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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 푸드백신 - 일상의 음식이 최고의 의사다 (커버이미지)

    푸드백신 - 일상의 음식이 최고의 의사다

    • 평점평점0점평가없음
    • 저자박태균 지음
    • 출판사21세기북스(북이십일)
    • 출판일2014-10-08

    푸드백신 - 박태균 지음저자 박태균 기자는 국내 유일의 식품의약전문기자로, 사람들이 ‘좋은 식품’에 가지는 맹신과 고정관념, 편견을 깨고 식품의 영양소와 질병 간의 관계..

  • 스튜피드 - 위대한 성공의 시작, 바보 같은 생각의 힘 (커버이미지)

    스튜피드 - 위대한 성공의 시작, 바보 같은 생각의 힘

    • 평점평점0점평가없음
    • 저자리치 노튼&나탈리 노튼 지음, 조성숙 옮김
    • 출판사미디어윌
    • 출판일2014-10-08

    스튜피드 - 리치 노튼&나탈리 노튼 지음, 조성숙 옮김모든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은 바보 같아 보인다. 실행에 옮겨서 성과를 내기 전에는 말이다. 이렇게 상식에 반하는 일을..

전자책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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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꿈 부자 할머니 (커버이미지)
    [경제/비즈니스]나의 꿈 부자 할머니
    • 박지수 지음
    • 메이트북스
    • 2024-02-19

    재테크의 본질을 감동적이면서도 재밌게 전하는 경제소설10년 후, 20년 후, 멀게는 노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미래의 나를 상상하고 꿈꾼 적이 있는가? 경제적으로 안정된 부를 일구고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노년의 모습은 누구나 꿈꾸는 모습이다. 그런 노년을 위해 나는 지금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경제공부의 필요성은 알지만 바쁜 일상에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어렵게만 느껴진다면, 재밌는 소설로 경제를 배워보자. 이 책은 평범한 워킹맘인 주인공 지윤이 이웃의 부자 할머니 정여사와 대화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인생 계획을 세우는 형식의 경제소설이다. 기본적인 경제 개념부터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실전 투자법까지 모두 담고 있지만 전혀 어렵지 않은 이유는 재밌는 스토리 형식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곳에 거금을 맡겨 돈을 잃은 주인공의 모습은 마치 우리의 모습 같다. 당장은 일도 육아도 모두 포기하기 어렵지만 자녀를 풍족한 환경에서 키우고픈 주인공의 열망은 우리의 열망이기도 하다. 부자 할머니를 통해 경제를 보는 관점과 돈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하는 주인공의 성장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의식도 성장해 있을 것이다. 바로 실행할 수 있는 부자 할머니의 구체적인 투자법을 한 가지씩이라도 꾸준히 실행해보자. 지윤이 정여사에게 배운 배당주, 공모주, 달러, 세 개의 공을 꾸준히 굴려나가는 저글링 투자법은 개인 투자자들이 큰 위험 없이 장기투자를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이를 통해 재테크는 전문가들만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스몰 윈(Small win)을 통해 소소한 재미를 맛보게 될 것이다. 각 스토리 마지막에 있는 ‘지윤의 일기’는 하루를 돌아보고 새로운 다짐을 하는 데 좋은 일기 습관을 갖도록 자극제가 될 것이다. 부자는 돈만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다. 상황마다 부자 할머니의 애티튜드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소설이라는 형식이기에 더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부자가 돈과 삶을 대하는 태도, 가족이나 주변 지인들을 대하는 자세는 돈을 버는 스킬 못지않게 중요함을 가르쳐주는 듯하다. 소설은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고 큰 부자가 되었다”고 끝나지 않아서 현실적이다. 스몰 윈을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빅 윈(Big win)을 이룰 것이고, 그것이 반복되면 주인공과 독자 모두 ‘나의 꿈 부자 할머니’가 되어 있을 것이다.꿈에서도 찾던 멘토를소설에서 만나다!이 소설은 대기업에 다니며 육아를 병행하며 열심히 노력했지만 진급에서 미끄러져 한계를 느끼고 육아휴직 중인 주인공 한지윤이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부자 할머니 정여사를 통해 경제를 배워가는 스토리를 기본으로 한다. 부자 할머니는 남편 월급으로 자녀 셋을 키워내고 자산을 일으킨 인물로 지윤의 멘토 역할을 자처한다. 전업주부에서 공인중개사로 성공한 황금부동산 공사장도 지윤에겐 고마운 인물이다.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단지 내 상가에 있는 부동산, 약국, 피자 집, 공원, 어린이집 등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윤이 우연히 약국에서 처음 부자 할머니를 만나는 것을 시작으로, 부자 할머니는 지윤의 멘토가 된다. 지윤은 경제나 돈에 대한 공부가 없던 과거의 부끄러운 투자 이야기를 시작으로, 부자 할머니에게서 본격적으로 경제수업을 받는다. 부자 할머니 건물을 관리해주는 동네 터줏대감인 황금부동산의 공사장도 전업주부에서 어떻게 부를 일구었는지 지윤에게 상세하게 알려준다. 장소는 동창 모임 카페로 바뀌고, 지윤이 잘나가는 동창생들을 만나고 돌아와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모임을 스스로가 더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며 생각을 바꾼다. 부자 할머니의 집을 방문하고 책으로 가득한 부자 할머니만의 공간을 보며, 지윤은 또 배운다. 부자 할머니가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투자법과 철학을 실천해 옮기며 지윤은 성장해간다. 황금부동산 공사장을 통해 내집 마련의 꿈도 이룬다.■ 독자 서평지윤이 부자 할머니를 만난 행운이 있었다면, 나에게는 이 책을 만난 게 행운이란 생각이 든다. 소설이라 술술 재미있게 읽다가도 부자 할머니가 알려주는 삶의 지혜들과 재테크 이야기를 읽을 때는 어느 순간 책에 밑줄을 긋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앞으로도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이 들 때, 누가 돈 벌었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심란해질 때면 다시 이 책을 꺼내서 읽고 또 읽을 것 같다. 40대 워킹맘_강남순경제, 투자를 소재로 한 책이 이렇게 술술 읽혀도 되나 싶을 정도로 기분 좋게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내 주위 소중한 사람들에게 한 권씩 꼭 선물해주고 싶은 책이다. 책을 읽으며 어느새 나는 지윤이가 됐고, 지윤이처럼 부자 할머니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있었고, 다시 공부를 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작가님 책은 이제 막 투자공부를 시작하는 모든 이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것 같다. 40대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원_박완현실에 뿌리를 둔 우리 주변 인물들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그 속에서 경제를 보는 눈을 어떻게 키워야 하고, 어떤 실천들을 할 수 있을지 실전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있어 형광펜을 그어가며 읽을 정도로 좋았다. 소설이면서도 실전서와 같은 이 책이 나와 같은 많은 경제 공부 유목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도 되고, 모두가 ‘부자 할머니’를 꿈꿀 수 있게 해줄 것이라 기대한다. 40대 프리랜서_서혜진쫓기듯 살아가는 직장인이자 20년차 워킹맘으로서 책의 내용에 무척 공감한다. 저자의 모든 책 중 가장 현실을 잘 드러낸 이 책을 통해 다시금 본질에 가까운 경제에 눈뜨게 됐다. 특히 피자 집에서 하나씩 알려준 재테크 방법은 정말 유익했다. 한 걸음씩 다시 부자 할머니의 조언대로 실행하고 싶어졌다. 40대 이커머스 마케터_박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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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독박 간병 일지 - 어느 날,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커버이미지)
    [에세이/산문]나의 독박 간병 일지 - 어느 날,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 미아오 지음, 박지민 옮김
    • 이덴슬리벨
    • 2024-02-19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간병의 현장에서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고, 나를 챙기는 법을 찾다.”돌봄자는 슬픔으로 가득한 투명 상자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아요.어느 날, 돌보는 일이 끝난다고 해도 상자는 여전히 닫혀 있지요. 그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답니다.-프롤로그 중에서대만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은SNS 화제 연재작이 책으로 나오다!“간병인의 삶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풀어낸 만화 에세이”이 책은 대만의 한 만화가가 12년 동안 부모님을 돌보며 임종을 지킨 과정을 담아낸 만화 에세이 1권이다. 1권에서는 주로 아버지의 암 선고와 임종에 따른 간병 생활을 그렸다. 저자인 미아오는 2남 2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독립해서 만화가로 살던 어느 날, 어머니와 아버지가 연달아 암에 걸리자 기꺼이 부모의 주돌봄자가 되었다. 그러나 아무 준비 없이 뛰어든 간병인의 삶은 버거움의 연속이었다. 가장 가까이에서 사랑하는 가족이 쇠약해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고, 병이 진행될수록 짙어지는 죽음의 그림자를 고스란히 함께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통에 뒤척이는 환자 곁에서 함께 뜬눈으로 밤을 새우게 되는 게 돌봄자의 삶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돌봄자가 처한 상황을 ‘투명한 상자 안에 갇힌 것 같다’고 말한다. 바깥은 분명 환하게 밝은데, 돌봄자가 있는 상자 안쪽으론 햇살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다고. 간병의 현장에 가득한 슬픔과 고립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표현이다. 보다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간병은 ‘보답은 없고 고통과 상처만 가득한, 결과가 정해진 여정’이다. 돌봄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은 쉽게 호전되지 않고, 어쩌다 들른 가족과 친척에게선 쓴소리를 듣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특히, 평소 부모를 돌보지 않는 가족의 질책은 비수처럼 아프게 꽂힌다. 자신의 시간, 수입, 자아, 건강까지 돌봄생활에 전부를 바치는 돌봄자에게 좀 더 가족의 지원과 이해, 배려가 필요함을 일깨우는 대목이다. 이 책의 힘은 저자가 직접 겪은 간병인의 삶을 생생히 그려냈다는 데 있다. 병세가 악화하며 변해가는 가족을 지켜봐야 하는 절망감, 형제가 있음에도 간병의 책임이 한 사람에게만 부담되는 현실의 부당함, 그럼에도 두 부모의 간병을 기꺼이 감당하게 하는 사랑의 힘과,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 좀처럼 그 상처와 아픔을 극복하지 못한 뒷이야기까지, 100% 실화에 기반한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읽힌다.100% 실화인 경험담을 통해 수많은 간병인에게 위로와 응원을 전하다!저자인 미아오는 오랜 수렁에서 빠져나오며 자신의 경험을 만화로 그리기로 결심한다.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사랑하는 부모에게 못다 한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는 현명한 가이드를 전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어느 날 독자가 간병의 의무를 맡게 될 때, 저자가 겪은 시행착오와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고, 다가올 시련에 대비하길 바라는 마음이 책 곳곳에서 느껴진다. 대만에서 먼저 출간된 이 책은 독자들의 엄청난 공감을 얻으며 간병인에 대한 사회적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말기 암 환자를 돌보며 같이 피폐해져 가는 간병인의 심신을 섬세하게 담아낸 점, 저자가 간병을 포기할 뻔한 고비를 이겨내며 끝까지 부모의 곁을 지킨 힘이 결국 확고한 사랑에 기인한다는 사실이 독자의 마음을 따듯하게 사로잡는다.『나의 독박 간병 일지』는 이미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한국 사회에서 우리가 앞으로 반드시 마주할 문제에 대해 사유하게 하는 책이다. 간병은 저자처럼 어느 날 문득 누구에게나 주어질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운명이 우리를 그 쉽지 않은 여정으로 밀어 넣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 책이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책 속 꿀팁들“어느 날 갑자기 간병인이 된다면??” 알 수 없는 운명에 대비하는 방법들첫째, 부모님이 건강할 때 진지하게 가족회의를 여세요. 형제간에 미리 장기 돌봄의 책임을 분담하지 않으면 나중에 억울한 상황이 생길지 몰라요.둘째, 쑥스럽더라도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자주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나중엔 말하고 싶어도 전할 수 없는 때가 오니까요.셋째, 부모님의 정기 건강검진을 꼭 챙기세요. 가족의 고통을 지켜봐야 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을 거예요. 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때를 놓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지치지 않고 간병을 지속하기 위한전투 자세 가다듬기! 첫째, 마음을 즐겁게 하는 취미나 피난처 갖기. 간병인부터 건강하고 안정된 마음을 유지해야만 돌봄이라는 긴 여정을 걸어갈 수 있답니다. 그러기 위해 우선 책을 읽든 영화를 보든 음악을 듣든 마음의 피난처를 찾아보세요. 몸은 비록 자유롭지 못하더라도 영혼만큼은 자유롭게 해주는 대상을 꼭 찾아야 해요! 둘째, 정적인 활동만 하지 말고 꼭 운동하기. 돌봄자는 오랫동안 실내에만 있다 보니 운동 부족으로 몸이 점점 더 무겁고 무력해져요. 가만히 앉아 있으면 온갖 부정적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우죠. 운동을 통해 몸의 존재를 깨닫고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껴야 해요.셋째, 활기차게 외모 가꾸기. 사람의 마음은 단순해요. 외모를 깔끔히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생긴답니다. 자신을 먼저 잘 돌본다는 그 힘이 기초가 되어야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명심하세요.넷째, 자신을 위한 임무 노트 만들기. 노트에 매일 자신을 돌보는 임무를 모두 적은 다음 하나씩 임무를 완성해 보세요. 잘 자기, 잘 먹기, 가꾸기, 기분 좋아지는 일 하나씩 하기 등 쉽고 단순한 것도 좋아요. 이 임무는 쉬워 보이지만, 간병인은 종종 피곤과 슬픔이 가득할 때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거든요. 하지만 그럴수록 더 움직여서 임무를 완성해야 해요. 일어나서 창문 열고 신선한 공기부터 마셔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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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두 친구 - 선택의 길 (커버이미지)
    [에세이/산문]나의 두 친구 - 선택의 길
    • 이정재 지음
    • 지식과감성#
    • 2024-02-19

