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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생각하기 - 손과 몸을 쓰며 사는 삶이 주는 그 풍요로움에 대하여 (커버이미지)
손으로, 생각하기 - 손과 몸을 쓰며 사는 삶이 주는 그 풍요로움에 대하여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매튜 크로포드 지음, 윤영호 옮김 
  • 출판사사이 
  • 출판일201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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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퍼블리셔스 위클리》 선정 올해의 책, 《뉴욕 타임스》 선정 올해의 주목할 만한 책!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 타임스》, 《뉴욕 타임스》, Amazon.com 베스트셀러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독일, 스페인 등 전 세계 10여개국 출간!

“새로운 노동의 소외 시대,
우리 삶에 서류와 키보드가 아닌, <손과 몸>을 참여시켜라!”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어쩌다 손과 몸도 맘껏 쓰지 못하게 되었을까?
<모든 것이 편해진 세상>, 우리는 왜 손과 몸 쓰는 것을 그리워할까?
힘겨운 현실에서 <육체적 몰입이 주는 쾌감>을 잃어버린 시대,
<키보드 위에 갇힌 삶>에서 벗어나 손과 몸으로 세상과 부딪힌 순간, 우리 삶은 되살아난다!

▣ 무기력하고 공허한 현대인의 삶을 깨우는,
<손과 몸을 쓰는 육체적 몰입>이 주는 그 풍요로움과 치유적 가치에 대하여

시카고 대학에서 정치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사회사상위원회와 워싱턴의 유망한 싱크탱크의 책임자로 일하는 등 <전형적인 지식노동자>의 길을 걸어온 저자가 그 모든 지위와 혜택을 포기하고 모터사이클 정비사로 변신하면서 깨달은 진정한 노동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사무실 책상에서 벗어나 직접 자신의 손과 몸을 쓰며 사는 것이 우리 삶을 얼마나 더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드는지에 대한 내용을 다룬 책이 사이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특히 저자는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와 함께 <일을 하는 방식> 또한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공식적으로 <지식노동>으로 인정받는 직업들과 비교해 우리가 손과 몸을 움직이며 일할 때 <행위주체성>과 <지적 흥미>를 더 느끼며, 그에 수반되는 인지적 도전과 정신적 보람이 <지식노동의 공허함>을 대체할 수 있다고 말한다.

▣ <생각과 행동을 함께 요구>하는, <지적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손노동에 대하여

대학원 졸업 후 지식노동자로서의 삶에 대한 부푼 기대감을 안고 시작한 일에서 저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노동의 정신적 영역에 깊숙이 침투한 자본의 공격으로 인해 점점 자신이 맨 넥타이가 <노예의 징표>처럼 여겨졌다. 한마디로 <지식노동자의 아이러니>를 뼈저리게 체감한 것이다. 결국 그는 높은 연봉과 사회적 지위 등 모든 혜택을 뿌리치고 모터사이클 정비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버지니아 주의 리치몬드에 위치한 쇠락한 기찻길 근처에 언제 물이 샐지도 모르고 보험에도 들지 못하는 벽돌창고에서 자신만의 모터사이클 정비소를 연 저자는 그곳에서 행해지는 작업이 칸막이 사무실에서의 노동과는 달리 <생각과 행동을 함께 요구한다>는 점 때문에 이전의 일에서 느꼈던 직업적 공황감을 달래주는 위안을 얻게 된다. 또한 직접 손과 몸을 쓰는 것이 지식노동 그 이상으로 인지적으로 더 많은 능력을 요구하고 지적으로도 더 많은 흥미를 유발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저자는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통해 활기를 잃어버린 현대사회에서 <육체적 몰입이 주는 치유와 위안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 적외선 수도꼭지 밑에서 물을 달라고 간청하는 손 vs. 우리의 손을 꽁꽁 묶어놓는 사회,
우리는 어쩌다 손과 몸도 맘껏 쓰지 못하게 되었을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묻는다. “우리는 어쩌다 손과 몸도 맘껏 쓰지 못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어쩌다 불편함마저 그리워하게 되었을까?”라고. 현대사회는 <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손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더 자유롭게 되고, 더 자유롭기 때문에 더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수도꼭지에 손댈 필요도 없이 적외선 수도꼭지 밑에서 기우제춤을 추는 것처럼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보이지 않는 힘에게 물을 달라고 간청>하면 된다.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에게 진정 <자유>를 주고 있는 것인가?

