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목록

전체 856건(44/96 페이지)
전자책 목록 수 변경영역
  •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 명작동화 속에 숨어 있는 반전의 세계사 (커버이미지)
    [인문]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 명작동화 속에 숨어 있는 반전의 세계사
    • 박신영 (지은이)
    • 바틀비
    • 2022-02-24

    동화 속 주인공을 따라가다보면 맥락과 흐름이 잡히는 세계사 교양서서로 의존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오늘날의 세계를 거시적이고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가장 훌륭한 도구는 세계사이다. 그러나 역사 시간에 배운 짧은 지식만 어렴풋하게 머릿속을 둥둥 떠다닐 뿐 어디서부터 어떻게 공부를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이참에 세계사 공부 좀 할까 싶어 책을 꺼내들지만 딱딱한 역사 용어와 인명, 지명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데다가 지금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알 수 없어 바로 흥미를 잃게 된다. 너무 방대해서 엄두가 안 나는 세계사를 가볍게 접하게 해줄 교양서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개정증보판이 출간되었다. 저자 박신영은 \'왜 그럴까?\', \'정말 그럴까?\' 정신으로 무장한 역사 에세이스트로, 특유의 감칠맛 나는 스토리텔링으로 세계사를 유쾌하게 전달하고 있다. 저자는 세계사의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백설공주, 빨간 머리 앤, 소공녀, 제제, 마르코 등 친숙한 명작동화 속 주인공들을 불러들인다. 근엄한 영웅, 왕, 전쟁으로 가득한 세계사 속에서 소년소녀, 악당, 조연, 마녀, 이상한 영웅들의 이야기를 건져내고 세계사의 숨은 뒷얘기까지 탈탈 털어낸다. 백마 탄 왕자들이 자기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를 어슬렁거리게 된 사연, 마르코가 엄마를 찾아 삼만 리나 가야 했던 까닭, 빨간 머리 앤이 \'홍당무\'라는 놀림에 그토록 격분한 속사정까지, 명작동화의 역사적 배경과 맥락을 낱낱이 파헤치며 기가 막힌 반전의 세계사 속으로 안내한다. 소설 읽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세계사를 시작해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망설이지 말고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를 펼쳐보자. 우리의 옛 친구들이 세계사의 숨은 뒷얘기를 재미있게 들려줄 것이다.소공녀 세라, 빨간 모자, 제제, 파트라슈… "니들이 왜 거기서 나와?"우리의 단짝 친구들, 세계사의 주인공이 되다 세계사, 가볍게 시작할 수는 없는 걸까?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는 우리의 유년 시절을 함께했던 명작동화 캐릭터를 세계사의 무대에 등장시킨다. 그러다보니 이 책은 기존의 역사책이 갖고 있는 엄숙주의, 권위와는 거리가 멀다. 대신 이야기와 캐릭터가 가져오는 재미, 유머, 성찰이 있다. 인간은 이야기를 사랑한다. 인물과 줄거리에 민감한 고도의 사회적인 동물이다. 전 세계에서 비슷한 줄거리, 인물들, 플롯이 만들어지고, 아이들은 이 이야기를 어른들로부터 전해 들으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깨우치게 된다. 이야기는 집단 기억의 결과물이며 그 안에는 한 시대의 사회?역사적 구조와 배경, 당대 사람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담겨 있다. 그동안 세계사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는가? 그렇다면 다시 우리 곁을 찾아온 옛 친구들을 반가운 마음으로 맞이해보자. 줄거리와 캐릭터가 당신을 흥미진진한 역사 속으로 안내할 것이다. \'아, 이게 이렇게 연결되는 거구나!\' 무심코 읽고 지나쳤던 명작동화 속에 숨어 있는 역사적 사실을 새삼 깨닫고 깜짝 놀랄 것이다.알고 보니 이보다 억울할 수는 없다기가 막힌 반전의 세계사! "환상이 다 깨졌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이런 푸념을 할지도 모른다.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는 신성한 영웅, 훌륭한 왕, 근엄한 역사의 빈 틈, 어긋난 면에 주목하는 책이다. 저자는 역사는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세계사의 숨은 뒷얘기를 발굴해낸다. 한때 소녀들이 꿈꾸던 백마 탄 왕자는 사실은 백마 탄 \'백수\'였고(22쪽), 『삼총사』의 총사들은 절대왕정에 반기를 드는 \'조폭\'에 가까웠으며(158쪽), 『마지막 수업』은 프랑스가 피해자인 척하는 역사 왜곡 소설이었다(241쪽). 반면 빨간 모자를 잡아먹는 늑대인간은 늑대 가죽을 뒤집어쓰고 마을 밖으로 쫓겨난 범죄자였고 헨젤을 잡아먹으려고 한 마녀는 약초를 끓이는 할머니였으며(32쪽),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라고 혼잣말을 했다는 이유로 마녀로 낙인찍힌 왕비는 낯선 나라에 시집온 외로운 외국인 공주였다(59쪽). 피도 눈물도 없는 악독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어엿한 금융업자였으며(72쪽) 『소공녀』의 세라는 공주병 환자가 아니라 진정한 공주였다(217쪽). 『로미오와 줄리엣』은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들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부모 말 지지리도 안 듣는 10대들이었기에 가능한 혁명적 영웅 이야기였다(101쪽).『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는 역사적 팩트와 풍부한 상상력,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반전의 세계사를 생생하게 재구성해낸다. 선악의 이분법을 뛰어넘어 더없이 친근하고 합리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당대의 인물들을 되살려낸다. \'왜 그럴까?\', \'정말 그럴까?\' 정신의 역덕자꾸 이야기하고 싶게 만드는, 역사의 마력 저자 박신영은 2013년부터 \'역사는 이야기다\'라는 모토 아래 대중을 상대로 한 책 집필, 온오프라인 강연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타고난 \'역(사)덕(후)\'이다. 영화를 보다가, 책을 읽다가, 신문을 읽다가 자연스레 \'정말 그럴까?\', \'왜 그럴까?\'라며 역사적 연원이 갑자기 궁금해지고 호기심이 생긴다. 관련된 수십 권의 책과 자료를 읽고 모든 것을 스스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습관을 갖고 있다.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아내면 \'어떻게 아직 이걸 모르고 있었지?\', \'이렇게 재미있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갈 뻔하다니!\'라며 기뻐하고, 역사는 한 가지 질문에 답을 하면 다시 또 다른 질문이 생겨서 좋다. 새로 알게 된 지식은 아낌없이 강연으로, SNS로 나누는 것 또한 큰 기쁨 중 하나다. 저자의 강점은 이 책에서 한층 더 빛을 발한다.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는 저자 특유의 솔직담백하고 유머러스한 스토리텔링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마치 친한 언니, 누나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또 어려움 속에서도 강인함과 유머를 잃지 않은 언니, 오빠들 캐릭터를 통해 역사가 우리 삶에 희망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해줄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매번 세계사의 장벽에 부딪힌 사람이라면 이 책으로 가뿐히 뛰어넘어보자.