    우리는 생각보다 ‘나에 대한 것’에 대하여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알고 보니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고, 내가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알고 보니 싫어하는 것이 아닐 때도 있다. 분명히 나를 위해 선택한 것이었는데 알고 보니 나를 위해 선택한 것이 아니었을 때도 있다. 그때 생각하게 된다. 나는 나를 왜 모를까? 이제 같이 그것에 대해 고민해 보고 답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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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마흔에게 - 어른의 공부, 마흔엔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요 (커버이미지)
    [인문]나의 마흔에게 - 어른의 공부, 마흔엔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요
    • 전안나 지음
    • 풀빛
    • 2024-02-19

    어른의 독서, 마흔엔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요?두 번째 스무 살, 지금 읽으면 좋을 책 목록마흔을 맞이한 사람들의 유형은 참 다양합니다. 마흔을 자연스레 수용하는 사람, 거부하며 싫어하는 사람, 의식적으로 노력하며 신중하게 맞이하는 사람, 기쁘게 생각하는 사람, 별다른 생각 없이 넘어가는 사람 등등 말이죠. 마흔은 매우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걸쳐 있는 나이대인 듯합니다. 그래서 전안나 작가는 ‘마흔은 무지개’라고 표현합니다. 이 책은 내가 누군지조차 모르고 바쁘게만 살다가 어느덧 중년을 맞이한 이들에게, 마흔 이후를 전성기로 만들 지혜를 구하는 이들에게, 나답게 살아갈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실현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독서의 기적을 꿈꾸는 이들에게 필요한 책 읽기 방법과 책 목록, 그리고 책 속의 문장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마흔 준비를 잘하고 싶다면, 마흔인 지금을 잘 살고 싶다면, 그리고 마흔 이후의 미래를 기대하고 있다면 이 책의 목록을 참고해 “오늘만큼은 오직 나를 위한 책 읽기”를 해 보시길 권합니다. 저자는 마흔, 어른을 위한 책을 읽으며 “즐겁고 반갑게 마흔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마흔을 준비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당신의 마흔은 어떠한가요?” 마흔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유형은 다양하더군요. (…) 마흔인 친구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들을 골라보았습니다. 마흔인 친구들과 나누고 싶은 질문도 골랐어요. 저는 마흔에 대한 책을 읽으며 마흔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었습니다._<시작하며> 중에서“마흔, 지금을 잘 살고 싶어서 읽습니다”책 속의 문장들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마흔을 넘으면 나를 둘러싼 사방이 꽉 막힌 듯한 두려움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융은 “마흔이 되면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 진정한 당신이 되라는 내면의 소리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시기에 많은 사람이 알 수 없는 두려움을 경험하게 되고, 삶의 의미를 다시금 돌아보게 되며, 신체의 변화에 당황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경험해 본 적 없는 낯선 감정 변화를 느끼며 화나고 서운하고 외롭고 가슴이 텅 빈 마음이 들기도 하지요. 왜일까요? 아직 준비되지 못한 것 같은 나의 앞날에 대해서 막연한 두려움이 생겨나고, ‘그동안 나 잘 살아온 것인가’ 하는 돌아보는 마음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살았는데 남은 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 때면 심연 깊숙한 곳에서부터 공허함이 밀려올라오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에겐 마흔이란 나이가 매우 아름답고 찬란한 때일 수도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희망을 갖게도 되고, 바쁘기만 했던 일상에 나를 돌아볼 여유가 생기기도 합니다. 예전엔 도전해 보고 싶었지만 시작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갑자기 용기가 생겨서 한 번쯤 기회를 노리기도 하고 말이죠. 그런 다양한 마흔의 친구들에게 저자는 가슴 따뜻한 그림책부터 인문학, 심리, 과학, 그리고 자기계발서까지 그때그때 필요한 영양제를 처방하듯이 상황별로 읽으면 좋을 책들을 가슴 따뜻하고 공감 가득한 독서에세이와 함께 소개합니다.그동안 어린이와 청소년 추천 도서 목록만 있어서 아쉬워했다면, 베스트셀러 목록을 기웃거리며 연령별, 취향별 도서에 부족함을 느꼈다면, 《나의 마흔에게》를 통해 오직 어른들을 위한 도서 목록을 만나 볼 기회가 생겼으니 매우 반가운 일일 것입니다.잠은 안 오고 삶은 답답하고 넋두리할 친정도, 친구도 없어서 밤마다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가족에 대한 책, 직장에 대한 책, 육아에 대한 책, 마음에 대한 책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습니다. 이런 책 저런 책을 마구 읽다 보니, 그제야 답을 알게 되었습니다. _본문 중에서읽고, 생각하고, 쓰면서 완성되는 나만의 ‘마흔 노트’휘발성 독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책 읽기 습관 완성책 읽기(독서)는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이 아닙니다. 작가의 생각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읽고 생각하고 쓰는 과정이 모두 포함된 매우 자기주도적인 과정입니다. 그래서 책 읽기는 노트를 쓸 때 더욱 풍성해집니다.《나의 마흔에게》는 입체적인 독서가 가능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상황별로 읽으면 좋을 만한 책을 추천받고, 추천받은 책을 읽어보고,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이나 생각을 노트에 정리하고, 때론 좋은 문장들은 필사하며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마흔 노트를 완성해 나갈 수 있습니다.그동안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단순히 ‘읽는 행위’에만 목적성을 두고 휘발성 독서를 해 왔다면, 이 책을 통해 좀 더 밀도 있는 독서를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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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비타, 나의 버지니아 (커버이미지)
    [에세이/산문]나의 비타, 나의 버지니아
    • 버지니아 울프.비타 색빌웨스트 지음, 박하연 옮김
    • 큐큐
    • 2024-02-19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작가 버지니아 울프와‘올랜도’ 비타 색빌웨스트의 20년 러브레터편지에 생생하게 기록된 버지니아 울프와 비타 색빌 웨스트의 강열한 삶과 사랑“끝없는 편지. 넘겨도 넘겨도 끝이 없는 편지.”시대를 앞서간 페미니스트 작가 버지니아 울프와 소설 ‘올랜도’의 모델 비타 색빌웨스트의 서간집 《나의 비타, 나의 버지니아》가 출간된다. 1923년부터 1941년까지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를 선별한 이 책은 기존에 다른 작품이나 일기에서 보지 못한 두 작가의 친밀한 대화와 일상이 녹아 있다.버지니아와 비타는 1922년 12월 파티에서 처음 만난다. 이제 문단에 알려지기 시작한 버지니아와 이미 유명 작가였던 사포이스트(Sapphoist) 비타는 서로에게 강하게 끌린다. 이후 두 사람은 거의 20년간 연인이자 친구로 관계를 이어간다. 두 사람의 많은 대표작이 이 시기에 탄생하는데, 이들의 교류가 어떻게 문학작품으로 승화했는지를 편지에서 엿볼 수 있다. 특히 버지니아가 비타에게 바친 《올랜도》를 집필하면서 쓴 편지에는 비타를 향한 열정과 사랑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나의 비타, 나의 버지니아》에 담긴 두 사람의 편지는 긴 세월 친지의 죽음이나 전쟁, 사회적 사건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일상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서로를 반려견 ‘타우저’와 ‘포토’의 이름으로 사랑스럽게 부르는가 하면 비타는 자신이 가꾸는 정원 시싱허스트가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과 세계 여행의 감상을 들려주고, 버지니아는 호가스 출판사를 운영하며 겪는 고충과 고민을 털어놓는다. 재치 넘치고 때론 도발적인 버지니아와 비타의 문장은 서로에 대한 마음의 변화를 직관적으로 드러내고, 복합적인 감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버지니아와 비타의 독특한 관계는 당시에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버지니아가 쓴 비타의 전기 소설 《올랜도》는 레드클리프 홀의 《고독의 우물》이 음란물 판정을 받는 사건과 맞물려 발표되면서 《등대로》보다 더 많은 판매 부수를 기록했다. 비타는 외교관 해럴드 니컬슨과 결혼했지만 동성 애인들과의 연애로 화제가 되었다. 비타의 아들 나이젤 니컬슨이 쓴 《어느 결혼의 초상》에서는 전통적인 결혼 관습에서 벗어난 비타 부부의 모습을 볼 수 있다.버지니아와 비타의 이야기는 1992년 아일린 앳킨스의 연극 《비타와 버지니아》로, 2018년 동명의 영화로 개봉되는 등 현재까지도 관심을 받고 있다. 20여 년간 두 사람이 나눴던 사적 기록은 그 자체로 문학이자 문학사이다. 이 기록을 담은 《나의 비타, 나의 버지니아》는 모더니스트로, 페미니스트로 한정돼 조명하던 두 작가의 생애와 작품을 좀 더 폭넓게 바라보고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나아가 국내에서는 《올랜도》의 매력적인 인물로만 소개되었던 비타 색빌웨스트의 삶과 작품을 조명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큐큐클래식큐큐의 세계문학 클래식. 고전 중 퀴어문학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작품들을 출간, 소개한다.00《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 사포 외 지음 | 황인찬 엮음 | 최승자, 정수윤, 최성웅, 이주환, 이성옥, 이주희, 이종현 옮김01《레딩 감옥의 노래》 오스카 와일드 지음 | 김지현 옮김 02《텔레니》 오스카 와일드 지음 | 조동섭 옮김03《루비 프루트 정글》 리타 메이 브라운 지음 | 알·알 옮김04《세 명의 삶 / Q. E. D.》 거트루드 스타인 지음 | 이성옥 옮김05《날개》 미하일 쿠즈민 지음 | 이종현 옮김06《금색》 미시마 유키오 지음 | 정수윤 옮김

