 몰렸다. 만약 그녀가 타자기를 치는 동안 전화벨이 울린다면, 아마도 그건 친구의 안부 전화거나 혹은 모르는 이의 협박 전화일 것이다. 우편함에는 출판사의 서신, 친구들의 편지와 함께 낯선 사람들이 보낸 욕설이 담겨 있다. 남편 멜이 출장을 떠날 때마다 그녀는 그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아침에 남편이 집을 나선 후 절망감이 파고들 때면, 앨리스는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363)나중에 앨리스는 어린 딸의 말을 통해 치유를 찾았다. 아름다움에 관한 에세이에서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강렬하게 인식하고 있던 상처를 세 살짜리 리베카가 처음으로 알아차려 주었다고 썼다. 리베카는 교육용 TV 프로그램인 「빅 블루 마블」을 보고 있었는데, 이 프로그램은 우주에서 본 지구 사진과 함께 시 작되었다. 아이는 엄마를 바라보다가 이 사진과 비슷해 보이는 것을 발견하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이는 그 자그마한 두 손을 옴폭 모아 엄마가 아이에게 하듯 내 얼굴을 감싸 쥐었다. \'엄마, 엄마 눈 속에는 세계가 들어 있어.\'\" (368)오드리와 마찬가지로 앨리스 역시 인생의 전환점이자 자신의 자긍심을 표명하는 선언으로서 낙태를 경험했다. 단편 「낙태」에서 낙태를 경험한 한 여대생은 이 사건에 \"진정한 어른의 시간을 소환하며 독자적인 삶의 방향을 포착하는 모든 흔적\"이 있다고 말한다. 죽을 수도 있었지만 살아 있다는 상황은 앨리스에게 새로운 절박감과 사명감을 가져다주었다. (375)준 조던에 따르면 1970년 세라로런스 칼리지에서 앨리스를 연사로 초대했을 때, 흑인 학생 단체는 행사 전체를 보이콧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언제나처럼 앨리스는 사람들의 예상에서 빗나가는 반응을 보였다. 앨리스는 세라로런스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조던의 전투적이고 시크한 차림(커다랗게 부풀린 아프로 스타일 머리, 트렌치코트, 부츠, 밤낮으로 끼고 있던 어두운 선글라스)과 대비되는 \"멋지고 평범하며 수수한 원피스\"를 입고 연설을 했다. 그녀는 청중들에게 화를 잘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부드러운 어조로 충고했다. 2년 후, 그녀는 다른 단체의 학생들에게 \"당신에게 침묵을 요구하는 사람은 당신 편이 아니다.\"라고 말해줬다. (389)\"앨리스는 모든 조상을 소환해 그동안 흑인 여성들이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우리가 집단적 애도를 할 수 있게 해준 것 같았다. 앨리스의 강연이 끝날 무렵, 방 여기저기에서 우리 자매들이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앨리스의 어머니 미니 루 워커가 그녀의 재능을 활용할 만한 기회를 가지지 못했던 것은 일부분 그녀의 아이들 때문이었는데, 이것이 앨리스가 모성에 대해 느낀 또 다른 복잡한 면모이다. 앨리스는 단편 「매일의 쓸모」 에서 교육을 받기 위해 집을 떠나 어머니의 전통과 단절되는 한 여성에 대해 썼다. 문화적으로는 풍요로웠으나 지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던 가정에서 나고 자란 워커와 카터 모두 자기변신은 이득만큼 손실도 가져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91)앨리스가 뉴욕에 도착하기 직전에 『혁명하는 페튜니아』는 전미도서상 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최종 후보 열한 명에는 에이드리언 리치와 오드리 로드를 포함한 여성 작가가 세 명 더 있었다. 네 명 중 수상이 가장 유력했던 리치는 다른 후보들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 중 한 명이 상을 받는다면 모두가 공동으로 상을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오드리와 앨리스는 동의했지만, 엘리너 러먼은 반대했다. 4월 18일, 전미문학상은 앨런 긴즈버그와 『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를 쓴 리치에게 공동으로 수여됐다. 워커는 시상식 자리에 함께하지 않았지만, 리치와 로드는 함께 무대에 올랐다. 