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목록

전체 1837건(119/205 페이지)
전자책 목록 수 변경영역
  • 성은이 냥극하옵니다 (커버이미지)
    [장르문학]성은이 냥극하옵니다
    • 백승화 지음
    • 안전가옥
    • 2024-02-19

    왕이 고양이를 아꼈다는 짧은 기록, 퓨전 사극이 되다조선의 왕 숙종은 어느 날 고양이 한 마리와 마주친다. 왕은 그 고양이를 어여삐 여겨 곁에 두었고, 고양이 또한 왕을 잘 따랐다. 여러 문헌을 통해 전해지는 이 ‘냥줍’을 애묘인인 작가와 안전가옥의 스토리 PD가 유쾌한 퓨전 사극이자 추리 활극으로 재구성했다.길고양이에게 꾸준히 밥을 주고 어울리는 사람들, 매달 자신이 돌보는 고양이와 함께 모여 정보를 주고받는 사람들, 마음에 든 고양이를 돌본 끝에 훌륭하게 확대시킨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랑꾼이 등장하는 이 작품에서 가장 존재감이 강한 애묘인은 아무래도 숙종이다.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으려는 임금의 의지는 동물을 비롯한 약한 존재들에게 무관심했던 주인공 변상벽의 생각을 바꾸고, 고양이가 그저 쓸모없는 짐승이라 여기는 잔인한 반역자의 음모를 파헤치는 계기를 마련한다.〈걷기왕〉 백승화 감독의 첫 경장편 소설영화진흥위원회 기획개발지원사업 선정작《성은이 냥극하옵니다》는 글로 쓰였음에도 영상이 보이는 듯한 감각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영화진흥위원회 기획개발지원사업 선정작이자 영화감독이기도 한 백승화 작가가 발표하는 첫 경장편 소설이다. 백승화 작가는 연출작 〈걷기왕〉, 〈오목소녀〉 등에서 소박하지만 특별한 능력자들의 성장담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 낸 바 있는데, 《성은이 냥극하옵니다》 또한 밝고 환한 온기가 느껴지는 이야기다. 신분·연령·성별·신체 등의 문제 때문에 남들보다 다소 불리한 입장에 선 사람들이 대립과 대화를 거쳐 조금씩 시야를 넓히고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과정을 유머러스한 필치로 담아냈다.불같은 왕마저 무장해제, 그야 고양이니까 숙종은 사극에 비교적 자주 등장한 인물이다. 붕당을 이용해 평생토록 강한 왕권을 유지하면서 극적인 사건을 많이 일으켰기 때문인데, 특유의 불같은 성격이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그토록 화가 많은 임금을 누그러뜨린 존재가 하나 있었으니 다름 아닌 고양이다. 당대의 문인 김시민이 지은 〈금묘가〉라는 시에 묘사된 바에 따르면, 이 노란 고양이는 임금이 “금묘야.” 하고 부르면 제 이름을 안다는 듯 나타났다고 한다. 곁에 사람을 잘 두지 않는 임금과 한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으며, 날이 추워지면 임금 옆에서 둥글게 몸을 말고 잠을 청했다. 사람들은 고양이가 무슨 일을 했기에 숙종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야, 고양이는 귀여우니까. 사뿐사뿐 걸어가 고개를 들어 잠깐 눈을 맞춘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성은이 냥극하옵니다》의 독자들은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임금이 ‘냥줍’을 감행한 순간을 간접 체험하게 된다. 임금 품에 안긴 새끼 고양이는 “애옹.” 하고 울었고, 그때부터 이 깜찍한 생물은 정치적 음모와 추리 활극의 중심에서도 흐려지지 않는 존재감을 뽐내며 이야기에 사랑스러움을 더한다.