    보유 1, 대출 0, 예약 0, 누적대출 0, 누적예약 0
  • 나의 빛을 가리지 말라 (커버이미지)
    [사회]나의 빛을 가리지 말라
    • 제임스 윌리엄스 지음, 박세연 옮김, 전병근 해제
    • 머스트리드북
    • 2024-02-19

    구글 전략가 출신 옥스퍼드 철학자의설득 기술에 빼앗긴 주의력 되찾기“주의 뺏기 경쟁이 우리 삶을 파편화한다”프린스턴대학 총장 선정 ‘신입생 필독서’“이정표에 해당하는 책” -;《옵서버》“단번에 기술윤리학 분야 고전 반열에 올랐다” -《테크크런치》빼앗긴 주의력 되찾기는 이 시대 최대 도덕적·정치적 과제디지털 기술이 생각과 행동의 중심이 되면서 개인의 자율성과 공동체의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거대 기술 기업이 개발한 지능적 설득 시스템이 비즈니스의 기본 모델이자 인터넷의 설계 논리로 자리 잡으면서, 주의 뺏기 경쟁과 사용자 설득 기술은 궁극적으로 의지의 조작 단계로까지 발전했다.구글 전략가 출신 철학자 제임스 윌리엄스는 이 책 『나의 빛을 가리지 말라』에서 디지털 기술이 생각과 행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개인과 사회를 자동반사적이고 파편화된 삶으로 내몬다고 지적한다. 그는 정보와 자극이 넘쳐나는 시대에 최대 희소 자원이 사람의 주의인 이상, 그것을 완전히 포획할 때까지 기술의 침투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거대 기술 기업의 주의 뺏기 경쟁에 대응하여 자기통제력을 지키고 주의력 경제(attention economy)를 재편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파한다.주의는 당장 눈앞의 문제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삶 전체를 항해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디지털 플랫폼이나 소셜미디어 등의 영향으로 목표한 바에 집중하지 못하고 주의가 분산되는 문제를 단순히 사소한 짜증 정도로 치부해왔다. 그러나 이 문제는 개인적 차원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능력을 위축시키고, 집단적 차원에서 공동의 목적을 세우고 이를 추구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저자는 주의력 경제를 개념화할 수 있는 용어가 부족해 사회적·정치적 논의 과정에서 이 문제를 보다 거시적 관점에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사람의 주의를 빼앗고 반응을 조종하는 지능적 설득의 힘으로부터 주의의 자유를 주장하고 지키는 것은 우리 시대가 직면한 최대 도덕적·정치적 과제다. 개인 차원의 저항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저자는 빼앗긴 주의력을 되찾기 위해 기술 기업의 개발자는 물론 경영자, 정책결정자, 시민 등 다양한 주체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열거하고, 주의력 경제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사회적 개입의 유형을 제시한다. 여기에 철학과 고대 문헌에서 현대 과학까지 다양하게 동원하고, 참신하고 사려 깊은 분석을 덧붙여 우리 시대 가장 급박한 질문에 대한 빛나는 통찰을 준다.책 서두에서 저자는 거리의 철학자 디오게네스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일화를 소개한다. 디오게네스가 코린트 거리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데 알렉산드로스가 찾아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한다.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드로스를 올려다보며 이렇게 일갈한다. “햇빛을 가리지 마시오.” 저자는 우리도 이 시대 선의를 가진 디지털 알렉산드로스를 올려다보며 “나의 빛을 가리지 말라”고 외쳐야 한다고 조언한다.우리는 결함 있는 GPS에 의존해 살아간다구글에서 십 년 넘게 일하면서 저자는 “세상의 모든 정보를 조직화해 많은 사람이 보편적으로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게 만든다”라는 구글의 비전에 크게 공감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이 ‘정보의 조직화’가 아니라 ‘주의의 조직화’에 얽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술 산업은 상품을 설계하지 않고 사용자를 설계한다. 인간의 삶을 안내하는 이 GPS 시스템의 목표는 오로지 우리의 주의를 연장하는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정체성에 어긋나는 행동을 유도하고 습관을 만든다. 인간을 위한다는 기술이 인간의 핵심인 주의를 포획해 파는 데 매달린다. 저자는 우리가 결함 있는 GPS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 옥스퍼드대학으로 향한다.정보가 넘치면 희소 자원은 인간의 주의가 된다. 정보의 양은 속도에 대처할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다. 속도가 지나치면 양이 많을수록 오히려 재앙이 된다. 저자는 거대 기술 기업이 사용자의 주의 뺏기에 혈안이 된 주된 이유로 디지털 광고를 꼽는다. 초창기 광고는 과학보다 예술에 가까워 그것이 우리에게 미치는 힘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광고 산업이 성숙하면서 인간 심리와 의사결정 지식을 체계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광고의 범위 역시 정보에서 설득으로, 다시 행동 형성에서 태도 형성으로까지 나아갔다. 20세기 말 전자 매체는 광고주에게 새로운 플랫폼과 설득 전략을 가져다주었고,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효과 측정의 피드백 고리가 완성되었다. 여기에 네트워크로 연결된 단말기의 휴대성과 연결성이 높아졌다. 디지털 광고의 확장성과 수익성이 커지면서 비즈니스의 기본 모델이 되었다. 구글, 메타, 트위터 등 주요 플랫폼은 사실상 모두 광고 회사다.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설계자, 분석가, 통계학자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사전 프로그래밍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막대한 시간과 자원을 투입한다.저자는 과거 TV나 신문 같은 매체에서 광고가 정보 전달의 측면에서 ‘예외’였다면, 디지털 매체에서 광고는 ‘규칙’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과거 매체에서 광고가 지배적인 설계 목적을 지원했다면, 디지털 매체에서 광고는 그 목적을 주도한다. 주의력 경제에서는 사용자가 곧 상품이다. 기술 설계자는 인간 심리의 가장 낮은 차원인 충동을 겨냥한다. 심리학자와 행동경제학자가 수십 년간 분석해온 다양한 인지적 취약성과 의사결정 편향을 활용한다. 전 구글 디자인 윤리학자 트리스탄 해리스는 이런 현상을 빗대어 ‘뇌간의 바닥을 향한 경주’라고 표현했다.언어의 한계가 곧 주의 세계의 한계다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가 곧 내 세상의 한계다”라고 말했다. 언어의 지평을 확장할 때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인식의 지평도 확장된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여러 문제 중 하나로 개인이나 집단 전체가 기술의 영향으로 어떤 방식으로 주의가 분산되는지 이해할 수 있는 개념적 틀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주의력 경제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 설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용어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주의의 개념을 ‘집중(spotlight)’, ‘별빛(starlight)’, ‘햇빛(daylight)’의 세 가지 차원으로 설명한다.‘집중’은 우리의 인식과 행동이 과제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직접적인 능력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도록 해준다. 집중의 빛이 가려질 때는 ‘기능적’ 주의 분산이 일어난다. 기술은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하도록 돕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기술이 방해할 때 우리의 주의 집중은 파괴된다. 우리는 자신이 세운 계획을 실천하고 또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그러나 무의식이 의식을 압도하면서 45분 뒤 세계 경제 위기에 관한 기사를 읽고, 유튜브에서 자동 실행되는 강아지 동영상을 보며, 소셜미디어에서 친구들의 일상을 엿본다. 이런 기능적 주의 분산은 각종 앱 알림 메시지로부터 일어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차를 마시기 위해 주전자에 물을 끓이려 하는데 인스타그램 앱에서 내가 좋아하는 인플루언서가 글을 올렸다는 알림 메시지가 왔다.”한층 더 깊은 주의의 차원인 ‘별빛’은 우리 삶이 더 높은 목표와 가치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포괄적인 능력으로, 우리가 원하는 존재가 되도록 해준다. 별빛이 가려질 때는 ‘존재적’ 주의 분산이 일어난다. 개인적, 혹은 집단적 차원에서 정체성이 흔들릴 때 우리는 자아가 분열되는 듯하고 자신이 원하는 존재가 되기 힘들다고 생각하며 존재적 주의 분산을 경험한다. 우리는 소셜미디어에서 의미 있는 관계를 추구하기보다 최대한 많이 ‘좋아요’를 받고 ‘친구’를 맺으며 다른 사람의 관심을 얻는 데 몰두한다. 더 기발한 이야기를 담은 게시 글을 올리기 위해 애쓰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어느 순간 사회적 상호작용은 일종의 숫자 놀이가 된다. 일상적으로 숫자를 쫓아가는 사소함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혹은 애초에 이들과 친구를 맺은 이유가 무엇인지에 관한 보다 고차원적 관점을 잃는다.가장 원천적인 주의의 차원인 ‘햇빛’은 우리가 애초에 목표와 가치를 정의하게 하는 근본적인 능력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원하도록 해준다. 햇빛이 가려질 때는 숙고와 이성, 예측, 기억, 목표 선정 등의 역량이 위축되는 ‘인식적’ 주의 분산이 일어난다. 무엇이 진실인지 이해하는 능력, 혹은 진실의 가능성을 예측하는 능력이 위축될 때 우리의 햇빛은 가려진다. 우리는 잘못된 행동에 대해 단순히 화가 나는 것을 넘어 격렬하게 분노하고 혐오감을 느낄 때 도덕적 격노를 경험한다. 정보가 부족했던 과거에는 전 세계에서 일어난 도덕적 위반에 관한 뉴스가 우리의 주의를 놓고 경쟁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대에는 누군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잠재적으로 경험한다. 오늘날 우리는 인터넷상에 흘러넘치거나 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가는 도덕적 위반에 관한 뉴스에 일상적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더 이상 도덕적 격노의 대상을 화형대에 세울 수 없기에 우리는 잘못된 행동에 대해 그들을 상징적, 혹은 평판적 차원에서 파괴한다.어떻게 주의의 자유를 주장하고 지킬 것인가우리의 주의를 포획하고 이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는 주의력 경제는 새로운 마음의 왕국이다. 저자는 그것과 우리는 현재 ‘주의적 농노제’의 관계이며 이를 재편하는 일은 두 가지 면에서 정치적 과제라고 설명한다. 하나는, 주의를 빼앗는 매체는 우리가 역사적으로 정치적인 문제로 받아들여 온 것을 이해하고 거기에 참여하는 렌즈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매체는 우리 자신을 포함해 모든 것을 바라보는 렌즈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의 주의와 삶을 인도하는 전제주의적 힘을 재편하지 않고서는 가치 있는 정치적 개혁을 이룩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저자는 또한 주의의 자유를 주장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 나아가 집단 차원에서 마치 방향을 잃은 배처럼 표류하기 전에 사회적·정치적 목표를 확실히 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술 설계자들도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는 것처럼 ‘설계자 선서’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저자는 이런 과정을 통해 기술 설계자들이 사용자의 존엄성과 주의, 자유를 존중하고 기술의 의도와 방법에 대해 사용자와 투명하고 정직하게 소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미래 세대는 외부 환경뿐 아니라 내부 환경에 대한 책임을 얼마나 다했는지를 기준으로 우리 세대를 평가할 것이다. 오늘날 위기는 지구의 기온 상승뿐 아니라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개인의 주의력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임무는 외부 환경을 재편하는 일뿐 아니라 우리가 중요한 것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도록 세상을 재편하는 일이다. 중요한 일을 하려면 우리는 먼저 중요한 대상에 주의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주의를 지키려는 의지와 힘이 강력할수록 우리는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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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 - 앨리스 닐, 도리스 레싱, 어슐러 르 귄, 오드리 로드, 앨리스 워커, 앤절라 카터… 돌보는 사람들의 창조성에 관하여 (커버이미지)
    [인문]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 - 앨리스 닐, 도리스 레싱, 어슐러 르 귄, 오드리 로드, 앨리스 워커, 앤절라 카터… 돌보는 사람들의 창조성에 관하여
    • 줄리 필립스 지음, 박재연 외 옮김
    • 돌고래
    • 2024-02-19