리치는 세 사람이 함께 쓴 \"가부장적 경쟁의 조건을 거부\"하고 \"목소리를 잃어버려 여전히 들리지 않는 모든 여성의 이름으로\" 상을 수락한다는 강력한 성명을 낭독했다. (392)앨리스에게 딸에 대한 사랑이란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그녀 자신의 삶이 제공해준 협소한 가능성으로부터 자신의 아이를 자유롭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리베카에게 그 자유는 때때로 위압적이고 안전하지 않게 느껴졌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부모님은 나를 꼭 붙잡는 대신,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격려를 해주었다. 그들은 나를 감싸지도 보호하지도 경계하지도 보살피지도 않았다. 물론 나를 먹이고 쓰다듬고 나에 대해 감탄하고 내 성장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홀로 남겨지기 일쑤였던 나는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나의 위치를 스스로 발견하게 되었다.\" 아버지 집에서 나와 어머니 집으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열세 살의 리베카는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와 첫 섹스를 했다. 피임약을 먹었음에도 임신을 하게 된 열네 살의 리베카는 앨리스의 손을 잡고 낙태 수술을 받았고, 엄마와 딸은 병원에서 나와 영화를 보러 갔다. 앨리스는 이토록 이른 나이의 리베카로 하여금 섹스를 하게 만든 외로움에 대해서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엄마로 묘사된다. (399~400)누구보다 의식적으로 엄마가 되기를 선택한 앤절라 카터앤절라의 어머니는 매우 영특했지만 남자 형제들과 달리 대학에 가지 못한 채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은 후 아이들에게 매달렸다. 특히 앤절라가 이른 결혼을 하게 될까 몹시 걱정했고 좋은 교육을 시키고자 했지만(앤절라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옥스퍼드 진학을 권유받았다.) 앤절라는 도리스 레싱이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에 대한 반발심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결혼해버렸다. 남편은 음악 취향을 공유하는 재미있는 술 친구였지만 우울증이 심하고 회복탄력성이 부족했다. 계속 해고되거나 퇴사를 거듭해 앤절라가 잡지사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다. 앤절라는 이 결혼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것을 참고 견디며 9년 동안 네 권의 장편소설을 완성했다. 촉망받는 소설가가 된 앤절라는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젊은 일본인 남성 소조와 사랑에 빠졌다. 앤절라는 이혼을 통보했고 이에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폐색전으로 쓰러진 후 얼마 안 가 숨을 거두었다. 하지만 앤절라는 일본에서 소조에게 어이없이 버림을 받고 2년을 더 살다가 빈손으로 런던으로 돌아온다. 앤절라는 이 모든 일을 겪은 후에 16세 연하의 건축 인부 마크와 사랑에 빠지고 가정을 이루어 마흔셋의 나이에 출산을 했다. 이후 마크는 전업 아빠로서 육아를 전담하며 앤절라가 작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왔다. 앤절라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결혼과 임신을 밝히기를 꺼렸지만, 사실 이는 앤절라가 간절히 원하고 선택한 것이었다. 앤절라는 페미니스트 출판사 \'비라고(Virago, 말참견을 잘하는 여자)\'의 설립을 준비하던 카먼 칼릴을 만났고, 여기서 생애 마지막 책들을 출간했다. 앤절라와 가장 친한 친구들은 여러 국적을 지닌 인물들이거나 그녀처럼 자기 자신을 발명한 인물들이었다. 뉴질랜드에서 성장한 애드콕, 레바논계 호주인인 칼릴, 훗날 친구가 된 살만 루슈디, 가즈오 이시구로, 캐릴 필립스 등이 그들이다. 늘 ‘아웃사이더’이기를 바랐던 앤절라지만 늘 주변에 친구들이 넘쳐났고, 그 친구들은 앤절라의 아이를 함께 돌보아주었다.이 모든 여성들은 1983년 43세에 첫 아기를 낳은 앤절라 카터의 친구가 돼 그녀를 지지해주고 함께 길을 닦았다. 성 혁명과 페미니즘 혁명 덕에 엄마들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앤절라 주위로 모여들었다. 