▣ <키보드 위에 갇힌 삶>에서 벗어날 때, 우리의 생각은 훨씬 창의적이 된다!

결국 21세기의 현대인이 그 어느 때보다 무기력해지고 공허함을 느끼는 이유는 이처럼 정보화와 디지털화 덕분에 <만질 수 없는 시스템>에 갇혀 세상과 맞닿은 생생한 접촉과 앎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보드 위에 갇힌 삶>에서 벗어나 인터넷, 스마트폰을 끄고 자신의 몸과 손을 써서 직접 무언가를 시작하는 순간 우리의 생각은 훨씬 창의적이 되고 또한 이 세상과 보다 더 풍부하고 지적인 교류를 시작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 지식노동에만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

저자는 이 책에서 미국 고등학교 정규 교육과정에서 점점 기술수업이 폐지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컴퓨터 사용능력이 크게 강조되면서 캘리포니아에서는 1980년대 이후로 고등학교 기술수업의 4분의 3이 폐지되었다. 또한 많은 학교들에서는 <화이트칼라 vs. 블루칼라>라는 정형화된 이분법을 내세워 학생들을 지식노동자로 양성하기 위해 100퍼센트 대학 진학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또 현실적인 교육자들은 숙련된 손기술의 중요성을 가르칠 경우 청년들에게 한물 간 구닥다리 직업을 가르치려는 시도라며 무책임하다고 질책한다. 그 결과 “요즘 학생 세대는 표준화된 시험문제를 잘 풀고 잡다한 정보들은 알고 있지만 <정작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지식노동자의 삶>을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그렇게 칭송해 마지않았던 지식노동자, 화이트칼라의 일에서도 점점 균열이, 쇠퇴의 기운이, 위기의 징조가 일어나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 칸막이 사무실에 갇혀 <정보 시스템의 조작자>로 살아가는 화이트칼라,
화이트칼라 직업은 왜, 어떻게 위기에 처하게 되었는가?

월스트리트는 똑똑하고 야심찬 젊은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으로 손꼽히던 예전의 명성을 잃었다. 사무실에 갇혀 결국 정보 시스템의 조작자나 창조성이 떨어지는 단순한 일꾼으로 살아가는 화이트칼라 직업들도 100년 전에 수공제작업이 당했던 것과 똑같은 논리로 진행되는 관례화와 쇠퇴를 맞고 있다. 20세기 초반 육체노동이 잘게 나뉘어 조립라인에 맞춰 단순노동화되는 과정을 거쳤듯이, 21세기 들어 사무실 노동 또한 잘게 나뉘어 단순노동화되고 있다. 21세기 사무직 노동자들은 세상이나 사람들과 점점 단절돼가고 있다.

▣ 새로운 노동의 소외,
<신자본주의는 오래 생각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영역에서는 사무직 업무를 과거의 공장 업무와 마찬가지로 취급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즉 사무직 업무에서 <인지적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극소수만이 진정한 의미의 지식노동을 하는 것이다. 결국 <생각과 행동의 분리>가 사무직 노동에서도 일어나고 있으며 그런 현장에서는 노동의 쇠퇴가 따랐다. 이로 인해 수많은 직업이 해체되었다. 또한 신자본주의는 사무직 노동자들이 오래 생각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의 사무실은 공장이 되어가고 있으며, 인간의 뛰어난 창의성은 오히려 그 창의성의 필요성을 제거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결국 우리는 점점 더 멍청해지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 <케이크 가루>에는 왜 계란을 따로 넣어야 할까?,

테디베어를 만들 때 제공되는 옵션만으로 우리는 진정 원하는 <곰인형>을 만들 수 있을까? 미국에서 1950년대에 케이크믹스 가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업주들은 오히려 그 가루를 완벽한 상태로 만들지 않았다. 더 완벽하게도 만들 수 있었지만, 빵을 만드는 사람들은 케이크믹스에 자신이 직접 달걀을 넣는 등 스스로 행동으로 참여하고 개입할 여지가 남겨져 있는 것을 더 선호했다. 그럴 때 케이크를 완성하고 더 뿌듯한 기분을 느꼈다. 모든 것이 편리해진 세상이지만 이처럼 우리는 <여전히 손으로 무언가를 직접 하고 싶어 하는 갈망>이 있다.

