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상세보기

큰 가슴의 발레리나 (커버이미지)
큰 가슴의 발레리나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베로니크 셀 지음, 김정란 옮김 
  • 출판사문학세계사 
  • 출판일2019-02-10 
보유 1, 대출 0, 예약 0, 누적대출 0, 누적예약 0

책소개

감추고 싶지 않은 가장 여성적인 아름다움과 자의식

여자의 몸에 관한 성의식과 존재론적 갈등을
예리하게 파헤친 프랑스 여성작가의 페미니즘 소설!

너무 큰 가슴 때문에 절망하는 발레리나의 이야기


프랑스의 여성작가 베로니크 셀이 쓴 장편소설『큰 가슴의 발레리나』는 바르브린이라는 발레리나 지망생과 각기 덱스트르와 시니스트르라고 불리는 한쌍의 젖가슴의 독백이 번갈아 나타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두(셋?) 등장인물들은 절대로 소통하지 않는다. 서로 딴 이야기만 한다. 그 소통 불가능성 자체가 이 작품의 철학적 바탕을 이룬다. 여성의 육체적 조건을 상징하는 젖가슴은 여성 주체의 의지와 상관없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 자의식 속에서 서로 대화하는 한 쌍의 젖가슴은 그들의 주인인 바르브린이 자기들 때문에 겪게 되는 비극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

바르브린에게서 고전 발레를 빼앗아갔던 저주의 큰 젖가슴, 그녀를 땅으로 고꾸라지게 했던 무거운 살덩어리, 쾌락의 자기반영성 안에 빠져 있던 젖가슴은, 풍선이 되어 그녀를 하늘로 들어올린다.

─시니스트르?
─왜, 덱스트르?
─젖가슴들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거지? 바구니 안에서 썩나? 화장(火葬)되나? 분류센터로 보내지나? 강물의 흐름을 따라가나? 우리 시골의 기름진 흙으로 들어가나? 파리들을 위한 잔치가 되나? 꽃으로 다시 환생하는 걸까?

여성의 몸과 관련한 페미니즘 계열의 소설이지만, 가슴이 주인공이 되는 흥미로운 시점과 댄서 출신 작가의 춤에 대한 해박한 지식들은, 기존의 페미니즘 소설과는 차별되는 양상을 보인다. 진정한 사랑의 과정(출산)을 거쳐 회복되는 여성의 신체는 페미니즘계열 소설로써는 이례적으로 해피엔딩+세드엔딩의 열린 결말로 마무리된다.

젖가슴의 비극 또는 희극

이 작품의 주인공인 바르브린이 그녀의 좌절의 원인이 되는 큰 젖가슴이 저주의 원인으로 조심스럽게 거론되는 어머니의 큰 가슴의 비밀에 대해 알게 될 때, 그녀가 옛날에 발레리나였던 것으로 보이는 어머니가 옛날에 취했던 아라베스크 동작을 들여다보는 것은 매우 암시적이다. 아라베스크는 발레의 절정이기 때문이다. 바르브린은 아라베스크를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오로지, 단지, 큰 가슴 때문에.
바르브린은 대체로 무능한 ‘바르바르’이다. 그 무능함은 주로 언어의 무능함으로 나타난다. 그녀는 문학에 아무 관심도 없고 소질도 없다. 그러나 그것은 문학적 재능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녀가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다. 그녀의 남성 파트너들이 대체로 말을 잘 한다는 사실과 비교해 보면, 그 언어적 무능의 의미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바르브린의 첫사랑 올리비에는 무려 5개 국어를 하며, 아르토, 스타니슬랍스키 같은 전위적 문인들의 문학을 또르르 꿰고 있다. 반면에 바르브린은 독일의 희곡작가 ‘브레히트가 세제 이름인 줄 알았[을]” 정도로 문학에 무지하다. 그녀는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 못한 바르바르이다. 그녀의 비극은 궁극적으로는 큰 젖가슴이 아니라, 그녀가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그녀의 젖가슴을 쓸모없는 살덩어리로 만든 것은 그녀 자신이다.
반면에 바르브린과 따로 노는 한쌍의 젖가슴 덱스트르와 시니스트르의 이름은 기호적으로 분명하게 설명된다. ‘덱스트르dextre’는 ‘오른쪽의’라는 뜻이고, ‘시니스트르sinistre’는 ‘냉소적’이라는 뜻이다. 오른쪽은 명백하게 이 젖가슴의 성향이 체제적이라는 것을 나타내며, ‘냉소적’이라는 형용사는 지성원리의 한 극단을 보여준다. ‘지성적’이기 위해서는 상황에 매몰되어서는 안되며, 문제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며, 분석 대상으로부터 감정적으로 독립되어 있어야 한다. 덱스트르가 덤벙대는 반면, 시니스트르는 차분하게 상황을 직시하며, 문제를 체계적으로 해결해 나간다. 특히 그는 일반적으로 재난으로 느껴지는 상황을 유머스럽게 뒤집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덱스트르가 정공법을 택한다면, 시니스트르는 가볍게 치고 빠진다.