    보유 1, 대출 , 예약 0, 누적대출 0, 누적예약 0
  • 백합,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 (커버이미지)
    [인문]백합,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
    • 요라 지음
    • 구픽
    • 2024-02-19

    여성이 주류가 되어 이끌어온 장르 백합, 그 오해와 편견을 넘어 새로운 길잡이가 되길 바라며오직 ‘백합 장르’ 단 하나만을 다룬 국내 유일의 단행본서브컬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빠뜨릴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장르로 자리 잡았지만 그 자체에 관한 연구와 정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백합 장르. 소녀만화에서 ‘두 여자의 관계’를 밀도 깊게 다루는 서브 장르로 독립한 백합의 정의는 사실 늘 논쟁거리였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단 하나 명확한 것은 이 백합 장르에서 여성은 남성의 승인이 필요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이다. 남자라는 욕망의 대리인이 없기에 그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로든 갈 수 있다. Girls can do anything. 문자 그대로 여자아이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성욕, 권력욕, 지배욕 등 여성에게는 금지되었던 모든 욕망을 한꺼번에 분출할 수 있는 장르 백합. 이렇게 여성에게만 주연의 자리를 내어주는 장르는 흔치 않다. 이 책을 통해 백합 장르에 관한 편견을 버린, 보다 역사, 문화적 접근과 함께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백합 장르를 시도해 보길. 기대 이상의 흥미를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백합 장르는 어떻게 발전해왔으며 어떤 작품으로 접해야 할까일본에서 백합의 시초로 불리는 작품은 오시야 노부코의 『花物語(꽃 이야기)』이다. 1916년부터 1924년까지 일본에서 연재된 이 작품은 당시 여학생들의 바이블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단한 베스트셀러였다. 1900년대 초반 여학생을 위한 근대교육 기관이 다수 생겨나며 여성 사이의 로맨틱한 우정과 친밀성을 다루는 작품이 크게 인기를 끈 것인데 이 작품을 필두로 소녀 소설과 소녀 만화를 위주로 다양한 백합 작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성애 중심의 문화에서 퀴어 여성의 이야기들은 출판사를 통한 발표보다는 동인을 중심으로 발달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되레 시장 논리에 좌우되지 않고 자유로운 작품들이 발표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 다양성이 다시 상업 출판으로 유입되어 소녀 만화에서 본격적인 독립을 이루게 된 것은 또 다른 재미있는 부분이다. 이 책의 전반부는 백합 장르의 정의와 역사, 백합에 관한 오해를 다루고 있으며 후반부는 백합 장르 작품들을 주제별로 묶어 소개하며 독자들을 본격적인 백합의 세계로 안내한다. 저자는 기존 본인의 블로그에서 무난하고 접근성이 좋은 백합 장르 작품을 소개한 반면 이 책에서는 작품의 수를 줄이는 대신 설명의 깊이를 더했다. 여학교를 배경으로 상급생과 하급생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다룬 『마리아 님이 보고 계셔』, 소녀들의 전쟁을 다룬 K-백합 『모란과 도화의 계절』과 『나의 침묵에』, 『독고솜에게 반하면』, 찬란한 소녀들의 이미지를 이용한 『러브 라이브』, 사회인 백합물 『정시에 퇴근하면』, 『만들과 싶은 여자와 먹고 싶은 여자』, 백합 비주얼 노벨 『탐정뎐』, 『옥상의 백합령씨』, 일상계 백합인 『새내기 자매와 두 사람의 식탁』 등 고전부터 현재 트렌드를 가장 잘 반영한 100여 편이 넘는 백합 장르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나의 취향에 맞는 작품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백합 장르의 유명 작품 중에서 누락된 작품들이 있을 수 있으나 작가의 주관적인 견해와 취향 차이라는 점을 알려둔다.

    보유 1, 대출 , 예약 0, 누적대출 0, 누적예약 0
  • 번아웃의 종말 - 우리는 왜 일에 지치고 쓸모없다고 버려지는가 (커버이미지)
    [인문]번아웃의 종말 - 우리는 왜 일에 지치고 쓸모없다고 버려지는가
    • 조나단 말레식 지음, 송섬별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4-02-19

    ★ 앤 헬렌 피터슨, 안나 카타리나 샤프너, 올리버 버크먼 강력 추천!번아웃 팬데믹의 시대,어떻게 번아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일과 여가의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하면서 번아웃 문제 역시 사회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번아웃(burnout)은 만성적인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심리적 반응의 결과이며, 심리적 증상이 신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번아웃으로 인한 폐해는 스트레스나 불안감, 우울증, 자살로까지 이어지고, 개인이나 조직적 차원의 문제를 넘어 사회 근간을 무너뜨리는 위협 요인이 되기도 한다. 번아웃은 우리가 직장에서 경험하는 압박과 불만을 이야기할 때 자주 사용하는 용어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번아웃을 개인의 심리적 문제로만 치부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말 잘 모르기 때문에 이 담론은 지치고 절망하는 노동자들에게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는 번아웃 팬데믹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일에 지치고, 소외되고, 쓸모없다고 버려지고 있다. 이로 인해 삶에서 실패했다고 느끼며 절망한다. 직업은 개인의 가치와 정체성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번아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번아웃의 종말》(원제: The End of Burnout: Why Work Drains Us and How to Build Better Lives) 의 저자 조나단 말레식(Jonathan Malesic)은 흔히 이야기하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처럼’ 보인다. 학생 시절 자신에게 수많은 영감을 주었던 스승(학자)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이 되기를 꿈꾸었던 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윌크스배러에 있는 킹스 칼리지에서 신학 종신교수로 일하며 안정된 급여와 여유로운 일상을 누리며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부터 비참함을 느끼게 되었고, 비참한 감정의 중심에 자신의 ‘꿈의 직업’이 있었음을, 번아웃에 시달리며 고통받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고통에서 탈출하기 위해 종신교수직을 그만둔 뒤에 그는 연구자로서 번아웃이라는 용어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고자 노력했고, 그렇게 했을 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더 선명하게 이해되기 시작했음을 고백한다.“일에 대한 이상과 일의 현실 사이의 이러한 간극이야말로 번아웃의 원점이다. 우리는 우리가 실제로 하는 일이 우리가 하고 싶었던 일에 못 미칠 때 번아웃을 겪는다. 이런 이상과 기대는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다.”—본문 중에서우리는 왜 일에 지치고 소외되고 쓸모없다고 버려지는가왜 이로 인해 삶에서 실패했다고 느끼는가직업은 왜 그 사람의 가치와 정체성의 상징이 되었는가‘사회-의사’ 조나단 말레식이 처방한, 번아웃 시대를 건너는 방법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윤리적 문제로서의번아웃을 해체하고 넘어서기 위한 날카로운 진단과 해결 방안조나단 말레식은 번아웃을 일에 대한 기대와 일의 현실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경험으로 정의한다. 번아웃이 지난 50년 동안 증가한 문화적 현상이지만, 그 역사적 뿌리는 일이 단순히 밥벌이 수단이 아니라 존엄성과 인격, 그리고 목적의식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는 우리의 믿음 속에 단단히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번아웃의 종말》에서 과학과 문학, 철학 등의 다양한 렌즈를 통해 번아웃을 파고들면서 왜 우리가 순교에 가까울 정도로 일에 높은 이상을 두려 하는지 그 기원을 추적하고, 지속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는 문화적인 헌신에 이미 저항하고 있는 개인과 공동체의 모습을 그려낸다.또한 우리 중 많은 사람이 왜 일에 지치고 소외되고 쓸모없다고 느끼는지를 엄밀하게 조사하기 위해 교수라는 직업에 완전히 소진된 자신의 역사를 추적한다. 번아웃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지배했는지, 왜 일이 나빠지면 다른 모든 것도 나빠지는 것처럼 느껴졌는지, 그리고 번아웃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났는지, 이 경험이 일에 대한 인식과 경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회고한다. 그는 우리의 직업이 어떻게 우리의 가치와 완전한 정체성의 상징이 되었는지 조사하기 위해 과로로 지칠 대로 지친 상황과 마주할 때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일반적인 지혜를 피한다.“번아웃은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방식으로 전염되는 것은 아니지만 바이러스성 질병과 두 가지 중요한 공통점을 가진다. 첫째,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잠재적인 번아웃 환자다. 둘째, 우리는 공유 공간과 사회구조 속에서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번아웃을 겪게 된다. 모두가 잠재적 희생자인 동시에 잠재적 매개체일 수 있다는 공통된 입장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이 상호작용을 다시금 상상하고 문화를 변화시키며 번아웃이라는 팬데믹을 끝낼 수 있을 것이다.”—본문 중에서이 책은 불평등, 자율성 결여, 공동체 붕괴, 가치의 불일치 등 우리를 탈진하게 만드는 요인을 파악하는 것 외에도 윤리의 실패를 다루는 그룹을 집중 조명한다. 수도사, 비영리단체의 직원, 열렬한 취미 활동가, 장애가 있는 예술가들로 구성된 커뮤니티를 통해 ‘총업무량’ 환경에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과 근로자와 비근로자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길을 볼 수 있다. 이 비판적이고 인간적인 책에서 조나단 말레식은 우리가 과로를 인식하고 번아웃 문화를 극복하면서 일보다 삶의 중요성을 발견하는 데 필요한 지혜가 무엇인지 이야기한다.조나단 말레식은 우리가 번아웃에 대해 매우 모호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에게 명확한 정의가 없을 때 사회로서 우리는 위험한 상황에 빠질 뿐만 아니라 그 상황에서 벗어날 가능성과 기회를 놓치는 것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일과 건전한 관계를 맺을 수 없고, 그것은 곧 온전한 삶을 살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번아웃 문화를 끝내야 한다. 번아웃을 명확하게 정의해야 하고, 일과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명확하게 깨달아야 한다. 바로 그때, 우리는 더 나은 일터를 만드는 방법뿐만 아니라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방법까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사회-의사’로서 시대의 아픔을 살피고, 노동 문화를 변화시키면서 번아웃이라는 팬데믹을 완전히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조나단 말레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보유 1, 대출 , 예약 0, 누적대출 0, 누적예약 0
  • 번역을 위한 변명 (커버이미지)
    [인문]번역을 위한 변명
    • 그레고리 라바사 지음, 이종인 옮김
    • 세종서적
    • 2017-12-07