선한 이들이 안겨 주는 편안한 웃음《성은이 냥극하옵니다》의 또 다른 힐링 요소는 선한 인물들이다. 출세 욕심에 임금의 고양이를 찾아 나섰다가 빈민촌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그들의 삶에 스며드는 전직 포교 변상벽, 변상벽의 가짜 무용담과 가짜 병법서를 시종일관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포졸이 되기 위해 정진하는 노비 쪼깐이, 도성 내 빈민촌에서 가족을 잃은 아이들과 떠도는 고양이들을 돌보는 묘마마 등 주인공 일행을 비롯한 등장인물 대부분은 타인에 대한 연민, 더 나은 자신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마음속 중심에 두고 있다. 이들이 잊을 만하면 허술한 언행을 보여도 비웃기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은 그래서다.선한 인물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움직이다 삐끗하거나 본인의 솔직한 마음을 툭 드러내는 장면들이 웃음을 자아내곤 하는데, 누군가를 비하하는 유머가 아니기에 불편함 없이 시원하게 웃을 수 있다. 이러한 섬세함은 인물 설정에서도 드러난다. 이 작품 안에는 왕과 노비, 70대 노인과 예닐곱 살 아이, 타고난 성별을 감추는 옷차림을 한 사람, 신체장애를 가진 인물들이 공존한다. 또한 그 모든 인물이 해당 신분, 연령, 성별, 장애에 씌워진 편견과는 무관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미소가 지어지는 활약상이다.상냥한 연대와 반듯한 성장의 가치사라진 임금의 고양이를 찾고 그에 얽힌 음모를 밝혀내는 과정을 경쾌하게 담아낸 이 작품의 표면 아래에는 우리 시대의 아픔과 맞물리는 이야기들이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다. 오랜 가뭄 탓에 도박판으로 몰리는 백성들, 도박장의 뒤를 몰래 봐주는 관리들, 그들의 시야 바깥에 조성된 빈민촌. 빈민촌과 그리 멀지 않은 왕궁 안에서는 파벌 싸움이 한창이지만, 당쟁의 주제는 빈민 구제가 아니다. 폐위된 왕비의 아들인 세자에게 넘어갈지도 모르는 왕위 계승권 때문에 누군가는 자객까지 고용한다. 정치적 목적을 이루는 데 혈안이 된 그는 약자를 험히 다루는 자와 결탁하고, 이로써 구중궁궐 내의 암투는 빈민촌 주민들의 고통과 직결되고 만다. 얽히고설킨 문제를 푸는 실마리는 연대와 성장이다. 주인공 변상벽이 아무리 집요한 포교라 해도, 궐내의 일과 연결된 사건을 혼자서 감당할 수는 없다. 그는 관찰력이 뛰어난 쪼깐이가 찾아낸 단서를 활용하고, 고양이에 대해 잘 아는 묘마마와 함께 ‘묘집사’들의 모임에 참석한다. 신분을 숨겨야 할 일이 생기자 변장에 일가견이 있는 밀매상 봉식이에게 신세를 지며, 출입이 금지된 구역에 접근하기 위해 평소 멀리하던 형 변빈을 찾는다. 그사이 변상벽은 그들 모두와 예전에 비해 수평적인 관계를 맺게 되고, 예전에는 얼씬도 않던 빈민촌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받기에 이른다. 자기의 이익만을 좇던 그는 어느새 힘겨운 시절을 견디는 백성을 대변하는 존재가 되어 간다.절망이 희망보다 쉬운 시대에는 착한 이야기가 소중해진다. 선량함의 가치를 재미있게 전하기까지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귀한 이야기다. 그러한 이야기는 상냥한 마음을 품으려 애쓰고, 반듯한 성장이 언제든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지쳐 갈 때 웃으며 손을 잡아 주곤 하는 것이다. 선한 의지는 고양이처럼, 정성을 들이면 줄을 매어 놓지 않아도 곁에 머물며 행복을 선사한다. 《성은이 냥극하옵니다》가 책장 너머로 전하는 메시지다.

