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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멜랑콜리의 묘약 (커버이미지)
    [문학]멜랑콜리의 묘약
    •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이주혜 옮김
    • 아작
    • 2023-04-14

    “나는 손을 들어 화성을 가리키니너는 쓸쓸히 지구를 노래하라”전설로 전해오던 레이 브래드버리의 초기 단편집, 30년 만의 복간 및 12편의 미수록작 국내 초역 “차라리 밖에서 죽는 게 낫겠어요. 거긴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이라도 날려주겠죠.” 이름 모를 병을 앓는 소녀. 그녀의 가족은 거리의 뭇사람들에게 소녀의 병을 치유할 묘약을 묻고, 지나던 노파는 혀를 차며 말한다. “멜랑콜리의 묘약이 필요해….” 온갖 제안이 검은 바다처럼 들끓고, 마지막으로 얼굴이며 옷에 검댕이 잔뜩 묻었지만 미소만은 ‘어둠 속에서 작은 언월도처럼’ 빛나는 거리의 청소부가 찾아오는데….“화성의 사막에 앉아 지구를 바라본 시인”, 설명이 필요 없는 단편의 제왕이자 20세기 SF 문학의 거장, 《화씨 451》의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 국내 번역본 절판 후 전설로만 전해오던 레이 브래드버리의 초기 단편집 《멜랑콜리의 묘약》이 30년 만에 복간되었다. 당시 출간된 스무 작품 외에도, 《화성연대기》의 시작이 된 <백만 년 동안의 소풍>, 드라마 <레이 브래드버리 극장>의 화제작 <비명 지르는 여자> 등 낭만 가득한 미수록작 12편을 국내 처음으로 옮겨 실었다.나는 손을 들어 화성을 가리키니너는 쓸쓸히 지구를 노래하라“상상의 세계에서 그는 불멸이다”2012년 6월, 레이 브래드버리가 91세의 나이로 타계했을 때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백악관 명의의 추모성명을 발표했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상상력이 세계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변화하기 위한 수단이 되며 소중한 가치를 표현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브래드버리의 작품은 앞으로도 계속 더 많은 세대를 격려할 것이다.”“브래드버리가 없었다면 스티븐 킹도 없었다.”는 말로 브래드버리의 적자를 자처했던 스티븐 킹은 “나는 오늘 천둥 같은 거인의 발소리가 희미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의 소설과 이야기들은 큰 울림과 기이한 아름다움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라는 추도사를 남겼다. 드라마 작가 데이먼 린델로프는 “화씨 451도, 내 심장이 재가 되어버린 온도. 당신이 그리울 겁니다, 레이.”라며 애도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나의 SF 작품 활동 대부분에서 브래드버리는 내 뮤즈였다. SF, 판타지, 상상의 세계에서 그는 불멸이다.”라는 최고의 헌사를 남기기도 했다. 같은 해 8월 NASA는 화성 탐사로봇 큐리오시티가 처음 화성에 내려앉은 자리를 ‘브래드버리 착륙지’로 명명하며 뭉클한 방식으로 그를 기리기도 했다. 명실상부한 단편의 제왕, 환상문학계의 음유시인, SF 문학의 위상을 주류 문학의 반열에 올린 거장, 서정적 과학소설의 개척자 등 레이 브래드버리를 향한 수사는 그의 이력만큼이나 화려하다. 장르소설 작가로는 최초로 2000년 전미도서재단 평생공로상을 받았고, 미국예술훈장, 프랑스문화훈장, 퓰리처 특별 표창상을 받는 등 수상 이력 또한 가히 전설적이다. 1989년 SF 장르에서의 업적과 공로를 기려 ‘그랜드마스터’로도 추대되며 명인의 반열에 올랐다.이토록 전설의 반열에 올라 있는 그지만, 더욱 ‘인간적’인 이면의 에피소드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늘 우주여행을 꿈꾸었지만, 어린 시절 우연히 목격한 끔찍한 자동차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로 평생 운전을 하지 않았다. ‘로켓맨’이라는 용어의 창시자이면서도 비행기를 타지 않고 기차여행으로 대륙을 횡단했다. <레이 브래드버리 극장>이라는 TV 프로그램 제작으로 대중적 인기와 함께 각종 미디어 관련 상도 거머쥐었으면서 기회만 닿으면 텔레비전을 비판했다. 많은 작품 안에서 블루투스, 평면 TV, 무인자동차, 현금자동인출기, 인공지능, 전자책, 전자감시카메라 등을 예언했으면서도, 정작 본인은 컴퓨터를 싫어해 늘 타자기로 글을 썼다. 고양이를 사랑해 아내 매기와 함께 LA 자택에서 많을 때는 22마리까지 고양이를 길렀으며, 특별히 사랑한 고양이는 그가 글을 쓸 때면 책상 위로 올라와 문진 노릇을 자처했다. 단 이틀 만에 소설집 두 권을 뚝딱 엮어내고 평생 600편에 가까운 단편을 쓰는 등 번득이는 천재성을 자랑하는 이면에는 신문을 팔아 생계를 꾸리면서도 꼬박 10년 동안 일주일에 사흘을 공공도서관에 가 빌린 타자기로 글을 쓰며 보낸 지난한 습작기가 존재한다. 이렇듯 레이 브래드버리는 전설적인 거장의 면모와 어딘가 허술한 ‘인간적인’ 면모를 동시에 갖추고, SF와 판타지, 공포물, 서정문학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특유의 시적인 문장으로 벼락 치듯 쏟아지는 영감과 상상력에 충실하게 글을 누벼냈던 ‘하이브리드’ 작가다. 그러므로 그를 장르 문학 계보의 어디쯤 위치시킬 것인가 골몰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그는 레이 브래드버리요, 레이 브래드버리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버렸으므로. 1959년 이 고유한 레이 브래드버리 상표를 깔끔하게 붙인 기묘하고 아름다운 선물 상자 하나가 독자들 앞에 선을 보였으니, 바로 《멜랑콜리의 묘약》이다. 화성의 쓸쓸한 여행자들<백만 년 동안의 소풍>과 <검은 얼굴, 금빛 눈동자>에 등장하는 가족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이주한다. 이들은 지구에서 찾지 못한 ‘논리와 상식, 훌륭한 정부, 평화, 책임감을 찾고자’ 화성까지 왔지만, 이곳엔 보랏빛 운하와 분홍색 바위, 하얀 사막, 푸른 사막,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의 흔적뿐 화성인은 보이지 않는다. 얼마 후 지구에서 가져와 심은 장미꽃은 초록색으로 변해버리고 잔디는 제비꽃 색깔로 변한다. 가족의 아이들은 들어본 적도 없는 화성의 말을 하고 피부색도 눈빛도 서서히 원래 모습과 달라진다. 거기 운하의 물에 화성인들이 비쳤다. 티모시와 마이클과 로버트와 엄마와 아빠가.화성인들이 가족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출렁이는 물결 속에서 아주 오랫동안 고요하게….거울 같은 강물에서 자신과 똑같은 화성인을 발견한 지구인은 결국 화성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평화와 고요를 찾았을까? 두 작품 모두 40년대 후반에 발표된 것으로 미루어 우리는 2차 세계대전의 광풍을 목격한 브래드버리가 평화 회복을 위해 지구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젊음, 봄날 얼음처럼 덧없어라브래드버리의 소설을 읽다 보면 한없이 쓸쓸해진다. 그 근원에는 하릴없이 시간의 흐름을 견뎌야 하는 인간 됨의 쓸쓸함이 존재한다. <길 떠날 시간>의 남편은 죽을 때가 다가왔다는 대자연의 속삭임을 듣고 단출한 짐을 꾸려 집을 떠나려 한다. 