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상세보기

그녀를 만나다 (커버이미지)
그녀를 만나다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정보라 지음 
  • 출판사아작 
  • 출판일2021-08-24 
보유 1, 대출 0, 예약 0, 누적대출 0, 누적예약 0

책소개

비록 우리의 싸움이 매번 승리로 끝나지는 않을지라도

정보라 작가의 인사말은 “투쟁”이다. 행사장에서 오랜만에 만났을 때도, 채팅창에서 작별인사를 할 때도 투쟁으로 시작해 투쟁으로 끝맺는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싸움은 집회 현장과 지면 그리고 삶 속에서 항상 현재진행형이었다. 적어도 내가 지켜본 바로는 그러하다.
그런 그의 새로운 단편집이 나왔다. 제목은 《그녀를 만나다》이다. 이번 책에서도 그 특유의, 투쟁의 에너지는 여전히 넘쳐흐른다. 다만 그 싸움의 방식이 예전보다 더 정제되고 노련해졌을 뿐. 눈앞에 보이는 것을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는 식이 아니라, 투쟁에 앞서 동지를 찾고 결의를 맺으며 전선을 구축한 뒤 집요하게 승리를 추구하는 식이라고나 할까? 비록 그 싸움이 매번 승리로 끝나지는 않을지라도, 싸움에 임하는 전략은 크게 바뀐 셈이다.
새삼스럽지만 나는 그의 예전 단편집, 《저주토끼》를 좋아한다. 그 책의 저자후기에서, 정보라 작가는 자신의 단편집에 대해 “출판사에서는 불의가 만연한 지금 같은 시대에 부당한 일을 당한 약한 사람(들)을 위해 복수하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서 이 단편집을 내기로 했다”지만, 작가 자신은 “쓸쓸하고 외로운 방식을 통해서, 낯설고 사나운 세상에서 혼자 제각각 고군분투하는 쓸쓸하고 외로운 독자에게 위안이 되고 싶었다”고 밝혔다.
정리하자면, 《저주토끼》에는 세상의 불의에 분노한 나머지 결연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홀로라도 의로운 일을 행하고자 하는 협객의 풍모가 담겼다고 할 수 있겠다. 울분을 참지 못한 나머지 자신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든 일절 상관하지 않고 일단 처 들어가서 다 때려 부수고 보는 그런 패기라고나 할까. 쓸쓸하고 외로운 방식이지만, 제각각 고군분투하는 누군가에게는 그보다 더 큰 위로도 없을 것이다. 나는 항상 그 위로가 고마웠다.
반면 이 책, 《그녀를 만나다》에서 정보라 작가는 《저주토끼》를 썼을 때와는 달리 연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그 연대는 무기력한 관성으로 유지되거나 볼썽사나운 실패로 마무리되기도 하며 가슴 아픈 이별로 끝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연대는 연대다. 서로 동떨어진 누군가가 상대방의 존재를 감지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는 것을 넘어, 직간접적으로 얽히고설키며 함께 전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수록작 중 이런 경향성이 크게 나타나는 작품으로는 <영생불사연구소>와 <아주 보통의 결혼> 그리고 <씨앗>을 꼽을 수 있겠다.
<영생불사연구소>는 불로장생과 영생불사의 차이에 대해 갑론을박을 펼치는 연구소에서 펼쳐지는 일상담이다. 허례허식으로 가득 찼지만 (아주 약간이지만) 좋은 의미로든, (대부분의 경우처럼) 나쁜 의미로든 가족과도 같은 단체이지만, 그 안의 관계에서 누군가는 위안을 찾고 누군가는 슬픔을 느낀다.
<아주 보통의 결혼>은 아내가 자신 몰래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남편이 진상을 쫓으며 시작되는 스릴러다. 그 추적의 과정 끝에 주인공이 발견하게 되는 진실은 너무나도 가혹한 것이나, 이는 또 담담하게 살아남은 사람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는 이야기로 연결되기도 한다.
<씨앗>은 다국적 생명공학기업 모셴닉의 정장 인형들이 나무와 공생하는 인간들과 이권 문제로 충돌하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동화 같기도 하고, 선언문 같기도 한 이 작품은 일시적인 패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져나갈 투쟁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이 단편집에 수록된 다른 많은 작품들은 크고 작으나마 연대의 이야기를, 관계의 이야기를 그려나가고 있다. 《저주토끼》가 의로운 지사의 불꽃처럼 살다가 끝나버린 짧은 일생과도 같은 이미지였다면 《그녀를 만나다》는 숱한 패배와 후퇴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승리를 향해 이를 갈고 있는, 단련되고 영민한 활동가의 술회와 같은 이미지로 전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처연함은 의연함이 되었고 위안은 결의로 바뀌었다. 《저주토끼》가 미로에 갇힌 한 개인의 저돌적인 포효였다면, 《그녀를 만나다》는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나지막이 읊조리는 투쟁가다.
그렇다고 정보라 작가의 변화가 전형적인 프로파간다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투쟁 현장에서 극적인 장면만 편집해서 승리와 패배의 서사시를 그려내는 방식은 정보라 작가의 작업과는 궤가 다르다. 그보다는 싸움이 일상화된 활동가들의 하루하루를 때로는 담담히, 때로는 격렬하게 담아내고 있을 뿐이다. 앞서 정리한 내용을 반복해 말하자면, 이 과정에는 지루함도, 쓰라린 패배도, 내일을 기약하는 투지도 다 담겨있다. 투쟁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마지막으로 당부하건대, 위의 서술로 인해 정보라 작가 특유의 그 에너지가 위축되었다고 여기지는 말아주시길 부탁드린다. 투쟁의 방법론이 바뀌었을 뿐, 정보라 작가는 한결같이 위를 바라본 채 아래를 포용하며 앞을 향해 전진하는 추진력을 간직하고 있다. 아니, 그 힘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강력하고 더 능수능란해진 것이 아닌가 놀랄 정도다. 《그녀를 만나다》는 아주 새로운 정보라를 보여주면서 그 안에 언제나 항상 그래왔던 정보라를 담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이 신기하면서도 고맙고 또 반가울 따름이다.