    보유 1, 대출 , 예약 0, 누적대출 0, 누적예약 0
  • 세 개의 밤 - 박문영 장편소설 (커버이미지)
    [장르문학]세 개의 밤 - 박문영 장편소설
    • 박문영 지음
    • 아작
    • 2023-04-14

    21세기 판 《멋진 신세계》, 한반도 포스트 아포칼립스!2022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제2회 한국SF어워드 중단편 부문 대상 수상작 〈사마귀의 나라〉의 긴 이야기 《세 개의 밤》은 다양한 매력을 가진 작품이다. 환경파괴에 대한 경고, 자본주의가 독식하는 세상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에 대한 미래 예측 보고서이기도 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생존 투쟁기이다. 또한 잔혹한 세상에서 자기 힘으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길을 찾아 나가는 세 청소년의 성장기로 읽을 수도 있다. 그리고 ‘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의 대답을 찾기 위해 독자가 자꾸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추리 스릴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세 개의 밤》은 가장 21세기적인 방식으로 ‘벽 바깥’의 디스토피아를 바라보도록 해주는 작품이다. 국가 권력이 자본의 권력으로 대체되는 시대에 자본이 광고하는 유토피아란 얼마나 연약하고 기만적인가. 그리고 그 안에서 자본이 제공하는 화려한 눈속임과 헛된 말장난에 속지 않고 다른 존재를 짓밟거나 죽이지 않고 다 같이 살아남으려면 우리는 어떤 질문을 하고 어느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는가. “가장 21세기적인 방식으로 ‘벽 바깥’의 디스토피아를 바라보도록 해주는 작품”— 정보라, 소설가“판타지로 한 겹 감싼 감상적인 희망을 제시하지 않는다. 아프도록 현실적이다.”— 황모과, 소설가21세기 판 ‘멋진 신세계’, 그 벽 너머에서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가상의 미래 영국은 계급 차별과 장애 차별 및 외모 차별을 사회구조 안에 체계화하여 차별과 착취를 기반으로 번영하는 곳이다. 여기에 보호구역에서 태어난 ‘야만인’ 존이 등장하여 이 ‘멋진 신세계’의 화려한 가면을 하나씩 벗겨낸다.그런데 헉슬리가 묘사하는 ‘야만인’ 존의 장점과 미덕은 근본적으로 헉슬리가 작품 속에서 비판하는 장애 차별과 외모 차별에 기반해 있다. 존은 신체적으로 매력적이며(그래서 ‘멋진 신세계’의 시민 레니나가 관계를 가지고 싶어 한다) 지적으로도 우월하고 무엇보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적재적소에서 자연스럽게 읊을 수 있는 높은 문화적 소양을 갖춘 ‘고귀한 야만인’이다.‘야만인’ 존의 자살이 비극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이렇게 신체적, 지적, 정서적, 문화적인 측면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갖춘 사람에게 독자가 공감하고 그런 우월한 인물이 차별과 착취에 바탕을 둔 천박한 세계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데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에,만약 존이 아름답지 않았다면?고귀한 문화적, 정신적 소양을 갖추지 않았다면?신체장애와 삶의 트라우마만을 짊어진 채 “멋진 신세계”에 도착했다면? 박문영 작가의 《세 개의 밤》은 바로 그런 이야기이다. 《세 개의 밤》은 2015년 제2회 한국SF어워드 중단편 부문 대상을 받았던 에 작가가 뒷이야기를 이어서 장편으로 개작한 작품이다. 소설에서 앞의 절반은 유해 폐기물 처리장이 되어버린 섬에서 태어나 자라난 아이들과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어지는 절반에서는 주인공인 세 아이가 거대기업의 비윤리적 결정으로 인해 학살의 땅이 되어버린 섬에서 탈출하여 ‘멋진 신세계’인 본토에 도착한 뒤에 또다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꼬리가 달린 아이 사마귀는 예술 활동을 통해 자신의 기억과 트라우마를 표현하고, 얼굴이 물집으로 뒤덮인 반점은 공동체의 삶에 투신한다. 그리고 눈이 여덟 개인 팔룬은 자신을 돌봐주는 한 사람만을 믿으며 은거하는 삶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사마귀에게도, 팔룬에게도, 반점에게도 유토피아는 없다. 섬에서는 섬 나름의 차별과 폭력이 존재했고 본토 ‘고르다’에는 고르다 방식의 차별이 존재한다. 《멋진 신세계》에서 존에게 고향인 보호구역은 말 그대로 모든 인간성과 문화가 남아 있는 ‘보호’ 구역이었다. 반면 《세 개의 밤》의 섬은 질병과 재해와 굶주림의 공간일 뿐이다.그리고 질병과 재해와 굶주림에 시달리기 때문에 섬사람들은 차별할 이유를 열심히 찾는다. 신체적으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이빨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모아 꼬리가 달린 사마귀를 괴롭히며 우월감을 느끼고 자존감과 존재 의미를 발견한다. 