미개인들처럼 재산을 모두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카누를 타고 석양을 향해 노를 저어 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게 그의 목표다. <영원히 비가 내린 날>의 세 노인은 바싹 마른 사막의 호텔에서 21년을 장기투숙하며 일 년에 단 하루 봇물 터지듯 비가 내리는 날만을 기다린다. <사르사 뿌리 음료수 냄새>의 남편은 온종일 다락방에 처박혀 아름다웠던 젊은 날을 추억한다. ‘수천 날의 어제가 안치된 작은 관’이기도 한 다락방은 겨울을 나는 노인에게 젊은 날의 여름으로 시간여행을 허락한다. <석양의 바닷가>의 두 중년 남자는 아름다운 인어를 목격하는 찰나의 기적을 경험하지만, 내일도 모레도 그 다음 날도 늘 바닷가에 머무르며 늙어갈 운명을 예감한다. <마지막 전차 여행>의 차장 트리든 씨는 내일이면 운행이 중단될 전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과거의 흥겨운 기억을 간직한 유원지로 마지막 전차 여행을 떠난다. <보이지 않는 소년>의 노파는 외로움을 달래려고 찰리를 아들로 삼고자 고군분투하지만, 소년은 노파의 마음에 못을 박고 떠난다.“나는 봄날 얼음처럼 덧없고 아무 힘도 없단다.”노파의 한마디는 늙음에 대해 브래드버리가 하고 싶었던 말의 전부일 것이다. <어서 와, 잘 가>의 윌리는 40년이 넘도록 열두 살 소년의 모습으로 살아가며 사람들의 의심과 수군거림을 피해 3년에 한 번씩 거처를 옮겨야 하는 가엾은 운명에 처했다. 윌리를 떠나보내야 하는 양어머니의 입을 빌려 브래드버리는 젊음을 향해 이렇게 묻는다. “나는 매일 학교가 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좋더라. 누가 학교 정문 밖으로 꽃다발을 던지는 것 같아. 어떤 느낌이니, 윌리? 영원히 젊다는 건 어떤 느낌이야? 화폐 주조소에서 갓 찍어낸 반짝거리는 은화처럼 보이는 건 어떤 기분이니? 행복하니?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괜찮은 거니?”브래드버리의 젊음은 늙음의 대척점이 아니라 늙음의 전신이고, 젊음은 늙음의 운명을 내포한다. 그러므로 봄날 얼음처럼 덧없는 것은 어쩌면 늙음이 아니라 젊음일지도. 사랑과 미소라는 묘약표제작 <멜랑콜리의 묘약>의 소녀는 이름 모를 병을 앓는다. 가족은 거리의 뭇사람들에게 소녀의 병을 치유할 묘약을 묻는다. 온갖 제안이 쏟아지고 맨 마지막에 거리의 청소부가 찾아온다. 얼굴이며 옷에 검댕이 잔뜩 묻었지만 미소만은 ‘햇살처럼 따사롭게’ 또 ‘어둠 속에서 작은 언월도처럼’ 반짝인다. 자정이 지나 런던이 잠들고 달이 뜬 시간에 류트를 연주하며 찾아온 음유시인도 청소부와 똑같이 ‘미소를 지으면 상아같이 하얀 이가’ 드러난다. <멋진 바닐라 아이스크림색 양복>의 가난한 멕시코계 미국인 청년 여섯 명은 돈을 모아 멋진 여름 양복을 한 벌 사서 번갈아 입기로 한다. 초라했던 청년들은 그 양복만 입으면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기적을 경험한다. 주인공 마르티네즈는 그 양복을 입고 평소 마음에 두었던 아름다운 아가씨와 눈이 마주친다. 조심스럽게 데이트 신청을 하면서 다음 양복을 입을 차례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하는 마르티네즈에게 아가씨는 이렇게 대답한다.“처음에는 양복이 눈에 띄었어요. 그래요. 저 아래 어두운 밤을 새하얀 색이 가득 채웠죠. 그렇지만 당신 치아가 훨씬 더 하얗게 보여서 양복은 까맣게 잊고 말았답니다. (…) 다시 말하지만, 당신은 그 양복을 입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돼요.”아예 <미소>라는 제목의 이야기도 있다. 전쟁으로 모든 게 무너진 세상에서 문명 자체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문명시대의 예술작품을 향해 돌을 던지고 침을 뱉는다. 주인공 소년은 난장판 속에서 겨우 그림 한 조각을 구해낸다. 소년이 손에 꼭 쥔 캔버스 조각에는 사랑스럽고 다정하고 따뜻한 미소가 그려져 있다. 디스토피아의 세계에서 가난한 소년에게 한 줌의 위안을 안겨준 그 미소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해 보시길. 이렇듯 브래드버리는 미소의 힘을 믿는다. 이름 모를 병을 앓는 소녀에게도, 초라한 청춘에게도, 전쟁으로 무너진 폐허의 세계에도, 미소와 사랑이 묘약이다.감각은 비처럼 쏟아지고<온 여름을 이 하루에>는 하염없이 비가 내리는 금성이 배경이다. 오늘은 7년 만에 태양이 딱 한 시간 고개를 내미는 날. 금성에서 태어나 태양을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꿈속에서 황금색이나 노란색 크레파스 혹은 커다란 금화를 떠올리고 온몸을 벌겋게 달아오르게 하는 태양의 온도까지 기억한다고 믿지만 단조로운 빗소리에 잠에서 깨어나면 간밤의 꿈은 간데없이 사라지고 만다. 이 아름다운 단편에서 브래드버리는 비 내리는 금성과 딱 한 시간 고개를 내민 붉은 태양과 7년 만에 햇빛을 받아 술렁이는 금성의 숲을 묘사하기 위해 온갖 감각적 이미지를 끌어온다. 오늘 아침 아내는 싸늘하게 식은 우유 같았다. - <결혼생활을 고쳐 드립니다> 오전 6시, 지구 로켓이 가져다주는 아침신문은 갓 구운 토스트처럼 따뜻했다. - <검은 얼굴, 금빛 눈동자>서랍장 거울에 6월의 민들레와 7월의 사과와 따뜻한 여름 아침의 우유로 빚어진 얼굴이 보였다. - <어서 와, 잘 가>이렇듯 브래드버리의 문장은 눈만이 아닌 오감으로 읽는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감각이 비처럼 쏟아진다. 감각적 묘사의 압권은 행간을 화폭 삼아 피카소의 그림을 화려하게 펼쳐 보인 <어느 잔잔한 날에>와 바닷가에 떠내려온 인어의 모습을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세밀화로 그려낸 <철 지난 바닷가>일 것이다. 언어의 붓으로 그려낸 환상적인 그림들을 다시 한 번 훑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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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 (커버이미지)
    [문학]며느리를 그만두는 날
    • 가키야 미우 지음, 고성미 옮김
    • 레드박스
    • 2023-04-14

    쇼윈도 부부로 살던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아득하게 펼쳐지는 시댁 수발의 길“며느리 노릇은 그만하겠습니다”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이라는 제목만으로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이 소설은 남편과 사별한 중년의 여자가 ‘며느리’가 아닌 ‘나’로 살기 위해 \'사후 이혼\'을 감행하며 자립의 길로 나서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청년 실업, 결혼난, 고령화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작품 소재로 탁월하게 다뤄온 일본 작가 가키야 미우의 장편소설로, 현실적인 감각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인생을 바라보는 작가의 연민 어린 시선이 잘 녹아들어 있다. 15년 결혼 생활 내내 무정했던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홀로된 가요코는 크게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현실에 안도하지만, 참한 며느리 역할을 기대하며 점점 옥죄어오는 시집 식구들이 부담스럽다. 사생활을 구속하기 시작한 시어머니와 치매에 걸린 시아버지, 히키코모리 시누이까지 살뜰히 보필하면서 남은 인생을 보내야 하는 걸까? 