    미국 펜상 수상작 <LA타임스> 2005 올해의 책 ‘번역가들의 대부’가 말하는 매혹적인 번역 이야기 번역은 고되고 어려운 일이다. 묵묵한 노동과 오랜 작업 시간에 비례해 결과가 나오는 정직한 작업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직하게 애쓴 대가는 책 표지에 작게 인쇄된 이름으로 돌아올 뿐이다. 게다가 때때로 번역 시비에 휘말리기도 한다. 그 책임의 무게가 고스란히 역자에게 기울기 때문에 번역가는 절대적인 약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번역가라면 ‘번역가는 반역자’라는 오래된 낙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아무리 잘된 번역이라도 해도 원문에서 말하는 것의 핵심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이 경구는 오랫동안 번역가들을 죄질이 나쁜 악당으로 비난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저명한 번역가 중 하나인 그레고리 라바사조차도 이 낙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번역 인생과 번역에 대한 생각을 담은 『번역을 위한 번명』을 펴내면서 냉철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이에 대한 변론을 펼친다. 그레고리 라바사는 번역가로서 세계 문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가 번역한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은 그의 영역본 덕분에 세계 문학에서 널리 읽히는 고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마르케스는 『백 년 동안의 고독』 영역본을 스페인어 원본보다 더 좋아한다고 말했을 뿐 아니라 라바사를 일컬어 “영어권의 가장 뛰어난 라틴아메리카 작가”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마르케스의 노벨상 수상도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을 정도로 라바사는 마술적 리얼리즘을 세상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바르가스 요사 또한 스페인어 작가들은 자신들을 영어권 세계에 뿌리내리게 해준 라바사에게 크나큰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한 바 있다. 라바사는 가브리엘 마르케스, 바르가스 요사, 아스투리아스 등 노벨상 수상자들의 작품을 번역했다. 그뿐만 아니라 보르헤스와 함께 아르헨티나의 대표하는 작가 훌리오 코르타사르, 브라질의 국민 작가 조르지 아마두, 보사노바 음악의 거장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빔의 대표곡인 <이파녜마의 소녀>의 작사가인 브라질 시인 비니시우스 지 모라에스, 주제 사라마구와 비견되는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 등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로 글을 쓰는 거장들의 작품을 번역했다. 그는 라틴아메리카 문학 붐을 일으킨 주역으로서 사람들을 생소한 라틴아메리카의 세계로 이끌었다. 라바사는 저자뿐 아니라 번역가들에게도 존경받는 번역가이다. 『돈키호테』 번역의 권위자인 이디스 그로스먼은 그를 가리켜 ‘번역가들의 대부’라 불렀고,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출판사 중 하나인 크노프 출판사의 창업자 앨프리드 크노프는 ‘번역가들의 교황’이라 불렀다. 독자와 번역가, 저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그는 말년에 이르러 자신의 번역 인생을 회고한 『번역을 위한 변명』을 펴냈는데, 이 책에서 그는 번역을 옹호하며, 번역 방법에 관한 자신의 이론을 전개한다. 또한 번역가가 일상적으로 부딪치는 여러 문제에 대한 해결책 또한 풍부한 일화를 통해 생생하게 제시한다. 번역과 불만, 혹은 달라진 내용들 이 책은 ‘번역은 반역’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대한 노회한 번역가 라바사의 답변이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그는 제일 먼저 청문회를 열어 번역의 어떤 부분이 반역에 해당하는지 살펴보자고 제안하면서 변론의 포문을 연다. 즉 죄를 인정하기 전에 반역의 행위가 누구를 향한 배신인지 알아보자는 것이다. 배신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언어를 배신하기도 하고, 저자나 번역가 자신에게 반역을 저지르기도 한다. 라바사는 단어는 원래 배신을 잘하는 것으로 똑같은 사물을 지칭하는 단어일지라도 영어의 ‘stone’과 프랑스어의 ‘pierre’는 결코 같은 의미의 폭을 지니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언어에 대한 배신은 문화적 차이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소설 「변신」에서 카프카는 흉측한 벌레를 등장시키며 갑각류의 곤충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그 소설을 읽는 뉴요커라면 필경 뉴욕에 번창하는 바퀴벌레를 연상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저자에 대한 배신으로 이어지는데 언어, 문화와 같은 요소는 저자를 이루는 것이므로 그것들은 저자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룬다. 이를 번역자의 것으로 만들 때 번역가는 반역을 저지르게 된다. 마지막으로 라바사는 가장 슬픈 반역 행위를 언급하는데, 이는 곧 번역가가 자기 자신을 배신하는 것을 말한다. 작가이자 독자로서 번역가는 직감과 신중한 자신감을 가지고 번역해야 하는데, 때때로 두려움 때문에 진부한 규범을 더 중시하면서 직감을 희생할 때 반역을 저지르게 된다. 라바사는 이렇게 태생적으로 배반의 성격을 지닌 번역 행위를 고찰함으로써 번역이 불가능한 작업임을 역설한다. 이어 번역가로서 그를 형성하게 된 개인적인 배경을 보여준다. 언어에 매혹된 어린 시절부터 번역의 사전 준비 과정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암호병 생활, 본격적으로 상업적인 번역에 뛰어들기까지 번역에 관한 인연을 풀어놓는다. 여기서 그는 번역에 관한 그의 철학(훌륭한 번역은 훌륭한 읽기)과 접근방식, 독특한 작업 습관(읽으면서 동시에 번역하기) 등을 보여준다. 2부에서 라바사는 번역 작품에 관한 경험을 상세히 적어놓는다. 약 40년에 걸친 이 ‘전과 기록’은 스페인어과 포르투갈어의 주요 작품이 포함되어 있는데 마르케스, 코르타사르, 아스투리아스, 바르가스 요사, 고이티솔로,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 조르지 아마두, 마샤두 지 아시스 등 작가진의 면면도 화려하다. 라바사는 작품에 대한 간단한 논평과 작가와 얽힌 일화를 비롯해 번역가로서의 생활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문학 거장들과의 친분, 대우받지 못하는 작품에 대한 아쉬움, 가슴 아픈 운명을 지닌 작가를 회상하는 부분을 통해 작가와 문학에 관한 라바사의 애정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번역가의 어려운 처지나 평론가의 헐뜯기, 작품 선정에 관한 출판계 현실 등 출판계 내부자의 목소리도 들려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것은 라바사가 번역하면서 직면한 여러 문제에 관한 경험을 털어놓는 부분이다. 책 제목과 작품의 첫 문장에 접근하는 법, 장소나 별명 같은 골칫거리 단어들을 다루는 법, 책의 템포와 리듬을 유지하는 법, 등장인물의 개성을 살리는 법 등 그가 번역의 난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번역가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3부에서 그는 판결 선고 전의 최종 변론을 펼치면서 번역의 본질과 번역가의 역할을 되짚는다. 인생은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만 존재하므로 번역가는 번역가의 운명을 지니기 전에 반역을 저지른 셈이 된다. 그러므로 번역가가 자신만의 읽기로 원서를 읽음으로써 번역은 반역을 내재하는 동시에 ‘진실의 또 다른 버전’이 된다. 라바사는 이런 주장을 내세우며 판결을 독자에게 유보한다. 번역에 관해 논하는 이 책은 이론에 중점을 두지 않고,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생각을 전개하기 때문에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대번역가의 흥미로운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작품에 관한 구체적인 명세서는 현대 라틴아메리카 문학에 대한 참고서가 될 뿐만 아니라 같은 문제로 고투하고 있는 모든 번역가에게 귀중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보유 1, 대출 , 예약 0, 누적대출 0, 누적예약 0
  •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 한국어를 잘 이해하고 제대로 표현하는 법 (커버이미지)
    [인문]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 한국어를 잘 이해하고 제대로 표현하는 법
    • 이강룡 지음
    • 유유
    • 2015-11-30