섬사람들은 외지인인 궁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를 적대시하고 태어난 아이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겪는 모든 불행의 책임을 덮어씌운다.비윤리와 퇴폐라는 단어를 쓰고 싶었던 한 남자는 그 말이 생각나지 않아 주먹만을 불끈 쥐었다. 사람들은 쉬지 않고 사마귀와 궁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집 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그들 모자는, 낯선 사람에서 나쁜 사람이 되어갔다. (p. 101)섬의 차별과 폭력은 결핍과 두려움과 해결책 없는 고통에서 비롯되어 노골적이고 알아보기 쉬웠다. 하지만 본토인 ‘고르다’에서 세 사람이 겪는 차별은 은혜를 베푸는 듯한 내려다보는 시선, 동정과 감상이 뒤범벅된 매우 곤란한 종류의 것이었다. 예를 들어 사마귀의 예술작품을 본 관객들은 현실에서 벌어진 차별과 착취와 환경오염과 죽음의 문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구름 잡는 소리만 지껄여댄다. “비참한 만큼 아름다워요. 화폭에 담긴 산호, 공룡, 고래를 좀 보세요. 이 아이는 인류의 죄를 일깨우고 있어요.”“모르겠어요. 성스럽다고 해야 할까요. 그냥 보는 순간 이렇게 울음이 나오네요.”인파 뒤편에 있던 팔룬은 인상을 찌푸렸다. 상자 속 썩은 양파 하나가 다른 양파들을 썩게 하듯, 한 사람의 감상이 다른 이들의 감상도 오염시키고 있었다. (p. 253)결국 사마귀와 반점, 팔룬이 각자 추구하려 했던 조그만 유토피아는 철저하게 배신당한다. 기업은 이익만을 추구하며, 기업을 운영하는 인간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마치 기업 자체가 생명체인 것처럼, 기업을 운영하는 인간들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뉴스거리, 구경거리로서 사마귀의 신선함이 다하자 대기업은 사마귀의 ‘정상성’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반점의 공동체는 또 다른 억압의 공간으로 변질된다.그리고 이 모든 악의 배후에는 대기업이 손을 뻗치고 있다. 세 사람은 다시 도망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도망칠 곳이 과연 남아 있을까.그런데 여기서 뜻밖에도 《세 개의 밤》은 추리 스릴러의 특징을 나타낸다. 스릴러의 본질은 음모다. 세상에 거대한 해를 끼치려는 음모를 꾸미는 개인 혹은 집단이 있는 것이다. 추리물의 본질은 수수께끼다. 범죄가 있고 피해자가 있고 그러므로 범인을 밝혀야 한다. 《세 개의 밤》에서 작가는 이 두 가지 장르 특징을 이용하여 소설 속 세상이 본토의 폐쇄적 유토피아와 섬이라는 지옥으로 나누어지게 된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배제당하고 소외당하고 밀려나서 마침내 세상의 가장자리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리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냉정하게, 전략적으로 한 조각씩 보여줄 뿐 구구절절이 설명은 하지 않는다. 여기에 《세 개의 밤》의 흡인력이 있다.앞서 언급한 《멋진 신세계》를 비롯한 고전적인 유토피아/디스토피아 소설에는 ‘안내자’가 등장하여 유토피아가 성립된 과정과 역사를 강의한다. 그러니까 진짜로 역사 수업 장면들이 나오고 선생님이 강의를 한다. 유토피아 소설들은 대체로 절망적으로 재미가 없는데 대체로 이렇게 독자한테 강의하고 줄줄이 설명하려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반면 《세 개의 밤》에서 작가는 독자들이 읽으면서 질문을 쌓아가도록 기다린다. 이 섬은 대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이 지경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외지인이 흘러들어왔다니 그건 또 무슨 일인가? 섬사람들은 어째서 탈출하지 않는가? 탈출을 시도해본 사람은 없나?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세상이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됐나? 이런 질문은 모두 작품 안에서 대기업이 이윤을 위해 세상을 망치면서 꾸미는 음모, 생명의 터전과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그 현장을 덮고 감추려는 범죄의 본질과 관련된다. 작가는 이야기 속에서 독자가 계속 궁금해하도록 이끌다가 생각도 못 했던 시점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덤덤한 문체로 여러 질문에 대한 답변의 압축적이고 충격적인 한 조각을 갑자기 내보인다. 그런 뒤에 작가는 또 덤덤하게 자기가 할 얘기를 계속한다. 그러니까 독자는 계속 읽게 된다. 《세 개의 밤》은 이렇듯 다양한 매력을 가진 작품이다. 환경파괴에 대한 경고, 자본주의가 독식하는 세상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에 대한 미래 예측 보고서이기도 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생존 투쟁기이다. 