가요코는 이제 자신이 누구의 아내도 아닌 자유의 몸이라고 생각했던 게 큰 오산이었음을 깨닫게 되는데…….* * *그녀는 왜 며느리를 그만두기로 했을까? 남편은 매일 야근을 핑계로 늦게 들어오고 생일이나 기념일에도 집을 비우며 선물 한번 챙겨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의 등 뒤에는 ‘아무것도 묻지 말 것!’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는 것 같았고, 속을 알 수 없는 남편과 살다 보니 아내 가요코 역시 속내를 보이지 않으려 조심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로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 출장을 다녀온다던 남편의 말은 거짓이었고, 결혼 생활 내내 남편이 숨겨왔던 크고 작은 진실을 하나둘 마주할 때마다 그녀는 당혹감과 깊은 배신감을 느낀다.가요코는 남편의 죽음보다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분향을 한다며 시도 때도 없이 집에 들이닥치는 게 더 괴롭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걸어다니는 상식’이라 불릴 만큼 품위 있고 경우 바른 시어머니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남편과의 건조한 결혼 생활을 견뎌낼 수 있게 힘이 되어주던 시어머니는 이제 연락도 없이 수시로 집을 드나드는가 하면 며느리의 사생활을 자꾸만 통제하려고 한다. 남편 집안의 기대에 부응하는 며느리로 살아야 한다는 데 숨이 막힌 가요코는 고민 끝에 남편의 가족들과 관계를 정리하기로 마음먹는다. \'인척관계종료신고서\'라는 서류를 관공서에 제출해 ‘사후 이혼’을 하고, 성씨도 결혼 전의 성으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그녀는 혼돈으로 가득한 현실과 자기 안의 갈등 속에서 시월드에 졸업을 선언하고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까? 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상과 삶의 고민들을 날카롭게 작품에 투영해내는 가키야 미우는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에서 남편과 사별한 뒤 ‘사후 이혼’을 선택한 며느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본에서는 배우자 사망 후에 법률적 이혼은 할 수 없더라도 배우자 가족과 인연을 끊고, 배우자와 같은 묘에 묻히는 것을 거부하기 위해 ‘인척관계종료신고서’를 제출하는 사후 이혼 신청 건수가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가키야 미우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 또한 시어머니로 살아가고 있긴 하지만 ‘며느리는 무조건 남편의 부모를 평생 받들어 모셔야 한다’는 신화로부터 여성들을 해방시키고 다른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 싶어 이 소설을 썼다고 밝힌 바 있다. 현실의 서늘함과 삶의 온기를 담은 드라마『며느리를 그만두는 날』은 현실감 있는 사건들을 바탕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스토리와 흡인력 있는 전개, 일본 나가사키 지역의 매력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묘사, 잔잔한 웃음을 자아내는 경쾌한 장면들로 시선을 붙잡는다. 애증이 깊은 친정 식구들, 자신을 억누르는 남편 집안사람들로 인한 주인공 가요코의 심경 변화와 감정선이 섬세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부모에게도 남편에게도 그리 사랑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움츠러든 채로 살아온 가요코가 어느새 그때그때 배우처럼 얼굴을 바꿔가면서 당당하게 행동할 때나, 남편과는 정반대 스타일의 연하남에게 마음이 끌릴 때, 남편 가족과 인연을 정리하고 싶어 하면서도 갈팡질팡 고민할 때도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이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감정 이입을 하고, 나름대로 결말을 머릿속으로 상상해볼 것이다. 작가가 선택한 엔딩을 얼마나 흡족하게 받아들이느냐는 저마다 다를 터. 뭔가 화끈한(?) 복수극을 기대했거나, 주인공 가요코가 좀 더 독립적으로 돌파해나가길 응원한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 가요코에게 마음이 기운 사람이라면 비로소 그녀가 행복의 감각이 깨어나기 시작했음을 눈치채고, 그녀의 앞날을 비추는 햇살의 온기를 느끼며 책을 덮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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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성 - 구름 속의 큰 별 (커버이미지)
    [문학]명성 - 구름 속의 큰 별
    • 남지심 지음
    • 불광출판사
    • 2023-04-14

    한국 비구니 역사의 산증인 비구니계의 큰 별, 명성 스님 일대기! 청도 운문사를 한국을 대표하는 비구니 교육 도량으로 일궈낸 명성 스님의 일대기 《명성》이 불광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비구니 교단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 비구니의 계맥과 명성 스님이 일군 운문사에 대한 찬사가 늘어가고 있다. 명성 스님의 유발상좌로 30여 년 스님을 가까이에서 바라본 《우담바라》의 작가 남지심이 비구니계의 큰 스승 명성 스님의 발자취를 평전소설로 꾸몄다. 명성 스님이 생존해 계시고, 책 속에 생을 정리해 놓은 자료들이 많아서 평전 쪽에 가깝다. 이 책은 한국 비구니사를 연구하는 데 활용해도 도움이 될 만하다. 《명성》은 명성 스님의 수행자, 교육자, 행정가, 지도자로서의 다양한 면모를 조명하였다. 그러나 단순히 명성 스님의 개인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스님의 생 자체가 한국 근현대 불교사의 산증인으로서 한국 비구니 역사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명성》은 우리나라 삼국 시대부터 해방 후 ‘불교 정화 운동’까지 한국 불교사에 대해 생생하게 다루고 있어 역사의 현장을 보는 듯하다. 또한 부처님 재세 시 비구니 교단 스님들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중국, 인도, 남방권 불교국가의 비구니계 역사와 현 상황까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한국 비구니사는 물론, 세계 비구니사를 꿰뚫게 될 것이다. 명성 스님은 폐허와 다름없던 운문사에 와서 40여 년간 운문사 강원을 세계에 드러내도 손색이 없는 운문승가대학으로 탈바꿈시키고, 선원, 율원을 갖춘 대가람으로 일으키기까지 혼신의 힘을 쏟았다. 그 힘겹고 드라마틱한 여정을 있는 그대로 작가가 섬세한 필체로 그려낸 《명성》은 마치 한 편의 장엄한 교향곡을 들은 듯 감동을 안겨준다. 《명성》에서 운문사 학인들의 생활 모습을 빼놓을 수 없다. 먹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농사짓던 이야기, 사교반 집단 탈출 사건, 감 서리 갔다가 사달이 난 이야기, 간담을 서늘하게 한 화재 사건 등 학인들과의 재미있는 일화들은 절로 웃음 짓게 한다. 