반면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는데, 미국의 <빌드 어 베어Build-a-Bear 매장>에서는 아이들이 컴퓨터 화면에서 곰인형의 외형과 옷을 고르면 그대로 곰인형이 만들어졌다. 좋게 말하면, 어떤 존재들이 우리보다 앞서 개입하면서 일종의 배려하는 마음으로 미리 물건들을 관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우리는 우리 안에 내재된 행위주체성을 육성할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우리는 그저 제공된 옵션들 중에서 선택만 하면 된다. 그 외에는 아무런 할 일이 없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스스로 무언가를 직접 하고 싶은 <자유에 대한 열망>이 더 커진다.

▣ 우리가 손과 몸을 맘껏 쓰지 못하게 되면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현상들

저자는 현대사회가 손노동, 손작업, 육체노동을 저평가하는 문화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우리 문화가 손작업을 너무 멸시해온 나머지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한 기본적인 수칙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손을 쓰면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다면 세계는 여전히 추상적이고, 우리와 동떨어진 상태로 남게 되고, 학습에 대한 열정은 타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손과 몸을 맘껏 쓰지 못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현상들로 저자는 다음의 사항들을 언급한다.

-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닌, 무언가를 <선택할 여지>만 남았다.
- 무언가를 <판단한고 실행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런 판단의 실행과
시행착오가 인간의 우수성을 이끌어내는데도 말이다.
- 손을 쓰지 않게 되면서, 우리는 점점 <수동적인 인간>, <의존하는 인간>이 되었다.
- 노동에 침투하는 자본 때문에 우리는 <대본 읽는 기계>가 되어가고 있다.
- 자기 물건의 진정한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있다.
- 다 아는 듯하지만 아무것도 모른다.
-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는 새로운 노동이 우리를 소외시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서 우리는 다시금 <잃어버린 진정성>을 되찾기를 갈망한다. 저자는 <손으로 하는 일의 가치>를 되살리는 게 이 상황을 치유해줄 것이라고 말한다.

▣ 고대에는 지혜sophia가 <손기술>을 의미했다

서구 문화의 초기에 소피아(sophia, 지혜)는 기술(skill, 예를 들면 목수의 전문적 기술)을 의미했다. <실제 작업>을 통해 목수는 다양한 종류의 목재들과 그들의 하중 지지력, 수분 유지력, 날씨 변화에 따른 치수 안정성, 제각기 다른 부패와 해충에 대한 내구성 같은 그 목재들의 적합성을 배운다. 또 건축에서 필수불가결한 올바른 각도, 수직, 수평 같은 일반적인 지식도 습득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낙사고라스는“손을 사용하기 때문에 인간은 가장 지능적인 동물이다.”라고 했다. 또한 하이데거는 <손작업>을 “사물이 가장 독창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도록 하는 양식”이라고 간주했다. 이처럼 고대부터 인류는 <손을 사용하는 것을 가치 있는 일로 간주>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손작업을 멸시해왔다.

▣ 손과 몸을 사용할 때, 우리는 느긋하고 차분해지며 보다 만족감을 느낀다.

손노동을 통해 세상에 자신을 구체적으로 표출하는 만족감을 느끼면 사람이 차분하고 느긋해진다.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자질구레한 설명을 구구절절할 필요도 없다. 작업의 결과를 바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그저 자신이 만든 물건, 자신이 고친 자동차, 자신이 가꾼 농작물 등을 가리키기만 하면 된다.

▣ 인공지능도 대체할 수 없는 손기술, 이제 인간에게 남은 건 <손기술>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터넷만으로는 못을 박을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노동자로서 우리는 <손쉽게 다운로드 될 수 없는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정보화되고 디지털화되어가는 세상에서 자신의 손과 몸의 경험을 통해 암묵적으로 축적된 <자신만의 감각적인 지식>을 가져야 한다. 손노동과 손기술을 칭송하는 이 아름다운 찬가에서 저자는 손과 몸을 쓰는 노동의 가치, 그리고 그것이 공허한 우리 삶에 미치는 치유의 효과를 소개한다.