또한 잔혹한 세상에서 자기 힘으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길을 찾아 나가는 세 청소년의 성장기로 읽을 수도 있다. 그리고 ‘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의 대답을 찾기 위해 독자가 자꾸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추리 스릴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세 개의 밤》은 가장 21세기적인 방식으로 ‘벽 바깥’의 디스토피아를 바라보도록 해주는 작품이다. 국가 권력이 자본의 권력으로 대체되는 시대에 자본이 광고하는 유토피아란 얼마나 연약하고 기만적인가. 그리고 그 안에서 자본이 제공하는 화려한 눈속임과 헛된 말장난에 속지 않고 다른 존재를 짓밟거나 죽이지 않고 다 같이 살아남으려면 우리는 어떤 질문을 하고 어느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는가. 《세 개의 밤》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질문한다. 물론 단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는 않겠지만, 이 질문은 그 자체로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다시 말하지만 박문영 작가가 《세 개의 밤》을 통해 던지는 가장 큰 메시지는 국가라는 행정적, 정치적 체제도 막지 못하는 거대 기업의 파괴적인 이윤추구 행위에 대한 비판이다. 여기에는 수많은 현실의 예시를 덧붙일 수 있다.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판 회사는 한국에서는 그래도 되니까 만들어 팔았고 처벌을 받게 되자 회사가 어려워졌다며 2016년에 당시 가습기 살균제 제조나 판매와는 아무 상관도 없고 책임도 없는 직원들을 집단 해고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평생 남는 장애와 질병을 떠안고 살고 있지만 장애와 질병 때문에 자유롭게 외부활동을 하거나 일반시민들에게 상황을 알리기 어렵고 잊히기는 쉽다. 2017년에 포항에서 지진이 일어났는데 지진 피해배상은 2020년까지도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지진의 원인은 지열발전소에서 땅을 뚫고 물을 주입했기 때문이었는데, 그러니까 자연지진이 아니고 사람이 일으킨 예측 가능한 지진이었지만, 서울 한복판이 아니고 경상북도 포항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갑자기 집이 무너져서 3년간 체육관에서 지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뉴스에서 흐지부지 조용히 사라졌다. 대구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처음 일어났을 때 전 국민이 마치 대구 시민은 모두 코로나19 감염원이고 사이비종교 신자인 듯 몰아붙였지만, 지금은 코로나19 확진자 70퍼센트 이상이 수도권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아무도 서울이 코로나19 확산의 근원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중심과 변방, 지배와 피지배의 영역을 나누고 그 이유를 갖다 붙이는 권력의 형태가 제국주의 시대에는 국가였지만 자본주의 시대인 지금은 기업으로 변했을 뿐 그 구분과 차별과 폭력의 구조는 완전히 똑같다. 나는 ‘그런 곳’에 사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바로 그 차별과 착취의 구조에 동조하는 행위이다. 물론 권력을 갖지 못한 개인은 자기한테 편한 쪽으로 회피한다. “그러니까 절망에 대한 우화가 아니었을까요?”“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벌어진 일이었다니까요.”“그 수식까지 연출인 거죠.”“믿기 어렵나 보네요. 실제라면 너무 끔찍해서 그래요?”사마귀가 남자들 뒤에서 말했다.“뭐가요? 뭐가 그렇게 끔찍해?” (p. 305)우화나 비유나 연출이 아니라, 차별과 착취와 환경오염과 재해와 질병과 폭력은 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변화의 첫걸음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단지 불운하다는 이유로, 권력이 없고 돈이 없는 그냥 한 개인이라는 이유로 이런 일들을 실제로 겪었고 지금 겪고 있다는 사실을 사실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첫 단계이다. 《세 개의 밤》이 그런 첫 단계로 독자를 이끌어주는 작품이다. 그러니까 그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그 비양심적인 기업들이 지금은 뭘 하고 그 피해자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한 번이라도 찾아보고 악한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에 한 번이라도 동참한다면 세상은 그 한 걸음만큼 더 변할지도 모른다. 물론 당장 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현실에서 한 걸음만큼이라도 행동한다면 나는 최소한 타인의 고통을 ‘우화, 비유, 연출’이라 비웃고 합리화하는 비겁한 껍데기 안의 추한 소시민,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소비자로서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이 복잡하고도 진실한 이야기 속에 함께한 독자로서, 다른 모든 생명체와 함께 생각하고 느끼고 살아가는 존재로서 나 자신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 정보라, 소설가