    하정우 씨는 원래 김씨다 - 한국인이 익혀야 할 더 한국어다운 표현들한국 사람끼리 한국어로 이야기하는데 뭐가 이리 어려운 거지? 혹시 이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다면 그건 번역의 문제점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외국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일뿐 아니라, 전문 영역의 용어를 교양 영역의 용어로 옮기는 일, 교양 용어를 일상어로 푸는 일, 어른의 표현을 어린이의 표현으로 설명하는 일, 심지어 여자의 말투를 남자의 말투로 해석하는 일도 번역이다. 앙부일구(仰釜日晷)란 용어를 ‘오목해시계’라고 옮기는 것도 번역이다. 앙부일구를 곧이곧대로 옮기면 ‘뚜껑을 연 솥단지 모양 해시계’인데,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오목해시계’라고 적절히 의역되었다. 기업의 내부 거래를 가리키는 ‘회사 기회 유용’이 기사문에서 ‘일감 몰아주기’라고 바뀌어 표현되는 것도 괜찮은 번역 사례다. 번역가이자 글쓰기 교육 전문가인 이강룡이 쓴『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유유)는 한국어 실력을 제대로 갖추어야 훌륭한 번역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책이다. 원서를 분석하고 외국어 공부를 하는 것 말고, 평소 한국어 의사소통 습관을 잘 들여야 번역자에게 좋은 글쓰기 태도가 몸에 밴다고 그는 주장한다. ‘카톡’이나 SNS에 글을 쓰거나 문자 메시지를 보내려 하는데 ‘하마터면’이 맞는지 ‘하마트면’이 맞는지 헷갈린다. 그럴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자칫하면’이라고 쓰면 된다. ‘웬간히 좀 해’인지 ‘엔간히 좀 해’인지 헷갈릴 때는 ‘작작 좀 해’라고 쓰면 된다. 그러면 ‘하마터면’과 ‘엔간히’란 표현은 평소 의사소통에서 자취를 감추고 여전히 낯선 표현으로 남을 것이다. “배우 하정우 씨의 아버지는 배우 김용건 씨다. 하정우는 원래 김씨다. 씨는 이제 아버지의 후광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위 인용문에는 \'씨\'가 세 종류로 쓰였다. ‘씨’는 성 뒤에 붙으면 가문을 가리키는 접사가 되고, 성이나 이름 뒤에 띄어 쓰면 그 사람을 높이는 의존 명사가 되며, 홀로 쓰면 대명사가 된다. 첫째 문장에서 ‘하정우 씨’라고 띄어 쓴 건, ‘씨’가 하정우를 높이는 의존 명사로 쓰였기 때문이다. 둘째 문장에서 ‘김씨’라고 붙여 쓴 건, ‘김’이 성이라는 것을 확인시키는 접사로 쓰였기 때문이다. 드물긴 하지만 셋째 문장에서처럼 ‘씨’를 대명사로 써도 된다. 얼핏 헷갈리지만 한번만 잘 익혀두기만 하면 제때에 제대로 쓸 수 있을 것이다. 영어 문장에 ‘She’라는 말이 나왔다 하더라도 맥락에 따라 계집애나 소녀라고 옮겨야 할 때가 있고, 숙녀나 여인 또는 부인이나 노파라고 써야 할 때도 있다. 여자 이름을 쓰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 이창동이 연출한 영화『시』에 등장하는 미자는 시 수업을 들으러 갈 때는 영락없는 문학소녀이지만, 손자 밥상을 차려 주는 대목에서는 평범한 할머니가 되고, 성폭행에 가담한 손자가 쇠고랑을 차지 않도록 합의금을 마련하는 장면에서는 여자로서 자존심을 버린 가련한 여인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이 다양한 모습을 ‘그녀’라고 통칭한다면 얼마나 밋밋할까. 「소나기」에서 소녀에 대해 이야기하는 한 구절을 ‘그녀가 여간 잔망스럽지 않아’라고 쓰는 건 한국어답지 않다. 참나무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떡갈인지 신갈인지 갈참인지 졸참인지 굴참인지 상수리인지 구별할 수 있다. ‘발효된다’는 통칭 표현 대신 젓갈이 ‘삭으면’, 김치가 ‘익으면’, 메주가 ‘뜨면’처럼 맥락에 맞게 섬세하게 표현하면 더 근사할 것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명태를 가리키는 여러 용어를 안다. 새끼 명태를 노가리라 부르고, 얼린 것을 동태라 하고, 바싹 말린 것을 북어라 하며,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한 것을 황태라 부른다. 코다리는 꾸덕꾸덕할 정도로만 말린 명태다. 섬세한 한국어 표현을 익히지 못한 외국인은 ‘말린 명태’, ‘얼린 명태’처럼 표현할 텐데, 이 표현을 잘 아는 한국 사람은 그들에게 제대로 알려 주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통칭하는 표현은 편리하지만 원뜻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데는 한계를 지닌다.『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는 표현과 용어의 낯섦을 이겨 내고 더 낫게 의사소통하는 단계로 올라서자고 권한다.‘난중일기’ 는 한글만 써도 되지만 ‘백범일지’ 옆엔 한자도 필요하다 - 독자의 입장을 생각하는 번역번역자와 편집자는 원고를 정리하면서 한자나 외국어 문자를 어떤 경우에 병기하고 어떤 때에 병기하지 않아도 되는지 늘 고민한다.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유유, 2014)의 저자 이강룡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순신 장군이 전란 중에 남긴 기록인 『난중일기』를 표기할 때는 한자를 따로 쓰지 않아도 된다. 상식을 갖춘 일반 독자라면 ‘전란 중에 기록한 일기’라는 원뜻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김구 선생이 쓴 『백범일지』는 ‘白凡逸志’라는 한자 표기를 병기하는 게 좋다. 그렇지 않으면 독자는 ‘일지’를 널리 알려진 용어인 ‘일지’(日誌)라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백범일지』라는 제목을 풀어서 옮기면 ‘백범(평범한 백성이라는 뜻으로 붙인 호)이 쓴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라는 뜻이다. “미국의 뉴욕 시는 21세기 문화 예술의 중심지다”라는 번역문에는 ‘New York’을 병기할 필요가 없지만, “볼리비아의 포토시는 에스파냐 침략자들이 은을 수탈하던 도시다”라는 번역문에는 반드시 ‘Potosi’라는 표기를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자가 도시 이름을 ‘포토’라고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독자 입장에서 보면 원어를 병기해야 할지 말지 판단하기 쉽다. 예컨대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의 배경 음악은 주로 히사이시 조(久石讓)가 작곡했다”라는 문장에서 괄호 안의 원어는 굳이 병기하지 않아도 된다. 일반 독자가 문장을 단숨에 읽기에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고유한 이름을 원어로 병기하려면 뚜렷한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예를 들어 ‘지킬과 하이드’(Jekyll and Hyde)는 그 이름이 처음 나오거나 맥락상 다시 필요할 때 원어를 병기해 주는 게 작품을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름의 철자 하나를 바꾸면 ‘살해’(kill)와 ‘은폐’(hide)가 되고 그 두 개념은 작품의 주요한 구성 요소이기 때문이다.독자가 원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건 번역자의 의무 사항이다.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뒤마 피스가 지은 소설 『동백 여인』을 각색한 작품이다.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는 ‘길 잃은 여인’이라는 뜻이고, ‘동백 여인’의 원제인 ‘라 담 오 카멜리야’(La Dame aux Camelias)는 ‘동백꽃의 여인’이라는 뜻이다. 원작 소설과 오페라의 제목은 일본에서 ‘쓰바키히메’(椿姬)라고 번역되었다. 일본에서는 동백나무를 ‘동백’(冬栢)이 아닌 ‘쓰바키’(椿)라고 표기한다. ‘히메’는 여인이라는 말이니 ‘쓰바키히메’는 원뜻을 잘 살린 간결한 번역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원제를 바로 옮길 생각을 하지 않고 일본어 번역 제목의 한자 표기를 한국식으로 읽어 ‘춘희’라고 옮겨 왔다. 원문을 바로 옮기지 않고 다른 언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옮기는 걸 ‘중역’(重譯)이라고 하는데, ‘춘희’란 제목은 중역의 전형적인 문제점을 보여 준다. 한국인이 ‘춘희’라는 말을 보거나 듣고서 ‘동백꽃의 여인’이라는 원뜻을 떠올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더구나 한국에서 한자어 ‘춘’(椿)은 동백나무가 아닌 참죽나무를 가리키므로 병기된 한자를 보더라도 원뜻에 가까이 가기 어렵다. 일본 사람들은 나라 이름인 도이칠란트(Deutschland)를 읽고 쓰기 편하게 ‘도이츠’(獨逸, ドイツ)라고 옮겨 썼다. 한반도로 넘어온 일본식 한자 표기가 발음만 한국식으로 바뀌어 독일이 되었다. 비유하자면 중국으로 넘어간 코카콜라가 ‘커코우커러’(可口可樂)가 됐다가 한국으로 넘어와 ‘가구가락’으로 바뀌는 격이다. 그럼 이제 와서 독일을 도이칠란트로 바꾸어야 할까? 바꾸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데 독일이란 용어가 이미 굳게 자리를 잡고 있기에 고치려면 적지 않은 세월이 필요하다. 그래서 처음에 잘 번역하는 일이 중요하고 그 책임이 번역자에게 달렸다.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는 외국어 실력을 키우는 번역 교재가 아니라 좋은 글을 판별하고 훌륭한 한국어 표현을 구사하는 태도를 길러주는 문장 교재다. 기술 문서만 다루다 보니 한국어 어휘 선택이나 문장 감각이 무뎌진 것 같다고 느끼는 현직 번역자, 외국어 구사 능력에 비해 한국어 표현력이 부족하다 여기는 통역사, 이제 막 번역이라는 세계에 발을 디딘 초보 번역자 그리고 수많은 번역서를 검토하고 원고의 질을 판단해야 하는 외서 편집자가 이 책의 독자다.