표면적으로 덱스트르-시니스트르 쌍둥이 형제의 상황을 전하는 것은 덱스트르다. 작가가 왜 ‘오른쪽 젖가슴’에게 대변인 역할을 시켰는가 하는 것은, 작가가 왜 여성 특유의 육체적 조건인 젖가슴을 남성으로 형상화했는가와 연관이 있다.

시니스트르는 이 작품의 매우 재치 있고 유머스러운 결말 부분에서 젖가슴의 앙가주망, 젖가슴으로 쓰는 저항문학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좌파성과 혁명성을 강조하지만 이들의 세계관은 실상은 매우 부르주아적이며 ―이들이 자신들의 최고의 성취로 여기는 솔렌의 수유 장면을 베르사이유 잔치에 비교하고 있는 것을 눈여겨볼 것―체제적이다. 그 사실은 이들이 존재의 탄생의 근원이 되는 정자와 난자 착상을, 수십억 마리의 다른 정충들을 이겨낸 하나의 우월한 정충의 찬란한 승리, 우월한 자에 의한 못난 자들의 <대량 학살génocide>로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로 분명해진다.

‘가장 뛰어난 놈이 수십억 마리의 한량들, 줏대 없는 놈들, 낙오자들, 게으름뱅이들, 논다니들, 제3세계주의자들, 영양 결핍자들, 무능력자들, 잉여인간들, 거지들, 천민들, 멍청이들, 상속권 박탈자들, 밀려난 놈들, 낭만주의자들, 상대주의자들, 예술가들, 빨갱이들, 놀고먹는 놈들, 아나키스트들, 기권자들, 망설이는 놈들, 평등주의자들을 때려잡고 승리하기를! 결국 최초의 대량학살이다! 열네 번째 날 한복판에 이루어지는!’

따라서, 우리는 이 작품에서 작가가 왜 바르브린의 한쌍의 젖가슴에게 남성의 성을 부여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이 말 잘하고 유능한 젖가슴들, 바르브린이 죽음의 다이어트로도, 살아서 미라가 되는 압박붕대 감기로도, 절망한 주인공이 자살 시도를 거쳐 감행하는 유방절제 수술로도 쫓아낼 수 없었던(유방 절제수술 후, 가슴이 저절로 다시 복원될 수 있는가 하는 의학적 문제는 여기에서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유방의 자기 완결성에 대한 악착같은 상징적 욕망일 뿐이므로) 이 무시무시한 자기집착은, 젖가슴이 여성 육체의 일부가 아니라, 여성의 육체를 대상화하는 시선의 환상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젖가슴의 주인은 그것을 가진 여성이 아니라, 그것을 욕망하는 남성인 것이다. 바르브린의 실패한 첫사랑 올리비에와의 관계에서 그것은 명백하게 드러난다. 올리비에는 바르브린이 아니라 바르브린의 젖가슴을 사랑했다. 그렇게 이해하면, 바르브린의 젖가슴은 수평의 육체 안에서 수직성을 노골적으로 지향한다.
바르브린이 그녀 자신의 말을 찾을 것이라는 희망은 그녀가 고전발레를 포기하고 현대무용으로 전환할 때부터 예상되었던 일이다. 그녀는 자신의 문학적 무지를 이사도라 던컨에 대한 매혹을 매개로 극복해 가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 책 여기저기에 화려하게 흩어져 있는 예술가들의 이름은 단순히 작가의 현학적 취향만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것은 바르브린으로 하여금 그녀의 말을 찾아내게 해준 등대 같은 존재들이다. 바르브린은 그 등대들을 좇아서 유럽을 떠나 뉴욕으로 간다. 그녀가 그 뉴욕에서 젖가슴 때문에 힘겨운 모욕을 당하고 임신이라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은, 그 새로운 언어가 육체를 비껴가거나,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관통해서 찾아내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르브린에게서 고전 발레를 빼앗아갔던 저주의 젖가슴, 그녀를 땅으로 고꾸라지게 했던 무거운 살덩어리, 쾌락의 자기반영성 안에 빠져 있던 젖가슴은, 풍선이 되어 그녀를 하늘로 들어올린다. 그 가슴들은 허공에서 폭발하여 자기 밖으로 튀어나간다. 새로운 언어가 눈부시게 폭발한다. 억압의 매체가 억압을 폭발시키는 ‘수류탄의 핀’이 된 것이다.

프랑스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던진 화제의 베스트셀러!

작가 베로니크 셀은 1958년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자크 달크로즈Jacques Dalcroze 리듬 학교에서 학위를 받은 뒤, 고전 발레를 공연하고 가르쳤으며, 현대 무용과, 무용 창조 방법론인 라방 창조 무용 공연과 교육에도 종사했다. 장편소설 다리[橋]의 유혹 (2011), 노를랑드Norlande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2012), 어머니와 함께 한 신혼여행(2015)을 출간하였고 프랑스 문단의 이목을 집중시킨 큰 가슴의 발레리나(2018)는 그녀의 네 번째 소설이다. 작가의 이력에서 볼 수 있듯이 베로니크 셀은 고전 발레와 현대 무용의 공연과 교육자로 살아 왔다. 그녀의 해박한 무용에 관한 지식은 큰 가슴의 발레리나 속에 구석구석 녹아 있다.