어떤 이들은 결혼을 하지 않았고, 어떤 이들은 동성 파트너와 함께했고, 어떤 이들은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았고, 어떤 이들은 비혼모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이들은 앤절라에게 어떻게 유아어를 사용하고 아기를 트림시켜야 하는지 보여주길 즐겼다. 또 아이를 키우건 키우지 않건 자신과 앤절라에 대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만족감을 느꼈다. (413)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자기 방식대로 엄마가 될 수 있었던 덕분에 그녀는 모성을 즐길 수 있었다. 그녀는 일기에 썼다. \"자식의 아름다움은 내가 최근에야 가담하게 된 음모다.\" 그녀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강렬한 느낌을 갖고 있었고, \'너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남들이 말하는 것 이상의 존재가 되고자 했다. 그것을 평범한 가정생활과 결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녀는 오랫동안 생각했다. 파트너와 함께 자신의 방식으로 모성을 정의하는 일을 해내게 될 때까지는. (417)1년에 6000달러에 달하는 브라운 대학의 비싼 학비에 분개했고, 그런 특권을 누리는 아이들한테 고분고분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앨리스 닐처럼 예민하고 얼굴이 두껍지 못했던 그녀는 성난 사람처럼 행동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고 권위를 행사하는 법을 배웠다. 강의 첫 날, 그녀는 닥터마틴 신발을 신고 흰머리를 헝클어뜨린 채 안티패션 룩으로 강의실에 도착했다. 학생들 중 한 명이었던 소설가 릭 무디는 이렇게 말한다.“카터는 수강 희망생의 숫자를 14명으로 줄이는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강의실에는 30명쯤 있었고, 그녀는 그냥 우리 앞에 서서 질문을 받으려고 했다. 뒷자리에 있던 어떤 젊은 남학생이 매우 거만하게 손을 들더니 기를 죽이려는 듯 회의적 태도로 질문했다. ‘저기, 어떤 작품을 쓰시는 분인가요?’ 답변하기 전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더니 한두 번인가 ‘음.......’ 하고 말했다. 그러고선 답했다. ‘내 작품은 강철 칼날로 어떤 남자의 자지 밑동을 잘라버리는 얘기지.’ 쉬는 시간이 되자 강의실은 텅 비었고, 확실치는 않지만 열네 명쯤 돌아왔다. 어쩌면 열한 명이나 열둘 밖에 안 됐는지도 모르고.” (419)앤절라가 프로비던스에 왔을 때, 그녀와 마크는 6년째 사귀는 중이었지만, 그녀는 한 편집자에게 보낸 편지에 자택 우편물은 (아마도 마크를 의미할) ‘건물 관리인’이 처리하고 있다고 썼다. (421~422)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모든 엄마들은 굳이 그들에게 주제넘은 짓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려는 모성 수호 경찰을 만나게 마련이다. 앤절라는 임신 38주에 국경 수비대처럼 구는 산부인과 의사와 특히 불쾌한 언쟁을 벌였다. 1983년 11월이었다. 그녀의 장편소설 『서커스의 밤』이 막 출간될 참이었다. 그녀가 감독 닐 조던과 함께 대본을 쓴 영화 「늑대의 혈족」은 제작 중이었다. 부커상 심사위원으로 심사를 막 마친 참이기도 했다. 축하 행사 다음날, 고혈압 증상으로 그녀는 사우스런던 여성 병원에 입원했다. [...] 의사가 자리를 뜬 후, 앤절라는 통곡하고 분노했다. \"그 생각을 할 때마다 혈관을 따라 아드레날린이 치솟아.\" 앤절라는 산부인과 병동 침대에 누워 로나에게 편지를 썼다. \"이 여자를 죽여버리고 싶어. 그 여자 내장들을 다 끄집어내고 싶다고.\" 그녀는 자신이 상대적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청하지도 않은 이런 조언을 백인 중산층 산모한테 할 정도면 흑인 프롤레타리아 산모는 얼마나 편하게 학대하듯 대하겠어?\" (452~453)그러나 창작의 차원에서 앤절라는 자신의 아기를 비상계단에 방치해두는 데 곤란을 겪었던 것 같다. 원래 그녀는 늘 자신의 픽션에서 분노, 매혹, 소외 같은 지배적인 감정 상태들에 의존했으며, 어둡고 누군가를 살해하는 이야기를 쓰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모성적 행복은 그녀가 다루기 힘든 제재 였다. 