매사에 철두철미한 스님이지만 학인들을 포근히 감싸주는 어머니 같은 모습은 가슴 찡하게 한다. 그 밖에 명성 스님의 수행 이야기에는 각 사찰의 창건 설화, 관세음보살 전생 이야기, 스님들의 일화 등이 녹아 있어 읽을거리가 다양하고 흥미롭다. ‘비구니 교육’이란 시대적 짐을 짊어지고 승가 교육에 새 바람을 일으킨 큰 스승 명성 스님은 1930년 경상북도 상주에서 출생. 1952년 합천 해인사 국일암에서 선행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23세 되던 해 아버지 관응 스님이 출가의 길을 권유했다.(관응 스님은 유식학의 대가로 당대 최고의 강백이었고 최초로 무문관에서 6년간 수행을 마친 선승으로 존경받았다. 2004년 입적하였다.) 1970년 40세 때 명성 스님이 운문사 강원에 강주로 왔을 당시만 해도 강원 교육은 서당에서 훈장이 가르치는 방법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명성 스님은 전형적인 주입식 교육의 틀을 깨고 모든 수업을 논강식 교육 방법으로 바꾸었다. 또한 절집 공부만으로는 안 된다고 여기고 외학(外典)과의 연계성을 강조하였다. 미술, 외국어, 심리학, 철학, 유학, 다도, 꽃꽂이, 피아노, 서예 등을 교과목에 넣었다. 그 당시 경상북도 산골에서 이런 교육을 한다는 것은 시대를 앞서 간 획기적인 일이었다. 절에 들어오면 여성성을 제거하고 남성을 닮은 중성이기를 강요하던 시절에 명성 스님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을 살려 포교에 매진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역설했으니! 승가 교육 현장에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부승 제도를 복원하여 한국 비구니사(史)에 한 획을 그은 비구니계의 등불 명성 스님은 비구와 비구니는 다 같은 부처님의 제자로 그 위상이 대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나라 최초로 비구니가 비구니로부터 전강을 받는 전통을 만들었다. 1983년 명성 스님은 평소 존경했던 화산당 수옥 스님에게 법제자로 위패 건당을 하면서 자신의 뿌리를 만들고(수옥 스님은 금룡 스님, 혜옥 스님과 함께 근대의 3대 비구니 강백 중 한 사람이다.), 1985년 두 제자 흥륜, 일진 스님에게 전강을 함으로써 기둥을 만든 것이다. 이 전강 의식은 비구니 손으로 역사의 획을 긋는 의미 있는 사건으로 비구니사에 기록되었다. 비구니 강사가 배출되어 비구니를 직접 가르치는 여법한 이부승 제도가 되살아났으니, 끊어졌던 강맥을 복원시킨 명성 스님의 생은 그래서 더욱 빛난다. 비구니 위상이 높아지자 종단에서도 비구니가 비구니에게 직접 계를 주는 별소계단을 만들었다. 2001년부터 다시 구족계 별소계단이 만들어져, 이제 비구니스님은 비구스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한국 불교 교단의 한 축을 감당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비구니스님들의 노고가 있었고, 그 중심에 명성 스님도 있었음은 말할 나위 없다. 비구니스님들의 버팀목이자 거울 ‘탁월한 불교 여성상(OWBA)’을 수상한 세계 불교계의 지도자 명성 스님은 1970년 운문사에 와서 방학 때가 되면 권선 순례에 나섰다. 환경이 너무 열악하여 학인들이 공부하는 데 필요한 체제를 갖추는 게 급선무였다. 스님은 70세가 되기까지 39동의 건물을 신축하고 10동의 건물을 보수하여 전국 최대 규모의 비구니 교육기관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러는 가운데 40여 년 동안 2,000명의 비구니스님을 배출하였다. 벼룩 서 말은 끌고 갈 수 있어도 중 셋은 데리고 가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명성 스님은 자로 잰 듯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엄하게 교육하는 한편, 허물을 다 덮어주는 포근한 어머니가 되어 주었다. 그래서 학인들 마음속에 명성 스님은 관세음보살처럼 자리하고 있다. 명성 스님은 육군사관학교에서 사경 법회를 주관하고, 논산훈련소 군법당에서 전계사로 3,500명의 현역 군인들에게 계를 주는 수계 의식을 치렀다. 비구니스님이 전계사가 되어 수천 명의 군인들에게 계를 준 것은 명성 스님이 처음으로 역사적인 일이었다. 이는 군 포교의 이정표가 되었다. 스님은 지금도 수계 법회를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명성 스님은 ‘법계장학회’와 ‘법륜비구니장학회’를 만들어 불교 인재를 양성하는 데에도 힘쓰고 있다. 명성 스님은 2007년 조계종 명사 법계에 품서되어 불교계의 큰 어른으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UN ‘국제 여성의 날’을 맞아 ‘탁월한 불교 여성상’(OWBA)을 수상하는 등 세계 불교계의 지도자로 존경받고 있다. 작가는 말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은 존경할 수 있는 분을 만나는 일이라고. 많은 독자들이 명성 스님을 만나는 행복을 누리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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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탐정 냥록 냥즈 (커버이미지)
    [문학]명탐정 냥록 냥즈
    • 히로모토 지음, 이연승 옮김
    • 모모
    • 2023-04-14

    천재적인 두뇌의 압도적인 미묘, 명탐정 냥록 냥즈조금은 얼빠졌지만 다정한 냥즈의 파트냥, 냐트슨냥즈와 냐트슨이 전대미문의 미스터리에 도전한다냥! 절세미묘 냥록 냥즈와 그의 파트냥 냐트슨의 대활약기 인간들은 모르는 그들만의 스펙터클! 길고양이 냐트슨은 가다랑어 언덕에서 신비한 고양이 냥즈를 만난다. 자신의 과거를 알아맞히는 그에게 이끌려 하리모토 부인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된 냐트슨. 어느 날 동물 경찰 케이브가 사건을 의뢰하면서 그의 정체가 탐정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냐트슨은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조력자가 된다. 그들 앞에 놓인 사건들은 기이하기 짝이 없어, 차에 치여 죽은 들개가 매일 밤 조금씩 이동하기도 하고, 종이에 휘감겨 익사한 새가 발견되기도 한다. 그렇게 복잡기괴한 인간 세계 속, 이들 묘생 최고의 활약이 펼쳐진다. “고양이와 고양이를 사랑하는 인간들이여, 모두 모여라!” 귀여움으로 중무장한 셜록 홈스 패러디 소설 이 소설은 일본의 웹소설 플랫폼인 ‘소설가가 되자’에 연재되다가 2018년 제6회 ‘인터넷소설대상’을 받으며 정식 출간되었다. 작가가 고양이에 대한 애정을 담아 구축한 귀엽고 참신한 세계관이 사뭇 진지한 추리 과정과 대비를 이루며 크게 인기를 끈 작품이다. 폐건물에 숨은 ‘냥아치’들로 골머리를 앓는 장면이나 길에서 강아지를 잡아타며 ‘독시’라고 부르는 장면 등, 곳곳에 기발한 장치들이 포진해 있다. 또한 이 소설은 ‘셜록 홈스’ 시리즈를 충실하게 패러디한 작품이기도 하다. 두 마리 고양이가 하리모토 부인의 집에서 함께 사는 설정은 홈스와 왓슨이 허드슨 부인의 ‘베이커가 221번지 B호’ 하숙집에서 살던 설정을 차용했고, 셜록 홈스의 마약중독설을 고양이에게 유독한 양파를 수시로 깔짝이는 냥즈 캐릭터로 재해석한 것은 물론, ‘셜록 홈스’ 시리즈의 유명 작품 속 여러 설정을 가져와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나는 인간들이 언젠가 자연과 동물을 위해서도 자신들의 힘을 써줄 거라고 믿네.”세상을 고양이의 시선으로 다시 보게 하는 본격 ‘냥이중심주의’ 무엇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고양이의 시선에서 인간 세상의 모습을 그렸다는 점이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사건은 고사하고 별일도 되지 않을 일들이 고양이의 눈에는 크나큰 사건, 미스터리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묘사했다. 독자들은 두 고양이보다 먼저 사건을 전말을 간파하거나 반대로 고양이의 시각에서는 너무 간단한 진실을 뒤늦게 깨달음으로써, 세상을 얼마나 인간중심적 태도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환기하게 된다. 시종일관 유쾌하게 전개되면서도 따뜻하고도 진중한 공존의 메시지가 담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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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가 회전목마를 탄다 (커버이미지)