    \'자기만의 방\'에서 \'고독한 천재\'의 호사를 누릴 수 없는,끝없이 방해받으며 창작하는 여성들의 이야기NPR 선정 2022 최고의 책 │ 전미도서비평가협회 수상 작가소설가 정아은, 서유미, 김유담 추천앨리스 닐, 도리스 레싱, 어슐러 르 귄, 수전 손태그, 오드리 로드, 앨리스 워커, 앤절라 카터…등 20세기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들의 모성적 삶과 작가로서의 삶을, 그리고 그 두 가지가 중첩된 영역을 탐색한다. 아이를 버렸다고 욕먹은 도리스 레싱, 그림을 마무리하기 위해 아이를 뉴욕 아파트 비상계단으로 내쫓고 방치해두었다고 시집 식구들에게 무고를 당한 앨리스 닐의 이야기는 창작과 양육 사이의 긴장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창조적 모성은 이 긴장 속에서 끝없이 재협상하고 임기응변의 능력을 발휘하며 살아남는다. 타인의 비난, 자신의 죄책감, 슬픔, 채워지지 않는 허기, 그리고 아이들을 향한 사랑. 이 모든 것이 창조적 모성의 양분이 된다.모성과 창조성이 만나는 지점을 10년 동안 탐색하다!여성 작가·예술가들의 정체성을 뒤흔들고 재정립하도록 하는 강렬하고 혼란한 사건이지만, 아무도 지적으로 파고들거나 이론화하지 않았던 ‘모성과 창조성이 만나는 지점’에 대해 탐구한 책이다. 이 탐구에는 장장 10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 수상작가인 줄리 필립스는 (여성) 작가의 평전 작업을 해왔고, 어슐러 르 귄의 전기를 쓰기 위해 오랫동안 긴밀하게 어슐러 르 귄과 인터뷰를 해오기도 했다. 그러다 아이 둘을 양육하며 글을 써야 하는 스스로의 경험에 동력을 얻어 이 주제의 책에 시작했다.(책을 쓰는 동안 초등학생이던 저자의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었다.)수많은 여성 작가들의, 여성 작가들에 대한 기록을 정밀하게 살핀 저자는 이 책에서 앨리스 닐, 도리스 레싱, 나오미 미친슨, 루이스 어드리크, 어슐러 르 귄, 에이드리언 리치, 엘리자베스 스마트, 수전 손태그, 오드리 로드, 다이앤 디 프리마, 셜리 잭슨, 앨리스 워커, 토니 모리슨, A. S. 바이엇, 로나 세이지, 마거릿 애트우드, 앤절라 카터 등의 매력적인 명사들을 다룬다. 저자가 목차에 포함시킨 이들은 우선 충분히 오래 살아서 양육의 전체 사이클을 모두 경험한 이들이고, 그렇다고 너무 옛날 사람들은 아니어서 1960년대 이후 낙태 합법화나 페미니즘, 흑인민권운동의 수혜를 받은 이들이며, 자신의 몸과 임신, 출산, 양육에 대해 충분한 기록을 남긴 이들인 동시에, 독창적인 작품들을 남긴 사람들이다. 이들은 제각각 준비되지 않은 임신, 원하지 않은 결혼, 낙태, 아이들의 죽음을 경험했거나, 일생 동안 평범한 단혼 관계에서부터 레즈비언 관계, 폴리아모리, 개방혼 같은 다양한 친밀한 관계를 탐험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깊이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양육해냈다.저자는 여성 작가·예술가들이 남긴 양육과 모성에 관한 일화의 조각들을 정성껏 이야기로 꿰어내면서, 몇 가지 중요한 이론적 개념(혹은 기존 이론의 허점을 꼬집는 개념들)을 제안하기도 한다. 방해받는 주체, 자기소멸, 시간 빈곤, 서사적 시간, 죄책감, 허락받아야 한다는 느낌, 항시 대기중(availability, 아이들이 필요로 하면 언제든지 만사를 제치고 자신을 내주어야 한다는 느낌), 벙고(바보가 된 것 같은 벙찌는 느낌 + 숭고의 감정, 양육의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역설적인 감정), 온전히 거기에 있기, 심아 문제(mind-baby problem, mind-body problem을 비꼰 말장난), 아줌마영웅(aunti-hero, anti-hero의 말장난), 아더마더스(내가 낳지 않은 아이를 돌봐주는 이들) 등의 그것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비상계단에 놓인 아기’로, 이는 앨리스 닐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아이를 ‘비상계단(한국식으로 치면 베란다?)’에 가두었다고 시집 식구들이 상상해낸 이미지이지만, 저자는 이를 엄마들이 작업하는 동안 아이를 안전하게 방치하기 위해 찾아낸 창의적인 임시방편을 가리키는 말로 전유한다.이 책의 가장 훌륭한 점은 저마다 다른 상황에서 다른 방식으로 양육과 창작을, 삶을 이어온 여성들의 삶을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을 감추거나 미화하지 않지만 있는 그대로의 삶을(그리고 죽음을) 최대한 존중한다.(수전 손태그의 이야기를 다루는 장에서 이런 태도가 다소 흔들리는 모습이 인간적이기도 하다.) 이 책에 실린 할머니 작가·예술가들의 이야기는 20세기보다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용기를 내기 어려워하는 현대의 양육자 여성들(그리고 양육을 자신의 일로 여기는 남성들)에게 엄청난 영감과 자극과 위안과 용기를 줄 것이다.엄마의 행복은 엄마의 죄책감과 공모해 창작을 갉아먹는다. 마거릿 미드에 따르면 시간이 자꾸만 사라져가는 이유는 이런 것이다. \"아이가 울어서 괴로운 게 아니다. 아이가 너무 자주 웃어서 그렇다.\" 제니 오필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를 향한 사랑은 당신이 한때 사랑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모조리 지워버리기도 한다.\" (29)1962년만 해도, 올슨은 유자녀 여성 또는 \"반쪽짜리 시간과 반쪽짜리 자아를 가진 이들“이 오래도록 읽힐 책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무렵부터 유자녀 여성들의 작가 경력은 성공 가도에 오르기 시작했는데, 한두 명이 아닌 다수의 작가들이 외면하기 어려운 대대적 성취를 우후죽순으로 이뤄냈다. 이들은 작업을 해나갈 방도를 발 벗고 찾아 나선 끝에 작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데 성공했다. 이를테면 도리스 레싱은 노벨 문학상을, 어슐러 르 귄은 미국 최대의 문학적 영예인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앨리스 워커는 퓰리처상을 한 차례 받고 수백만 권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오드리 로드는 교차성을 둘러싼 논의의 물꼬를 텄다. 한편 앤절라 카터는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문학적 목소리로, 수전 손태그는 위대한 영어권 비평가로 각각 인정받았다. 앨리스 닐은 자신의 작품이 정전(正典)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목격했다. (31)양육은 개개인의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 인종, 자원, 섹슈얼리티, 가족관계, (비)장애의 영향도 받는다. 한편 모든 엄마가 출산과 양육을 하지는 않는다. 내가 살펴보고자 했던 여성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엄마가 됐는데, 배우자 유무, 나이, 자산, 주변의 도움 여부 등이 제각기 상이했다. 이들은 우연히 또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임신하거나 자신이 낳지 않은 십대를 양육하게 됐고, 혹은 난임으로 고생하거나 아이를 잃기도 했다. 이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분노와 고통을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슈퍼우먼\'이나 \'가정의 천사\' 따위의) 고정관념을 뿌리치며 모성의 양가감정을 탐색했다.(31)\'엄마\'와 \'영웅\'이라는 단어를 함께 입에 올리면, 대부분은 자기희생의 이미지를 당연하다는 듯이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창조적 모성은 그런 종류의 이야기가 아니다. 투쟁이나 구원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창조적 모성은 자기발견의 여정에 나선 어느 중심인물의 이야기다. 그녀는 빵 부스러기(그러니까 일화와 종잡을 수 없는 여러 순간)로 표시한 길을 따라 나선 뒤로 지하 세계까지 떨어졌다가 되돌아온다. 숲속에서 길을 잃고 스스로 길을 발견하는 주인공이다.나는 엄마 영웅들에 대해 찾아보며 이들이 여성들의 이야기 안에 줄곧 존재해왔음을 알게 됐다. 그녀들의 주체성은 자기상실과 자기발견에 아로새겨져 있었다. 청소년기에, 출산기에, 그리고 장년기에 이들은 줄곧 자신들을 향한 \"몰살\"의 위협을 마주하고 힘을 회복해야 했다. (53)모성 지대의 무법자로 팔십대까지 살아남은 초상화가 앨리스 닐1900년생인 앨리스 닐은 예술 강좌에 등록했다가 첫 번째 남편이 될 쿠바계 남자를 만나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낳은 첫째 딸을 돌도 되기 전에 디프테리아로 잃었다. 죄책감을 씻기 위해 둘째 딸을 가졌지만 결과적으로 이 딸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예술과 양육을 양립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산산조각 낸 채 남편이 혼자 파리로 도망갔기 때문이다. 앨리스는 정신이 나가 친정어머니에 의해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오븐에 머리를 넣기도 한다. 결국 화가와 엄마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의사와 친척들의) 압박 속에서, 그리고 자신은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을 거라는 낙담 속에서 앨리스는 그림을 선택하고 혼자 뉴욕으로 향한다. 이후에 앨리스는 여러 남자들을 더 만나고 그중에는 앨리스의 작업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파트너도 있었으나 대체로는 폭력적이거나 마약을 하거나 앨리스의 아이를 괴롭혔다. 앨리스는 1930년대 대공황 시기 사회주의적인 정책에 힘입어 보조금을 받으며 계속 그림을 그렸고 1950년대 이후로는 미술계의 유행을 거슬러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기로 결심한다. 경제적인 자립을 이룬 후 두 아들을 더 낳게 되는데 이들의 교육에 헌신적이었고 이들과(심지어 며느리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딸 이자베타와는 생전에 몇 번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관계가 회복되지 않았다. 이사베타는 엄마를 비난하는 아빠 쪽 친척들에 의해 길러져 원망을 품고 살았으며 이른 나이에 불행한 결혼을 했다. 평생을 우울감에 시달렸던 이사베타는 결국 엄마의 대규모 강연 행사에 참석해 맨 앞줄에 앉아 엄마의 모습을 보았지만(강단 위의 엄마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그로부터 얼마 안 가 자살했다. 보수적이고 편협한 1950년대를 꿋꿋이 견뎌낸 앨리스는 1960년대 이후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여성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자 외롭게 가꾸어온 자신의 독창적인 미술 세계를 만천하에 알릴 기회를 얻는다. 그녀는 생애 마지막 20년 동안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80대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한 후에(책에도 실려 있는 팔십대에 그린 「자화상」이 그 증거다.) 자신을 사랑하는 온 가족에게 둘러싸여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초상화에 전념했다. 여성이 어떤 분야에서든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비인기 분야를 택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혹은 진짜로 혁신적인 작업을 한다고 해도 자신이 선두가 아닌 주변부에 서 있음을 머잖아 알게 될 것이다. 1950년대 초상화의 낮은 지위는 앨리스에게 그 장르를 탐구하고 연마할 수 있는 특별한 자유를 보장해주었고, 그것은 다시 그녀의 재능과 독창성을 위한 여지를 마련해주었다. (104)1962년, 앨리스는 영향력 있는 예술 잡지인 《아트뉴스》에 소개되었고, 이는 62세였던 그녀에게 중요한 돌파구가 되었다. 같은 해 런던에서는 도리스 레싱이 『금색 공책』을 펴냈는데, 이는 치열하게 세 아이를 키우던 사십대 엄마의 대담한 문학적 성명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는 어슐러 르 귄이 첫 과학소설을 출간했고, 잉글랜드 브리스톨에서는 22세의 \"눈이 커다랗고 촌스러운 비트족\" 앤절라 카터가 잡지에 첫 소설을 기고했다. 뉴욕의 수전 손태그는 첫 에세이를 출간하고 첫 소설을 탈고했다. 손태그가 글을 쓰는 동안 그 옆에는 열 살 난 아들 데이비드가 타자를 치는 엄마 옆에서 대기하다 담배에 불을 붙여주곤 했다. (108)나이든 여성은 젊은 여성에 비해 세상의 회의적 시선에 덜 위협받는다. 1960년대 팝아트(로이 릭턴스타인의 만화,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의 영향으로 앨리스는 더 밝은 색과 더 유동적이고 자신 만만한 선, 더 과감하고 터무니없는 주제를 선택했다. 1968년 앨리스는 말했다. \"저는 바로 그 장면을 그리려고 노력합니다. 