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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채식 - 당신은,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인가? (커버이미지)
황금채식 - 당신은,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인가?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이진희 
  • 출판사스타그루북스 
  • 출판일2023-11-29 
보유 1, 대출 0, 예약 0, 누적대출 0, 누적예약 0

책소개

#채식주의 #MZ세대 #진공묘유 #먹이사슬 #먹방 #존재함의 균형 #코로나 #펜데믹 #판타지 #로맨스 #지구인 #음식에게 #감사해

‘식용가축신위.'
지방을 위패에 끼워 제대 맨 앞줄 한 가운데 올려놓았다. 그녀의 가지런한 손놀림이 꽤 능숙해 보였다. 그리고 오늘처럼 어쩔 수 없이 육식을 하게 된 날, 그녀는 자정이 지나기 전에 식용가축으로 키워져 인간의 먹잇감이 된 동물들을 위로하는 기도를 올렸다.

“ 축생으로 태어나 인간과의 연으로 삶을 시작하고 삶을 마쳐온 존재들에게 만일 내가, 내 가족이, 내 피붙이가, 내 조상이 태초부터 현재까지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상처를 주었다면 부디 용서를 바랍니다.”


“김 부장이 오늘은 더 심했거든. 내가 고기 먹으면 사실을 말하는 저주에 걸린 사람이라고 말해 줄 수도 없구.”
“저주라니?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
“사실 어릴 때부터 궁금한 게 있었어. 고기를 먹으면 거짓말을 못하고 본심이 나오는지. 우리 집안 종손은 왜, 이런 걸 겪어야 하는지... 엄마는 그 이유를 알아?”
“종손에게만 대물림되는 비서(秘書)가 있다는 거...”
“비서.......라면 비밀문서?”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건 당연히 본능 아닌가?”
“기억.”
“기억?”
“응. 어떤 음식이 먹고 싶다는 건, 그 음식을 먹었던 기억 때문에 자꾸 먹고 싶어지는 거더라. 생각해 봐? 넌 고기를 먹었던 기억이 없기 때문에 먹고 싶어 하지 않는 거야.


“종택에.... 금이 자라고 있다... 금이 생물도 아닌데 왜 자란다고 했을까?”
그냥 금이 자라는 광물인 셈 치고 생각해 봐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3개월 뒤, 다 자란 금을 캐라... 그렇다면 지금쯤이면 땅 속 어딘가에서 거의 다 자랐을 금은 수직성장을 하지 않고 옆으로만 자라는 수평성장을 하느라, 땅 위에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111년이 되는 날, 갑자기 뻥 하고 솟아난다는 것인가? 3개월 후... 내년 1월이면... 111년 동안 키워진 금이 나타난다... 이 종택 어딘가에서... 70억의 빚을 다 갚을 수 있는 크기의 거대한 금이...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늦가을 아침 태양은 주변의 습기를 증발시키고 있었다. 유난히 반짝거리는 아침햇살이 두 사람 머리위로 따뜻하게 내려앉았다. 몇 초쯤일까. 누군가가 주변의 소음을 깨끗하게 지워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만 머물렀다. 그 고요함 속에서 이소의 얼굴이 부셔지듯, 부분부분 지워지듯, 흔들렸다. 빛 때문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었다.


흔들흔들... 빛의 리듬은 어느새 바람이 되었다... 그리고 가을 냄새를 잔뜩 묻힌 바람이 가늘게 불어와 유 타의 얼굴에 감겼다.... 볼에 닿은 바람이 따뜻해 유 타는 볼을 쓰다듬었다. 늦가을 아침 햇살에 갓 달구어진 따뜻한 바람... 바람결에 실크 커튼처럼 이소의 모습이 부드럽게 펄럭거리며... 펄럭거리며... 자신을 감싸더니 부드럽고 아주 느린 템포의 나른한 오르가즘에 온 몸이 젖어들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 이 여자...... 어지러워...’
유 타는 잠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음식을 무기로 생각하는 그런 관점보다, 더 먼 미래에는 음식이 소비재가 아니라 생산재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음식이 소비재가 아니라 생산재라...? 무엇을 생산한다는 거죠?”
“자연이요.”
“자연....?”
“더 명확하게 말한다면 조화로운 자연이죠.”


“난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요? 인간들이 돼지를 귀하게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니...”
“분명히 있었어요! 하지만, 인간들이 멋진 기계를 발명할수록 우리 같은 돼지들의 생명은 하찮아졌죠! 인간들은 20년씩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도대체 무엇을 배우는 걸까요?”


“내 마음이 당신 마음을 원해요. 이 이소라는 집에서 함께 살고 싶어요. 내가 이 지구를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대표님한테 허락된 공간이 아주 작다면요?”
“그냥... 그 집에 내가 있으면 돼요. 그거면 돼요. 나랑 결혼해 줄래요?”
“당신에게 결혼은 뭔가요?”
“..... 내가 생각하는 결혼은... 집과 같아요.”
“집....이요?”
“집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든 것이 담겨있죠. 그 사람의 감정, 취향, 가치관, 습관, 꿈... 그리고 상처까지도. 내가 종택을 처음 봤을 때 난 열등감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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