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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습관 (커버이미지)
추억의 습관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최승랑 지음 
  • 출판사실천문학사 
  • 출판일20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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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016년 《작가세계》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최승랑 소설가가 첫 단편 소설집『추억의 습관』을 출간했다. 저자가 작가의 말에 ‘미소를 띠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니다. 사랑― 그리워한다는 것.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인간의 보편 정서이자 감정이다. 사랑을 담으려고 했다. 누군가의 외로움의 자리를 그리움으로 채워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단 한 사람일지라도 가슴으로 공감하는 독자가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높은 산의 정상을 향해 오른다는 느낌보다는 오래 걸어도 피로하지 않는 햇살드는 오솔길을 걷는 기분으로 글을 쓰고 싶다.’ 고 밝혔듯이 이 소설집에는 다양한 빛깔의 사랑을 담은 아홉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이순원 김유정 문학촌장은 ‘사랑은 몇 겹의 빛깔일까. 그걸로 동화와 같이 아름다운 인생이 펼쳐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거기에 목숨을 걸거나 잃기도 한다. 달콤함인 동시에 생의 독약이기도 하다. 이 한 권의 소설집 안에만도 서로 다른 아홉 빛깔의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며, 김나정 평론가는 ‘사랑만큼 오해받는 감정도 없다. 사랑은 갈등과 불안을 치유하는 만병통치약이며, 때론 두 우주를 단숨에 연결시키는 웜홀이고, 존재의 이유나 삶의 가치로 격상된다. 신이 사라 진 자리를 ‘사랑’이 차지한다.’며 추천사를 쓰고 있다.
이 작품집에 다양한 빛깔로 채색된 아홉 편의 현대인들의 사랑 이야기가 과연 몇 겹의 사랑의 빛깔로 채색되어 있는 지를 가려내는 것은 읽는 이 각자의 몫일 것이다.

사랑의 실험실

‘사랑’을 쓴다’
사랑은 ‘하는’ 것이지 ‘쓰는’ 게 아니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고 연인은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느냐 하염없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뿐 사랑이 무엇인지 물을 짬이 없다
최승랑의 소설은 ‘사랑’을 쓴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속삭임,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사랑의 성취 과정을 다루진 않는다. 끝난 사랑, 끝장 직전의 사랑을 다루며 사랑의 속성이나 의미를 파헤친다. 소설은 과거형이 기본인 사후(事後) 진술이다. 사랑이 끝났을 때야 비로소 사랑의 진면목에 대해 쓸 수 있다. 사랑 ‘속’에 있을 땐 사랑이 뵈지 않는다. 최승랑은 사랑 밖으로 나온 사랑의 모습을 그린다. 하지만 사랑에 대해 쓰는 건 만만치 않다. 사랑은 감정인가,상태인가, 존재 방식인가.
최승랑의 소설은 사랑을 핀셋으로 채취해 프레파라트에 올려놓고, 시료로 염색하여 고배율 현미경으로 들여다본다. 사랑은 무엇인가, 아니 우리가 사랑에 대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동그란 컵 자국들이 서로 겹쳐 말라붙어 있었다. 마치 그것은
수학에서 배운 교집합과 합집합을 설명하는 원들처럼 보였다.
나는 지훈을 둘러싼 갖가지 이유들을 떠올려 그것들의 교집합을 생각했다.
원 하나에 그가 있었고, 또 다른 원 하나에 남편이 있었다. ―「하얀 겨울」

최승랑은 「하얀 겨울」에서 다양한 사랑의 양상을 펼쳐, 사랑의 본질과 의미를 묻고 있다.