한 시대의 소용돌이는 당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무엇을 그리느냐의 문제입니다.\" 예술가, 큐레이터, 수집가들은 \'앨리스 닐 앞에 앉을 만큼 용감한가?\'라는 질문에 도전하듯 앞다퉈 포즈를 취했다. 심지어 앤디 워홀은 앨리스의 초상화를 위해 윗옷을 벗고 총상 자국으로 가득 찬 배를 드러낸 채 눈을 감았다. (109)앨리스의 임산부 초상화는 일부 관람객들을 놀라게 했다. 한 비평가는 임신한 낸시의 나체를 두고 \"임신한 오달리스크의 끔찍한 모습\"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하지만 비욘세 놀스가 아름다운 임산부의 초상 사진 연작을 위해 포즈를 취하기 훨씬 전에, 앨리스는 출산이 예술적으로 표현될 가치가 있는 여성의 성 적인 측면이라고 주장했다. \"저는 임산부의 누드가 더없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옳지 못한 겸손함이나 두려움 때문에 그동안 드러내 보이지 않았지만, 우리네 삶의 기본이지요.\" (112)모성적 삶과 여성적 쾌락에 관해 쓴 최초의 작가 도리스 레싱도리스 레싱은 이란에서 태어나 영국령 식민지였던 남로지디아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이후에는 런던으로 이주해 말년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도리스는 남로지디아를 떠날 때 아이 둘을 버린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저자는 도리스가 자기 아이들을 계속 만나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속을 태웠는지 전남편 혹은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참고해 밝혀낸다. 물론 도리스는 임신한 상태에서도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관계를 할 정도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대범했지만 한 편으로는 사회주의 운동의 동지로서 만난 고트프리트를 위해 결혼을 하는 등(고트프리트가 징집되지 않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남편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도리스는 고트프리트와의 사이에서 셋째 아들 피터를 낳았는데, 고트프리트가 동독으로 떠난 이후 홀로 피터를 키우며 피터가 학업을 위해 집을 떠나 있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평생을 함께 살았다. 실패한 결혼과 육아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던 여성이 거의 없던 시대에 레싱은 모순된 감정들을 겹겹이 쌓아올려 모성이 주는 만족감, 유혹, 좌절, 죄책감, 분노를 묘사했다. 자전적 폭로가 들어간 초기 작품들(1950년 영국에서 출간된 『풀잎은 노래한다』나 도리스에게 엄청난 명성을 가져다준 1962년작 『금색 노트』)에서부터 에로틱한 어머니와 아들 간의 유대를 그린 『할머니들』(2003), 아들의 극단적 요구가 행복한 가정을 분열시키는 『다섯째 아이』(1998)의 처참한 모성에 이르기까지 어머니의 양가적 사랑은 도리스 작품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이다. 2007년 최고령의 나이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수상 소식을 듣던 현장에는 역시 아들 피터가 함께 있었다.아이를 두고 떠나는 여성의 이미지는 금기시된 여느 발상처럼 매혹적이며 짜릿하다. 엄마들은 자유의 암시를 부러워하며 이런 일화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을지 모른다. 그러고는 \"음, 적어도 난 그렇게 나쁜 엄마는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죄책감 어린 헌신의 마음으로 자녀들에게 돌아갈지도 모른다. 이런 일화는 엄마들로 하여금 자신의 모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도리스가 두 아이를 두고 떠나면서 결코 뒤돌아보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다소 허구에 가깝다. (141)도리스는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했던 길 잃은 부모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많은 20세기의 엄마 작가들이 비슷한 일을 겪었다. 특히 레싱의 엄마인 모드 테일러와 앤절라 카터의 엄마인 올리브 스토커는 외동딸에게 각자의 좌절된 포부를 투사해 성공을 독려하면서도, 딸의 외모를 판단하거나 딸의 몸을 감시하고 딸의 성공을 과대평가하며 숙녀답게 행동하도록 경고했다. 모드는 영리한 딸아이를 자랑스러워했지만 아이에 대한 소유욕이 강해서 딸이 자신의 희생에 대해 빚을 갚아주기를 원했다. 리베카 솔닛의 표현을 따르자면, \"모두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자신을 내어주고 딸에게서 자신을 되찾으려 했던 어머니에 대한\" 끝나지 않는 이야기인 것이다. (146)모성이라는 정체성은 항상 진행 중인 작업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모-자녀 관계는 물론이고 엄마들과 그들 자아 사이의 관계도 극적으로 변한다. 도리스는 성인이 된 자신의 모든 아이들과 소식을 주고받고 왕래하기도 했지만, 가장 자주 의미가 달라졌던 것은 함께 살았던 피터와의 관계였다. 피터는 행복한 아기였고, 엄마의 문학 경력과 함께 성장했으며, 어른이 되어 정신질환을 앓게 되자 엄마에게 걱정거리를 안겨준 만큼 더 친밀한 아들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두 자녀와 헤어진 도리스가 피터를 평생 가까이 한 것은 아마도 죄책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168)문학 명사 도리스 레싱이 등장하는 유명한 동영상은 2007년에 찍힌 것이다. 87세의 백발 여성이 조심스럽게 택시에서 내린다. 양파와 아티초크를 든 중년 남자가 그 뒤를 따른다. 도리스가 왜 자신의 집 앞에 카메라들이 나와 있냐고 묻자, 한 기자가 그녀에게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전한다. 그녀는 \"오, 맙소사!\"라고 외치고 나서, 쇼핑백을 내려놓고 적당한 말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나는 유럽의 모든 문학상을 탔습니다. 모두 치열한 상이었지요.\" 점점 밝아지는 얼굴로 도리스가 덧붙인다. \"상들을 싹쓸이하게 되다니 정말 기쁘군요.\" (173)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며 행복하게 살아도위대한 작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어슐러 르 귄어슐러 르 귄은 탁월한 재능을 타고났을 뿐 아니라 좋은 집안에서 좋은 부모님에게 좋은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래드클리프 대학에 가서 처음으로 남자와 잤다가 바로 임신이 되었다. 하루에 두 번 이상 성관계를 할 경우 두 번째는 피임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우겼던 하버드 대학생 남자친구는 임신 소식을 듣자 바로 르 귄을 버렸다. 르 귄은 부모님의 설득에 비싼 돈을 지불하고(1950년 당시 1000달러는 래드클리프의 1년치 학비와 생활비를 더한 금액이었다.) 실력있는 의사에게 불법 낙태 수술을 받았는데, 이 사실을 30년도 더 지나서야 고백했다. 다행히 이후에는 자신의 작업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가정적이고 능력도 있는 남자를 만나 결혼했고 독특한 색깔을 지닌 작품들을 꿋꿋이 써나가게 되었다. 물론 네 아이는 늘 르 귄의 글쓰기를 방해했지만 르 귄은 그 와중에도 늘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내향적인 성격의 르 귄은 눈에 띄는 정치 활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매카시즘이나 인종주의에는 늘 반감을 지니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르 귄의 어머니 테오도라 크로버인데 60대에 남편과 사별한 후 두 권의 책을 냈으며 르 귄보다도 먼저 작가로서 확고한 정체성을 확립한다.(어머니는 르 귄이 작품이 출간을 거절당하자 딸의 커리어가 더 중요하다고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르 귄은 물론 그것이 진심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머니의 작가적 연대에 큰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70대에는 스물아홉 살의 잘생긴 바람둥이 양성애자와 결혼해 열정적인 부부생활을 하기도 한다. 1960년대에 이르러 과학소설과 판타지 문학이 인정받기 시작하며 르 귄의 작품들도 호응을 얻는다. 작가로서의 정체성과 사생활을 철저히 구분하고 작품 속에서는 마음껏 남성적인 생각과 행동을 펼쳐냈던 르 귄이지만,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페미니즘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대해 고민하던 와중에 작품 안에 여성적인 세계, 모성적인 세계를 구축하자 다시 한 번 성공적인 변신을 이루어내고 제2의 전성기를 구축해낸다. 말년인 1990년대 이후 르 귄은 자신만의 공적인 목소리를 찾는 데 성공하여 많은 여성들, 작가들에게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안나 카레리나』는 \"모든 행복한 가정은 비슷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지만, 어슐러는 자신의 유년기와 양육의 경험을 되돌아보면서 그 문장에 반대한다. \"흥미로운 가정은 불행한 가정뿐이라고? 말도 안 된다. 톨스토이는 틀렸다. 불행한 가정이야말로 정말 똑같다. 물론 모든 사람이 항상 \'행복\'하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더라도, 소위 행복한 가정이란 매력적인 것임에 분명하다. 행복한 가정은 권력과 통제와 사랑과 반감과 좌절이 계속되는 상호작용의 공간이다. 정말로 끝이 없다.\" (221)1930년대에 출생해 1950년대에 성년이 된 미국 작가들(에이드리언 리치, 오드리 로드, 토니 모리슨, 실비아 플라스)은 자신들이 선구자가 없는 불확실하고 실험적인 길로 나가고 있다고 느꼈다. 미국 문학은 여전히 헤밍웨이, 포크너, 리처드 라이트의 마술에 걸려 있었다. 리얼리즘과 남성성이 지배하고 있었고, 유희나 환상을 위한 공간은 거의 없었다. \"나는 비평적으로 승인된 문화와는 다른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어슐러는 창작의 초기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노먼 메일러나 솔 벨로가 절대 되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았다. 동료 작가들이 누군지도 몰랐다. 내가 쓰고 싶어하는 글을 누군가가 쓰고 있을 것 같지 않았다. (228)하지만 어슐러는 자기 안에 꺼내야만 하는 뭔가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그 길을 가야 한다고 확신했다. 1952년 봄 어느 날, 어슐러는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중세 프랑스 시를 공부하다가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미지의 세계로 내딛는 환상을 본다. 그리고 어슐러는 작가로서의 소명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직관을 신뢰하기로 결심한다. 어슐러의 삶에서 대전환이 일어난 순간이었다. 몇 년 후 어슐러는 \"문이 열리는 환상\"에 대해 회상하면서 이렇게 쓴다. \"나는 그 거대한 바람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묻지 않았다. 바람이 부는 한, 그리고 내가 능력이 되는 한, 결과가 어떻게 되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었고, 나의 자유와 필연성과 나만의 것을 온전히 느끼고 만들어나갈 것이었다.\" (229)어슐러는 또 찰스와 함께 책에 올라타서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다고도 한다. 꿈속에서 어슐러는 하향풍이 불까 봐 걱정하고 있었지만 찰스는 확고했다. 어슐러가 계속해서 \"웃느라 고도를 놓치고 있었\"지만 찰스는 비행을 조종하는 것에 능했다. 찰스는 꿈에서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냥 책 앞표지 위에 서 프보드를 타는 것처럼 붙어 서서 독수리처럼 손을 펼치고 발은 책의 가장자리에 단단히 붙이고 짧게 발을 구른 다음 활짝! 하고 미끄러져 날아가는 거야. 책은 균형을 위한 존재야.\" (233)어슐러는 또한 아이들이 지나치게 손이 많이 가지 않았다는 것과 집중하는 재능을 가졌다는 점에서 운도 따라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아버지처럼 서재문을 닫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아버지가 아니고 어머니이니까.