    보유 1, 대출 , 예약 0, 누적대출 0, 누적예약 0
  • 세 번째 장례 (커버이미지)
    [장르문학]세 번째 장례
    • 윤이안 지음
    • 아작
    • 2023-04-14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작가 윤이안의 첫 SF 소설집이별과 죽음에 대한 슬프도록 맑고 단단한 위로“사랑 때문에 죽은 이는 아무도 없다.”〈어션 테일즈〉에 수록된 인터뷰를 통해 윤이안은 문단에서 등단한 이후 그의 빼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지면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당연한 결과다. 딱히 새삼스러운 일도, 놀랄 일도 아니다. 오히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을 했다는 것부터가 신기한 노릇이다. 윤이안의 글은 ‘문단’에서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의 글에서 읽히는 맑고 단단한 깊이를 보라. 어떤 이들에게 윤이안의 글은, 잡귀가 군자의 그림자를 보고 괴력난신인 스스로의 정체가 들통이 날까 두려운 나머지 꽁무니를 빼고 도망칠 때처럼, 그저 경외감을 불러일으킬 무언가지 않겠는가? — 홍지운, 소설가슬프도록 맑고 단단한 위로동료 작가의 단편집에 들어갈 작품해설로 적절한 도입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 글에는 약간의 짜증이 담길 예정임을 밝힌다. 〈어션 테일즈〉에 수록된 인터뷰를 통해 윤이안은 문단에서 등단한 이후 그의 빼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지면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당연한 결과다. 딱히 새삼스러운 일도, 놀랄 일도 아니다. 오히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을 했다는 것부터가 신기한 노릇이다. 윤이안의 글은 ‘문단’에서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의 글에서 읽히는 맑고 단단한 깊이를 보라. 어떤 이들에게 윤이안의 글은, 잡귀가 군자의 그림자를 보고 괴력난신인 스스로의 정체가 들통이 날까 두려운 나머지 꽁무니를 빼고 도망칠 때처럼, 그저 경외감을 불러일으킬 무언가지 않겠는가? 농담이나 비아냥이 아니다. 문단의 몇몇 이들은 그들의 지향점을 장르적인 우회로를 통해 달성하고자 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 중 어떤 이들의 글을 볼 때마다 상당히 짜증이 났다. 왜 삼십 대가 한참 전에 지난 사람들이 살부(殺父)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누군가를 작품 안에서 SF와 판타지 그리고 미스터리의 도구를 빌려 대리살해를 저지르고 있단 말인가? 하여간 참, 피비린내인지 지린내인지 불쾌할 따름이다만, 어쨌든 이런 걸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윤이안은 정말이지 설명 불가능한 괴물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니 윤이안의 오랜 방황도 필연적인 결과였을 것이고.물론 서브컬쳐에서 살부의식을 담지 않은 작품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주류라면 모를까. 애초에 〈스타워즈〉 클래식 시리즈부터 그렇지 않은가? 다만 단순명쾌한 활극을 거쳐 비장한 영웅서사를 지나 최종적으로 타락한 아버지를 용서하고 구원하는 것으로 이 주제에 대한 명징한 답을 제시했다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을 뿐이다. 뭐, 〈스타워즈〉 클래식 시리즈와 같은 답을 내리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내가 제기하고 싶은 문제의식이 지워지진 않는다. 나는 의식적으로 퇴행에 빠진 경우라면 모를까, 살부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스스로가 너무 자랑스러운 사람들이 너무나도 버겁다. 왜 이렇게 멸망을 좋아하세요…. 왜 이렇게 다 죽여 다 죽이세요…. 좀비 영화의 B급 감성조차 못 되는 걸 뭐 대단한 이야기라도 된다는 듯이….맞다. 나는 지금 너무나도 납작하게 해당 신을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윤이안 같은 작가가 이렇게 오래도록 자신이 머물 지면을 찾아 헤매어야만 했다는 살아 있는 증거가 있으니, 나의 분석은 납작하기는 해도 부당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어쨌든 우리는 살부의식에 도취되지 않고 다음으로 넘어가야만 한다. 