— 홍지운, 소설가

<작가 인터뷰>

Q. 아직 책과 친하지 않아 작가님을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정보라입니다. 저는 소설을 쓰고 번역을 하고 데모를 합니다.

Q. 요새 어떻게 지내시나요? 작가님의 근황이 궁금합니다.
학교 수업을 하고 수업준비를 하고 과제를 채점하고 교정본을 보고 가끔 데모하거나 식량을 구하러 집밖에 나갑니다.

Q. 평소 독서량이 어느 정도 인가요?
학기 중에 수업시간에 읽는 분량에 따라 다릅니다. 이번 학기에는 한 달에 한 권 정도 읽고 있습니다.

Q. 작가님의 특별한 독서 습관이 있나요?
책을 읽을 때 주로 전공에 관련된 책을 읽기 때문에 논문의 주제가 될 만한 부분에 포스트잇을 붙여서 표시를 합니다. 오래 전부터 습관이 돼서 논문과 상관이 없는 책을 읽을 때도 마음에 드는 부분에 포스트잇을 붙여 놓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포스트잇 투성이가 되는데 약간 뿌듯합니다.

Q. 책을 고르는 나만의 기준이 있나요?
20세기 러시아 작가들의 책을 주로 읽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책 소개나 작가소개를 보고 고릅니다.

Q.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그 이유는?
러시아 작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1899-1951)를 좋아합니다. 삶에서나 작품 속에서나 더 좋은 세계를 지향했고, 유토피아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슬퍼하는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Q. 최근 읽었던 책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책? 그 이유는?
러시아 작가 류드밀라 페트루쉡스카야 중단편선 《시간은 밤》입니다. 주인공들이 너무 고생을 하기 때문에 인상에 남습니다. 문체도 내용도 모두 강렬합니다.

Q. 만약 다음 생에 단 1권의 책만 읽어야 한다면, 어떤 책을 선택하실까요? 이유도 함께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책을 단 한 권만 읽고는 살 수 없어여…. 플라토노프의 《체벤구르》를 읽겠습니다. 사랑 이야기와 성장소설과 피카레스크/모험소설과 유토피아 문학과 비극이 모두 한 권에 들어 있는 굉장한 작품입니다.

Q. 작가님에게 독서란?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 그 이유)
독서란 성장입니다. 모르는 곳에 갈 수 있고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나의 일상 속에서는 절대 알 수 없었을 진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Q. <영생불사연구소>에서 소장님, 이사님들과 ‘나’ 사이에 로고 수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대화가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아마 직장생활, 넓게는 사회생활을 오래 해 온 분이라면 크게 공감할 포인트가 아닌가 싶었어요. 실례가 안 된다면, 작가님의 어떤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직장에서 실제 있었던 상황입니다. 제가 같은 직장에 계속 다니고 있기 때문에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곤란합니다만, 약 80% 실제 있었던 일들입니다.