\" 하지만 그녀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았다. (238)어슐러 내면의 \"부르주아\"는 자신의 가정생활을 몹시 즐기고 있었지만, 자신이 어머니로서나 미국 서부해안의 작가로서나 과학소설가로 진지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면 매우 방어적이 되기도 했다. 어슐러가 \"포틀랜드에 사는 주부\"라고 자칭하는 것은 그녀가 울분에 빠져 있음을 의미했다. (246)판타지 문학의 전통에 어머니의 경험을 되찾아주기 위해 어슐러는 \"바깥과 아래에서부터\", 즉 이전에는 목소리를 부여받지 못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여성의 경험을 검토하기로 한다. \"마법을 할 수 없는 사람들, 빛나는 지팡이나 검을 갖지 못한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여성들, 아이들, 가난한 사람들, 늙은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이다. 영웅이 아닌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 곧 나와 같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영웅\" 이야기를 버림으로써 어슐러는 이야기의 진행 과정 속에서 행위성이나 자기인식을 획득하게 되는, 넓은 의미의 중심인물로서의 주인공도 버리게 된다. (258)교차성 논의의 물꼬를 튼 선구자 오드리 로드흑인이자 여성이자 레즈비언이자 엄마 시인으로서 오드리 로드는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평생을 싸웠다. 오드리 역시 결혼 전 한 차례 낙태 경험을 했다. 어슐러 르 귄이 뉴욕의 값비싼 의사에게 수술을 받은 지 1년 뒤, 오드리는 2주치 봉급을 털어 40달러로 낙태 수술을 해줄 간호사를 찾았다. 모성과 아이를 지키는 데 안전한 울타리가 필요하다고 느낀 오드리는 백인 게이 남성과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았다. 많은 친구들의 축하와 축복을 받은 이들의 협조적인 삶은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오드리는 민권운동에도 관심을 가지며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일과 시 쓰는 일을 계속했다. 하지만 오드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더 자기다운 삶을 찾아 나섰다. 흑인 주류 문학, 혼혈 비트 문학, 백인 페미니스트 지식인들, 급진적인 블랙아트 운동, 이 모든 것에 긴장된 거리를 유지하며 오드리는 자신만의 그룹을 만들었다. ‘아더마더스(자기 자식이 아닌 아이를 키워주는 사람)’라고 불리는 미혼/비혼의 친구들, 이웃들,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들로 자신을 둘러쌌다. 프랜시스라는 실험심리학자와 사랑에 빠져 새로운 가정을 꾸렸을 때 자기 삶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가장 창조적인 시기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의 퀴어 가정을 (아이들이 짜증을 낼 정도로) 최대한 평범하게 유지했다. 오드리 로드는 주변에 적절한 후원자, 동조자들을 조직하는 데 능숙했는데 특히 동료 시인 다이앤 디 프리마와의 관계는 모든 여성이 참고로 삼을 만한 것이다. 유방암에 걸리자 자신의 몸을 관찰하는 섬세한 기록을 남겼다. 결국 재발한 유방암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오드리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과제를 온전히, 넘치게 이루었고, 후배 여성 작가들에게 지금까지도 가장 강력한 모델이 되고 있다.그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엄마로서 흑인들이 모성의 황홀을 누리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 지배적 문화에 맞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한편, 레즈비언 엄마로서 배척당할 위험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모성이라는 게 무엇보다도 상실된, 혹은 보이지 않는 주체 위치라면, 그에 더해 흑인, 퀴어 모성은 비가시성의 교차로에 놓인 것이다. (290)다이앤 디 프리마는 부모로서도, 친구로서도 협력자가 되어주었다. 다이앤이 뉴욕과 서부를 쉴 새 없이 오가는 동안, 그녀와 오드리는 편지와 사진, 물려 입힐 옷 박스를 주고받았다. 오드리는 다이앤과 아이들이 조부모를 만나러 동부를 방문하면 그녀의 아이들이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기 위해 연락하곤 했다. 빵을 굽고, 구슬을 꿰고, 장신구를 만들고, 점성학과 주역을 공부하던 오드리의 히피 같은 면모를 다이앤은 장려했다. 그들은 1970년대 페미니즘에 부응해 시편을 주고받았는데, 이들 작품은 훗날 다이앤의 강력한 여신 연작 시집 『로바』와 서아프리카 여성 신들의 관능적이고 영적인 기도들을 담은 오드리의 시집 『블랙 유니콘』이 되었다.1968년 한 해 동안 다이앤은 오드리의 첫 책을 출판했고, 오드리는 다이앤이 네 번째 아이를 출산하는 걸 도왔다. 다이앤이 산파가 되어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녀는 의학 편람에서 \'가정 분만\' 항목을 찾아 읽었다. \"권장하지 않음.\" 하지만 단념하지 않고 때가 이르자 은색 부적을 몸에 두른 채 다이앤과 그녀의 파트너, 아이들이 머무는 호텔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여러 소설에서 읽었던 분만 장면들을 떠올렸다. \"너한테 끓인 물은 필요 없다는 걸 알아. 정말 필요한 건 살균된 가위들이지. 그때그때 상황을 봐가면서 한번 해볼게.\" 다이앤의 분만은 순조로웠다. 다이앤의 딸 타라의 최초의 순간에 함께한다는 기쁨은 오드리에게 생의 가장 심오한 미스터리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선사했다. \"아기들이 태어날 때, 그들은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다. 인간과 비슷하지만 아직 인간은 아닌 듯하다. 아기들은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완벽하게 자기 자신들이다. 그것을 바라보고 그것의 일부가 되는 것은 너무도 경이로운 일이며, 신비하고 영적이며 에로틱하고 힘을 북돋운다.\" (312)다이앤은 그녀에게 책상을 하나 주었는데, 오드리는 이 책상을 침실에 두었다. 책상이 침실을 가득 채운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에드는 오드리가 글을 쓰도록 주말에 세 시간씩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는 데 동의했다. 그녀도 아이들의 소음을 꺼버리고 \"일에 완전히 잠겨 있는 귀중한 순간들\"을 음미하면서 아이들이 근처에서 놀고 있을 때 일하는 법을 익혔다. (315)오드리는 젊은 여성들에게 멘토가 되거나 또래들에게 잔소리꾼 노릇을 할 때 가장 자기답다고 느꼈다. 1980년대, 베스와 조너선이 대학에 진학하자 그녀는 유럽으로 정기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거기서 서독, 네덜란드, 영국의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출신 페미니스트 및 레즈비언들과 교제하기 시작했고, 그녀가 탁월하게 해낼 수 있는 하나의 역할을 찾았다. 그들을 고취하고 지지해주는 일이었다. 인류학자이자 교수인 글로리아 베커는 네덜란드 흑인 레즈비언 그룹 \'시스터 아웃사이더\'의 일원이었는데, 이 단체의 명칭은 오드리의 영향력 있는 에세이 선집에서 따온 것이었다. (331)그녀는 \"언젠가 말해야겠다고 계획을 세우거나 다른 누군가의 말을 들으며 기다리고 있는 동안, 내가 말해질 필요가 있는 것들을 말했는지, 혹은 작은 침묵들로 나 자신을 그저 배반했는지와 상관없이\" 죽음, 즉 \"최후의 침묵\"이 지금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오드리는 유일한 해답이 자기 자신이 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한 흑인 여성 전사 시인이 당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하고 있습니까?\"여신의 창조적 카리스마로 흑인 여성 작가들과 연대한 앨리스 워커앨리스 워커는 가정 폭력과 인종주의적 폭력이라는 두 가지 폭력을 일상적으로 목격하며 자랐다. 흑인 여성들을 위한 학교인 스펠먼 칼리지로 진학했지만 날카로운 정치적, 문학적 감수성을 지닌 앨리스에게 스펠만의 교육은 지나치게 고리타분했다. 앨리스는 대학 시절 1963년 워싱턴 행진에 나갔고 함께 참석했던 백인 남자친구 데이비드와 손을 잡고 이튼턴 거리를 걸어 내려감으로써 온 마을을 충격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이듬해인 4학년 때 앨리스가 데이비드의 아기를 임신하자 큰 언니는 “헤픈 년”이라고 욕했고, 결혼했지만 아기가 없던 둘째 언니는 자기에게 아기를 달라고 졸랐고, 데이비드는 청혼을 했다. 그 어느 것도 선택할 수 없던 앨리스는 낙태를 했고 친구들이 2000달러를 모아주었다. 함께 병원에 왔던 백인 친구는 그녀가 마취에서 깨어나자 붉은 장미를 건넸다. 이후에 유대계 백인인 인권 변호사 멜을 만나 결혼한 앨리스는 남편과 함께 흑인 민권운동을 위해 미시시피주 잭슨으로 돌아왔다. 몇 년 후 딸 리베카를 낳았고 멜은 붉은 장미 꽃다발을 들고 병원을 찾았다.(한 해 전 앨리스가 임신 상태일 때 마틴 루서 킹 주니어가 암살당했고, 앨리스는 충격으로 유산했다.) 멜은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였지만 아이가 태어나자 더 열심히 민권운동에 매진해 앨리스를 외롭게 했다.(“[사람들은] 어떻게 나보다 더 그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지?”) 잭슨에서의 삶에 지친 앨리스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간다. 1980년대 초 『혁명하는 페튜니아』로 전미도서상 시 부문 후보에 올랐고, 비혼모 준 조던과 함께 ‘자매들’이라는 흑인 여성 작가 후원회를 조직했다.(토니 모리슨도 이 모임의 일원이었다.) 앨리스는 전투적인 블랙파워 운동에 스스로도 이질감을 느꼈고, 백인과 결혼한 것에 대해 흑인 동료들에게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앨리스는 여러 측면에서 무의식적이고 관습적인 요구에 무릎을 꿇지 않기 위해 애썼다. 이후 앨리스는 멜과 이혼하고 딸 리베카는 아빠 집(동부)과 엄마 집(샌프란시스코)을 2년씩 오가며 자랐다. 앨리스는 그러는 중에도 『매리디언』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고, 1980년대 말에는 『내 동반자의 신전』과 『컬러 퍼플』로 문학 명사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그토록 사랑했던 딸 리베카는 이후에 제3물결 페미니즘의 리더로 활동했고, 『흑인, 유대인, 백인』이라는 자전적 책에서 자신의 유년기, 청소년기의 어려움을 가감없이 토로해 화제가 되었다. 또 『아기에 대한 사랑』이라는 책을 써서 앨리스와 오랫동안 절연의 시기를 보냈다.워커의 글쓰기 작업이 끊기는 건 아기 때문만이 아니다. 남편의 일과 그녀의 작업, 그리고 다인종 부부로서의 존재는 모두 기성 사회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이었고, 워커는 쉽게 궁지에 몰렸다. 만약 그녀가 타자기를 치는 동안 전화벨이 울린다면, 아마도 그건 친구의 안부 전화거나 혹은 모르는 이의 협박 전화일 것이다. 우편함에는 출판사의 서신, 친구들의 편지와 함께 낯선 사람들이 보낸 욕설이 담겨 있다. 남편 멜이 출장을 떠날 때마다 그녀는 그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아침에 남편이 집을 나선 후 절망감이 파고들 때면, 앨리스는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363)나중에 앨리스는 어린 딸의 말을 통해 치유를 찾았다. 아름다움에 관한 에세이에서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강렬하게 인식하고 있던 상처를 세 살짜리 리베카가 처음으로 알아차려 주었다고 썼다. 리베카는 교육용 TV 프로그램인 「빅 블루 마블」을 보고 있었는데, 이 프로그램은 우주에서 본 지구 사진과 함께 시 작되었다. 아이는 엄마를 바라보다가 이 사진과 비슷해 보이는 것을 발견하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이는 그 자그마한 두 손을 옴폭 모아 엄마가 아이에게 하듯 내 얼굴을 감싸 쥐었다. \'엄마, 엄마 눈 속에는 세계가 들어 있어.\'\" (368)오드리와 마찬가지로 앨리스 역시 인생의 전환점이자 자신의 자긍심을 표명하는 선언으로서 낙태를 경험했다. 단편 「낙태」에서 낙태를 경험한 한 여대생은 이 사건에 \"진정한 어른의 시간을 소환하며 독자적인 삶의 방향을 포착하는 모든 흔적\"이 있다고 말한다. 죽을 수도 있었지만 살아 있다는 상황은 앨리스에게 새로운 절박감과 사명감을 가져다주었다. (375)준 조던에 따르면 1970년 세라로런스 칼리지에서 앨리스를 연사로 초대했을 때, 흑인 학생 단체는 행사 전체를 보이콧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언제나처럼 앨리스는 사람들의 예상에서 빗나가는 반응을 보였다. 