    보유 1, 대출 , 예약 0, 누적대출 0, 누적예약 0
  • 번역청을 설립하라 - 한 인문학자의 역사적 알리바이 (커버이미지)
    [인문]번역청을 설립하라 - 한 인문학자의 역사적 알리바이
    • 박상익 지음
    • 유유
    • 2018-09-21

    모국어만 읽어도 노벨상을 탈 수 있는 나라 지난 2016년 오스미 요시노리 도쿄공업대학교 명예교수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으면서 일본은 3년 연속으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일본이 노벨상 수상자를 지속적으로 배출할 수 있는 배경은 국가 정책, 일본의 독특한 문화, 학계의 노력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 모든 이유에 바탕이 되는 한 가지를 꼽는다면 ‘번역’이 아닐까 합니다. 일본은 공부하는 사람들이 읽지 않으면 안 되는 모든 학문 분야의 기초 고전과 주요 도서들이 일본어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번역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거죠. 번역된 콘텐츠는 마치 공기와도 같아서 풍부한 양질의 번역 콘텐츠를 보유한 일본의 학자들은 좋은 공기를 한껏 마시며 연구할 수 있는 셈입니다.우리가 사는 한국은 어떨까요. 번역된 콘텐츠를 만드는 출판 시장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출판사들은 아무래도 ‘팔릴 만한’ 책들을 중심으로 책을 펴낼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그렇다면 공익사업을 수행해야 하는 정부는 지적인 한국 사회의 토대랄 수 있는 번역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요. 한국연구재단에서 운영하는 명저번역사업 정도가 유일한데, 그나마도 2011년의 24억 원에서 2017년에는 10억여 원으로 예산이 감소해서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에서 ‘전셋값’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제라도 번역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이유 박상익 선생은 번역을 통한 한국어 콘텐츠 확충의 중요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몰이해가 21세기 한국의 앞날에 걸림돌이 되리라는 암울한 전망과 대안을 담은 책 『번역은 반역인가』를 쓴 이후로도 한국어 콘텐츠 확대를 위해 정부에서 번역 지원 사업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꾸준히 내 왔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번역은 반역인가』를 낸 지 12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의 번역 환경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선생은 “누군가의 말처럼 100년 후 한국어가 경쟁력을 잃게 될 경우, 후손들이 지금의 우리를 못난 조상으로 지목하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탄식하면서 번역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진지한 의제로 다루어졌으면 하는 간절한 의지와 희망을 담아 자신이 쓴 글들을 모아 『번역청을 설립하라:한 인문학자의 역사적 알리바이』를 펴냈습니다. 선생은 번역 문제와 관련해 어떤 단체나 유력자의 힘에 의존할 의향이 없으며 오직 한국어를 쓰는 공동체의 지속적 번영을 위한 토대를 만드는 데 단단한 벽돌 하나를 쌓는 심정을 밝힙니다. 그리고 적어도 이 시대에 모국어를 저주하고 망치는 자들의 대열에 서기를 거부한 사람이 있었다는 물증 하나는 후대에 남겨야겠다는 비장한 소회를 털어놓습니다. 유유는 이런 선생의 주장에 깊이 공감하며 번역 사업을 국가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선생의 주장과 그 근거를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널리 알려 대안을 마련하자는 취지로 작은 책을 펴냅니다.(구체적인 주장과 근거는 선생이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올린 아래 글에 잘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이 우리 시대 ‘한 인문학자의 역사적 알리바이’로만 남지 않도록 뜻을 모아 주시기를 한국어를 쓰는 모든 독자들께 간곡히 바랍니다.--------저자가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올린 글번역청을 설립하라1. 미개한 중세 유럽은 선진 이슬람 문명의 학문적 성과물을 대대적으로 번역함으로써 스승인 이슬람 문명을 추월하고 나아가 근대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역사학자들이 ‘12세기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사건이지요. 번역을 통해 후발 문명이 선진 문명을 추월한 대표 사례입니다. ‘번역 왕국’ 일본에는 전 세계의 지식이 거의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번역되어 있어서, 모국어만으로도 노벨상을 탈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번역은 일류 국가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선행 조건입니다. 번역은 국력입니다.2. 전 세계 언어학자들이 인정하듯 한글은 가장 과학적입니다. 그러나 ‘콘텐츠’가 부족한 게 큰 약점이지요. 온 시민이 한국어만으로 전 세계의 지식·정보를 습득할 수 있게 하는 일은 세종대왕의 후손들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명이자 책무입니다. 번역은 지식 민주주의의기반입니다. 지식 민주주의가 빠진 민주주의는 온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없습니다.3. 자동번역기 시대가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계도 학습을 해야 합니다. 마중물이 필요한 거죠. 번역물이 다량 확보된 언어일수록 자동번역기 성능이 좋아집니다. ‘알파고’도 수백만 개의 기보를 학습한 끝에 놀라운 실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을 제대로 하려면 지금이라도 양질의 번역 텍스트를 대대적으로 확보해야 합니다. 역사에는 ‘월반’이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착실한 준비가 필요합니다.4. 서양의 동양학 연구자들은 연구 대상 동양 고전이 자국어로 번역되어 있지 않은 경우 고전 텍스트 번역 작업을 최우선시합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중국학과 한국학 전공의 석사·박사학위 논문 절반 이상이 번역으로 채워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번역을 학문적 업적으로 인정조차 하지 않지요. 그들에게 동양학이 외국학이듯, 우리에게는 서양학이 외국학입니다. 서양이 동양을 자신들의 언어로 번역하여 콘텐츠를 확대하듯이, 우리 또한 전 세계의 정보와 지식을 모국어로 옮겨 콘텐츠를 축적해야 합니다. 그것은 모국어에 대한 의무입니다.5. ‘번역청’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국립번역원’도 좋고 ‘번역위원회’도 좋습니다. 번역을 시장에 맡길 수 없습니다. OECD 가입국 중 일인당 독서량 최하 수준인 한국의 출판 시장은 꽁꽁 얼어붙은 빙하기입니다. 번역에 뜻을 둔 우수 인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21세기 지식 정보 사회에서 지식이 고갈된다면 나라의 장래를 낙관할 수 없습니다. 적극적인 정부 개입과 지원만이 악순환에 빠진 번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번역을 도로, 항만, 철도, 통신 같은 사회간접자본으로 인식하는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합니다.6. 전문 연구자는 자신들의 공부에 필요한 언어를 배워 읽고 써야 하지만 교양과 기초 학문을 두루 섭렵해야 할 시민들이 외국어로 텍스트를 읽을 경우 모국어로 읽을 때보다 학습 능률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전 세계 언어학자들이 “인간은 모국어로 사고할 때 가장 창의적이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이유를 되새겨 봐야 합니다.7. ‘인문학의 위기’란 말이 나온 지가 꽤 오래되었습니다. 한국의 인문학은 ‘학문 후속 세대 단절’을 우려할 정도로 피폐했습니다. 번역 활동은 인문학의 ‘뿌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작업입니다. 민주 시민에게 인문학적 성찰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숙한 시민의식 없이는 민주주의도 발전할 수 없습니다.