    [문학]모두가 회전목마를 탄다
    • 이묵돌 지음
    • 마이디어북스
    • 2023-04-14

    “이것이 진짜 90년대생의 이야기다!”2년 만에 돌아온 ‘활자 맛집’, 90년대생 이묵돌이 쓴 가장 거짓 없는 시대의 자화상“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 기원전 1700년, 수메르 시대의 점토판에 기록되어 있는 말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대한민국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소위 ‘MZ세대’라 불리는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이기도 하다. 정작 본인들은 MZ세대라는 정체성을 부인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윗세대에서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면 그런 것일 수밖에.그런데 여기 정말 버릇없는 90년대생 작가가 있다. 어렵게 들어간 대학은 자퇴하고, 번듯한 직장을 구하기는커녕 알바를 전전하며 글이나 쓰고, 제대로 문학을 배운 것도 아니면서 소설을 써서 벌써 여러 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가 쓰는 소설도 버릇없기는 마찬가지다. 윗세대의 권위를 조롱하고, 위선을 폭로하며, 그들이 만든 사회 구조가 가지지 못한 자에게 얼마나 폭력적인지 고발한다. 동시에 그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젊꼰들과 자본주의 노예들이 어떻게 서로의 꿈과 희망을 짓밟는지 낱낱이 드러낸다. 정말 읽으면 읽을수록 불편하기 짝이 없다.그럼에도 이묵돌의 소설을 기다리고, 열렬하게 환영하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그의 소설은 두 가지에 충실하다. 재미와 사명. ‘활자 맛집’이라는 별명답게 그의 소설은 기승전결 서사적 완성도뿐만 아니라 트렌드를 관통하는 날카로움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서로의 어깨를 내어주는 사람들의 끈끈한 연대가 담겨 있어 재미와 소설적 사명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이묵돌이 3년에 걸쳐 쓴 최고의 작품만을 모은 소설집 를 당장 펼쳐보자. 단언컨대 이 버릇없는 책은 당신의 기대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이묵돌의 소설은 대한민국이 너무 많은 패배자를 만들어냈다는 걸 의미한다!”이기적이고, 열정도 없고, 불평불만만 많은 최악의 세대라고?기성세대의 권위와 권력에 대한 정면, 아니 측면 돌파!단군 이래 가장 무책임하고 유약한 세대, 의무는 싫어하면서 권리에는 예민한 세대, 허세와 허영으로 내일을 준비하지 않는 세대… MZ세대라는 느슨하기 짝이 없는 울타리로 묶여 버린 90년대생에게 내려진 기성세대의 평가는 대부분 이렇다. 하지만 그들, 기성세대의 속내와 실상은 어떠한가. 미래 세대가 어떻게 되든 말든 아파트값이 올라 부자가 되기를 꿈꾸고, 정년 연장에는 목숨을 걸면서 젊은이들의 계약직 문제는 본체만체한다. 그러나 어찌하랴. 그들은 이미 자본과 권력을 양손에 움켜쥐었는데.이묵돌은 지금까지 10여 권의 책을 출간한 베테랑 작가다. 분야도 소설, 에세이, 인문 등 다양하다. 그런데 아직 20대다. ‘김리뷰’라는 필명으로 활동할 때가 벌써 십수 년 전 같은데 아직 20대다. 그리고 이 책은 그가 20대의 지금까지 썼던 소설 가운데 최고라고 자부하는 것들을 모아 엮은 소설집이다. 특히 이 책에서는 90년대생 작가 이묵돌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본 사회 문제들이 풍자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는 ○○위키라는 사이트를 두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권위와 권력으로 통제할 수 없는 정보를 어떻게 구속하려 하는지 보여준다. 는 자본주의 논리에 함몰된 사회 풍조와 거대 플랫폼 기업의 만행을 고발한다. 는 자본의 논리가 어떻게 노동의 정의를 훼손하는지 보여주며, 사랑이라는 가치마저도 기회주의적으로 이용되는 세상에 대해 환멸 어린 시선을 드러낸다. 는 이런 세상에서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린 현대인의 과학적 종교적 방황을 다소 우습지만 정확하게 포착해낸다.“이묵돌의 글은 나를 자주 안아주었다. 많이도 안아주었다.”경쟁, 성과, 부… 승자와 패자밖에 없는 이분법적 자본주의 논리에 대한 항변꿈과 희망이라는 사치가 허락되지 않는 흙수저들을 위한 위로와 연대의 목소리이 소설에 등장하는 대한민국은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맹목적으로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국가와 그 속에서 상위 1%의 확률에 들고자 하는 개개인의 욕망, 서로를 짓밟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99% 소시민의 불행한 삶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그러나 너무 망연자실할 필요는 없다. 하루하루 버티기 힘든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하루하루를 살아나갈 수 있는 건 결국 이 또한 사람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집의 백미는 작가 이묵돌이 결국 사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표제작 는 회전목마처럼 돌고 도는 불행한 인생의 굴레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 방황하는 작가의 고뇌가 드러나고, 은 상처를 치유하고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담겨 있다. 은 상처받은 약자끼리의 연대가 어떻게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지 드라마틱한 연출로 독자들에게 감동을 선물한다. 그렇게 짧지 않은 이 책을 덮을 때쯤이면 우리는 마음속으로 ‘앤드원!’을 외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이묵돌의 소설은 평범하지 않다. 전통적인 문법보다는 직관과 문제의식을 입체화하는 데 더 치중한다. 그런데도 많은 이가 이묵돌의 소설을 기다리는 건 그만큼 소설의 본질을 놓치지 않으면서 재미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김리뷰’ 입담이 어디 갈 리 없다,는 게 이묵돌 소설을 읽은 팬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감동과 위로는 덤이다. 재미있게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감동의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과 격이 다른 트렌디한 문제의식과 서사의 감동을 경험해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묵돌은 독자들을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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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것들의 세계 (커버이미지)