앨리스는 세라로런스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조던의 전투적이고 시크한 차림(커다랗게 부풀린 아프로 스타일 머리, 트렌치코트, 부츠, 밤낮으로 끼고 있던 어두운 선글라스)과 대비되는 \"멋지고 평범하며 수수한 원피스\"를 입고 연설을 했다. 그녀는 청중들에게 화를 잘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부드러운 어조로 충고했다. 2년 후, 그녀는 다른 단체의 학생들에게 \"당신에게 침묵을 요구하는 사람은 당신 편이 아니다.\"라고 말해줬다. (389)\"앨리스는 모든 조상을 소환해 그동안 흑인 여성들이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우리가 집단적 애도를 할 수 있게 해준 것 같았다. 앨리스의 강연이 끝날 무렵, 방 여기저기에서 우리 자매들이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앨리스의 어머니 미니 루 워커가 그녀의 재능을 활용할 만한 기회를 가지지 못했던 것은 일부분 그녀의 아이들 때문이었는데, 이것이 앨리스가 모성에 대해 느낀 또 다른 복잡한 면모이다. 앨리스는 단편 「매일의 쓸모」 에서 교육을 받기 위해 집을 떠나 어머니의 전통과 단절되는 한 여성에 대해 썼다. 문화적으로는 풍요로웠으나 지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던 가정에서 나고 자란 워커와 카터 모두 자기변신은 이득만큼 손실도 가져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91)앨리스가 뉴욕에 도착하기 직전에 『혁명하는 페튜니아』는 전미도서상 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최종 후보 열한 명에는 에이드리언 리치와 오드리 로드를 포함한 여성 작가가 세 명 더 있었다. 네 명 중 수상이 가장 유력했던 리치는 다른 후보들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 중 한 명이 상을 받는다면 모두가 공동으로 상을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오드리와 앨리스는 동의했지만, 엘리너 러먼은 반대했다. 4월 18일, 전미문학상은 앨런 긴즈버그와 『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를 쓴 리치에게 공동으로 수여됐다. 워커는 시상식 자리에 함께하지 않았지만, 리치와 로드는 함께 무대에 올랐다. 리치는 세 사람이 함께 쓴 \"가부장적 경쟁의 조건을 거부\"하고 \"목소리를 잃어버려 여전히 들리지 않는 모든 여성의 이름으로\" 상을 수락한다는 강력한 성명을 낭독했다. (392)앨리스에게 딸에 대한 사랑이란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그녀 자신의 삶이 제공해준 협소한 가능성으로부터 자신의 아이를 자유롭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리베카에게 그 자유는 때때로 위압적이고 안전하지 않게 느껴졌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부모님은 나를 꼭 붙잡는 대신,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격려를 해주었다. 그들은 나를 감싸지도 보호하지도 경계하지도 보살피지도 않았다. 물론 나를 먹이고 쓰다듬고 나에 대해 감탄하고 내 성장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홀로 남겨지기 일쑤였던 나는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나의 위치를 스스로 발견하게 되었다.\" 아버지 집에서 나와 어머니 집으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열세 살의 리베카는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와 첫 섹스를 했다. 피임약을 먹었음에도 임신을 하게 된 열네 살의 리베카는 앨리스의 손을 잡고 낙태 수술을 받았고, 엄마와 딸은 병원에서 나와 영화를 보러 갔다. 앨리스는 이토록 이른 나이의 리베카로 하여금 섹스를 하게 만든 외로움에 대해서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엄마로 묘사된다. (399~400)누구보다 의식적으로 엄마가 되기를 선택한 앤절라 카터앤절라의 어머니는 매우 영특했지만 남자 형제들과 달리 대학에 가지 못한 채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은 후 아이들에게 매달렸다. 특히 앤절라가 이른 결혼을 하게 될까 몹시 걱정했고 좋은 교육을 시키고자 했지만(앤절라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옥스퍼드 진학을 권유받았다.) 앤절라는 도리스 레싱이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에 대한 반발심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결혼해버렸다. 남편은 음악 취향을 공유하는 재미있는 술 친구였지만 우울증이 심하고 회복탄력성이 부족했다. 계속 해고되거나 퇴사를 거듭해 앤절라가 잡지사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다. 앤절라는 이 결혼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것을 참고 견디며 9년 동안 네 권의 장편소설을 완성했다. 촉망받는 소설가가 된 앤절라는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젊은 일본인 남성 소조와 사랑에 빠졌다. 앤절라는 이혼을 통보했고 이에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폐색전으로 쓰러진 후 얼마 안 가 숨을 거두었다. 하지만 앤절라는 일본에서 소조에게 어이없이 버림을 받고 2년을 더 살다가 빈손으로 런던으로 돌아온다. 앤절라는 이 모든 일을 겪은 후에 16세 연하의 건축 인부 마크와 사랑에 빠지고 가정을 이루어 마흔셋의 나이에 출산을 했다. 이후 마크는 전업 아빠로서 육아를 전담하며 앤절라가 작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왔다. 앤절라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결혼과 임신을 밝히기를 꺼렸지만, 사실 이는 앤절라가 간절히 원하고 선택한 것이었다. 앤절라는 페미니스트 출판사 \'비라고(Virago, 말참견을 잘하는 여자)\'의 설립을 준비하던 카먼 칼릴을 만났고, 여기서 생애 마지막 책들을 출간했다. 앤절라와 가장 친한 친구들은 여러 국적을 지닌 인물들이거나 그녀처럼 자기 자신을 발명한 인물들이었다. 뉴질랜드에서 성장한 애드콕, 레바논계 호주인인 칼릴, 훗날 친구가 된 살만 루슈디, 가즈오 이시구로, 캐릴 필립스 등이 그들이다. 늘 ‘아웃사이더’이기를 바랐던 앤절라지만 늘 주변에 친구들이 넘쳐났고, 그 친구들은 앤절라의 아이를 함께 돌보아주었다.이 모든 여성들은 1983년 43세에 첫 아기를 낳은 앤절라 카터의 친구가 돼 그녀를 지지해주고 함께 길을 닦았다. 성 혁명과 페미니즘 혁명 덕에 엄마들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앤절라 주위로 모여들었다. 어떤 이들은 결혼을 하지 않았고, 어떤 이들은 동성 파트너와 함께했고, 어떤 이들은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았고, 어떤 이들은 비혼모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이들은 앤절라에게 어떻게 유아어를 사용하고 아기를 트림시켜야 하는지 보여주길 즐겼다. 또 아이를 키우건 키우지 않건 자신과 앤절라에 대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만족감을 느꼈다. (413)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자기 방식대로 엄마가 될 수 있었던 덕분에 그녀는 모성을 즐길 수 있었다. 그녀는 일기에 썼다. \"자식의 아름다움은 내가 최근에야 가담하게 된 음모다.\" 그녀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강렬한 느낌을 갖고 있었고, \'너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남들이 말하는 것 이상의 존재가 되고자 했다. 그것을 평범한 가정생활과 결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녀는 오랫동안 생각했다. 파트너와 함께 자신의 방식으로 모성을 정의하는 일을 해내게 될 때까지는. (417)1년에 6000달러에 달하는 브라운 대학의 비싼 학비에 분개했고, 그런 특권을 누리는 아이들한테 고분고분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앨리스 닐처럼 예민하고 얼굴이 두껍지 못했던 그녀는 성난 사람처럼 행동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고 권위를 행사하는 법을 배웠다. 강의 첫 날, 그녀는 닥터마틴 신발을 신고 흰머리를 헝클어뜨린 채 안티패션 룩으로 강의실에 도착했다. 학생들 중 한 명이었던 소설가 릭 무디는 이렇게 말한다.“카터는 수강 희망생의 숫자를 14명으로 줄이는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강의실에는 30명쯤 있었고, 그녀는 그냥 우리 앞에 서서 질문을 받으려고 했다. 뒷자리에 있던 어떤 젊은 남학생이 매우 거만하게 손을 들더니 기를 죽이려는 듯 회의적 태도로 질문했다. ‘저기, 어떤 작품을 쓰시는 분인가요?’ 답변하기 전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더니 한두 번인가 ‘음.......’ 하고 말했다. 그러고선 답했다. ‘내 작품은 강철 칼날로 어떤 남자의 자지 밑동을 잘라버리는 얘기지.’ 쉬는 시간이 되자 강의실은 텅 비었고, 확실치는 않지만 열네 명쯤 돌아왔다. 어쩌면 열한 명이나 열둘 밖에 안 됐는지도 모르고.” (419)앤절라가 프로비던스에 왔을 때, 그녀와 마크는 6년째 사귀는 중이었지만, 그녀는 한 편집자에게 보낸 편지에 자택 우편물은 (아마도 마크를 의미할) ‘건물 관리인’이 처리하고 있다고 썼다. (421~422)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모든 엄마들은 굳이 그들에게 주제넘은 짓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려는 모성 수호 경찰을 만나게 마련이다. 앤절라는 임신 38주에 국경 수비대처럼 구는 산부인과 의사와 특히 불쾌한 언쟁을 벌였다. 1983년 11월이었다. 그녀의 장편소설 『서커스의 밤』이 막 출간될 참이었다. 그녀가 감독 닐 조던과 함께 대본을 쓴 영화 「늑대의 혈족」은 제작 중이었다. 부커상 심사위원으로 심사를 막 마친 참이기도 했다. 축하 행사 다음날, 고혈압 증상으로 그녀는 사우스런던 여성 병원에 입원했다. [...] 의사가 자리를 뜬 후, 앤절라는 통곡하고 분노했다. \"그 생각을 할 때마다 혈관을 따라 아드레날린이 치솟아.\" 앤절라는 산부인과 병동 침대에 누워 로나에게 편지를 썼다. \"이 여자를 죽여버리고 싶어. 그 여자 내장들을 다 끄집어내고 싶다고.\" 그녀는 자신이 상대적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청하지도 않은 이런 조언을 백인 중산층 산모한테 할 정도면 흑인 프롤레타리아 산모는 얼마나 편하게 학대하듯 대하겠어?\" (452~453)그러나 창작의 차원에서 앤절라는 자신의 아기를 비상계단에 방치해두는 데 곤란을 겪었던 것 같다. 원래 그녀는 늘 자신의 픽션에서 분노, 매혹, 소외 같은 지배적인 감정 상태들에 의존했으며, 어둡고 누군가를 살해하는 이야기를 쓰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모성적 행복은 그녀가 다루기 힘든 제재 였다. 친구 페이 웰던은 앤절라가 자신이 억누르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던 걸 기억한다. \"자신의 마음이 이런(어둡고 누군가를 죽이는) 것들을 곱씹어 생각하도록 내버려두는 건 너무 무섭다거나 어떤 식으로든 아기에게 해를 입힌다고 앤절라는 느끼는 것 같았다.\" 웰던은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완전히 이해했다. 그건 불운같이 느껴졌을 것이다.\" 그녀의 후기작에는 \"초창기 글쓰기와 같은 차가운 힘\"이 없다. (457)그녀의 저널리즘은 여전히 신랄하고 정치적으로 예리했다.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이 친구 살만 루슈디에게 살해 위협을 가했을 때, 그녀는 루슈디의 평생지기로 뉴욕에서 그를 옹호하던 수전 손태그, 또 루슈디의 책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의 편이라고 했던 도리스 레싱과 함께 루슈디 곁에 서 있었다. 1991년 제1차 걸프 전쟁이 발발하자 (분노한) 그녀는 친구 수재너 클랩의 자동응답기에 온전히 욕설로 가득한 3분짜리 메시지를 남겨놓 았다. 애트우드는 그녀가 \"요정 대모\"의 분위기를 풍겼다고 했지만, 세이지는 그녀를 끝까지 \"할머니의 옷을 입은 늑대\"라고 불렀다. (457~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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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삶과 일, 그리고 소중한 것들 (커버이미지)
    [에세이/산문]나의 삶과 일, 그리고 소중한 것들
    • 안건혁 지음
    • 좋은땅
    • 2024-02-19