    보유 1, 대출 , 예약 0, 누적대출 0, 누적예약 0
  • 벌거벗은 교양 (커버이미지)
    [인문]벌거벗은 교양
    • 지식스쿨 지음
    • 메이트북스
    • 2024-02-19

    복잡한 세상이 술술 재밌게 읽히는 세상의 모든 TOP 10구독자 29만 명에 누적 조회수 1억 회를 기록한 화제의 유튜브 채널인 지식스쿨을 책으로 만난다. 지식스쿨은 역사, 문화, 사회, 과학, 정치, 경제 등을 넘나드는 다양한 인문학적 교양지식을 TOP 10 형식으로 너무나 재미있고 유익하게 풀어주는 채널이다. 이 책에 소개된 흥미진진한 35가지 주제는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정확한 테이터를 기반으로 탄탄한 스토리텔링과 이해를 돕는 이미지까지 친절하게 전달하면서 재미를 더했다.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를 키워주는 역사의 흔적과 사회마다 차이가 있는 문화적 차이를 각 주제마다 1위부터 10위까지의 순위로 분류해 서술했기에 입체적으로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 책을 통해 빠르게 발전하면서 발생하는 사회 현상, 21세기의 과학적 지식, 심지어 복잡하게 얽힌 정치와 경제적 이슈까지 한눈에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지식스쿨 채널은 세상에 숨겨진 각종 정보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줄 방법을 기획하면서 탄생했다. 다양한 영상들은 호기심으로 시작되어 과거부터 현재까지 궁금했던 하나의 주제를 영상으로 풀어나간다. 그중 ‘TOP 10’ 컨셉의 콘텐츠는 호기심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숨겨진 세상의 지식을 모두와 공유하고자 하는 생각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기존의 나열식 방식이 아닌 순위로 구분해 설명하니 더 집중할 수 있고 궁금증도 자연스럽게 커지면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그간 지식스쿨이 영상으로 만든 TOP 10 콘텐츠 중에서도 각별히 사람들의 큰 관심을 받았던 것을 특별히 엄선해 묶었다. 복잡한 출퇴근 시간이나 화장실에서 가볍게 읽다 보면 어느덧 양질의 상식이 가득 쌓일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의 내용은 어디서나 쉽게 접하던 흔한 정보들이 아니라 그 어떤 교과서나 책에서도 미처 알려주지 않은 신박한 교양상식들로 가득해 읽어나가는 재미가 상당하다. 그 어떤 책에서도 미처 알려주지 않은 신박한 교양상식!이 책은 총 5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에서는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를 키워주는 역사의 흔적을 전해준다. 과거의 흔적들을 TOP 10으로 되짚으면 역사적 사실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것이다. 나치 독일이 발명해 지금도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의 순위와 산업혁명 당시만 해도 일반적이었던 충격적인 관행의 순위가 TOP 10으로 정리되어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2장에서는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한 문화적 차이를 흥미롭게 알려준다. 전 세계 사람들이 각기 다른 문화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호기심과 재미를 안겨준다. 전 세계 과일 중 가장 이국적이고 특이한 과일과 세계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테마파크를 순위별로 알 수 있다. 3장에서는 전 세계의 관심을 모으는 사회 현상을 알려준다. 세계가 빠르게 변하면서 다양한 모습을 지니게 된 사회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전 세계 국경 중 가장 이상하고 특이한 국경의 순위와 미국의 모든 주에서 영어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의 순위를 TOP 10으로 확인할 수 있다. 4장에서는 21세기에 우리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준 과학적 지식을 TOP 10으로 정리하였다. 현실적으로 인류의 화성유인탐사가 어려운 이유의 순위와 달이 사라졌을 때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의 순위를 TOP 10으로 알아보자. 5장은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 특이했던 이슈들을 TOP 10으로 정리하였다. 정치와 경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독특한 일들을 엄선한 것이다. 한때 가난에 허덕였지만 현재 부유해진 국가의 순위와 중립국이 되려 했지만 최종 지위를 상실해 실패한 국가의 순위를 알 수 있다. TOP 10으로 정리한 역사, 문화, 사회, 과학, 정치와 경제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흥미진진한 질문들로부터 지적 호기심이 깨어나게 될 것이다.