프로이트가 〈토템과 터부〉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애도의 영역으로 건너가야만 하는 것이다.이 애도는 윤이안의 글에 있어 핵심이기도 하다. 이별과 죽음 말이다. (단편집의 여덟 편이나 되는 수록작 중에 죽음의 이미지와 동떨어진 작품이 단 한 작품도 없으니 이 분석은 조금 손쉬운 결론이겠다.) 살부의식을 넘어서 애도로 이어지는 과정은 결국 계승과 수용을 위한 과정이다. 이 승인은 곧 타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일상으로 돌아와 나의 죽음을 향하기로 다짐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윤이안에게는 현실의 비극을 똑바로 바라볼 힘이 있다. 기를 쓰며 노려보거나 무의식적으로 흘겨보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차분하게,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바라볼 힘 말이다. 이 단단한 힘은 누군가에게는 슬플 정도의 위로가 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윤이안의 글을 읽었으면 하는 이유도, 윤이안의 글에서 많은 가치를 발견했으면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파울볼〉과 〈앨리스, 스탠드 업〉은 윤이안 식으로 풀어낸 아포칼립스다. 운석과 충돌하여 지구가 멸망할 위기를 앞두고서 뜬금없이 야구를 보러 가기로 하는 두 사람이나, 화장실에 갇혔다가 그 바깥세상은 지옥으로 바뀌었음을 알게 된 사람처럼 그가 그리는 멸망은 거창하지 않고 소박하다. 이렇게 세상이 바스러지는 모습은 재난의 손을 빌어서 현실을 박살 내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을 감추고자 하는 음습한 현실부정과는 한참 멀다. 무언가를 향한 증오도, 그 증오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좌절도 없는 것이다. 윤이안은 잔잔하게 파멸을 음미할 줄 아는 작가다.〈세 번째 장례〉는 모든 사람들이 더미 신체로 기억을 이전하며 죽음을 지연하는, 죽음에 대한 관념이 바뀐 세계에서 딸과 어머니가 또 한 번의 죽음을 앞에 두고 바다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며, 〈어릿광대를 보내주오〉는 큰이모의 장례식장에 유언을 따라 큰이모와 가까웠을 누군가의 목소리를 가진 인공지능 스피커를 들고 가게 된 ‘나’의 이야기다. 모두 장례식을 무대로 하는, 이 단편집의 성격을 잘 보여주며 또 가장 빛나는 작품들이다. 두 작품 모두 서늘한 죽음의 속에서 짙은 온기가 담겨 있으며, 장르라는 우회로를 통해 보다 직관적으로 죽음의 본질에 대해 고민한다.그 외에 〈드림 레플리카〉와 〈유리수의 세계〉는 윤이안의 SF적인 세계관을 설계하는 솜씨를, 〈목 없는 기수〉와 〈뱀과 사다리 게임〉은 그가 SF만이 아니라 미스터리와 호러의 문법에도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 작품들 역시 죽음이나 사후세계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죽음을 납득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차분하게 묘사하고 있다.너무나도 멋진 단편집에 식상한 수식어를 붙여 민망하지만, 윤이안의 글은 서릿발에서 추위를 이기고 피어난 꽃을 닮았다. 서늘하고 아름다우면서 고고하다. 겉으로는 덧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무엇보다도 강인하고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윤이안은 오래 헤맨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짐작하기에 이 사람은 단 한 순간도 헤매지 않은 것만 같다. 그저 묵묵히, 주변의 냉소와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믿는 길을 따라가며 이렇게나 멋진 결과물을 내놓았으니 말이다. 그의 글에는 오랜 시련 속에서도 퇴색되지 않은, 놀라울 정도의 굳건함이 담겨 있다. 그리고 어쩌면 작가 스스로도 그 사실이 의아한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든다.동료 작가의 단편집에 들어갈 작품해설로 적절한 마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여기에서도 약간의 투정으로 문단을 마치는 점을 양해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윤이안은 글을 진짜 잘 쓴다. 그러니까 부디 주변의 호응이 적었다거나 그의 장점을 부정하는 지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갔으면 좋겠다. 하지만 어차피 윤이안이라는 사람은 그렇게 해온 사람이고 그렇게 해나갈 사람이니 나의 이러한 요청은 애초에 별 의미가 없는 일이며, 이 작품해설 역시 아무런 의미 없는 혼잣말과 별 차이가 없는 셈이다.— 홍지운, 소설가

    보유 1, 대출 , 예약 0, 누적대출 0, 누적예약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