    출생부터 현재까지, 75년의 시간그 오랜 시간 동안 쌓인 이야기를 한 권에 담다100세 시대인 현재, 사람은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을 살아간다. 그 긴 시간 동안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는 모든 사람이 다를 것이다. 세상에 있는 사람 수만큼의 다른 인생이 있기 때문에 각자의 삶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저자는 출생부터 현재 고희에 이른 시간까지의 삶을 글로 풀어냈다. 한국의 경제가 막 일어서기 시작한 시점과 함께한 그의 인생은 우리나라의 또 다른 현대사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책은 ‘인생 전반기’, ‘인생 중반기’, ‘인생 후반기’로 총 3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가족과 함께하던 어린 시절부터 평생 걸어갈 길을 찾던 청소년기, ‘건축’과 ‘도시설계’라는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게 되었던 청년기와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열정을 바치던 시기, 그리고 인생의 후반기라 할 수 있는 최근까지의 이야기가 아주 세세하게 담겨 있다.모든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미국으로의 출국일이 다가왔다. 태어나서 처음 외국으로 떠나는 것이었고, 이제 가면 어떤 일들이 내게 닥쳐올지 전혀 알 수가 없는 망망대해로 돛을 올리는 기분이었다. 언제 내가 고국 땅을 다시 밟을 수가 있을까? 감회가 새로웠다. 바로 이날을 위하여 나는 지난 20여 년간 돈을 쓰지 않고 모았다. 그것은 모두 합하여 약 8,000불이라는 거금이었고, 나의 전 재산이자 내겐 끔찍이도 귀중한 돈이었다. 계산상으로는 학비와 생활비로 1년 반 정도 버틸 수 있는 금액이었다. 나머지 약간 부족한 부분은 미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그것도 안 되면 부모님께 손을 벌릴 양으로 미리 말씀을 드리고 학기마다 아버님께 송금을 부탁드렸다.- ‘미국 유학 1 - OSU에서’ 중에서 -인생의 황금기에서 스스로 돌아본 저자의 인생에는 많은 사랑이 있었다. 부모님을 향한 사랑, 아내와 딸을 향한 사랑, 자신의 일에 대한 사랑을 가감 없이 글에 녹여냈다. 또한 독자들은 저자가 자신의 삶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열정을 쏟았는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75년의 시간을 담은 이 책이 독자의 삶에 힘을 불어넣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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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수많은 처음들 (커버이미지)
    [에세이/산문]나의 수많은 처음들
    • 김주하
    • 유페이퍼
    • 202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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