친구 페이 웰던은 앤절라가 자신이 억누르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던 걸 기억한다. \"자신의 마음이 이런(어둡고 누군가를 죽이는) 것들을 곱씹어 생각하도록 내버려두는 건 너무 무섭다거나 어떤 식으로든 아기에게 해를 입힌다고 앤절라는 느끼는 것 같았다.\" 웰던은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완전히 이해했다. 그건 불운같이 느껴졌을 것이다.\" 그녀의 후기작에는 \"초창기 글쓰기와 같은 차가운 힘\"이 없다. (457)그녀의 저널리즘은 여전히 신랄하고 정치적으로 예리했다.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이 친구 살만 루슈디에게 살해 위협을 가했을 때, 그녀는 루슈디의 평생지기로 뉴욕에서 그를 옹호하던 수전 손태그, 또 루슈디의 책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의 편이라고 했던 도리스 레싱과 함께 루슈디 곁에 서 있었다. 1991년 제1차 걸프 전쟁이 발발하자 (분노한) 그녀는 친구 수재너 클랩의 자동응답기에 온전히 욕설로 가득한 3분짜리 메시지를 남겨놓 았다. 애트우드는 그녀가 \"요정 대모\"의 분위기를 풍겼다고 했지만, 세이지는 그녀를 끝까지 \"할머니의 옷을 입은 늑대\"라고 불렀다. (457~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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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북
- 2024-02-19
-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의 필수 요소는 트러블! “문제가 터져야” 이야기가 시작된다- 밋밋한 아이디어를 궁금한 이야기로 만들어주는 플롯 설계 가이드- 글쓰기 베스트셀러 『트라우마 사전』, 『딜레마 사전』 시리즈 신작 ★★★★★ 이경희 소설가, 이나은 드라마작가 추천 ★★★★★“플롯에 새로운 활로를 열어줄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한다.” _이경희(소설가)“작가들의 믿음직한 길벗이 되어주는 훌륭한 책이다.” _이나은 (드라마작가)캐릭터가 겪을 수 있는 온갖 트러블과 갈등 상황을 모은 흥미로운 작법서가 나왔다. 작가 지망생은 물론 현업 작가들 사이에서 검증된 창작 파트너로 자리매김한 ‘작가들을 위한 사전 시리즈’ 신작으로, 캐릭터 설정과 배경 연출에 도움이 되는 『트라우마 사전』, 『디테일 사전』, 『딜레마 사전』 등에 이어 이야기에 리얼리티를 더할 아이디어를 가득 담은 『트러블 사전』이다.소설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간에 흥미로운 캐릭터는 언제나 ‘트러블’을 안고 있다. 인물이 어떤 문제도 겪지 않고 손쉽게 목표를 이뤄내는 이야기에는 재미도 감동도 없다. 능숙한 작가라면 장면마다 적절한 갈등 상황을 마련해 캐릭터의 행동과 감정 변화를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서사의 설득력과 몰입도를 높여야 한다. 『트러블 사전』은 인물이 쉽게 통제할 수 없는 내외적 문제 상황을 다방면으로 제시한다. 이야기 구조를 탄탄히 할 플롯 설계의 기본기를 다져주고 구체적인 글감을 제공한다. 자아나 관계에 얽힌 고민, 갑작스러운 사건이나 사고에 이르기까지 캐릭터를 몰아세울 만한 115가지 트러블 유형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으며(‘공황 발작을 겪다’, ‘같은 편을 잃다’, ‘중요한 것을 도난당하다’, ‘부상을 당하다’, ‘억울하게 비난받다’, ‘집에 화재가 나다’, ‘불청객이 들이닥치다’…), 각 유형마다 캐릭터가 가질 만한 태도와 심리적 변화, 감정선 항목이 수록되어 있다. 중심 플롯과 서브플롯을 효과적으로 구축하는 방법, 이야기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방법, 클라이맥스 장면을 제대로 연출하는 법 등 막연한 아이디어를 매력적인 스토리로 거듭나게 할 유용한 글쓰기 팁도 도입부부터 꼼꼼하게 정리돼 있다.지금 쓰고 있는 장면이 뭔가 밋밋할 때, 전체적인 스토리와 긴밀하게 엮이지 않을 때, 캐릭터의 감정선을 더욱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싶을 때는 『트러블 사전』을 펼쳐 이야기의 짜임새를 점검해보자. 이야기의 빈틈을 채워줄 훌륭한 재료들이 머릿속에 자리해 있던 숨은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작가는 능숙한 낚시꾼이 되어야 한다”‘문제 상황’이라는 비장의 미끼로 독자의 마음을 낚아채는 법〈오징어 게임〉의 성기훈은 빚 갚을 돈이 필요해 가학이 난무하는 게임에 참가한다. 