사랑의 고통
사랑이 힘든 이유는 사람 마음을 좀체 알 수 없어서다. 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은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끝없이 살핀다. 지진계처럼 연인의 마음이 일으키는 파장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주어진 데이터를 분석하여 숨겨진 진심을 읽어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객관적인 독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프레임에 따라 사랑을 해석한다. 그런데 사람마다 ‘사랑’에 대한 정의는 제각각이다. 누군가에게 사랑은 자유이며 다른 사람에게 사랑은 희생이다. 유희이기도 하고 헌신이기도 하다. 이런 차이로 인해 사랑은 번번이 어긋난다. “접촉의 친밀감이었을 뿐 영혼과 존재의 친밀감은 아니”라고 한다. 사랑은 합의되지 않는다. 사랑은 협정도 아니며 다수결이 통하지도 않는다. 다들 사랑을 말하지만 각자가 말하는 사랑은 천차만별이다.
<블루 하트>의 북 콘서트에 참석한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책을 두고 모였지만 사뭇 다른 반응을 보인다.
‘사랑’을 말하는 사람조차 자신이 원하는 걸 명확히 모른다. 그저 느낌이고 운명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검은 우주다. 아득하고 막막하다. 사랑만큼 오해받는 감정도 없고, 사랑에 대한 기대는 부풀려져 있고, 좀처럼 채워지기 어렵다. 최승랑의 소설은 이런 오랜 사랑의 신화에 메스를 댄다. 사랑에 대한 검질긴 착각은 자기애에 비롯된 건 아닐까. 우리는 상대를 보는 게 아니라 거울을 보는 게 아닐까. 사랑은 거울 속에서 일렁이는 ‘이미지’에서 움트기도 한다.

사랑의 습관
배우자가 있는 사람의 사랑은 불륜으로 분류하고 드라마에 나오는 공식을 끌어들여 사랑을 해석한다. <스티브>에서 연인의 죽음으로 끝난 사랑을 두고 사람들은 이렇게
논평을 가한다.

누구는 전 여친과 그렇게 애틋했는데 그새 다른 여자랑 결혼할 수
있냐고 했고, 누구는 병든 여친을 오래 겪다보니 건강한 여자랑 연애하고
싶었을 거라고 했다. 남자는 원래 그렇다고. 다 틀린 말일 수도 있고
다 옳은 말일 수도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빠뜨린 것이 있었다.
연과 스티브의 사랑에 대해선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왜일까. ―「스티브」

그들은 사랑을 관습적으로 해석한다. 사랑은 이런 상투적인틀 안에서 습관적으로 소모된다. 이를테면 남편+젊은 여자 =불륜, 사랑의 완성=결혼이라는 식으로.

「은재」에서 은재는 유부남 경훈과 어울린다. 다들 그녀를 경훈의 애인이라고 짐작한다. 불륜이다. 경훈의 아내는 ‘나’에게 남편과 은재의 관계에서 번민한다. 그러나 사람의 관계는 그런 통속적인 틀에 갇히지 않는다. “은재에게 경훈은 때로는 친오빠처럼 삼촌처럼 의지가 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통속적인 시선, 고정 관념에 붙들린 관계 규정은 두 사람 사이를 불륜으로 매도한다. 이성애 중심의 낭만적 사랑의 신화도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은재가 사랑한 사람은 동성이었다. 사랑은 고정 관념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이런 상투적인 관계 규정은 되레 사랑을 오염시킨다.

“흑백 사진에서도 빨간 입술은 빨간색으로 보인다는 게 신기
하지 않아요?”
“그럼 정말 까만색 립스틱을 바르고 찍으면 어떨까요?”
“그래도 사람들은 빨간색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생각의 습관
이죠.”―「추억의 습관」

피와 살을 가진 사랑은 이런 통속적인 해석과 생각의 습관으로, 박제와 화석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의 파괴력, 제도의 구속
사랑이 영원한 거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사랑은 변한다. 시간 탓이다. 사랑의 신화에 따르면, 둘이 눈을 마주보고 마음을 확인하고 입을 맞추면 사랑은 봉인된다. 해피 엔딩으로 사랑은 결말을 맺는다. 그러나 세속의 사랑은 고정되지 않는다. 열기는 식는다. 결혼 제도로 묶인 사랑도 고정되지 않는다. 결혼으로 완성했다고 믿었던 사랑도 자꾸 흔들린다.