    [문학]모든 것들의 세계
    • 이유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04-14

    끝내 사랑을 멈추지 않는 마음과 용기중력을 비틀어 만드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는 한국문학의 새로운 작가들을 시차 없이 접할 수 있는 기획이다. 그 열다섯 번째 작품으로 이유리 작가의 『모든 것들의 세계』가 출간되었다. “능청스러우면서도 낯선 상상력과 활달한 문체가 인상적”이라는 평과 함께 202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브로콜리 펀치』 등 재기발랄한 에너지로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하며 독자와 만나고 있는 이유리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모든 것들의 세계』에서 작가는 귀신, 마음소라 그리고 요정을 통해 상상과 환상을 넘어 “비인간의 세계”(해설, 전승민 평론가)를 선보이며 삶을 계속해나갈 힘과 의지를 각성케 한다.“다만 잊히고 싶지 않았다. 내 세계는 끝나 없어지더라도다른 누군가의 세계 어느 한구석에는 끝내 남아 있고 싶었다.”삶의 중력이 ‘나’의 무게를 압도할 때,이유리 작가가 제시하는 세 가지 마음의 가능태표제작 「모든 것들의 세계」는 영혼 결혼식으로 부부가 된 두 귀신, ‘고양미’와 ‘천주안’의 이야기다. 죽은 지 3년이 지난 ‘양미’는 ‘월드 오브 에브리싱’이라는 게임을 하던 중, 옆집에서 불이 난 것도 모르고 다른 캐릭터를 치료마법으로 ‘힐’ 해주다가 죽은 게임 마니아다. 한편 이제 막 죽은 신참 귀신 ‘주안’은 클로짓 게이로, 부모님이 선을 볼 것을 종용하던 중 20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져 죽게 됐다. ‘양미’는 자신을 죽게 했던 “선한 오지랖”으로 ‘주안’이 애인의 집에 찾아가는 것을 돕고, 귀신이 ‘소멸’하게 되는 때에 대한 진실을 말해준다. 점점 게임 속 세상과 현실의 삶 양쪽에서 잊혀져가는 ‘양미’는 “기어이 잊혔음을 기뻐하며 사라질 수 있게 되기를”(39쪽) 바라며 “산 자들을 진심으로 축원”(해설, 전승민 평론가)한다. 고이다 못해 썩어버린 유저들만 남은 그 망겜, 진짜로 망할 때도 됐지. 나는 미소 지으며 생각했다. 즐거웠어요, 부디 더 재미있는 게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 가끔씩은 일어나서 이쪽저쪽 스트레칭도 하시고, 밥도 컴퓨터 앞에서만 먹지 말고 사랑하는 이들과 눈 맞추며 제대로 된 식사를 하시길. (「모든 것들의 세계」, 40~41쪽)「마음소라」의 주인공 ‘양고미’는 전 남자친구 ‘안도일’의 아내 ‘천양희’에게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는다. 바로 ‘도일’의 ‘마음소라’를 돌려달라는 것. 마음소라란 “마치 별주부전의 토끼 간처럼”(해설, 전승민 평론가) 출반입이 가능한 소라 모양으로 생긴 장기의 일종이다. 소라 입구에 귀를 대면 속마음이 숨김없이 들려오고, 누군가에게 증여하면 그 사람만이 진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스물한 살의 ‘도일’은 ‘고미’에게 이 마음소라를 주며 진심의 전부를 줬지만 7년 후 헤어진다. ‘고미’는 ‘양희’에게 그것을 돌려주며 둘의 부부 관계가 좋지 않음을 알게 된다. ‘양희’는 ‘고미’에게 ‘도일’의 마음을 들어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고미’는 ‘양희’에게 진실 대신 ‘양희’가 듣고 싶어 할 이야기를 전한다. 이 선의의 거짓말은 누군가의 마음을 전부 아는 것이 관계에 미치는 절대적인 영향과 무게에 대해 알고 있는 ‘고미’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최초에 얻었던 깨달음을 항상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큰 사랑을 되갚을 걱정 없이 받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누군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을 증명받는 일이 얼마나 나를 값어치 있게 만드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바로 그것이 나를, 그리고 도일을 망쳐놓았다. (「마음소라」, 53쪽)「페어리 코인」에는 “반려 난이도 최하를 자랑하는” 요정이 등장한다. 전세보증금 사기를 당한 ‘나’와 남편 ‘우진’은 ‘나’의 고조모 때부터 함께 살기 시작한 이 요정을 이용하여 대국민 사기극을 계획한다. ‘우진’의 친구 ‘현철’이 요정을 이용해 스캠코인으로 ‘페어리 코인’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나’와 ‘우진’은 작정하고 친 사기에 당했다는 슬픔과 자책에 대한 일종의 복수심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요정을 내세워 사람들의 마음과 기대 심리를 착취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사기극의 준비가 마무리되어 가던 어느 날, ‘우진’은 ‘현철’이 함께 오토바이를 훔쳐놓고 ‘우진’에게 덮어씌웠던 고등학생 시절의 일화를 떠올린다. ‘나’와 ‘우진’은 그렇다면 ‘현철’을 믿을 수 있는지, 믿어야 하는 것인지, 또 한 번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우진아, 우린 잘못한 거 없어.” “알아. 세상에 나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지.” (……) “바꿀 수 없다면 우리도 똑같아지면 돼. 이왕 나쁜 놈이 될 거면 확실히, 제대로 나쁜 놈 한번 돼보자.” “응.” 빨갛게 부은 눈으로 우진이 환하게 웃었다. (「페어리 코인」, 114쪽)이유리 작가의 인물들은 작품 속에서 각기 다른 난관을 겪는다. 가닿고 싶어도 가닿을 수 없는 귀신이라서, 영원하리라 믿었던 마음이 영영 변해버려서, 믿었다는 이유로 너무나 큰 피해를 입게 되어서 등 살아가면서 좌절을 겪을 이유와 상황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작가는 “이질적인 존재들이 공존”(해설, 전승민 평론가)하는 세 소설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삶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사랑하는 마음”을 놓지 않아야 함을 전하며 “사랑할 용기”를 쥐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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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범직원 박민준 - Question Unanswered (커버이미지)