『반지의 제왕』에서 아라곤은 중간계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 사우론에게 맞서기로 한다. 갚아야 할 빚이 없거나, 중간계의 혼란이 없으면 성기훈도 아라곤도 움직일 이유가 없다. 솜씨 좋은 낚시꾼이 그렇듯, 능숙한 작가에게는 독자를 이야기의 세계로 꾀어낼 비장의 미끼가 있다고 『트러블 사전』의 두 저자는 말한다. 작가에게 비장의 미끼란 무엇일까? 매력적인 캐릭터? 잘 갖추어진 배경?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잘 빚어낸 ‘트러블’이다. 캐릭터가 문제에 휘말리지 않으면 이야기는 존재하기 어렵다.성기훈과 아라곤처럼, 캐릭터는 목표를 향한 여정에서 불리한 상대, 조건, 환경 등 갈등과 각종 트러블 상황에 맞서며 독자의 관심을 끌게 되는 것이다. 『트러블 사전』은 바로 그런 ‘문제상황’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주무를 방법을 다룬 비법서다. 캐릭터의 성장을 돕고, 캐릭터의 가치와 믿음을 부각하며, 캐릭터의 과거를 드러내고, 무엇보다도 이야기를 진행시켜주는 ‘문제’와 ‘갈등’의 역할을 다각도로 연구해 이를 잘 활용할 실질적인 글쓰기 팁을 꼼꼼하게 정리해놓았다.현업 작가들이 사랑하는 ‘작가들을 위한 사전’ 시리즈 최신작재미있고 흥행하는 이야기를 창조하기 위한 ‘트러블’ 재료 창고SF, 로맨스, 판타지든(장르 불문) 소설, 영화, 드라마든(매체 불문) 수많은 작가들이 그동안 이 ‘작가들을 위한 사전’ 시리즈가 실제 창작에 얼마나 요긴하게 쓰이는지를 증언하고 입을 모아 추천해왔다. “타고난 상상력과 재능에만 기대는 글쓰기가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이야기를 배워서 써볼 수 있게 실질적으로 도와주는 작법서다.” 이번에 출간된 신간 『트러블 사전』 역시 작가의 책상 위에서 빛을 발할 또 한 권의 빠뜨릴 수 없는 보물창고다. 캐릭터가 공황 발작을 겪는다면?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다면? 억울하게 비난을 받는다면? 갑작스럽게 소송을 당했다면? 어느 날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스트레스와 딜레마로 이어지는 내적 갈등은 물론이고 통제하기 어려운 외적인 사건과 각종 문제 상황, 핸디캡 유형까지 고루 다뤄 현실감 있는 캐릭터와 스토리를 창조하는 데 활용하기 좋다.실제 이 시리즈를 활용해 창작에 도움을 받아왔다고 밝힌 SF 작가 이경희와 드라마 〈그 해 우리는〉의 작가 이나은이 추천의 말을 보탰다. “글을 쓰면서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 이야기의 활로를 열어주며, 창작 과정에서의 불안과 의심을 확신과 용기로 바꿔주는 믿음직한 파트너가 되어주는 책이다.”각종 스트레스, 딜레마, 사건, 사고, 핸디캡…인물이 겪을 수 있는 115가지 갈등 유형과 이야기 설계에 관한 핵심 이론까지115가지에 이르는 책 안의 ‘트러블’ 항목마다 활용 가능한 디테일이 담겨 있다. 캐릭터가 통제력을 상실해 당황스러운 상황에 허덕이게 만들고 싶다면 ‘통제 불능’과 ‘자아에 관한 갈등’ 항목을, 압력과 괴롭힘으로 고통에 빠진 캐릭터의 모습을 연출하고 싶다면 ‘힘겨루기’ 항목을, 중요한 것을 빼앗아 캐릭터를 곤경에 빠뜨리고 싶다면 ‘유리한 고지를 잃다’ 항목을 참고해보자.『트러블 사전』은 이처럼 다양한 트러블의 유형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할 뿐만 아니라 이들을 엮어 흡인력 있는 플롯을 짜는 요령도 알려준다. 모든 게 시간 순서대로 단순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나 플롯은 재미있기 힘들 것이다. 클라이맥스에서 주인공이 의지와 힘으로 내적 성장과 변화를 이뤄내도록 제대로 쓰는 법, 갈등(conflict)과 긴장(tension)의 차이, 매력적인 악당 캐릭터 만드는 법에 이르기까지. 책은 짜임새 있는 이야기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도구와 장치를 풍성하게 담은 실용적이고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 바이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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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의 시대 한중 문화충돌
- 임동욱 외 지음, 김인희 엮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24-02-19