그냥 헤어지자…….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에는 무수한 이
별의 이유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단지 그 이유가 뭔지 모를
뿐. 분명 사랑으로 시작했다고 여겼는데 아내와 나의 관계는
왜 이런 모양으로 바뀌었을까. ―「거리의 봄」

사랑은 제약에 도전한다. 시간의 파괴력과 제도의 구속력을 넘어서고자 한다. 이는 진정성, 자신의 진실을 고수하려는 의지와 결부된다. 최승랑의 소설은 가족 윤리 안에 포섭되지 않는 사랑을 다룬다. <검은 숲>을 비롯해 <은재>, <하얀 겨울>, <추억의 습관>, <스티브>, <계절풍>은 제도 밖의 사랑을 그린다. 이런 작품들은 기존 질서가 ‘사랑’을 침범하는 양상을 비판적으로 그린다. 사랑이 변하는 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것을 고정된 틀에 묶어둘 순 없다. 변화는 되레 사랑의 본질이기도 하다.

사랑 뒤에 남은 것들
최승랑의 소설은 사랑 이야기며 이별 이야기다. 인물들은 사랑의 끝자락에서 갈등한다. 이 사랑이 진정한 사랑인지를 저울질한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려고 진짜 사랑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랑의 본질에 대해 따진다. 사랑이 끝났을 때 왜 이 사랑이 버그러졌는지 따지고 올라간다. 사랑을 되새김하며 자기 마음을 분석한다. 하지만 사랑이 어떻게 끝나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사랑 너머
사랑에 대해 쓰는 건, 사랑하고 싶어서다. 지난 사랑을 되새겨 더 좋은 사랑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최승랑의 소설은 사랑의 여러 양상을 살펴,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지 우리가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사랑은 지나갈 순 있지만 실패할 순 없다. 우리에게 뭔가를 남기고 간다. 불탄 자리에 따뜻한 재가 소복하다.
<좁은 방>의 화자 ‘연주’는 화재로 가족을 잃었다. 동생은 숨졌고 어머니는 심한 화상에 고통받으며 아버지는 가족 곁을 떠났다. 연주에게는 ‘마지막’ 얼굴들만 남겨졌다. 그러나 마지막은 진짜 끝은 아니다. 연주는 사방에서 죽은 동생의 흔적을 발견한다. 세조의 아픈 몸을 어루만져 낫게 했다는 상원사 전설 속 문수보살은 규영을 닮았다. 울먹이는 연주의 등을 쓰다듬는 친구의 손길로 돌아온다. “네가 제일 문 쪽에 누웠는데 이쪽으로 돌아누워 내 손을 네 가슴 쪽으로 끌어갔어. 그래서 내가 손을 빼면 네가 다시 이름을 부르며 내 손을 가슴 쪽으로 끌어갔어, 이렇게.”떠난 사람들의 기억은 어딘가에 남아 있다. 열기가 가신 따뜻한 위로의 손길로 나를 다독인다. 낭만적 연애의 신화에서 벗어날 때 사랑은 제 품을 넓힌다. 생이 탄생과 죽음 사이의 과정이듯, 사랑은 잠시 머물다 가는 위안일는지 모른다. 시작도 끝도확실하지 않지만 나와 함께 있던 어떤 것들, 잠시 머물던 마음의 정거장들.

하늘을 가득 매운 눈송이가 옥상 바닥의 깨어진 시멘트 조각
위로 고요히 내려앉았다.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내 몸속을 한바탕
휘감고 뿜어진 담배 연기 속에 하얀 눈송이가 부유했다.―「은재」

열정이 살라먹고 지나간 자리엔 재가 남는다. 사뿐히 따뜻하다.

저자소개

2016년 단편소설 <좁은 방>이 《작가세계》 신인상에 당선되었다. 그동안 많은 중단편 소설들을 발표했고, 2020년에는 소설집 《추억의 습관》을 펴냈다.

목차

검은 숲 7

좁은 방 35

계절풍 63

하얀 겨울 95

은재 123

스티브 151

추억의 습관 183

블루 하트 211

거리의 봄 241

해설-김나정 265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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