    [문학]모범직원 박민준 - Question Unanswered
    • 경지운 지음
    • 바른북스
    • 2023-04-14

    “당신도 모범적인 일상을 살고 있나요?”세상이 쥐여 준 모범답안을 따르는 것이 유일한 인생의 목표였던 항공사 탑승 수속 직원 박민준. 업무가 적성에 맞진 않지만 치열하게 경쟁하여 얻어낸 현재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큰 불만 없이 일상을 보낸다.하지만 퇴사를 앞둔 후배직원으로부터 현재에 만족하고 있냐는 질문을 받게 되고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목격하며 예기치 못한 당혹감에 빠져 버린다.탑승 수속 직원으로서 맞닥뜨리게 되는 국제공항에서의 좌충우돌 사건들과 이를 통해 예상치 못한 성장을 해 나가는 민준의 모습은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보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뜻밖의 치유를 선사한다.소설로 만나는 현대인의 자아 찾기 프로젝트 《모범직원 박민준》“지금껏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나는 지금이 싫은 걸까.”우리 모두는 치열하게 지금의 이 자리까지 왔다. 사회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성실하게 보고 듣고 익히며 이행해 온 결과일 것이다.하지만 당신은 현실의 일상에 만족하고 있는가? 《모범직원 박민준》은 그토록 쉽고 단순한 이 근본적인 질문을 과감히 독자에게 던진다.모범답안의 굴레를 벗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내적갈등과 실질적인 경험들을 통해 우리는 인생에 있어 진정으로 각 개인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된다.행복이란 단어가 이질적인 모든 이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의 현실에 만족하고 있는가?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면 《모범직원 박민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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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정의 멍에 (커버이미지)
    [문학]모정의 멍에
    • 김복희 지음
    • 시사랑음악사랑(시음사)
    • 2023-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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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조 사회 1 - 존재의 방식 (커버이미지)
    [문학]모조 사회 1 - 존재의 방식
    • 도선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3-04-14

    세계문학상 대상, 문학동네소설상 수상도선우 신작 장편소설대재난 이후 300년, 인류가 도달한 두 개의 미래!2016년 겨울에서 2017년 봄, 계절이 한 번 바뀌는 사이에 문학동네소설상과 세계문학상 대상을 연달아 수상하며 두 편의 묵직한 장편소설로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작가 도선우. 그가 문학상 수상작 『스파링』과 『저스티스맨』과는 소재와 장르가 전혀 다른 대작 장편소설 『모조 사회』(전2권)로 돌아왔다. 수년간 구상을 가다듬으며 쓰고 뒤엎고 다시 쓰기를 되풀이한 끝에 완성한 원고지 2700매, 단행본 770쪽에 달하는 이 소설은 대재난 이후 300년이 지난 미래, 지구상에서 인간이 살 수 있는 단 두 개의 대지인 ‘복지 자본 공동체’와 ‘모조 사회’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대재난으로 멸망한 세상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한 인류는 가까스로 보존한 과학기술과 인간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새로 문명을 일으키지만, 사회 운영과 분배 방식에 대한 갈등으로 둘로 갈라져 상이한 방향으로 발전해간다.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의 수도권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진짜라 믿는 주인공들은 어느 날 갑자기 이 낯선 세계와 맞닥뜨린다. 고도의 과학기술이 이루어낸 경이로운 세계 앞에서 그들은 혼란과 경외감을 느끼며 혹시 자신들이 한순간에 미래로 떨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차원 이동도 평행우주도 아닌 그때까지 몰랐던 현실이었으며, 그들의 진짜 삶에 관한 믿기지 않는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계가 진짜라고 믿나요? 어느 날 도시 한복판이 느닷없는 대지진으로 모조리 붕괴된다. 고등학교 수학 교사 수와 프랑스 외인부대 출신 건, 정신과 의사 탄은 각자 다른 이유로 도시 중심가 쇼핑몰에서 지진을 만나 재난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로부터 얼마 후, 수는 살아오며 단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신비한 공간에서 눈을 뜬다. 마치 차원 이동을 한 듯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 그런 수 앞에 수를 구출했다는 사람이 나타나 말한다. 당신이 이제까지 살아온 세계는 가짜고 설계된 세상이며 신경회로 컨트롤러가 초확장 현실로 구현한 가상의 세계라고. 신경회로 컨트롤러란 인간의 망막에 나노 입자를 이식하여 나노 줄기를 조성함으로써 신경망을 장악하는 시스템으로, 이를 통해 구현된 허구의 삶을 그 세계에서는 ‘모듈’이라고 불렀다. 다시 말해 수는 모조 사회의 식민 구역에서 신경회로 컨트롤러가 만들어낸 2000년대 초반이라는 초확장 현실의 세계를 자신의 인생이라고 믿고 살아온 것이다. 이제껏 살아온 자신의 삶이 모두 허구라는 말을 누가 쉬이 믿을 수 있겠는가. 눈앞에 펼쳐진 마법 같은 세계도 믿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 모든 경이가 전부 과학으로 이룬 경지라는 사실에 압도된 수에게 그들은 말한다. “이곳은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은 복지 자본 공동체이고 인간이 살고 있는 단 두 개의 대지 가운데 한 곳이에요.”수는 이 공동체에서 자신의 진짜 인생, 신경회로 컨트롤러도 삭제하지 못한 진짜 기억을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수는 모조 도시의 최상급 시민이자 뇌 과학의 권위자인 은 박사의 딸로 과학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소녀였다. 은 박사는 인간의 두뇌 업로딩에 최초로 성공한 장본인인데, 인간의 영생과 이어지는 두뇌 업로딩을 둘러싼 총수와 평의회 의장의 대립이 그를 죽음에 몰아넣었다. 고아가 된 수는 자신의 천재성을 아는 총수의 추적을 피해 모조 사회의 사급 도시인 오로라에 숨어 살며 복수를 꿈꾼다. 하지만 10년 후 실행한 복수는 실패로 끝나고 수는 머릿속에 신경회로 컨트롤러가 심긴 채 모든 기억을 잊고 식민 구역으로 추방되었다. 그리고 대지진의 참사가 일어난 그 순간 공동체에 구출되었다. 