가장 육체적인 예술이면서도 가장 반 육체적인 예술 발레는 여성 예술가에게 압도적인 지위를 부여해 왔던 거의 유일한 고전 예술 장르이다. 남성을 거세해서 소년의 여성적 요소를 유지시키거나, 가면을 사용해서 남성으로 하여금 여성의 역할을 시키고, 여성에게서 예술가의 역할을 박탈하는 시도는 여러 장르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발레에서는 그런 페이크가 통하지 않았다. 발레에서는 처음부터 발레리나가 발레리노보다 압도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왜냐하면, 여성 육체의 아름다움은 아무리 가장으로 숨긴다고 해도 남성 육체로 대체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비밀은 여성 육체의 매끄러운 곡선 안에 있다. 그 곡선의 정점이 바로 젖가슴이다. 그러나 그 젖가슴은 절대로 볼륨이 지나치게 커서 수직적 도약을 방해할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있는 둥 마는 둥 해야 한다.

장래 어마어마한 모양이 될 나의 가슴, 모든 것을 망쳐버리게 될 그 가슴에 대해서. 왜냐하면 나는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젖가슴은 발레리나에게는 음악가가 듣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저주이다.

젖가슴 때문에 발레리나가 될 수 없었던 바르브린은 사실은 천재적인 발레리나였다. 그녀는 아기 때부터 고양이를 멘토로 삼아 발레에 입문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좌절을 막연하게 예감하는 것은 어머니의 옛날 사진첩을 통해서이다. 그 사진첩에서 바르브린은 자신이 지금도 해내기 힘들 것 같은 아라베스크 자세를 하고 있는 옛날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한다. 어머니가 발레를 그만둔 것은 큰 젖가슴 때문이었던 것 같지만, 단 한 번도 명확하게 언급되지 않는다. 발레리나였던 어머니는 딸에게 큰 가슴을 물려준 데 대해 아픈 마음을 가지고 있는 듯하지만(몇 차례 간접적으로 언급), 딸의 발레 활동에 대해 아무 언급도 없다. 그녀가 발레리나였다는 언표도 아주 흐릿하게, 거의 뭉개진 형태로 간접적으로만 제시될 뿐이다. 그녀는 딸에게 브래지어를 사주는 것 외에 거의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

아마도, 작가는 <큰 가슴의 비극>을 어머니의 탓으로 몰아버리는 데에 심리적 부담을 느꼈던 것 같다. 비극의 무게는 너무 무겁고, 그 원인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어머니가 느꼈을 죄책감은 사실 문학적으로 또는 기호적으로 그 의미가 무에 수렴한다. 작가가 문학적으로 관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 잔해를 남겨놓음으로써, 바르브린의 젖가슴의 문제가 여성 전체와 관여되는 육체적 문제라는 암시를 던져놓는다. 여성은 젖가슴을 가지기로 선택한 적이 없다. 그것은 유전적으로 주어진다. 그러나 그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바르브린의 경우처럼.

덱스트르로 하여금 쾌락의 추구 안에서 이 시제를 사용하게 만든 작가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그녀는 남성존재로 표상된 젖가슴에게 단순과거로 지칭되는 쾌락의 추구를 하게 만듦으로써, 젖가슴이 바르브린의 현존재와 무관하게 추구하는 쾌락이 그녀의 실존과 거의 상관이 없는, 그 자체의 자기충족성을 가지는 어떤 별도의 원리라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성의 육체 안에서 여성의 실존과 상관없이 진행되는 남성원리의 폭력적 추구.

쾌락과 시제의 문제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바르브린의 말에서 복잡한 시제 사용이 쾌락의 추구와 관련되어 딱 한 구절에서 사용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고려해 넣으면 더욱 분명해진다. 임신을 하고 젖이 돌기 시작하면서 바르브린은 자기도 모르게 자위에 대한 이해하기 힘든 욕구가 자신을 지배하는 것을 느낀다. 그녀는 평소에 눈길도 주지 않았던 야한 속옷을 산 뒤, 그것을 입어보고,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지배한 쾌락의 문제를 단순과거와 접속법 반과거로 끊어버린다. 단호하게.

저자소개

1958년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자크 달크로즈Jacques Dalcroze 리듬 학교에서 학위를 받은 뒤, 고전 발레를 공연하고 가르쳤으며, 현대 무용과, 무용 창조 방법론인 라방 창조 무용 공연과 교육에도 종사했다. 장편소설 『다리[橋]의 유혹』 (2011), 『노를랑드Norlande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2012), 『어머니와 함께 한 신혼여행』(2015)을 출간하였고 프랑스 문단의 이목을 집중시킨 『큰 가슴의 발레리나』는 그녀의 네 번째 소설이다.

한줄 서평