    보유 1, 대출 , 예약 0, 누적대출 0, 누적예약 0
  • 법정으로 간 정신과 의사 - 정신감정과 심신미약에 관해 우리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교양 (커버이미지)
    [인문]법정으로 간 정신과 의사 - 정신감정과 심신미약에 관해 우리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교양
    • 차승민 지음
    • 아몬드
    • 2023-12-27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큰 족적을 남길 만한 책”-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치료감호소 시절 5년간 230건 넘는 형사정신감정을 진행한정신과 전문의 차승민의 정신감정과 심신미약 이야기2023년 4월, 어느 화창한 토요일 오후 대전에서 60대 남성이 만취 상태로 운전해 인도를 걷던 초등학생 4명을 차로 치였다. 그중 한 아이가 사망한 이 사건은 모든 언론에 대서특필되었고 사람들은 경악과 분노에 휩싸였다. 가해자를 향한 분노 속에는 희생된 어린 생명에 대한 한없는 안타까움과 슬픔과 함께, 이런 생각과 맥락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파렴치하게 술 먹고 기억나지 않는다며 책임을 회피하려 드는 것 아닐까?”, “혹시 심신미약으로 감형이라도 받으면?”, “굳이 심신미약 제도 같은 건 왜 있는 거지?”그렇다면 술을 마시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심신미약으로 봐야 할까? 국립법무병원(치료감호소)은 범법 정신질환자를 수용하고 치료하는 국가 기관인 동시에 ‘형사정신감정’을 수행하는 곳이다. 형사정신감정은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에게 법적인 책임능력이 있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해 진행하는데, 이것이 왜 필요하며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안다면 더 정확한 방향을 향해 분노할 수 있지 않을까?《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에서 치료감호소 내부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뤄 화제를 모았던 정신과 전문의 차승민, 그가 2년 만에 두 번째 책을 들고 돌아왔다. 제목은 《법정으로 간 정신과 의사》. 부제는 ‘정신감정과 심신미약에 관해 우리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교양’이다.부제에 걸맞게 그는 정신감정이란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 정신감정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지, 심신건재와 심신미약, 심신상실 판정 기준은 무엇이며 판결에서는 어떻게 활용되는지 실제 사례를 들어 자세히 기록했다. 또한 앞서의 ‘술에 취해 저지른 범죄도 심신미약으로 봐야 하는지’를 비롯해 ‘조현병 환자가 범죄를 저지르면 모두 심신미약 처분을 받는지’, ‘심신미약을 받으려고 일부러 속이려 드는 환자를 어떻게 감별하는지’, ‘사이코패스도 심신미약으로 봐야 하는지’ 등 정신감정에 관해 일반 독자 시각에서 평소 궁금해할 법한 여러 질문에 답한다.저자는 “정신감정이나 심신미약 같은 주제가 생각보다 우리 삶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과거 조두순 사건부터 앞서 언급한 음주운건 사건까지 ‘술을 먹어서 또는 정신질환을 핑계로’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려는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았으며 비단 강력범죄가 아니라도 정치인이 공화장애나 우울증을 핑계로 꼭 출석해야 하는 재판이나 조사에 나가지 않는 것도 모두 심신미약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뉴스를 볼 때마다 ‘이번에도 또 심신미약 타령이냐’ 조롱하고 분노하며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 상황이야말로 정신감정과 심신미약이 우리 가까이에서 일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짚는다.심신미약이라고 무조건 감형받는 것 아냐…감정서에 적는 단 한 줄을 위해 한 달을 고민하는 의사들그동안 몰랐던 정신감정 제도에 관한 모든 것형사정신감정이란 담당 법관이 정신건강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피의자의 정신 상태를 의학적으로 판정하는 일을 의미하는데, 형사재판에서 피의자가 범법 행위에 어느 정도 책임능력이 있는지 판단할 필요가 있을 때 진행한다. 근대 형법은 개인이 자기 행위를 책임질 수 있을 경우에만(책임능력이 있을 때만)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 전제에 따라 제정한 대한민국 형법에도 책임능력이 부족하거나 없는, 심신장애자 관련 조항이 존재한다. 심신상실 조항(형법 제10조 제1항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과 심신미약 조항(형법 제10조 제2항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 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감경할 수 있다”)이 그것이다.여기서 주목할 것은 ‘제2항’ 심신미약 조항이 역사에 따라 변화를 겪었다는 점이다.(1장) 저자는 1953년 10월 18일 처음 형법이 만들어진 당시에는 “감경할 수 있다”가 아니라 “감경한다”로 명시했다고 짚는다. 이 둘의 차이는 크다. 법에 명시된 ‘한다’는 언제나 해야 하는 일이지만, ‘할 수 있다’는 경우에 따라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변화를 겪었을까? 2008년 미성년자를 강간했음에도 술을 먹었다는 이유로 심신미약을 인정받아 형을 감경받은 ‘조두순 사건’ 이후, 심신미약이라고 해서 무조건 형을 감경해야 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이때 성폭력특별법에 ‘아동 성폭력 범죄의 경우 음주나 약물에 따른 심신미약이라면 감경하지 않도록’ 부칙이 생겨 ‘무조건 감경’이 무너졌다. 그러다 2018년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으로 그해 12월 8일부터는 일반 범죄에도 심신미약 의무 감경을 폐지했다. 이 사건들로 인해 심신미약이라고 해서 무조건 형을 감경하는 일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마디로 심신미약이라고 해서 모두 감형받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무엇보다 정신과 의사가 정신감정 결과를 냈어도 그것은 재판에서 ‘증거물 중 하나의 자료’로 활용될 뿐 증거 능력을 인정해 감형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판사의 몫이다.(1장) 의사는 전문가로서 의학적 판단을 제공하고, 법적 처분은 법률가가 한다는 뜻이다. 심신미약 판정을 받았다고 무조건 감형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다. 저자는 ‘정신감정 결과를 과연 믿을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언론에서 보도하는 한 줄의 결과를 완성하기 위해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고심한다”고 답한다.(3장) 한 달간 의사뿐 아니라 임상심리전문가와 간호사 등 여러 의료진이 다각도로 면담하고 모니터링해 쌓은 근거를 기반 삼아 종합적으로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한 달간 감정을 진행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피감정인의 ‘병동 생활’을 관찰하기 위해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일상생활을 굳이 한 달간 관찰하는 이유는, 정신질환이 남들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단순한 생활조차 제대로 할 수 없도록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이다.조현병이라도 심신건재 판정 가능술에 관한 심신미약 판결은 더 엄격해져…정신감정에 관한 대표적인 오해와 편견에도 답한다책은 정신감정과 심신미약 제도를 향한 대표적인 오해와 편견도 해소해준다. 보통 ‘정신감정과 프로파일링을 같거나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어떻게 다른지 소상히 알려준다.(2장) 프로파일링은 개인의 심리와 행동 특성을 분석해 특정 상황이나 영역에서 어떤 행동을 보일지 예상하는 것을 뜻하며, 범죄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활용된다. 마케팅에서 특정 소비자를 분석하거나 경찰이 특정 계층이나 성별을 검문 대상으로 삼는 것도 프로파일링이다. 범죄 영역에서 쓰이는 프로파일링은 한마디로 범죄자의 심리 행동을 분석하는 ‘과학적 수사 기법’이다. 즉 범죄자 프로파일링의 목적은 범죄자의 정보를 알아내 진범을 잡는 데 있다는 것이다. 반면 정신감정은 수사가 아니다. 정신감정을 하는 정신과 의사에게는 그 사람이 범죄를 저지를 의도가 있었는지가 아니라 사건 당시 피의자의 정신의학적 상태가 어떠했는지가 더 중요하다.그렇다면 조현병에 관해서는 어떨까? 조현병 환자가 범죄를 저지르면 무조건 심신미약으로 감형받을까?(4장) 대부분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만, 항상 심신미약 판정을 받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만약 조현병 환자가 무조건 감형받는다면 굳이 정신감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못 박는다. 실제 정신감정에서는 조현병 증상이 ‘사건’에 영향을 주었는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사건을 일으킨 당시, 조현병 증상이 범죄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확실해야 심신미약으로 본다는 것이다. 책에서 저자는 같은 조현병을 앓더라도 서로 다른 정신감정 결과를 얻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실제 사례를 들어 자세히 풀어놓으며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마지막으로 앞서 던진 가장 뜨거운 질문, ‘술 마시고 저지른 사람도 심신미약으로 볼 수 있을까?’에도 답한다.(5장) 저자는 정신감정의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13장)은 바로 ‘사건 당시’라고 말한다. 특정 사건을 저지른 바로 그 순간 변별능력에 문제가 있었는지 아닌지를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술에 취해 저지를 범죄의 경우라도 정신감정 결과가 심신미약일 수도 있고, 건재일수도 있다고 답한다. 실제로 책에는 그 기준에 근거해 정신감정을 진행한 여러 사례가 실려 있다. 다만 최근에는 음주 범죄 사건에 관해서 판결이 더 ‘엄격’해지고 있다고 짚는다. 특히 형법 제10조 제3항은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경우에는 전2항(심신미약)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라고 명시하고 있는데, 술이나 약물을 사용한 뒤 범죄를 저지른 경우 ‘스스로 원해서’ 사용한 것으로 보고 형을 감경하지 않는 추세다.정신감정 제도 자체에 대한 비판 많지만,나쁜 사람과 아픈 사람을 구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시작점저자는 물론 정신감정을 나쁘게 이용하려 드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2장에 진짜 환자와 가짜 환자를 감별해낼 수 있는 이유, 즉 의사를 속이기 어려운 이유가 자세히 실려 있다), 그렇다고 정신감정이 아예 가치가 없다거나 심신미약 제도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특히 “정신감정이 범죄자의 감형이나 회피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아니”라며 “정확한 정신감정이야 말로 나쁜 사람과 아픈 사람을 구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라고 힘주어 강조한다. 물론 현재의 정신감정 제도가 완벽하다는 건 아니다. 정신감정과 심신미약에 관해서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 분명 존재하는데, 정신감정이 범죄자 도피를 위해 만든 제도가 아님에도 여전히 대중이 ‘정신감정’ 하면 거부감부터 보이는 이유를 저자는 “정신감정의 표준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아 신뢰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기준을 표준화해야 한다고 제언한다.책에 따르면, 정신감정은 안전한 사회를 구축하는 일에 복무한다. 무엇보다 저자는 정신감정이 치료 기회를 놓쳤던 누군가에게 치료를 개시하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단초가 되는데 이 ‘치료’는 그저 그 사람 개인의 복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정신질환으로 인해 범죄를 저지를 사람이라면 증상을 개선하는 치료 자체가 재범을 막는,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이 된다는 것이다.책은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정신감정의 세계를 여러 겹 열어 보여준다. 조현병(4장), 음주로 인한 범죄(5장)뿐 아니라 치매(10장)나 자폐증(9장), 우울증과 조울증(6장), 성범죄자(8장)와 사이코패스(7장)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정신감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어렵지 않게 차곡차곡 알아갈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모두 읽은 후라면, 매일의 뉴스 속 사건이 조금 다르게 보일 것이다. ‘또 심신미약 타령이냐’는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정신감정 의사가 신중하게 분석하고 감정하는 모습을 그려보는 것, 그럼으로써 덮어놓고 (진짜) 정신질환자와 범죄자를 손쉽게 동일한 카테고리에 넣으려는 시도를 보류하는 것, 이 책은 그 주요한 단서이자 마중물이 될 것이다.