저자소개

철학자이자 모터사이클 정비사다. 캘리포니아 대학 샌타바버라 캠퍼스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던 중 철학의 매력에 빠져 야간학교에서 철학의 언어인 그리스어를 공부했으며 시카고 대학에서 정치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동대학의 사회사상위원회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워싱턴에 위치한 싱크탱크의 책임자로도 일했다. 현재는 버지니아 대학 고등문화학술원의 연구원이자 버지니아 주 리치몬드에 위치한 모터사이클 정비소인 쇼코 모토Shockoe Moto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The World Beyond Your Head』 등이 있다.

목차

서문 : 우리는 왜 직접 손과 몸을 움직여 일할 때 더 만족감을 느끼는 걸까

정치철학 박사에서 모터사이클 정비사로!
왜 우리는 갑자기 직접 농사를 짓고, 뜨개질을 하고, 가구를 만드는 걸까?
이제, 나 자신을 유용하게 만들어 보자!

1장 : 손과 몸을 움직여, 세상에 자신을 표출하다
자신의 가치를, 손으로 남기다
세탁기 하나 고치지 못하는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의존적이다
지식노동자의 아이러니
고대에는 지혜가 <손기술>을 의미했다
싱크탱크보다 정비소에서 일할 때 더 많은 지적 능력이 필요했다
우리는 과연 손작업이 필요 없는 사회를 향해 가는가?
“인터넷만으로는 못을 박을 수 없습니다.”

2장 : 우리의 사무실은 어쩌다 공장이 되어가고 있는가
숙련공들마저 밀려나다
화이트칼라 직업은 왜, 지금, 쇠퇴를 맞고 있는가
신자본주의는 오래 생각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칸막이 사무실에 갇혀 평생을 살아갈 것인가

3장 : 힘겨운 현실에서 육체적 몰입이 주는 쾌감을 잃어버린 시대
어쩌다 우리는 불편함마저 그리워하게 되었을까
손을 쓰지 않게 되면서, 우리는 <의존하는 인간>이 되었다
손의 사용, 소비사회의 위안을 상쇄하다
자동차 액세서리, 그리고 케이크 가루
우리에겐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닌, 무언가를 선택할 여지만 남았다

4장 : 철학하는 작업장, 초보 정비사 입문기
견습공 지망생이, 되다
아버지의 신발끈, 그리고 좀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 폴크스바겐
멘토의 등장, 드디어 손을 대다
“그렇지, 내가 생각했던 대로야!”
미숙한 지식으로 더 망가뜨리다
명확하게 혹은 공정하게 바라보기
노동의 영역에 침투하는 자본, 우리를 <대본 읽는 기계>로 만들다

5장 : 초보자에서 전문가로, 무언가를 직접 고친다는 것
고물 모터사이클 정비사 vs. 넥타이를 맨 노예
드디어, 벽돌창고에서 시작하다
수리비 청구의 딜레마
광기와 절망의 밑바닥에서 냉정을 찾기까지

6장 : 화이트칼라와 지식노동, 그 침울하고 불안한 모순에 대하여
처음으로 지식노동자가 되다, 하지만 모순에 빠지다
노동과 자본의 대립, 그 속에서 학습된 무책임
막간 에피소드: 상징적인 차별을 허하라?
사무직의 팀워크, 개성을 통제하는 제어장치
현장 작업단 vs. 사무팀

7장 : 손으로, 생각하기
옴의 법칙과 진흙투성이 장화
소방관과 체스 명인의 암묵적 지식
컴퓨터가 내리는 진단, “일단 비싼 부품으로 교체하세요!”
개인의 감각적인 지식이 갖는 힘

8장 : 즐거운 몰입, 우리 삶을 가치 있게 만들다
스피드숍의 일상, 그리고 소리 없는 강자
행복한 직업공동체
좋은 삶으로 이끄는 우리의 진심 어린 행위

맺음말 : 자립과 결속을 위하여

한줄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