Q. 작가님께서 진행한 다른 인터뷰에서, 마지막 인사로 ‘투쟁’이라는 단어를 쓰신 것을 읽었습니다. 이번 단편집 또한 투쟁에 관한 이야기일까요? 투쟁이라는 단어에 담긴 작가님의 생각 또한 궁금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투쟁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한 투쟁이고 한국 사회에서의 삶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다만 한국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네가 알아서 노력해라, 실력을 키워라, 스펙을 쌓아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이 당연하다, 능력 없으면 차별받고 소외당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존도 자기계발도 힐링도 모두 셀프로 알아서 하라고 강요합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인간은 사회가 정해놓은 “스펙”이나 “실력”이 있든 없든 누구나 존엄한 존재이며 모두가 자신의 존엄을 위해 투쟁하고 있고 투쟁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기 쉽습니다. 개개인에게 각자도생을 세뇌하는 사회에서 구조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투쟁이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입을 막으려는 세력에 저항하는 것도 투쟁입니다.

Q. <아주 보통의 결혼>에서 아내 선영의 정체성이 독특합니다. 이런 설정을 하신 데에 어떤 배경이나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아주 보통의 결혼>은 호러 SF 영화를 보고 생각해낸 이야기입니다. 영화 제목은 기억이 안 나는데 젊은 부부가 외딴 곳으로 여행을 갔다가 아내가 외계인에게 납치를 당합니다. 아내는 곧 돌아오는데, 무사히 돌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내가 점점 외계인으로 변해가면서 지구인이었던 기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영화 소개만 읽고 기대하면서 봤는데 생각 외로 재미가 없어서 나라면 저렇게 무서운 소재를 좀 다른 방향에서 들여다봤을 텐데 하고 궁리하다가 <아주 보통의 결혼>을 썼습니다.

Q. 딱 한 문장으로 작가의 말을 쓴다면 무엇이 될까요?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여.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Q. 이 책에는 총 8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순서나 구성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순서와 구성은 아작 편집장께서 선택하셨고 저는 괜찮은 것 같아서 그냥 동의했습니다. (무책임)

Q.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과 SF에 대해 강의하고 계시는 것으로 압니다. 이 단편집을 작가님이 아닌 다른 작가의 작품이라고 가정하고, 이 단편집을 학생들에게 소개한다고 해볼까요. 어떻게 설명하고 싶으신가요?
무서운 이야기니까 읽지 말라고 설명하겠습니다…. 일상의 반대편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고 하면 대략 맞을 것 같습니다.

Q. 아직 우리나라에서 SF 장르를 읽는 독자는 일부 마니아층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로서, 또 독자로서 SF 장르가 갖는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이번 단편 중 그 매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단편도 하나 선정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SF의 매력은 내가 나라는 인간으로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단 하나의 삶 이외에 다른 존재의 방식을 경험해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나오지 않고 ‘비인간 지성체’만 등장하는 <너의 유토피아>를 선정하고 싶습니다.

Q. 조금 심오한 질문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작가님은 왜 쓰시나요? 짧게 답변해주셔도 좋습니다.
글을 쓰면 행복하기 때문에 씁니다.

Q. 다음 책이 또 기다려집니다. 출간 계획이 있으실까요? 혹은 또 다른 장르의 작업이라도요.
작년에 써둔 초고가 있는데 여러 가지 다른 일들이 많아서 수정을 못 하고 묵혀두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다시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 <밀리의 서재> 챗북 인터뷰, 2021.6.1

저자소개

연세대 인문학부를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러시아·동유럽 지역학 석사를 거쳐, 인디아나대에서 러시아문학과 폴란드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 연세문화상에〈머리〉가 당선, 2008년 디지털문학상 모바일 부문 우수상에 〈호(狐)〉가 당선되었으며, 2014년 〈씨앗〉으로 제1회 SF어워드 단편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2022년 《저주토끼》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에 오르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저주토끼》 《여자들의 왕》 《아무도 모를 것이다》, 장편소설 《문이 열렸다》 《죽은 자의 꿈》 《붉은 칼》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거장과 마르가리타》 《탐욕》 《창백한 말》 《어머니》 《로봇 동화》 등이 있다.

목차

영생불사연구소_7

그녀를 만나다_49

여행의 끝_89

아주 보통의 결혼_161

Maria, Gratia Plena _195

너의 유토피아_243

One More Kiss, Dear  _281

씨앗_313



≋ 작가의 말_345

한줄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