    보유 1, 대출 , 예약 0, 누적대출 0, 누적예약 0
  • 별것 아닌 선의 -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가장 작은 방법 (커버이미지)
    [인문]별것 아닌 선의 -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가장 작은 방법
    • 이소영 (지은이)
    • 어크로스
    • 2022-02-24

    우리를 지탱하는 별것 아닌 것들에 관한 이야기분노도 냉소도 아닌, ‘모래알만 한 선의’가 품은 어떤 윤리적 삶의 가능성“비관보다는 낙관을, 절망보다는 희망을 갖게 하는 글” _홍성수(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말이 칼이 될 때》 저자)“별것 아닌 선의를 담은 손길과 눈빛이야말로 서로에게 잊을 수 없는 선물이 될 수 있다” _김소영(방송인, 책발전소 대표)우리는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만 누구도 타인의 고통을 내 손에 못 박은 채로 살아갈 수는 없다. 연민은 쉽게 지치고 분노는 금세 목적지를 잃는다. 이 책은 취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위로와 공감의 순간들을 그러모은 것이다. 부조리하고 가혹한 세상을 단번에 바꿀 힘은 우리에게 없지만 좀 더 나은 사람, 좀 더 나은 시민이 되어 서로의 곁이 되어주는 일은 가능하다. 제주대학교에서 법학을 강의하며 연구자로 살아가는 이소영 교수는, 완벽하고 흠결 없는 실천이 아니라 서툴고 부족한 시도를 계속함으로써 우리 각자가 가진 선의의 동심원을 넓혀가자고 제안한다.상처를 알아보는 세심한 눈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가장 작은 방법자정을 넘긴 시각, 어느 젊은 부부가 불 켜진 빵집 문을 거칠게 두드린다. 빵집 주인은 그들이 며칠 전 아이의 생일 케이크를 주문했던 손님임을 알게 된다. 전화를 걸어 케이크를 가져가라고 채근해댄 그 며칠 사이에 부부의 아이가 사고를 당해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도. 빵집 주인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사과를 전하고, 부부에게 따듯한 커피와 갓 구운 롤빵을 내어놓는다. 이럴 땐 뭘 좀 먹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라는 말과 함께. 부부는 조용히 그가 내어준 빵을 먹으며 날이 밝아올 무렵까지 그가 풀어놓는 사소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소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A Small, Good Thing)〉의 이야기다. 몇 해 전, 칼럼 연재를 제안받은 저자는 가장 먼저 이 이야기를 떠올렸다. 타인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치유할 수도 없는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위로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사람들과 나누고자 했다. 빵집 주인이 그랬듯,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을 덜어줄 수는 없어도 허기는 달래줄 수 있을 거라고, 세상은 이런 식으로도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으면서. 그렇게 모인 50여 편의 이야기를 이 책 《별것 아닌 선의》에 담아냈다. 서투르지만 진심을 담아 건네는 ‘1인분’의 선의저자는 주변의 사소한 마음 씀에 기대어 생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온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준다. 전공 시험과 학원 아르바이트가 겹쳐 막막해하던 저자를 대신해 보충 수업을 맡아주었던 선생님, 눈물을 쏟으며 성당으로 가 달라는 승객을 위해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를 희생하고 성가가 흐르는 클래식 FM을 틀어주신 택시 기사님, 대학원생 시절 지도학생도 아닌 저자에게 ‘네가 어떤 학자로 커나갈지 지켜보고 있다’는 격려의 말을 전해주신 교수님을 떠올리며 기억의 한 조각을 독자들과 나눈다. 별것 아닌 배려나 호의가 누군가에게는 휘청거리는 삶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언한다. 그 자신이 그런 순간을 내어주기 위해 애쓰던 순간들도 소개한다. 상담 형식을 빌려 누구에게도 말 못 한 고민거리를 꺼내 보이는 학생에게 조용히 ‘듣는 귀’가 되어주거나, 자책과 절망을 반복하는 ‘세심증을 앓는 사람들’을 위해 본인의 ‘폭망’ 경험을 나누기도 한다. 서투르고 어설픈 사람이지만 타인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 저자의 태도는 잔잔한 감동과 울림을 선사한다.“그해 겨울 입시학원 교무실이 생각난다. 〈반짝반짝 작은 별 변주곡〉이 귓가에 맴돈다. 가난했던 나는 그 미소한 배려들이 얼마나 세심히 마련되었을지 미처 헤아리지 못한 채 주는 대로 받아 가졌다. 받아 가진 자로서 무얼 하면 될지, 은혜 갚은 까치의 시점에서 골똘히 생각해본다. 생의 여정 중 맞닥뜨릴 고단한 이들에게 몸을 누일 열차 칸을 그때그때 내어놓는 것, 그리고 주는 대로 받아 갖는 누군가를 만나거든 나 또한 ‘그럼에도 재차 뭘 내미는’ 것. 이는 일생을 두고 행해야 할 작업이므로, 일단 오늘 밤엔 하늘의 별처럼 많은 고마움들 가운데 하나를 글로 옮겨 사람들과 나누기로 한다.”(26쪽)날 선 분노만이 세상을 변혁하는 힘일까조심스럽게 내딛는 한 걸음의 가치2021년 1월, 소낙눈 내리던 서울역 광장에서 한 남자가 입고 있던 방한 점퍼를 벗어 노숙인에게 입혀주며 장갑과 5만 원권 지폐를 건네는 장면이 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사진이 실린 짧은 기사는 많은 이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주며 단시간에 널리 공유됐다. 얼마 후 일각에서는 선한 누군가가 건넨 도움의 손길이 미담으로만 소비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일었다. 개인의 온정에 기대어 유지되는 공동체의 온기는 체제와 자본의 모순을 도리어 은폐할 수 있다는 논지였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 ‘미담’에 냉소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선의가 하나 더해진 세상이 그 하나마저 제해진 세상보다는 나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구조적 모순에 대한 날 선 고발만이 사회 변화를 추동하는 유일한 힘인 것은 아니다. 저자는 결벽적인 태도로 어떤 실천이 가진 빈틈을 냉소하기보다, 우연하고 지속 불가능한 방식일지라도 일상에서 누군가에게 힘을 보탤 수 있는 작은 기회들을 늘려가자고 제안한다. 때로는 어떤 시선을 의식한 위선조차도 세상을 나아가게 한다. 위선마저 하지 않는 세상이야말로 야만일 것이다. 공동체의 온기를 회복하기 위한 길은 하나가 아니다. 《별것 아닌 선의》는 이 당연한 사실을 다시금 일깨우며 오늘 내딛는 한 걸음의 가치를 역설한다. 독자들은 책을 읽어나가며 삶이 부서지거나 마음이 깨어진 이들에게 귀 기울이는 방법을 ‘하나 더’ 발견하게 될 것이다. “착한 척한다고 비난하면 달게 받겠다. 나는 냉소보다는 차라리 위선을 택하려 한다.”(104쪽)

    보유 1, 대출 , 예약 0, 누적대출 0, 누적예약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