이 모든 사실은 은 박사가 어린 수의 뇌 속에 심어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디지털 업로딩 장치에 기록된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공동체는 왜 수와 건과 탄을 구출하여 자신들의 세계로 데려온 것일까? 그 답을 알기 위해서는 300년 전 대재난의 원인이 된 한 가문의 패권과 모조 사회와 공동체의 역사에 관한 장대한 이야기를 이해해야 한다. “권력자가 신념을 갖게 되면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이 있습니다.유독 지구를 걱정하는 마음이 커진다는 거예요.”세대를 이어 부와 권력을 세습하던 한 가문의 헛된 망상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바이러스를 탄생시켰다. 그들은 암처럼 발현하여 신체의 모든 부분을 소멸해버리는 이 바이러스를 가지고 인류를 통제하고 지구를 재편할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바이러스 이후의 세상에 대비하여 첨단 과학 기술로 무장한 한시적인 이동 도시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과 달리 바이러스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노출되었고 순식간에 퍼져나가 한순간에 인류를 절멸에 이르게 했다. 단 한 곳, 지구 한 대륙의 어느 좁은 반도만은 예외였다. 그곳만은 바이러스의 영향력으로부터 안전한 청정구역이었다. 이동 도시는 이 반도에 정착하여 보유하고 있던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명을 일구었다. 그러나 바이러스로 인해 좁은 반도를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지상 위로는 더 높은 수직 공간을 창출하고 아래로는 더 깊은 지하 세계를 만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지상과 지하의 세계를 두고 분배의 갈등이 불거져 평등한 분배를 주장하던 이들이 추방되었다. 추방된 자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예견하고 바이러스가 창궐한 반도 밖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도의 과학기술을 빼돌렸다. 양자 나노기술을 완전히 차지한 이들은 기적처럼 바이러스에 면역력을 지닌 자연인들을 만나 그들과 조화로운 공동체를 형성했고, 반도 도시보다 월등한 기술과 삶의 방식을 지니게 되었다. 소멸 바이러스로 초토화된 지구에는 이제 반도 도시와 숲을 은신처로 성장한 공동체 지역 두 곳만이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대지로 남았다. 그러나 두 사회의 차이는 극명했다. 도시는 제한된 공간에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소수 세력이 다수 인력을 통제하는 방법에 온 힘을 기울였으며 그 속에서 권력을 쥔 자들은 지상의 가장 높은 곳을 점유했다. 반면 공동체는 태생부터 공유와 조화를 토대로 성장했으므로 모든 세력이 동등한, 균형의 선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도시인들은 공동체의 존재를 알지 못했고, 공동체는 도시의 삶의 방식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반도 도시가 점차 소수 권력자들의 낙원이자 다수 시민들의 노동 식민지로 변모하며 급기야 사람들의 머릿속에 신경회로 컨트롤러를 심고 노골적으로 식민 구역을 개발하자 공동체에서도 더는 가만있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식민 구역을 해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모조가 총수로 들어선 도시에서 식민 구역 해방은 쉽지 않았다. 모조가 만든 인공지능 메인 컴퓨터 퀸과 퀸이 운용하는 안드로이드 섀도의 전투력이 너무나 막강했기 때문이다. 도저히 해법을 찾을 수 없던 차에, 공동체는 섀도를 해킹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천재 소녀 수를 발견한다. 수가 바로 모조 사회의 식민 구역을 해방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진짜 삶이 부여한 과제, 그리고 아무도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진실수는 실존하는 두 세계의 현실과 자신의 과거는 물론 모조의 과거까지 모두 알게 된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가졌는지를 깨닫고 진짜 삶을 찾게 되자 수 역시 식민 구역을 해방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기억을 찾은 것만으로는 과거의 능력을 모두 회복하지 못했지만 새로 찾은 기억 속에서 함께했던 동료들과 이제는 볼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결심한다. 마침내 수는 공동체와 함께 모조 사회의 심장부로 향한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그곳에서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또 다른 거대한 진실과 맞닥뜨린다. 웅장한 스케일, 대담한 발상, 우리에게 닥쳐올 미래에 영감을 주는 도도한 상상력!300년 후의 세상은 막연히 상상하기도 쉽지 않은 먼 미래다. 그 세계를 이토록 실감나게 구체적인 현실로 가져온 작가의 상상력이 감탄을 자아낸다. 그것도 인류가 한 번 멸망한 후에 도달한 완전히 다른 두 개의 미래라니. 무엇보다 바이러스로 인해 제한된 영역 안에서 공간을 창출하기 위해 지상으로는 하늘 끝까지 높이 쌓아 올리고 지하로는 땅 끝까지 깊이 파고들어야 하는 모조 도시와, 변이된 거대한 수목 안에 마법과도 같은 기술로 완벽하게 숨어 존재하는 복지 자본 공동체의 대비되는 구조와 작동원리가 서사를 튼튼하게 뒷받침한다. 이 세계가 과학적 근거와 논리적인 가설에 입각하여 치밀하게 설계되었음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작가가 소설을 구상하며 관련 서적 100여 권을 탐독한 일 역시 미래 사회의 어느 한 부분도 허투루 다루지 않으려는 의지였다. 두 사회가 한쪽은 역사상 유례없는 유토피아에 가깝고 한쪽은 고대의 절대왕정 국가를 떠올리게 하는 것도 지향하는 삶의 방향에 따른 자연스러운 귀결이어서 설득력을 얻는다. 모조 사회에서 모듈의 설정 시대로 2000년대 초반을 선택한 이유가 노동력을 착취하기 가장 쉬운 시대라는 점은 지금 그 시기를 살고 있는 우리의 현재를 뚫어 본 것이다. 소설은 수에게 묻듯이 우리에게도 묻는 듯하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세계를 살고 있나요?” 소설은 바이러스로 인한 대재난, 양자 나노기술의 혁명적인 발전, 두뇌 업로딩 기술과 영생을 꿈꾸는 인간, 신경회로 컨트롤러와 초확장 현실, 오염된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하려는 테라포밍 계획 등 있음 직한 가상현실을 폭넓게 그린다. 그 속에는 기술과 진보, 권력과 인간 본성, 인공지능과 인간의 자유 의지 등에 관한 시의적절한 물음이 담겨 있다. 그리하여 『모조 사회』는 사회 구조적 부조리와 개인의 폭력을 문제 삼았던 전작의 주제의식에서 나아가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성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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