한국과 중국은 왜, 문화로 충돌할까?문화소유권 논쟁, 그 이면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한국은 중국이 문화로 공격하는 유일한 나라 최근 미국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가 실시한 중국에 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80%가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한국인이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된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한중 간의 문화소유권 논쟁이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문화로 충돌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문화충돌의 핵심은 문화기원론을 중심으로 전개된 전통문화의 소유권 논쟁이다. 중국은 중국이 ‘발명’한 문화가 한국으로 전해졌으니, 문화의 소유권이 중국에 있다고 한다. 한국은 한국문화는 중국문화와 본질적으로 다르며 중국에서 기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양국은 문화의 기원을 밝히면 특정 문화의 소유권을 가질 수 있으며, 논란도 일단락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이 문화로 충돌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만약, 중국의 목적이 문화의 기원을 밝혀 소유권을 갖는 것이라면 왜, 다른 나라와는 소유권 논쟁을 벌이지 않는단 말인가? 그 이유는 중국이 문화기원 논쟁을 일으키는 목적이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문화소유권 쟁탈전이 아니라 ‘문화의 충돌’ 그동안 한중의 문화충돌은 오랜 역사적 경험으로 유사한 문화유산을 소유한 한국과 중국이 소유권을 놓고 벌이는 일종의 문화 소유권 경쟁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렇다면 중국은 마땅히 베트남, 몽골, 일본 등의 나라와도 문화소유권 논쟁을 벌여야 한다. 그런데 중국은 이들 국가에 대해서는 문화로 공격하지 않는다. 일본의 경우에는 문화보다는 역사적인 원인으로 갈등하고 있다. 일찍이 헌팅턴은 탈냉전 이후 “새롭게 태동하는 세계 정치구도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위험한 변수는 상이한 문명을 가진 집단들 사이의 갈등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헌팅턴은 세계 문명을 서방과 라틴아메리카, 이슬람, 힌두교, 유교, 일본 등 7개 내지 8개의 문명들로 나누고, 국가 간 무력 충돌이 발생하는 것은 이념의 차이가 아니라 전통, 문화, 종교적 차이 때문이라고 하였다. 헌팅턴의 예언대로 현재 세계는 문명 간의 갈등과 대립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19년 말 시작된 코로나 19가 갈등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동양인에 대한 비하와 조롱, 폭력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문명 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같은 유교문명권에 속하는 한중 간의 갈등은 점점 더 고조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양국의 문화소유권 쟁탈전으로 보이지만 한중의 문화충돌 이면에는 매우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서구 문화 제국주의에 침식당할 것에 대한 중국의 우려, 방어적 성격의 중국 민족주의와 홍위병적 네티즌의 폭력성, 역사와 문화를 통한 한중관계의 위치짓기 등 다양한 요인이 문화를 매개로 폭발한 것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한중의 문화적 대립을 양국 국민들 간의 감정적인 대립으로 보던 기존의 시각을 탈피하여 세계 정치구도 측면에서 접근하여 ‘문화충돌’이라 표현하였다. 서구 문화 제국주의에 침식당할 것에 대한 우려 한중 문화충돌의 원인 중 하나는 중국이 서구 문화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중국 정부는 문화 제국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의 국가 이념에 반하는 문화상품에 대한 제제를 가하고, 문화 애국주의를 강조하여 다른 나라의 문화상품이 중국으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고 있다. 2004년 단오 논쟁 당시 중국 언론은 한국 단오제를 ‘서양의 명절(洋節)’이라고 하거나 한국문화(특히 K-pop)를 서양문화와 동일시하였다. 이는 한류를 서구 문화 제국주의의 일부로 인식했음을 말한다. 단오 논쟁은 겉으로 보기에는 전통문화의 소유권 논쟁이었지만 사실은 서구 가치관의 유입을 차단하고 한류를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중 간의 문화충돌은 중국 정부가 주도하였다. 2004년 『런민일보』는 단오절에 대한 보도가 오보였음을 인식한 후에도 수정하지 않았으며, 중국정부는 한국이 중국 단오절을 강탈하려 하는지 관심이 없었으며, 2009년 중국이 단오절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한 후에도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시진핑 정부 이후 한중 간 문화충돌이 더욱 심화하는 원인은 시진핑 정부가 ‘문화쇄국’과 ‘애국주의 마케팅’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 정부는 정치적으로는 서구의 자본주의 사상과 문화 확산으로 사회주의 이념이 훼손되어 공산당의 집권 정당성이 약화하는 것을 막고, 경제적으로는 한류를 필두로 한 글로벌 경쟁체계 속에서 다른 나라의 문화상품이 중국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는 한편 자국 상품의 판매를 늘리는 이중 효과를 노리고 있다. 벌떼처럼 일어나 공격하는 홍위병적 민족주의 민족주의는 문화와 역사의 재해석을 통해 민족문화를 형성하여 구성원들의 국가에 대한 충성을 이끌어낸다. 오랜 역사적 경험을 가진 한국과 중국은 특정 문화와 역사를 자국에 유리하게 해석하고 귀속하는 과정에 갈등이 등장했다. 특히, 특정 문화의 소유권 문제는 민족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한중 국민 간 감정 대립으로 나타났다. 전통적 중화사상에서 발로한 우월의식, 아편전쟁 이후 외부세력에 당했다는 피해의식에서 나온 우환의식, 21세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키워가는 과정에 등장한 초조함이 중국 민족주의를 더욱 극단적인 배타성으로 나타나게 하였다. 이러한 강박관념과 불안한 욕구로 인해 중국인들은 자국에 대한 다른 나라의 태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최근 중국 민족주의는 일절 타협하지 않고 적을 몰살시키는 자비심 없는 홍위병 스타일의 민족주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는 중국 민족주의가 이데올로기적 선동과 선전 그리고 대중적 동원과 폭력에 극단적으로 익숙한 민족주의라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네티즌들이 주변국과의 작은 문화 갈등이나 충돌에도 쉽게 극단으로 치달아 벌떼처럼 일어나 공격하는 것은 중국 민족주의가 홍위병적 대중 민족주의 성향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 정부 들어 한국에 대한 공격이 증가하고 공세적으로 바뀐 것은 중국에서 문화를 이데올로기 투쟁의 도구로 보는 시각과 이데올로기 선전, 선동에 능한 홍위병적 네티즌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국자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마르지 않는 샘물, 중화주의 중화주의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으로 중국 애국자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중화주의는 국가주의라든가 민족주의를 의미하는 네셔널리즘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개념으로 한층 종교적인 것이다. 중화주의 원천은 역사와 문화인데, 중국인들의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은 역사를 초월한다. 한중의 문화충돌은 중국의 극심한 중화주의가 근대 이전의 위계 구도를 그대로 드러내면서 한국문화를 표상하는 김치, 한복 등 문화요소가 중국문화에서 기원하였다고 주장한 것이 원인이다. 중국이 전통 음식이나 의복과 같은 한민족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들에 대한 문제 제기를 통해 우월적 위치짓기를 시도한다면 한중 간의 대립은 점점 더 첨예화 할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 문화는 문명과 야만을 구분하는 기준이었다. 문화를 가지고 있는 화하족은 문명에 속하였으며, 문화가 없는 이적은 야만에 속했다. 문화는 화하족만이 ‘발명’할 수 있었으며 이적은 화하문화의 ‘교화’를 통해 야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러한 문화관념은 지금도 중국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인들은 한국 중국의 도움으로 야만에서 벗어났음에도 감사하지 않고 도리어 중국문화를 빼앗아 몰래 유네스코에 신청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문화가 중국에서 기원하였거나 일방적으로 주변에 전파한 것만은 아니다. 추석은 신라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현재로서는 신라의 추석이 중국 중추절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단정할 수 없으나 중추절보다 이른 시기에 명절로 자리잡은 것은 사실이다. 고려시대 접선(摺扇)과 고려청자는 송나라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송나라 멋쟁이라면 도포자락 안에 접선 하나쯤은 넣어둬야 했다. 원나라에서는 고려의 풍속이 크게 유행하였는데, 이를 고려양이라 한다. 일부 학자는 이러한 현상을 현재의 한류에 빗대기고 한다. 명나라 때는 조선의 마미군이 크게 유행하였는데, 마미군을 만들기 위해 전마의 말꼬리를 잘라 군사적 역량이 대대적으로 약화되었다고 한다. 이로 보아 문화는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 교류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고대 중국이 예악문화를 통해 이적을 교화하는 방식으로 천하질서를 형성하고자 하였다면, 현재는 중국문화를 전파하여 인류운명공동체를 형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월적 문화관에 입각하여 문화기원론을 주장하고 타민족의 문화정체성을 훼손한다면 중국이 원하는 ‘인류운명공동체’는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필자들의 핵심 주장 중국은 서구 문화 제국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의 국가 이념에 반하는 문화상품에 대한 제재를 가하고, 애국주의를 이용하여 다른 나라의 문화상품이 중국으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고 있다.-임동욱중국 네티즌들이 주변국과의 작은 문화 갈등이나 충돌에도 쉽게 극단으로 치달아 벌떼처럼 일어나 공격하는 것은 중국 민족주의의 방어적 속성과 홍위병적 대중 민족주의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박정수전통적 중화사상에서 발로한 우월(優越)의식과 아편전쟁 이후 서구 열강에 당했던 역사적 굴욕 경험에서 비롯된 우환(憂患)의식 그리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한 21세기 강국의 꿈을 키워가는 과정에 생겨난 초조함이 극단적인 배타성으로 나타났다. -윤경우시진핑 정부에 들어 한국에 대한 공격이 더욱 증가하고 공세적으로 바뀐 것은 중국에서 문화를 이데올로기 투쟁의 도구로 보는 시각과 이데올로기 선전, 선동에 능한 홍위병적 네티즌이 주도하기 때문이다. -김인희 단오 논쟁은 전통문화의 소유권 논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서구 가치관의 유입을 차단하고 한류를 저지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주도한 것이었다. -박영환신라 추석은 국왕부터 서민이 모두 즐기는 명절로 신라시대 명실상부한 2대 명절 중 하나로,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의 명절이자 축제다.-신종원 중국이 전통 음식이나 의복과 같은 한민족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들에 대한 문제 제기를 통해 우월적 위치짓기를 시도한다면 한중 간의 대립을 점점 더 첨예화 할 뿐이다.-권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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